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16화 (115/428)

〈 116화 〉 노예 파티의 주인이 되었다(9)

* * *

‘살고 싶어…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조급함에 일어난 사고.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

하지만 잠깐의 방심이 정예급 리자드맨의 공격을 허용했고 놈의 녹슨 창은 시우의 허리를 파고들어가 그의 내장을 난도질했다.

‘죽기 싫어… 이대로 죽어선 안돼…’

시우는 죽음을 예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난 삶을 떠올리며 후회할 뿐이었다.

‘수빈아… 젠장,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나를 증명하는 모습을…’

하지만 기적은 있었다.

그에게 큰 충격을 준 그 남자가 시우에게 살아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도 살고싶지?...”

비록 그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죽는 것 보단 나았다. 그녀를 다시 만나야하니까. 여기서 멈춰설 수는 없었다.

결국 시우는 그의 조건을 수락했다.

그러자 그가 비릿하게 웃으며 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

“…허억! 하아… 여긴!”

“어디긴. 내 숙소지. 스탯을 많이 올려놔서 그런지 금방 정신차리네. 치료가 끝난 지 10분도 안 지났어.”

“…앗! 진짜, 상처가! 고맙습니다!”

노예가 되었다는 안내창을 본 직후 기절했던 시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일어나보니 정말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상처들이 전부 치유되어 있었다.

흉터도 남지 않은 옆구리를 만지며 시우는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내 노예니까.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윽… 그, 엘리스 씨처럼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겁니까?”

“씨발 징그럽게. 됐고 그냥 평소처럼 불러.”

“…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죽기 직전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노예가 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큰 문제였다.

우선, 그의 명령으로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해야할 수도 있었다.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 말이다. 그가 엘리스에게 하는 짓을 보면 그는 얼마든지 도덕과 거리가 먼 일을 시킬 수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사라졌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 해도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가 원할 때까지 평생 그에게 붙어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후우…’

그래도 살아는 있으니까, 죽는 것보단 낫다며 시우는 자기위로를 했다.

“참고로 너한테 거짓말을 여러 개 했었어.”

그러나 남자의 말이 계속해서 시우의 멘탈을 건드렸다.

“치료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는 거? 구라야. 너가 기절해있던 시간이 치료에 걸린 시간보다 길어. 거기다가 거대 악어? 그것도 이미 잡았어. 그것도 첫날에.”

“…대,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문제 있어? 설령 그렇다 해도 너한테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는 얘긴데? 하루 더 강해질 시간을 번 거잖아. 악어 때문에 다칠 위험도 없고.”

“그건… 그렇지만. 신뢰라는 게…”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시우는 남자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가 남자의 노예가 된 건 남자가 건 조건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니… 하지만 남자의 말 대로 문제가 생기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 사실에 시우는 머리가 아파왔다.

“야, 내 말 잘 들어.”

“네…”

“여기 이런 엿 같은 곳에 끌려오면 결국 믿을 건 자신 뿐이야. 남이 하는 말은 절대 믿을 게 못 돼. 언제든지 거짓말로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신뢰하는 동료? 좆까라 그래. 너도 봤잖아. 콜로세움에서 지들 끼리 죽고 죽이던 네 동료들을.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 그게 바로 너랑 엘리스 같은 노예야. 절대 나를 배신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내 직업이 노예 ‘주인’인 거고, 그래서 내가 노예를 만드는 거야.

네가 저번에 한 말처럼, 혼자서는 다가오는 위험을 모두 감당할 수 없는 게 맞아. 인간인 이상 동료가 필요하지. 그런데 신뢰할 수 없는 동료? 그건 동료가 없는 것 보다 못해. 알겠어?”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 시우를 보고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잔소리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의 이야기는 동료로 삼기 위해 노예를 만든다는 얼핏 들어도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경박하기만 하던 남자의 진지한 모습과 죽다 살아난 시우의 온전하지 않은 정신 상태가 시우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완전한 믿음이란 것에 계속 배신당해온 시우였기에 남자의 말에 더 끌린 걸지도 몰랐다.

“신뢰를 쌓는 건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 이후에 해도 충분해. 지금처럼 말야. 난 이제 너한테 사실만 말할 거야.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 너한테 내가 한 거짓말들과 내 직업까지 공개했어. 노예로 부리는 것과 너의 신뢰를 얻는 건 별개의 일이거든. 하루 쉬면서 잘 생각해봐. 동료가 될 지 아니면 노예가 될 지를.”

