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노예 파티의 주인이 되었다(8)
* * *
타닥타닥
진수는 흘러나오는 울음을 꾸욱 참으며 지옥같은 현장에서 도망쳤다. 정찰을 나설 때는 동료와 함께였지만 도망치고 있는 진수는 지금 혼자였다. 가족 만큼 소중했던 그의 동료를 잃은 것이다.
“민호 형… 흑, 형 몫까지 살아남을게!”
설마 그게 악어의 꼬리였을 줄은… 진수는 통나무 보다 큰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고 그 길로 잠들어 있던 거대 악어를 깨우고 말았다. 커다란 언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보니 악어였다.
깜짝 놀란 둘은 도망치려 했으나 잠에서 막 깨어나 짜증이 난 악어가 괴성을 터뜨리자 진수와 동료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으앗! 뭐야 이건… 미친!’
‘악…어? 미친 존나 크잖아!’
뒤늦게 ‘은신’과 ‘기척 차단’을 사용해봤지만 악어가 가진 포식자의 눈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악어가 주는 프레셔에 발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둘은 한 순간에 악어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쳇, 진수야. 안되겠다. 너라도 살아.’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말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하게 되네.’
‘하지마! 뭔진 모르겠지만 하지마!’
‘먼저 가시오.’
‘…혀어엉!’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고 주마등이 진수의 머리에 스칠 때 민호가 그를 강제로 날려버렸다. 1차 튜토리얼에서 그가 운 좋게 얻은 긴급 탈출 장치였다. 그는 자신이 살아나는 대신 동료였던 진수를 살리는데 그 아이템을 사용했다.
슈우우웅
그 덕에 진수는 그 자리에서 멀어지며 살아남을 수 있었고 혼자 남은 민호는 다가오는 악어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민호는 어째선지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진수와는 상반되게 말이다.
***
“그렇…군요. 민호 씨가…”
“악어, 그 악어가 올 거에요! 그 괴물 새끼가 말했잖아요! 마지막 날 도망만 다닐 거라고! 그 날 그 악어가 오는 게 분명해요!”
“알겠습니다.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군요.”
휴식시간을 줄여서라도 사냥 속도를 올려야겠습니다. 라고 시우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있는 집, 두 세 채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악어를 도대체 어떻게 잡는 단 말인가. 지금 당장 2m가 넘어가는 정예급 리자드맨을 잡을 때도 넷이서 달려들어야 겨우 처리를 한다. 그런데 그렇게 거대한 악어를 잡는다? 시우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건 시우만의 생각이 아닌지 그의 동료들이 불안한 목소리로 시우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그 사람… 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성격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그 남자는 강하잖아요. 저희가 보조해주면 악어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1차 튜토리얼에서 1등을 한 그 남자의 도움을 받자는 소리였다. 열 명이 넘는 불량배들을 주먹 한 방으로 몰살시켰으니 그의 힘을 빌린다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거야.’
남자의 말이 계속 시우의 귓가에 맴돌았다.
요정이 첫 날 말한 대로 이 세상은 공평하다. 모두가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하고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누구나 말이다. 그러니 그 남자가 그렇게 강하다는 건 자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노력을 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래서일까? 그는 노력도 하지 않은 자가 남의 도움만 바라는 걸 극도로 혐오했다. 따라서 이번이라고 크게 다를 거같진 않았다.
“아뇨… 저희도 그 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한계를 미리 정하지 마세요. 이미 1차 튜토리얼 때보다 훨씬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시간은 많이 남았습니다.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남자도 해낸 것을 우리가 못 할리 없습니다. 시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횃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안했던 동료들의 떨림이 멈췄다. 시우의 눈에서 자심감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넣어둔 장비를 꺼내며 다시 사냥에 나설 준비를 했다.
“흠!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리라고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맞아요! 노력하면 되는 거에요! 노력이 부족하면 노오력으로, 그것도 부족하면 노오오력으로!”
“같이 힘내죠!”
이미 해가 지고 깜깜해진 밤이었지만 시우네 파티는 다시 숲 속으로 나섰다. 명확한 목표가 생긴 이상 그들에게 쉴 틈은 없었다.
‘강해지는 거야. 강함만이 전부야. 그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했어. 하지만 나는 이상만 펼쳤을 뿐 동료를 지키지 못했어.’
‘그러니 강해지는 거야. 강해져서 모두를 지키는 거야. 모두를 지켜서 나를 증명하는 거야!’
시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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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우우욱
나는 김을 내뿜으며 쓰러진 악어 위에 올라타 상태창을 살폈다. 이 놈에게 얻은 경험치로 스탯을 한 번에 5개나 올릴 수 있는 걸 보니 덩치값을 하는 놈이었다. 이 놈이 이번 튜토리얼의 보스 역할을 하는 모양인데 이걸 단신으로 잡았으니 이번에도 1등은 내가 될 게 분명했다. 개꿀이네 진짜.
참고로 내공도 없는데 이 괴물을 어떻게 잡았냐 하면은…
‘하핫! 예술은 폭발이다!’
‘주인님! 대단해요! 여기 다음 폭탄이에요!’
‘하하하하하!’
나한텐 폭탄이 잔뜩 있었다.
