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06화 (105/428)

〈 106화 〉 왕도용사물(44)

* * *

“그럼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몸 조심하세요.”

“음,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시우는 말없이 터벅터벅 수련장을 벗어났다. 그 날 이후로 계속 저렇게 저기압이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계속 저렇게 혼자 우울해 하고 있으니 보기가 좀 그렇다.

에휴, 출발하면 나라도 케어를 해줘야겠다.

“그래서 따로 부른 이유는 뭡니까? 어제 즐긴 거로는 부족한 겁니까?”

“읏, 아닐세!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서일세…”

참고로 나는 돌아가지 않고 잠시 루이즈와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어제 몸을 섞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끝내놨을 줄 알았는데 끝까지 말하지 못했던 게 있었나 보다.

“잘됐네요. 저도 말할 게 있었거든요. 어제, 소피아한테 루이즈님과의 사이를 고백했습니다.”

“으음! 행동이 빠르군. 그래… 그녀의 반응은 어땠는가.”

“어땠긴요. 엄청 화를 냈죠. 그래도 고맙게도 저희 사이를 이해해줬습니다. 아직 루이즈님에게 열받은 상태지만 얼굴을 마주하면 금방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런가? 휴우… 다행이군!

소피아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아침까지 풀파워로 박아줘야 했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잘된 일이다. 내가 그 말을 전하자 루이즈가 활짝 웃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정받았다는 게 많이 기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피아가 우리 사이를 착각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꼬셨든 루이즈가 나를 유혹했든 그건 이제 와선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 괜히 이러쿵저러쿵 사정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 양심이 찔려서가 아니다.

“제 얘기는 그게 끝입니다. 루이즈님은 무슨 말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흠흠, 나는 말일세…”

루이즈가 하려는 말은 뭘까? 임신이라도 했다고? 질싸할 때마다 정화를 썼으니 그럴 일은 없다. 그냥 바로 합류하겠다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경비대의 대장이 돌아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과연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주저하는 지 내가 궁금해하고 있자 루이즈가 땅바닥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대의 마음을 알고 싶네… 분명 그대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 그대의 대답은 아직 듣지 못했거든.”

“아, 대답을 바란 고백은 아니었네! 그러니 대답하지 않은 그대의 잘못은 아닐세! 그건 아닌데 그래도 그게…”

“그대는 내 바람대로 나와 성교를 하는 친구가 되어줬지만… 내가 좋아서 내 부탁을 들어준 건지, 아니면 그저 성교가 좋아서인지… 알고 싶었네.”

“루이즈님…”

그녀는 계속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대며 숨기고 있던 속마음을 고백했다. 횡설수설하며 목소리를 키웠다가 줄이는 게 교습 전의 그녀가 생각이 났다. 섹스는 가르쳐줬어도 사랑은 안 가르쳐줘서 그런지 루이즈에게서 여유가 사라져버렸다.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몸은 점점 움츠러들었고 결국 말을 끝냈을 땐 루이즈는 쭈구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참 귀여운 사람이다.

“그대의 사랑을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닐세! 난 지금의 관계로도 충분히 만족 한다네… 그저…”

“그저, 그대의 마음을 알고 싶었을 뿐일세. 다른 건 없네.”

나는 구부러진 그녀의 몸을 일으켜준 다음 그녀를 가득 안아주었다. 루이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는데 그건 못 본 척을 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움찔거리며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뭐하는 짓인가! 이, 이러지 말게!”

“동정하지 말란 말이다!”

이것 참, 혼자 걱정하고 혼자 결론 내리고, 혼자 화를 내다니, 한 번 혼을 내 줘야 정신을 차릴 거같다. 내가 뭐 때문에 소피아와 그런 시간을 가졌는데 이런 반응인 거야?

내가 사정하자마자 힐로 자지를 세우는 우리 성녀님은, 내가 루이즈에게 사정한 만큼의 정액을 내게 요구했다. 복상사라도 바라는 듯한 말에 나는 불가능하다고 외쳤지만, 아리아 여신의 힘을 받고 파워업한 소피아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서큐버스 하나 참교육 시킨다고 정력 스탯을 만땅으로 찍어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오늘 하루종일 기절해 있을 뻔했다.

그런데, 내가 그 고생을 했는데, 루이즈 너가 그러면 안되지. 내가 섹프 하나 때문에 그랬을 거같아?

“흐읍? 하, 으읏! 츄릅, 하아… 그대여?”

“어… 어어어어?! 지금 그대 내 입술을… 무어어어?!”

화를 내는 그녀의 입을 내 입으로 막아주자 루이즈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눈을 부릅 떴다. 그러고보니 루이즈와 키스를 하는 건 처음이었지, 그렇다는 말은 그녀의 첫키스라는 소리인데…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첫키스가 맞아보였다.

뭐, 펠라를 키스라 친다면 이번이 첫키스는 아니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자.

“루이즈님은 그렇게 당황하실 때가 제일 귀엽습니다.”

“그대 지금… 무슨…?”

