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62화 (62/428)

62 -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1)

최시우와 감덕배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학교 앞 투룸에서 자취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감덕배와 든든한 고향친구가 필요한 최시우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며 시작된 동거였다.

원래 동거를 하게 되면 사소한 이유로도 싸우게 되지만

의외로 성격이 잘 맞는 둘은 오히려 더 친해졌고 지금은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절친의 썸녀를 가로채야 한다 그말이구만.”

시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포인트를 벌어야 하는데.

눈물을 머금고 네토리를 할 수밖에…

“대신 왕도용사물에선 챙겨줄 테니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며

나는 시우의 썸녀를 빼앗을 계획을 세웠다.

***

최시우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는 놈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서글서글한 성격에 인기가 없을 수 없는 놈이니 당연했다.

그런데 이 미친놈은 자신이 인기가 많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놈이었다.

주위의 여자들은 그저 친구일 뿐이라며 자기도 남들 다 해보는 썸을 타보고 싶다며 징징거렸다.

“기만자 새끼…”

그런데 썸녀가 있었어? 팁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거다.

맨날 술만 마시면 썸녀타령 여친타령을 하더니 알고보니 다 연막작전이었다.

거기다 나도 없는 집에 여자를 불렀다 이 말이지…

음흉한 새끼. 확인 문자까지 보내고 말야.

썸녀를 데려와서 대체 뭘 하려고 한 거야?

시우답지 않은 행동력에 속으로 작게 박수를 쳐줬다.

한편 이번 ‘히로인 네토리’의 감덕배도 나름 인기가 있는 놈이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예은: 무슨 일이야??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ㅠ_ㅠ…]

[박하얀: 뭐야… 같이 가기로 했자나! 히잉 그럼 나도 안갈래.]

[신지아: 우리끼리 한 잔 할래? 나도 솔직히 가기 싫었거든.]

MT에 못가겠다고 하니 곧바로 이런 연락들이 오는 정도였다.

이 정도면 네토리는 때려치고 꿈에 그리던 캠퍼스 라이프를 즐겨도 될 정도인데 그놈의 포인트가 정말 아쉽게 됐다.

프로필 사진을 뒤져보니 다들 얼굴도 괜찮아 보이던데…

“하아…”

그래도 이런 데서 시간 끌리면 더 늦어지니까 참기로 했다.

5만 포인트를 벌려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

-삑삑삑삑 삐리릭!

-철컥

“와 이 시간에 데려온다고? 좀 하네 진짜.”

현재 시각은 오후 8시. 벌써 해도 져서 깜깜해진 밤이다.

그런데 지금 여자를 데려왔다? 시우의 속셈이 빤히 보였다.

“야 어딜 갔다 지금 오냐… 잉? 누구?”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팬티 바람으로 둘을 마중나갔다가 썸녀를 보고 당황한 척을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시우 친구 나희라… 꺄아아!”

그러자 썸녀 역시 당황하며 내게 인사를 하다 내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더니 부끄러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음… 시우 진짜 꽤 하네. 이번 히로인 역시 매력적이구나.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과 옅은 화장을 하고 있는 순수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막 꾸미기 시작한 새내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풋풋한 매력이었다.

거기다 입고 있는 그녀의 데이트룩이 둔감한 남자를 어떻게든 유혹해 보겠다는 의지처럼 보여 귀여웠다.

이제 곧 네토리당하겠지만 말이다.

다만 가슴이 조금 아쉬웠다. 빈유까지는 아니었는데 요새 맨날 현아랑만 다녀서 그런가 상대적으로 많이 빈약해보였다.

저 정도면 파이즈리는 힘들겠는데…

빨리 포인트만 벌고 끝내야 할 이유가 늘었다.

“야! 너 왜 집에 있어?”

“왜긴. 내 집이니까 있지.”

“아니 일단 옷부터 입어 빨리!”

내가 썸녀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평가하고 있자 시우가 나를 부르더니 그대로 나를 끌고 방으로 데려갔다.

아무래도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크게 당황했는지 제대로 말은 못하고 횡설수설 하고만 있자 답답했던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 됐고 쟤 누군데? 여친?”

“…여친 아니야. 그냥 친구야.”

“아하 아직은 아니다?”

“앞으로도 아니니까 빨리 바지나 입어!”

“아니 왜?”

“일단 만났으니 소개는 해줘야 할 거 아냐.”

“아하…”

진짜 이런 건 또 시우답네. 정말이지 성실한 놈이다.

이런 상황에서 쫓아보낼 생각은 안하고 소개시킬 생각부터 하다니

역시는 역시 역시다.

“근데 너 MT간다며. 왜 안가고 집에 있어?”

