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88화 (88/428)

88 - 왕도용사물(26)

세상에는 여러 클리셰가 있다.

해치웠나? 라고 말하면 적이 멀쩡하다든가,

이 전쟁이 끝나면 그녀에게 청혼하겠어! 라고 말하면 죽고 만다든가,

5700자의 댓글을 달면 소설 속으로 끌려간다든가,

-퀴에에……

아니면 지금처럼 주인공 보정이라든가 말이다.

아니 진짜 말이 되냐고. 번개를 잘라? 네가 닌자냐고…

보스 쟤 표정 봐라. 어이가 없어서 완전 넋이 나갔구만 에휴.

-퀴에에에엑!

자비가 없는 시우가 이미 저항의지를 상실한 보스를 베어 넘겼다.

그러자 쿠웅하고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쓰러졌다.

후… 나름 긴장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다.

-짝짝짝!

“…훌륭하군! 정말 대단해!”

그런데 등 뒤로 박수소리와 함께 기억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뒤를 돌아보자 마르타 경비대의 부대장, 루이즈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로 여자들에게 입을 옷을 나누어주고 있는 부하들과 그들을 도와주고 있는 소피아가 보였다.

브루투스! 늦지 않게 잘 말했구나. 다행히 적절한 타이밍에 경비대가 도착했다.

시우가 보스를 너무 빨리 잡길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계획대로 루이즈는 시우의 활약상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다시 시우에게 관심을 가지겠지? 이번에야말로 둘이 제대로 썸을 타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루이즈님! 지원 감사합니다!”

“흠! 황급히 달려왔지만 이미 상황 종료군. 역시 너희들은 믿을 만한 실력자들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하하.”

“아니! 운도 실력이다. 그리고 벌써 두 번째지 않은가. 우연이 두 번이 되면 그것 또한 실력이지. 역시 내가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어.”

“뭐…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리고 저 사내… 이제 막 모험가가 된 검사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군. 그리고 그 날보다 더 강해진 것같아.”

오, 반응이 좋은데? 이미 호감도 MAX를 찍은 느낌이다.

루이즈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시우의 방금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하나하나 칭찬을 해주었다. 뭐야, 이 정도면 조금만 더 부추기면 되겠는데?

“그야 시우는 마르타에 도착하고 나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수련을 했거든요. 저 정도로 강해진 건 당연한 거에요!”

“음!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했다? 멋지군!”

어느새 옆에 다가온 소피아가 그걸 눈치챘는지 시우를 칭찬하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루이즈는 수련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며 눈에 띄게 즐거워했다.

루이즈도 수련충인가? 그럼 진짜 둘이 잘 어울리겠는데? 의욕이 생긴다.

“형… 그 인형 지금 돌려주실, 아, 루이즈님!”

“이렇게 또 금방 만나는군! 하나 그 사이에 이렇게 강해지다니! 같은 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지.”

“어… 감사합니다! 검기를 다루는 루이즈님께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저야말로 검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영광입니다.”

“…흠흠!”

분위기 좋은데? 시우가 뒷처리를 끝내고 돌아오자 루이즈가 호들갑을 떨며 시우를 반겼고 시우 역시 즐거워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둘은 검사로서의 뭐시기저시기 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감사의 인사도 전할 겸 오늘 그대들을 집으로 초대할까 하는데 어떤가?”

“정말입니까? 저희야 언제든지…”

“죄송합니다. 오늘은 힘들거같습니다”

“……”

뭐야. 아니, 갑자기 분위기 싸해졌잖아…

기세를 탄 루이즈의 초대를 내가 응하려는 찰나에 시우가 정색을 하면서 거절했다. 이 새끼 설마 또 창관가야 해서 거절한 건가?

예상치 못한 시우의 거절에 루이즈는 그만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마 거절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겠지. 조금 불쌍했다.

“이 새끼가? 감히 부대장님의 초대를 거절해?!”

“너따위가 뭐라고!”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였는지 옆에 있던 부하들이 루이즈 대신 화를 내주었다.

다들 진심으로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그만큼 루이즈를 존경하는 게 느껴졌다.

“자자! 저희 꼴을 보십쇼. 지금 완전 피투성이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이대로 초대에 응하는 건 오히려 루이즈님께 실례지요.”

“맞아요! 루이즈님은 마르타의 여신님이잖아요! 부디 저희에게 여신님을 영접할 준비를 할 기회를 주세요!”

