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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네토리-107화 (106/428)

〈 107화 〉 도전과제

* * *

왕도용사물에서 정력 스탯을 올린다고 포인트를 꽤 많이 써버렸다.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포인트 비용 때문에 지출이 좀 컸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도전과제를 테스트할 겸 포인트 벌이를 할 생각이었다. 어려워보이는 도전과제도 많았지만 가능해 보이는 도전과제도 많았기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뭐야, 업적이랑은 다르게 미리 골라놓고 깨야하네?”

도전과제는 최대 2개까지 ‘히로인 네토리’에 들어가기 전에 선택해야 했고, 선택하지 않은 도전과제는 달성한다고 해도 포인트를 받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불합리하게 느껴졌지만 별 수 있나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한 개만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나는 포인트도 아낄 겸 우선 ‘올랜덤으로 미션 달성’ 도전과제를 골랐다. 이미 성공해본 적이 여러 번 있는 과제였기에 할만 해 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팁없이 미션 달성’ 과제를 골랐다. 각각이 5만 포인트짜리 도전과제로 이번에 클리어한다면 기본 보상에 플러스 10만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개꿀이네 진짜.”

이러다가 금새 포인트 부자가 되게 생겼다.

“그럼 들어가볼까.”

나는 포인트를 버는 상상을 하며 ‘히로인 네토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이 암전됐다.

[‘히로인 네토리’ 능력을 사용합니다.]

[‘올랜덤으로 미션 달성’, ‘팁없이 미션 달성’ 과제를 도전 중입니다.]

[‘올랜덤으로 미션 달성’ 과제를 도전 중이기에 모두 랜덤으로 배정됩니다.]

[장르는 ‘BL물’입니다.]

[당신은 주인공의 소꿉친구입니다.]

[사용가능한 아이템이 없습니다.]

[미션: 주인공의 남자를 네토리 하세요.]

[(도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A등급 이상의 성과가 필요합니다.)]

“?”

뭔가 잘못됐는데? 보여서는 안되는 글자가 보인 거같다. 장난이지? 몰래카메라지 이거?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잖아… 제발 장난이라고 말해줘.

나는 B로 시작하고 L로 끝나는 끔찍한 단어를 보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끔찍한 꿈을 꿨다. 잘생긴 남자와 잘생긴 남자에게 둘려쌓여 잘생긴 남자를 두고 잘생긴 남자와 다투는 아주 개 같은 꿈이었다. 하나같이 얼굴 주변에 꽃이나 별을 달고 다니는 남자들의 외모에 매 순간이 죽을 거같이 괴로웠다. 볼 때마다 토가 쏠렸거든. 그래도 꿈이라서 다행이다.

“더크! 정신이 들었어?”

“?”

응? 아직 꿈에서 덜 깼나? 왜 아까 꿈에서 보던 애가 눈 앞에 있는 거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도 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눈을 감고 현실을 부정하며 다시 잠들었다.

“더크! 이번에야말로 정신이 들어?”

“?”

왜 그대로지? 뭐지, 버근가?

***

다시 한 번 기절을 했다가 정신을 차린 내가 살며시 눈을 뜨자, 의자에 앉은 채 내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는 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아까부터 내 간병을 하다가 그대로 자버린 모양이었다. 딱히 남자의 걱정을 받고 싶지는 않았는데… 설레는 간병 이벤트를 시우랑 했다는 사실에 욕지거리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씨이발…”

끔찍했던 꿈은 ‘히로인 네토리’를 시작하며 흡수한 이 몸뚱아리의 기억이었다. 눈앞의 이 놈팡이는 주인공이었고 내 소꿉친구였다. BL물답게 이 놈의 주변엔 고추들로 가득했는데 하나같이 다 이 놈에게 호감을 보였다. 그리고 그 고추들을 꼬셔야하는 게 내 미션이었다.

“씨이바알…”

인류애가 걸릴 줄이야. 잘못 걸려도 완전 잘못 걸려버렸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현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엿같게도, 도전과제를 진행 중일 땐 중도포기가 불가능했다. 이게 5만 포인트짜리 도전과제라고? 개소리지. 인류애면 천만 포인트를 받고 고르는 장르인데. 하…

자고 있는 시우 놈의 대가리를 부술까도 생각해봤지만 기억에 의하면 이 새끼는 죽지도 않는 놈이다. 놀랍게도 이 놈은 사망회귀라는 아주 주인공스러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죽여봤자 과거로 돌아가지 ‘히로인 네토리’가 끝나진 않는단 소리다.

그럼 자살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나 역시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아니 정확힌 이미 죽어있는 몸이었다. 죽어버린 나를 시우가 부활의 아티팩트로 살렸기에 내 몸의 생사는 시우만이 정할 수 있었다. 자살해봤자 이 놈이 다시 살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방법을 바꿔 모든 남주들을 죽여야 한다. 네토리할 남주들이 전부 사라지면 미션도 실패가 될 거 아닌가.

“후우…”

여기는 중세 판타지. 그리고 BL이 상식이 된 세상이다.

황제가 기사와 바람을 피워도 사람들은 여자보다 아름다운 기사를 찬양하고 황후를 질투에 눈이 먼 여자라며 비난한다. 남자들은 당당히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자들은 대부분 게이 커플의 대리모가 되어 원하지도 않는 아이를 양육한다.

