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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네토리-61화 (61/428)

61 - D컵이 내게 집착한다(13)

그녀는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헌터를 그만둬라고? 왜? 어째서?

그가 무슨 이유로 그녀가 그렇게 싫어하는 전남친이랑 같은 말을 하는 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옆에서 봤을 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내가 심각한가?

당장 때려치는 게 나을 정도로?

그래서 걱정이라도 해주는 걸까?

나를 위해서라도 그만둬라고?

뭐가 되었든 싫었다. 헌터는 그녀에게 삶의 목표였다.

남의 말 한 마디로 그만두기엔 정말로 소중히 지켜왔던 꿈이었다.

첫 만남 이후 처음으로 그에게 거부감이 들었다.

그와 친해지기 전으로 돌아간 거 같았다.

‘결국 아저씨도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실망했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오려 했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가 미웠고

그 역시 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 자신이 미웠다.

“…네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물으면서 그녀는 속으로 빌었다.

‘제발 농담이라고 해주세요.’

‘제발 장난이라고 해주세요.’

‘제가 아저씨를 싫어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그런데…

그가 전혀 엉뚱한 말을 꺼냈다.

“헌터 그만두고 내 매니저 해주라.”

“……네에에에?!”

그건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던 말이었다.

***

[아니 그… 강요는 아니고 말야. 그냥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이번에 내가 C등급 헌터가 되긴 했지만 솔직히… 나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싸우는 것만 할 줄 알지 그것 외엔 젬병이고.]

[그래서 난 너가 필요해.]

[냉정하게 말해서 헌터로서는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거 같아... 그치만 난 너와 계속 같이 가고 싶거든?]

[그래서 현아야. 너가 내 매니저가 되어줬으면 좋겠어.]

[이기적인 거 맞고 욕심부리는 거 맞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그래.]

[당장 대답해주지 않아도 좋아. 여유롭게 고민해보고 연락해.]

이현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 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벌써 수십 번째 보는 영상임에도 어제의 그 순간처럼 설레고 말았다.

“꺄아아! 나보고 매니저를 해달래!”

그녀는 보고 있던 영상이 끝나자 다시 한 번 재생버튼을 누르고는 반복되는 행복을 만끽했다.

이상하게도 영상이 반복될수록 기쁨은 사그러들긴커녕 점점 더 커져갔다.

다시 또 혼자가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따위 이미 날라간 지 오래였다.

그녀를 원하는 그의 솔직한 모습에 얼음같이 차가웠던 그녀의 마음은 봄날처럼 따뜻해져 있었다.

[나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나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래서 난 너가 필요해.]

“그래서 난 너가 필요해.”

[그치만 난 너와 계속 같이 가고 싶거든?]

“그치만 난 너와 계속 같이 가고 싶거든?”

영상을 얼마나 반복했는 지 그녀는 남자의 모든 말을 외우고 있었다.

그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말은 직접 소리 내 따라할 정도였다.

“아저씨의 인생에 내가 없으면 안된대! 내가 꼭 필요하대! 나랑 영원히 함께하고 싶대! 에헤헤…”

그만큼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에 푹 빠져 있었다.

결국 다 닳고 만 배터리만 아니었으면 밤새도록 영상을 돌려봤을 그녀였다.

“내가 아저씨를 생각하는 것만큼 아저씨도 나를 생각했었구나. 그게 가장 기뻐…”

아니 영상 없이도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의 고백을 음미하는 그녀였다.

***

“그런데… 어떡하지? 매니저라… 에헤헤! 매니저! 매니저!!”

그녀는 심각한 척 혼잣말을 시작했지만 이내 곧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말은 그렇게 꺼냈지만 그녀는 이미 답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그의 얘기를 듣자마자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었다.

곧바로 대답하지 않은 건 그녀 나름의 밀당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초조해진 그를 기쁘게 해줄 생각에 그녀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헌터 일을 그만두는 건 아쉽긴 해…”

헌터 일을 포기하지 않던 건 그녀 나름의 오기였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던 그녀는 항상 주변의 무시를 받았었다.

‘얼굴만 예쁘지 딴건 다 폐급이잖아? 저런 애들 미래는 다 뻔하지.’