“아 그거 파토났어. 에효 갑자기 애들이 떼거지로 못가겠다고 해서 그거가지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어 진짜.”

“그랬구나…”

“그래서 짜증나서 너랑 술이나 한 잔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MT때 마시려고 사놓은 보드카, 그대로 있거든. 어떻게 한 잔 하실?”

“그건 좋은데 지금 일이 좀 있어서...”

“일? 무슨 일? 너가 데려온 쟤랑 관련된 거야?”

“아니 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다음 주에 있을 발표과제 때문에 잠깐 모인 거야.”

“그래? 그럼 끝나고 셋이서 한 잔 하실?”

“…어?”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구만. 그런 핑계를 대고 데려온 거였어.

오전부터 내가 MT를 가는 지 확인을 한 시우나

과제를 한다면서 저렇게 입고 온 썸녀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왔으면서 겉으론 그런 핑계를 준비했구만.

정황을 알게되자 웃음이 절로나왔다.

이렇게 되면 미리 짜둔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 같다.

“그럼 물어보러 가볼게.”

“야, 잠깐만. 야!”

나를 붙잡는 시우의 부름을 무시하고 문을 열어 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남자 집에 오는 게 처음인지 긴장을 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안녕? 시우 동창이자 룸메이트인 철학과 21학번 감덕배야. 만나서 반가워.”

“아… 안녕하세요? 시우랑 같은 과 동기인 나희라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뭐야 말 편하게 해 동갑인데. 현역맞지?”

“어… 응…”

썸녀의 태도를 보자 나를 조금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아까 팬티차림을 보여줘서 그런가?

그래도 이건 의도한 결과다. 나를 경계한다는 건 곧 다시 말해 나를 신경쓴다는 거거든.

작전이 무사히 진행되고 있었다.

“근데 있잖아. 오늘 시우랑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너도 같이 한 잔 할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

“응? 그건…”

“아니 시우가 그랬으면 좋겠다 하더라고.”

“야! 내가 언제! 희라야 쟤 장난이니까 너무 신경 안써도 돼.”

아 거 참. 조용히 좀 있을 것이지.

썸녀를 꼬셔대고 있는데 시우가 뒤늦게 방에서 나오며 방해를 했다.

하지만 시우녀석…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은근슬쩍 자리를 만들길 원하는 눈치다.

그 모습이 뻔히 보여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니… 난 괜찮아. 어차피 오늘 금요일이고… 시우 넌 어때?”

“응? 나는… 너가 괜찮다면 나도 좋아.”

이것 보소? 쌍으로 아주 지랄이네. 중간에 내가 있는 건 모르시나?

나는 분명 셋이서 마시자고 했는데 벌써부터 아주 둘만의 시간이다.

그래도 덕분에 한 단계 통과를 해서 걱정을 덜었다.

이번 단계가 가장 큰 고비였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론 정말 식은 죽 먹기다.

“그래? 잘됐네. 그럼 난 내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끝나면 말해줘.”

***

이번 ‘히로인 네토리’를 시작하기 전 내가 인벤토리에 넣어 둔 물건은 현실에서 쓰던 스마트폰과 왕도용사물에서 주운 초록색 단검, 그리고 집 구석에 굴러다니던 수면제다.

어떤 ‘히로인 네토리’를 하게 될 지 몰랐기 때문에 범용성 높은 세 가지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시우와 시우의 썸녀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지금,

인벤토리에 남은 스마트폰과 초록색 단검이다.

“아 뭐야 얼마 마셨다고 벌써 자는 거야 이 놈은. 하여튼 시우 얘는 주량이 약하다니까.”

“시우 주량이 약했구나…”

“잠깐만 기다려줄래? 얘 좀 눕히고 올게.”

“아니… 그, 시우도 자니까 나도 이제 그만 가볼게. 오늘 재밌었어.”

“벌써 가게? 너도 자취한다며?”

“그래도 벌써 늦었고…”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면 안돼? 시우 관련돼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거든.”

“…그래?”

“응. 그러니까 잠깐만 기다려.”

수면제는 어디갔냐고?

반은 시우에게 썼고 반은 지금 쓸 생각이다.

원래 약물을 쓰는 건 반칙이고 자지 하나만으로 함락하는 게 국룰이지만

어차피 시작부터 성감자극으로 반칙을 해오던 나였다.

거기다 이제와서 이런 짓을 하는 것에 죄책감은 없다.

그래봤자 어차피 ‘히로인 네토리’ 속이잖아.

튜토리얼 때부터 강간을 했었는데 뭐 어때.

나는 시우를 시우네 방에 눕히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른 뒤

썸녀가 보지 않도록 몸으로 가린 후 컵 안에 수면제를 넣었다.

“듣기 전에 찬물 한 잔 마셔. 조금은 중요한 이야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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