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노예 파티의 주인이 되었다(6)
* * *
요정은 저들에게 싸우라는 미션을 내렸고 한 시간 안에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면 모두 다 죽이겠다고 선언까지 했지만, 코볼트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겁쟁이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대신에 저들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쥐고 있는 무기만 조용히 매만졌다.
괜히 먼저 움직였다가 어그로를 끌게 될까봐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그건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코볼트를 잡아도 경험치를 주는데 사람을 죽인다고 경험치가 안 들어올까? 어차피 한 명 죽기 시작하면 대혼란이 시작될텐데 그 전에 경험치를 먹어두는 게 무조건 유리했다.
“하암~ 재미없네. 엘리스. 너라도 좀 재밌게 해봐. 파이즈리 내가 어제 알려줬지? 오늘은 직접 해봐.”
“읏, 하아… 알겠어…”
그러나 15분이 지날 때까지 저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엘리스가 아니었다면 보다가 자버릴 정도로 지루한 대치였다. 저렇게 한 시간동안 가만히 서있기만 하다가 다같이 죽는 거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모두 제 말을 들어주세요!”
아니, 바보 같은 의심이었다. 그래, 목숨이 달린 건데 살아남으려면 뭐라든 해야지. 생존 그룹의 맴버 중 하나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제비뽑기로 살아남을 사람을 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괜히 무기를 들고 싸우다간 모두 다 죽을 수도 있는데다가, 살아남더라도 상처를 입고 크게 다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시나 생존 그룹답게 병신 같은 아이디어를 꺼내들었다.
뭐? 제비뽑기? 장난치나. 죽는 쪽에 걸린 사람이 곱게 죽어 주겠냐?
비슷한 소리로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자 헛소리를 꺼낸 남자는, 5명씩 먼저 제비를 뽑고 나머지 다수의 사람들이 그 5명에게 결과를 따르도록 강제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또 억지로 숫자놀음을 하겠다는 소리아냐 이거?
얼핏봐서는 그럴싸한 논리였지만, 글쎄, 저 겁쟁이들이 죽는 쪽에 걸린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봤다. 다들 서로에게 일을 떠넘기고 지켜만 볼 게 뻔했다.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죽는 쪽에 걸린 사람들이 발광하는 걸 막지 못하고 개판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통과할거야’, ‘나만 아니면 돼’ 하는 생각들 덕분인지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그의 말에 찬성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을 건 제비뽑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꺄앗! 핫, 하아… 할짝, 쮸웁, 꿀꺽! 하아… 다 마셨어…”
“잘했어. 많이 늘었네.”
“……으응…”
엘리스의 안면에 사정을 해주자 엘리스는 싫어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고 열심히 내 자지를 청소해주었다. 이제야 좀 정신을 차렸나? 노예다운 훌륭한 반응이었다.
엘리스가 기특했던 나는 정화로 그녀의 얼굴과 가슴에 묻은 정액을 모두 깔끔히 씻겨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은 후 양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즐기면서 전장을 내려다봤다. 그곳에선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제비뽑기 작전은 실패였다.
어이없게도 작전은 시작부터 망가져버렸는데 첫 타자가 죽는 쪽의 제비를 뽑아버리자 그의 여자친구가 남자친구를 절대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면서, 제비뽑기를 하자고 주장한 남자를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첫 스타트를 끊은 여자는 생존 그룹의 맴버들에게 둘러쌓여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남자친구 역시 곧이어 그녀를 따라갔다. 그러자 생존 그룹을 경계하던 사람들이 그 틈을 타 그들을 뒤에서 찔러댔고, 결국 모두가 모두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죽고 죽이는 살육의 장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러게 진작에 코볼트 한 마리만 잡았어도 저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됐을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시작된 지 20분, 제비뽑기가 시작되었고
시작된 지 37분, 총 18명이 살아남으며 배틀로얄이 끝났다.
그리고 살아남은 18명 중에 생존 그룹의 맴버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힐끔 시우를 보자 시우는 눈물을 흘리며 생존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되면 자신의 이상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알게됐을 거다. 생존 그룹 맴버들 끼리도 치고 박고 서로를 죽여댔으니 결국은 자기 목숨은 스스로 챙겨야된다는 걸 깨달았겠지.
이른 바 ‘각성’이다.
믿겠다. 너는 주인공이 맞군. 나 없이도 일어났을 일이니, 이건 주인공인 시우를 위한 각성 이벤트가 맞았다.
시우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지금 보다 더 강해질 거다. 모두를 챙기면서도 5등이었는데 ‘나를 위해 살겠다’를 선언하면 떡상하는 거지 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은 안 보이는 히로인과도 만나게 될 거다.
음? 잠깐, 그렇다면…
시우를 동료로 만드는 건 어떨까? 시우만 따라다녀도 기다리던 히로인을 만날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시우를, 히로인을 낚을 미끼로 쓰자는 소리다. 그러다가 시우가 보는 앞에서… 아니, 아니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럴거면 아예 차라리…
노예로 만드는 게 더 낫지 않나?