“그런데… 왜 하필 접니까? 저는 여기에 와서 계속 실패만 했습니다. 저는 패배자입니다…”

결국 시우는 남자에게 설득당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신과 비교해서 모든 걸 다 갖춘 남자 아닌가. 굳이 그에게 나라는 동료가 필요한가? 이번에도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는 게 아닐까?

시우는 두려웠다. 이 세계로 전이된 후부터 필사적으로 견뎌왔지만 연이은 실패로 자존감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여기서도 자신은 ‘바보 멍청이’가 된 것인 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었다.

“너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니까.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서 그렇지 너는 신념을 가지고 먼저 나서서 행동할 줄 알잖아. 바보처럼 남들 따라만 가지도 않고. 너 같이 행동할 줄 아는 동료를 얻으면 든든하지.”

하지만 남자가 시우를 인정해주었다.

이 곳에서 누구보다 노력했을 그가 시우의 가치를 존중해주었다. 시우는 그의 말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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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씨발. 역겨워 죽는 줄 알았네.

남자끼리 얘기하는데 왜 표정을 저 따구로 짓는 거지? 진짜 미친 놈인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속이 메스꺼워 토할 뻔했지만 초인 같은 인내력으로 겨우 참아냈다.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다.

“후우…”

내가 엿같음을 참고 버틴 이유는 간단하다. 네토리를 위해서다. 단순히 히로인을 뺐는 것만으론 부족할 것같단 말이지.

높은 랭크를 받기 위해선 주인공에게 더 큰 충격을 줘야한다. 그런데 여기서 퀴즈. 믿었던 사람한테 네토라레를 당하는 거랑 적대적인 사람한테 네토라레를 당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내상이 클까?

글쎄.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전자다.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나를 믿고 있는 시우에게 네토리 섹스를 보여준다? 오우, 최소 A등급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배신감과 자괴감, 분노와 열등감, 시우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느낄 거고 결국은 버티지 못하게 될 거다.

그걸 위해서라면 지금의 역겨움 따윈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흐흐, 앞으로가 기대가 된다.

***

“하앙… 주인님, 하아… 헤으응…”

“하아아앙!”

시우를 치료해주고 하루에 걸쳐 마지막 사냥을 끝낸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마을 가운데에 있는 광장에서 요정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요정이 나타나질 않자 엘리스의 몸을 만지며 시간을 때웠다.

악어가 죽을 줄은 몰랐나? 시간이 다 지난 거같은데 요정은 뒷수습을 하는 건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쎔통이다 녀석.

참고로 나와 엘리스는 시우네 그룹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이제 시우와 공동 리더로서 그룹을 이끌게 됐다. 시우를 노예로 만든 것을 밝히는 대신 뜻이 맞아서 동료가 되었다고 공표했다.

나는 여기서 눈치를 보다가 앞으로 시우와 엮이는 히로인들을 노려볼 생각이다.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 아닌가? 스스로의 계획에 감탄이 나왔다.

“하아… 주인님, 여기도 만져 주세여… 흣, 하앙…!”

“네, 거기, 흣, 하아… 아, 조아여어…”

현재 내 노예 슬롯은 2/3, 악어를 잡고 나니 슬롯이 늘어났었는데 이 슬롯을 다 채우면 새로운 스킬과 함께 슬롯이 추가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히로인을 만나면 최우선적으로 복종의 목걸이를 써서 노예로 만들 생각이다.

물론 시우가 없는 자리에서 해야겠지. 풋, 나중에 알게될 시우를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으읏?! 아, 츄릅, 하으… 쥬인님, 헤헤… 쪽.”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엘리스를 끌어당겨 그녀와 키스를 했다. 엘리스는 자연스럽게 한 손을 내려 내 자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역시 학습능력이 높다니까, 배운 건 절대 까먹질 않는다.

“헤으응….! 아읏, 하아… 쥬인니임…”

나는 보답의 의미로 그녀의 양 쪽 유두를 꼬집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유두가 발정 스위치라도 되는 듯 시동이 걸린 모양이었다.

“주모오오오오오옥! 2차 튜토리얼의 끝이에요오오오옷!”

하지만 아쉽게도 요정이 오면서 끝까지 진도를 나가지는 못했다.

“설마! 악붕이를 잡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요! 놀라워요. 이거 다음 튜토리얼이 기대되는걸요!”

그래, 히로인도 안 만나고 튜토리얼이 끝날 리가 없지.

네토리의 시간이 곧 다가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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