왕도용사물에서 쓰게 될 줄 알고 미리 준비한 폭탄 말이다.
오크 무리는 용사빨로 가볍게 처리하고 그 뒤로는 하루종일 루이즈와 수련만 했으니 인벤토리에 넣어둔 폭탄을 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돈만 날렸나 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쓰게 되었다.
서리 폭탄으로 다리가 묶인 악어는 이어지는 폭탄 세례에 그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악어도 악어 나름대로 저항하려고 발악해봤지만 현대 마법과 과학의 정수가 담긴 마도구, 폭탄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사실 이 정도로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 녀석 덩치만 컸지 내성도 약하고 생긴 것만큼 무서운 놈은 아니었다. 아직 튜토리얼이라 그런가? 선은 지키는 느낌이었다.
“후우… 아무튼 간에 만족스럽구만.”
나는 악어에게서 내려가며 휘파람을 불었다.
요정은 공평하다고 선언했지만 스탯만 초기화되었지 스킬도 그대로고 인벤토리도 쓸 수 있고, 정말 나를 위한 튜토리얼이다.
이럴 때 해야 하는 말이 있지.
“운이 좋군.”
***
그 뒤로는 똑같은 하루의 연속이었다. 숙소에서 일어나 엘리스와 모닝 섹스를 조지고 숲으로 들어가 훨윈드 구경, 스탯을 올린 후 돌아와서 자기 전에 공개 섹스, 정말 보람찬 나날이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운기조식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태극음양신공으로 꾸준히 내공을 모으자 다시 내공 펀치 한 방 날릴 정도는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효율이 너무 구렸다. 본디 섹스를 통해 내공을 만들어내는 무공이라 그런지 운기조식으로는 내공이 모이는 속도가 처참했다. 빨리 위지혜를 만나 단전을 키우면서 리필을 받든가 새로운 무공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이번 튜토리얼에서 무협 장르를 해금할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
진심 내공 펀치를 써도 팔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강해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스를 껴안고 숙소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생존 그룹의 간부들이 피투성이가 된 시우를 업고 내게 달려왔다.
음? 시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고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보니 무언가 큰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설마 지금 주인공 파티가 튜토리얼에서부터 리타이어를 한 거야?
그들은 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무릎부터 꿇으며 내게 간절히 빌었다.
“부탁이에요… 감덕배님께서 치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원하시는 거면 뭐든지 할테니 부디 저희 리더를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리더를 잃을 순 없습니다! 한 번만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을에서 대놓고 힐을 썼기에 이렇게 힐을 구걸하는 사람이 한 명 쯤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시우네 파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 참,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이 재미있게 굴러갔다.
***
강해지기 위해서 자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무리하게 사냥을 했고, 그러다가 과부화가 오는 바람에 정예급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라… 얘 주인공 맞아? 내가 없었으면 이대로 사망이었다.
내가 끼어들면서 뭔가 바뀐 건가?
진지하게 시우가 주인공이 맞는 지를 고찰하면서 나는 치료를 핑계로 시우만 데리고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우를 바닥에 눕힌 후 힐을 사용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우가 정신을 차렸다.
“으윽, 당신은… 절 살려주신 겁니까?”
“그래. 얘기는 들었어. 거대 악어가 나타날 걸 대비해서 무리했다며? 악어에 대한 정보값으로 일단 응급조치는 끝냈어.”
“크흑, 가, 감사합니다…”
“근데 그러면 뭐하냐? 이제 곧 있으면 죽는데.”
“쿨럭! 크허억… 그게 사실입니까?! 쿨럭, 쿨럭!”
사실이다. 완전히 치료를 한 건 아니고 정신을 차릴 정도로만 힐을 사용했다. 이렇게 손쉽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인데 단번에 놓아줄 수는 없었다.
“허리에 입은 상처가 너무 깊어. 그걸 치료하려면 오늘 하루 동안 사냥을 포기해야 해. 하지만 굳이 내가 널 살리려고 하루치 사냥을 포기할 이유는 없잖아? 내일 악어가 날뛴다며? 그걸 잡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 놔야 편하지.”
“그런… 쿨럭, 큭…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물론 거짓말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도 10초면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 협상의 카드는 계속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걸 가지고,
“그래도 살고 싶지?”
“크흑… 저는…”
“그럼 방법이 있어. 간단해. 내 노예가 되는 거야. 너 정도의 실력자가 있으면 나도 든든하거든.”
“…노, 노예말입니까?!”
“그래. 노예.”
시우를 노예로 만들 수 있지. 간부들을 내쫓고 시우만 숙소로 데려온 것도 이 협상을 위해서다.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복종의 목걸이를 아낄 수 있었다. 아무리 정의로운 신념을 가진 시우래도 죽고싶지는 않을 거 아냐.
“너가 노예가 된다면 너를 완전히 치료해주는 건 기본이고 악어도 책임지고 처리해줄게. 얘기를 들어보니 엘리스와 힘을 합치면 상처는 조금 입더라도 잡을 순 있겠더라고. 어때? 선택은 네 몫이야. 강요하는 건 아니야.”
“저는… 저는…!”
시우야! 망설이지 마! 살고 싶다고 말해!
“크흐윽… 흑, 흐윽… 노예가 되겠습니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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