그 덕에 나와 소피아가 변명을 한다고 고생이었다.

젠장. 몸도 피곤한데 가서 대접 좀 받고 오면 뭐가 덧나냐? 에휴.

그래도 루이즈는 우리와 척질 생각은 없었는지 우리의 변명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그리고 칭찬에 약한 루이즈답게 소피아의 여신 소리에 아닌 척하면서도 귀를 움찔거리며 좋아했다.

이런 게 갭모에인가? 저런 점은 참 귀엽네.

“이쪽이야 말로 실례를 했군.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럼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낼 테니 그때는 꼭 받아주게.”

“물론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우리는 길드로 가는 대신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길드에 가면 보나마나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를 해준다고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런 건 다 경비대에게 맡기고 오늘은 바로 쉬기로 했다. 많이 피곤하기도 하고 오늘받은 충격을 달랠 필요도 있었다.

비만 취향의 오크라니… 아직도 어지럽다고 진짜.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우가 몰래 나를 부르더니 내게서 인형을 받아갔다.

뭐지? 난 당연히 시우가 창관으로 직행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나보다.

마르타에 내가 모르는 시우의 인맥이 있는 건가? 설마 그게 아니면 그 인형을 창녀한테 선물로 주려고?

에이, 피곤하니까 헛생각이 절로 나온다.

-끼이익

고개를 내젓고 방으로 올라가자 소피아가 달려와 내게 안겼다.

그래, 소피아도 많이 충격이었겠지. 또래의 여자들이 그런 꼴을 당했으니…

내 품에 안겨 떨고 있는 소피아를 보니 아까는 신경써주지 못했단 생각이 들어 많이 미안했다.

그 사람들 앞에선 애써 밝은 척을 했던 거겠지. 진짜 성녀다.

“소피, 괜찮아?”

“오빠… 잠시만 이렇게 있을래.”

“…평생 있어도 돼.”

소피아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다가 내가 등을 어루만져 주자 펑펑 소리내서 울기 시작했다.

억지로 참아오던 감정이 이제서야 터져나오는 듯했다.

“너무 불쌍해… 흑, 흐윽… 그 사람들은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했던 거야?”

“소피…”

“응? 오빠아… 흑, 난 왜 그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으아앙… 그치만, 그치만! 여신님이 내게 힘을 준 건… 흐윽,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서잖아!”

오크들에게 당하기 전에 그녀들을 구해주지 못한 게 계속 걸렸던 걸까? 소피아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미안해하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결국은 구해냈잖아? 그 사람들한텐 네가 영웅이야. 그러니 슬퍼하지 마.”

“우으… 흐아아앙...!”

나는 소피아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 위로해주며 그녀를 가득 안아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 세계를 너무 쉽게 본 걸지도 모른다. 여기는 정말로 ‘왕도’용사물이잖아. 클리셰 비틀기 등으로 다양해진 다른 판타지 장르와는 달리 정말 정의로운 소년이 용사고 정말 자애로운 소녀가 성녀다.

진심으로 여신이 준 사명을 믿고 최선을 다해 세계를 구하려고 한다. 내가 이 세계를 즐길 거라면 나도 거기에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겠지. 그래, 소피아를 위해서라도 나 역시 진심이 되어야한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울다가 지친 소피아를 침대에 눕혔다.

“오빠…”

“응?”

“있잖아… 오크들이 왜 그렇게 성욕에 미친 줄 알아?”

“…어?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얜 또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소피아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내 손을 양 손으로 붙잡더니 촉촉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오크들은 절대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그래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대.”

“…그렇구나.”

“그리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씨를 뿌리는 거래.

아하, 지식이 늘었다. 종족 번식의 본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소리지?

그런데 그 소리를 왜 하는 거야. 어… 아니지?

“마왕을 무찌르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겠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일거야. …그치?”

“아무래도… 쉽지 않겠지.”

“…오빠…”

말을 마친 소피아가 몸을 돌려 내게 올라탔다. 그리고 한 손을 내려 작고 귀여운 손으로 내 자지를 가득 쥐었다. 내 자지는 당연하게도 발기해 있었다. 소피아는 그 사실에 만족하며 내게 몸을 비비더니 내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할짝, 오빠. …싶어.”

“하아… 오빠의 아이를…”

“오빠와 나의 아이를… 만들고 싶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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