‘지금에야 저렇게 도도한 척 굴지 나중에 가면 돈벌려고 내 밑에 깔릴 걸?’

그런 상황에서 각성은 그녀에게 찾아온 유일한 기회였다.

처음으로 남들 보다 앞서는 재능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도 잘하는 게 있다는 것을.

그래서 자랑하고 싶었다. 헌터로서 당당히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을 무시하고 시기하고 얕보는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또한 남자친구의 울타리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을 깨뜨리고 싶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이악물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그녀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젠 의미없는 일이야.”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의지해주고 나만을 바라봐주는 아저씨가 있으니까…”

“이미 내 존재가치는 찾았으니까.”

그러나 이젠 그녀의 말대로 더 이상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도움도 안되는 남의 눈치 따위 더 이상 그녀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중대사는 그였다.

“그러니 아저씨만 신경쓰면 되는 거야.”

“나 없으면 바보가 되는 아저씨인걸. 내가 하나하나 다 챙겨드려야 해.”

“어쩔 수 없네.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드려? 내가 매니저 해야지. 응, 그럼그럼.”

“그런데… 잠깐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침대 위를 뒹굴던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겉으론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고 입꼬리는 쉬지 않고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 인생에서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로 내가 없으면 아저씨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함께 해 달라고 고백하는 건…”

“프… 러포즈아냐?! 꺄아아아아!!”

“어떡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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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에겐 미안하지만 억지를 부려버렸다.

멀쩡히 헌터를 잘 하고 있는 아이한테 그만두고 매니저나 해달라니… 충분히 뺨맞을 짓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헌터 생활을 위해선 현아가 꼭 필요했다.

이 놈의 시스템은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아직까지도 간단한 예약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떠넘겼어서 이렇게 된 거 같은데 이제와서 차근차근 배우려고 하니 너무 답답했다.

그냥 현아랑 계속 붙어다니는 게 편했다.

…는 솔직히 핑계고…

현아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 게 진실이었다.

남친과 싸운 이후로 혼자가 된 현아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떠나간다면 현아가 크게 다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동정만으로 현아를 받아주는 건 안되는 일이었고

여기서 내가 생각하기에 최선의 수는 현아를 내 매니저로 고용하는 거였다.

사실… 이것도 동정이라 봐야겠지만 적어도 시간은 끌어주겠지.

현아의 마음이 바뀔 시간이나 내 마음이 바뀔 시간 말이다…

아오, 갈수록 시우화가 진행되고 있다.

아니 그래도 여긴 현실인데 책임감 없이 먹버할 순 없잖아…

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이럴 땐 역시 ‘히로인 네토리’지.

1차 목표인 C등급 헌터 승급은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2차 목표인 ‘히로인 네토리’ 포인트 벌기를 달성해야 한다.

필요한 최소 포인트는 5만포인트.

현재 포인트는 80포인트.

갈 길이 멀다.

한 두 번으론 힘들 거 같은데…

우선 지금은 장르니 뭐니 고를 포인트도 없으니

아무 생각없이 기분전환으로 다녀와야겠다.

***

[‘히로인 네토리’ 능력을 사용합니다.]

[원하는 장르를 선택하세요.]

[*오류* 보유 포인트가 부족하여 랜덤으로 선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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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보유 포인트가 부족하여 랜덤으로 선택됩니다.]

[이번 회차에 사용할 아이템을 선택하세요.]

[*오류* 보유 포인트가 부족하여 아무 아이템도 선택하지 못합니다.]

[장르는 ‘청춘성장물’입니다.]

[당신은 주인공의 룸메이트입니다.]

[사용가능한 아이템이 없습니다.]

[미션: 히로인을 네토리 하세요.]

[팁: 주인공과 메인 히로인은 풋풋한 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찰나입니다. 그 시작을 위해 주인공이 메인 히로인을 집에 초대했습니다.]

-띠링!

“아하.”

[최시우: 덕배야 너네 과 오늘 MT간다고 한 거 맞지? 그냥 생각이 나서 연락해봤어. 잘 갔다 와!]

“이런 식?”

[얘들아 진짜 미안한데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셔 오늘 MT 못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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