정말이지 미친 세상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나 역시 씨받이 신세였다. 이 빌어먹을 미션은 나보고 남주들을 네토리하든가 남주들에게 임신섹스를 당하든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지랄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남주들을 다 죽여야한다. 그렇게 해서 이 지옥의 이지선다를 벗어나야 한다.

“개같네 진짜.”

비록 여자의 몸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루이즈가 쓰던 검술을 쓸 거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

“더크… 계집 주제에 감히… 크흑!”

우선 한 명, 싸가지 없는 공작 아들을 죽였다. 병문안을 핑계로 시우를 만나러 온 놈을 따로 불러내 놈의 명치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약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방심하고 있던 놈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클라인 검술은 귀족 가문의 검술임에도 굉장히 실전적이었는데 목표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어뜯어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정말 내 취향에 딱 맞는 검술이다.

“주, 주인님? 대체 이게, 크헉! 넌?!”

이제 두 명, 공작 아들의 따까리를 죽였다. 주인의 시체를 보고 얼어 있길래 몰래 뒤로 돌아가 놈의 심장을 찔렀다. 놈은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놈은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이제 나 역시 검에 마력을 두를 수 있었기에 충분히 그 보호를 뚫어낼 수 있었다. 이게 다 클라인 검술 덕분이다.

“젠장, 그 놈의 충고가 사실이었군… 쿨럭! 큭, 좀 더 너를 경계했어야 했는데…”

세 명째, 장례식장 뒷편에서 마탑주를 죽였다. 나 역시 상처를 크게 입었지만 결국은 놈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푸른 섬광에 허리가 양단이 난 놈은 그 상태에서도 곧바로 죽지 않고 나를 저주했지만 내가 정화를 쓰며 저주를 튕겨내자 충격을 받더니 그대로 사망했다.

푸른 섬광은 마력 기반의 스킬이었지만 내가 성기사라서 그런지 신성력으로도 쓸 수 있었다. 그 결과 푸른 빛이 아닌 하얀 빛이 나가긴 했지만 위력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너였군… 너가 다 죽인 거였어. 여자 주제에 이런다고 시우를 독차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네 명, 나를 추궁하는 시우의 직장 동료를 죽였다. 개 같은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일반인이었던 놈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놈의 입을 박살내주었다.

“이런 미친 년인 줄 알았으면 미리 처리했을텐데... 그와 가까운 사람을 대리모로 쓰기 위해 남겨놨더니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 경쟁자를 처리해준 건 고맙지만, 이건 선을 넘었어!”

화가 나서 놈을 부관참시하고 있자 마지막 남주가 나를 찾아왔다. 황태자였다.

***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무사히 죽여왔다만 황태자는 과연 죽일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원래 이런 세계관에서 황태자는 신이고 무적인 법이거든. 세계가 저 놈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정말이지 질투에 눈이 먼 여자는 너무 추악해. 나를 낳은 그 여자도 그렇고 너희 여자들은 하나같이 비겁하고 역겨워. 그렇지 않나, 시우!”

황태자는 개소리보다 더한 개소리를 내더니 자기 뒤에서 숨어있던 시우에게 소리쳤다. 앞으로 걸어 나온 시우는 남주들을 죽였던 게 나란 걸 깨닫고는 그 충격에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황태자가 공주님을 안듯이 시우를 안아주었다.

지랄을 하고 있네 진짜.

“더크… 어째서 그런 거야… 우린 그냥 친구였잖아! 그런데 왜!”

아니 근데 난 지금 여자인데 왜 이름이 더크인거야? 이해가 안갔지만 일단 그건 넘어갔다. 지금은 저 놈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왜? 왜냐니… 그야,

재미… 있으니까.”

게이가 죽어나가는 게 재밌단 말이야. 물론 거지 같은 오해를 받는 건 사양이지만. 그러니 이제 여기서 나가야겠어. 게이들을 보는 건 지긋지긋하거든!

나는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던진 후 단전에 들어있는 내공을 운용해 오른팔에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공을 이용한 공격은 위험했지만 황태자를 이기기 위해선 이 방법이 유일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지 몰랐던 황태자는 가만히 나를 쳐다만보다가 뒤늦게 눈치채고는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조금씩 주먹에 쌓여가던 내공이 터져나가며 놈을 향해 거대한 충격파가 발사됐다. 황태자는 경악하며 방어 마법을 펼쳐보았으나 제대로 마법이 발동되기도 전에 내 공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끼에에에에에에엑!”

그 결과 황태자는 만신창이가 된 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물론 덕분에 내 팔도 망가져버렸지만 아프진 않았다. 드디어 끝났다는 카타르시스에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터벅터벅

나는 마지막으로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해 놈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건 시우였다.

“더크… 아무리 날 사랑한대도 이런 식으론 사랑을 얻을 수 없어!”

“좆까 씨발.”

시우는 아직도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미친 놈인 게 분명했다.

나는 시우를 무시하고 쓰러져 있는 황태자 앞에 섰다. 그리고 놈의 목에 내 발을 올렸다. 이대로 목뼈를 부술 생각이었다. 나는 내공까지 사용하며 올리고 있던 발에 힘을 실었다.

­우득

[미션 실패!]

[결과 F등급, 획득 포인트: 0]

[(미션 실패 시 업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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