진지하게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
“흐음? 예상보다 빨리 끝났네요! 좋아, 아주 좋아. 그럼 바로 다음 튜토리얼로 넘어가죠!!”
짝!
또 다시 허공에서 튜토리얼의 요정이 튀어나오더니 박수 한 번으로 우리를 새로운 공간으로 전이시켰다. 새롭게 이동한 곳은 웬 마을이었는데 건물은 있어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곳을 숙소 삼아 쓰라는 건가? 마을 주변은 거대한 숲으로 둘러쌓여있었고 저 멀리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일주일간 살아남으면 됩니다! 간단하지? 이히히힛! 근데 어려울걸? 열심히 살아남아봐. 마지막 날엔 아마 하루종일 도망만 다녀야 할 걸요? 이히히힛!”
“아, 참! 상위 5명에겐 지금 선물이 갈 거야. 상태창을 확인해봐. 엄청 좋을걸? 이히히힛, 그럼 힘내! 일주일 있다 보자고~”
요정은 이번에도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이번에는 일주일인가?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뭐든 간에 나와 엘리스가 할 일은 변함이 없었다. 몬스터를 잡고 강해지는 것, 그것뿐이다. 아, 뭐, 중간중간에 참교육의 시간은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주인님, 이것 봐봐… 엄청 멋있어! 새로운 무기야! 히힣”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 상태창을 열어 보상을 확인해보려는데 엘리스가 먼저 스포를 해버렸다. 무기였어? 엘리스는 그녀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끼를 들고는 신나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광택을 보니 미스릴제인가… 양날 도끼가 아닌 게 아쉽지만 날카로움을 보니 족히 +8강은 되어보였다. 거기다 훨윈드의 움직임도 빨라진 걸 보니 신속 속성도 붙은 듯했다. 대박터졌네? 열심히 코볼트들을 잡은 보람이 있었다.
2등이 저 정도면 1등인 나한텐 얼마나 좋은 아이템을 주는 거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어보자 허공에서 낡은 목걸이 하나가 떨어졌다.
[복종의 목걸이 –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오… 나쁘지 않은데? 종속의 목걸이 하위호환 개념의 아이템이었다.
아직은 필요한 경험치를 다 채우지 못해서인지, 지금 단계에서 새로운 노예를 만드려면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냐고. ‘너, 노예가 돼라’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잘도 동의하겠다. 목숨 가지고 협박한다고 해도 ‘큭, 죽여라’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복종의 목걸이가 있으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사라진다. 제압만 하면 된다는 소리잖아. 이 것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우를 노예로 만들 수 있다. 뭐, 아직까진 고민 중이지만 말이다.
[1등이기에 가장 먼저 특권이 부여됩니다.]
[일주일간 숙소로 사용할 집을 선택하세요.]
그런데 보상이 그게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번엔 일주일간 버텨야해서 그런지 내 생각대로 마을의 집들을 숙소로 제공하는 게 맞았다. 괜찮은데? 텐트도 좋았지만 이왕이면 침대에서 자는 게 좋지. 만족스러운 튜토리얼이다.
“형님! 찾았습니다! 저기 있습니다!”
“껄껄. 나도 눈 있다 인마. 캬~ 엘리스 저 년 다시 봐도 조온나 맛있어 보이네. 저런 년한테 박을 수 있으면 마, 이딴 곳에 온 것도 땡큐다.”
“호식이햄. 뒷구멍은 남겨주쇼.”
“껄껄. 마, 알았다.”
아니, 보상이 거기서도 끝이 아니었다. 스타트 대쉬인지 뭔지, 시작부터 힘내라고 추가 경험치 보너스도 챙겨주었다. 열 명은 그냥 넘어보이는데, 쟤들 다 잡으면 경험치를 얼마나 주려나. 거기다가 저기 저 두 명은 3등이랑 4등이잖아. 장비 보너스도 준다고? 완전 혜자다.
“주, 주인님!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쫄지 말고 뒤에 숨어 있어.”
그리고 말이야. 이쯤 되면 테스트도 해보고 싶었거든? 지난 튜토리얼에서 올린 스탯 덕분에 지금은 숨만 쉬어도 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내공펀치를 날리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근육이 다 터져버릴까? 아니면 이제는 버틸 수 있을까?
한 번 해봅시다.
나는 침을 뚝뚝 흘리며 다가 오고 있는 변태 놈들에게 내공이 듬뿍 담긴 주먹을 휘둘러 주었다.
“꺼져 새끼들아!”
콰
아
앙!
그러자 쓰레기 무리들과
뒷편에 있는 건물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숲까지
고막을 괴롭히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 형체를 잃고 말았다.
“아, 내 장비…”
3등과 4등 놈이 들고 있던 새 장비와 함께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