“이게 제 대답입니다.”

루이즈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는 그 이전부터 나는 계속 루이즈에게 호감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기사님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호감을 안 가질 수가 없잖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호감은 애정으로 발전해갔다. 호감으로만 끝내기에는 내 가르침을 받고 조금씩 성에 물들어가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진지하게 그녀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소피아가 내게 크게 화를 냈던 것도 그 사실을 알아서였다.

그런데 혼자 겁 먹고 우리 사이를 몸뿐인 관계로 생각하다니,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정말인가? 정말로 나를, 꺄앗, 흐읏… 쮸웁, 하, 그대… 츄릅.”

“흑, 하아… 행복해… 츄읍, 할짝, 헤흐… 그래도 있지, 여자라는 생물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직접 그 말을 듣고싶은 걸세. 그러니… 들려줄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런 반응을 보고 싶어서 티를 내지 않고 애를 태운 것도 있지만… 그건 숨기기로 하자.

“사랑해 루이즈.”

“아, 아아… 나도 사랑해...”

큰일이네 이거. 잠깐만 있기로 했는데, 길어지게 생겼다.

***

“내가 확인할 거라고 했지?”

“……”

숙소로 돌아온 나는 소피아 앞에서 무릎 꿇은 뒤 그녀에게 석고대죄했다. 그녀가 권능으로 내가 섹스하는 지 알 수 있는데도 루이즈와 선을 넘고 왔으니 소피아가 저렇게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그대로 돌아오는 것도 말이 안됐다. ‘고자 되기 vs 매도 받기’ 에서 나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거, 소피아한테 혼나는 것도 은근 괜찮은 거같다. 소피아가 화내는 모습이 너무 섹시하단 말이지. 중독될 거같다.

“근데 알면서도 세 번이나 싸고 와? 오빠는 내가 장난치는 거같아?”

그래도 이러다간 뭔가 새로운 성벽에 눈을 뜰 거같아서 무섭다. 그러니 매도성녀는 여기까지다.

“소피, 우리 시우한테 솔직하게 얘기하자. 사귄다고.”

“절대 용서 못… 으응? 정말?! 진짜야 오빠?!”

역시 소피아는 웃는 얼굴이 최고다.

***

[일시정지권 사용]

[업적달성: ‘서브 히로인의 호감도 100 돌파’]

[서브 히로인 ‘루이즈 클라인’의 호감도가 100을 초과하여 ‘루이즈 클라인’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숙련도는 초기화됩니다.) (‘루이즈 클라인’과의 능력치 차이로 스킬 중 일부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클라인 검술 Lv.1 – 클라인 가문의 검술.]

[푸른 섬광 Lv.1 – 푸른빛의 검기를 전방으로 내뿜는다.]

“후우… 간만이네.”

비교적 일찍 돌아왔지만 워낙 여러 일들이 있었다보니 몇 년은 지난 기분이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편 뒤 현실로 돌아올 때마다 끓여먹는 라면을 먹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리며 돌아오기 전 상황을 회상했다.

나는 소피아에게 이제 그만 커밍아웃을 하자고 말했고 소피아는 내 말에 대찬성을 했다. 시우에게 애인이 생길 때까지 숨기려고 했지만 이미 시우가 먼저 바람(?)을 핀 이상 소피아와 사귀는 걸 숨길 이유가 사라졌다.

시우의 창관 얘기를 전해듣고 슬퍼하는 소피아를 위로해주다가 그만 눈이 맞아버렸다고 말을 하면 시우도 자책을 하면 했지 우리를 원망하진 않을 거다. 시우의 멘탈이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시우는 멘탈이 나가면 수련충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같다. 내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소피아도 일리가 있다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날을 잡고 시우에게 얘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기 전에 잠깐 숨고르기를 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시우가 그 얘기를 듣고 날뛸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스팩업을 할 목적이기도 했고, 이번에 쉬면서 새로 생긴 도전 과제들을 맛볼 목적이기도 했다. 과연 어떨 지 많이 궁금했거든.

아, 그런데 폭탄들 막상 사놓고 한 번도 안썼네. 씁, 돈이 아깝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루이즈의 호감도가 한계 돌파를 했구나.”

루이즈의 호감도작, 이것도 현실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호감도가 100이 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예상대로였다. 덕분에 나는 그녀의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푸른 섬광이라… 그 걸 말하는 거겠지? 시우와 싸우던 변종 고블린을 한방에 죽인 그 기술? 매력적이다. 역시 검을 쓰면 검기는 날려줘야 제 맛 아니겠나. 당장이라도 테스트하러 가고 싶다.

클라인 검술이라면 그녀와 대련할 때마다 보던 그 검술을 말하는 걸텐데… 솔직히 검에 대해선 거의 무지해서 강하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다. 직접 검을 들어보면 조금은 감이 오려나?

“몸이 근질근질하구만.”

테스트를 위해서라도 나는 곧바로 다음 ‘히로인 네토리’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수련실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귀찮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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