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 D컵이 내게 집착한다(11)
그것은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그 냄새, 그 감촉, 그 쾌락…
그 날의 기억은 며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현아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의심을 하게 되었다.
‘혹시 꿈이라는 게 내 착각이고 사실은 정말 일어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미끼를 던져 보았다.
‘그 날과 같은 상황을 만들면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는 술에 취한 자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달콤한 말과 함께 그녀를 위로해줬다.
자신은 언제까지나 네 편이니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라는 그 말…
외롭고 불안했던 그녀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 말을 듣기가 싫었다.
그녀가 원했던 건 그런 말뿐인 위로가 아니었다.
그녀가 정말로 원했던 건 그가 그 날의 꿈처럼 자신을 덮쳐주는 것이었다.
“아쉽게 됐네… 괜히 설치했다.”
그랬다면 그와 영원히 이어질 수 있었을 테니까.
***
잠에서 깨어난 이현아는 곧장 일어나 어제 설치한 카메라를 확인해보았다.
화면 속 감덕배는 그녀를 눕힌 후 간단하게 청소와 설거지를 끝내고는 그녀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혹시나 속옷을 훔친다든가 몰카를 찍는다든가 하는 음흉한 짓을 하지 않았을까 기대해 봤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저씨가 그럴리가 없지 에휴… 바보바보…”
오히려 음흉한 건 자신이었다.
혹여나 그 날의 꿈처럼 그가 자신을 덮쳤다면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만들 생각으로 카메라를 설치했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빌미로 그를 놓아주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이라는 전제부터가 틀렸으니 계획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진짜 나 너무 쓰레기다… 죄송해요 아저씨…”
한숨을 크게 내쉰 이현아는 카메라를 내려두고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재각성을 하게 된 아저씨,
사기급 능력으로 D등급 던전을 솔플 해버린 아저씨,
그것도 함께 클리어 할 때보다 더 빠르게 클리어 해버린 아저씨…
달라진 그의 모습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가다간 그와 멀어지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같은 D등급 헌터, 딜러와 힐러, 여자와 남자,
당연히 그녀는 아저씨와 길게 갈 사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강해진 그는 머지않아 C등급 헌터가 될 거고 높은 확률로 그 윗단계를 노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자신과는 함께할 수 없음이 명확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조바심이 났다.
기껏 잡은 인연이었다.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동료였다.
자신의 자존감을 세워준 귀중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래서 놓치기 싫었다.
그와 헤어져버린다면 이번에야말로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그렇기에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런 걸 설치하냐? 어제 제정신이 아니었네…”
불안했던 그녀는 그를 붙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차를 주차한다는 핑계로 짬을 낸 그녀는 재빨리 집에 방범용 카메라를 설치했다.
술자리에선 일부러 그에게 평소보다 더 달라붙었다.
취한 척 연기를 하고 그가 집에 데려다주는 걸 유도했다.
거기다 편의점에선…
“으으…! 나 거기 단골인데… 부끄러워서 이제 어떻게 가…”
미친 척하고 콘돔을 사려고 했었다.
그에게 보내는 섹스어필이었다.
바로 막혔지만.
집에 도착하고는 바로 잠에 든 척을 했다.
카메라의 위치를 신경쓰면서 장애물을 치우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가 벗기기 쉽게 답답하다고 중얼거리며 옷의 단추를 풀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덮치지 않았다.
평소대로의 상냥한 아저씨였다.
“하아… 근데 진짜 아저씨 고자인가? 차려둔 밥상인데…”
“아니면 내가 부족한가?”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가 자신을 덮치지 않은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자신을 여자로 안 보거나.
그녀는 거기서 후자 쪽을 의심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꾸미질 않아서 그렇지 전투 중에 보이는 진지한 얼굴을 볼 때면 자기도 모르게 설레던 그녀였다.
거기다 성격도 좋았다. 화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고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었다. 성욕에 미친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붙어다니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녀는 미처 몰랐지만 한 발자국 뒤에서 생각해보니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여자가 없었을까? 절대 아니다.
비록 지금은 연락하는 여자가 없어보였지만 평소에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절대로 여자가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당연히 여자보는 눈도 높겠지…”
그의 주변엔 자기보다 훨씬 예쁘고 잘난 여자들이 많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해가 갔다.
여자라기보단 여동생이나 조카를 보듯이 대하던 그였다.
“후우… 그러면 안되는데.”
그가 자신을 떠나가기 전에 그를 붙잡아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외모와 몸뿐이었다.
남자들이 그 두 가지만 보고 집적거리는 걸 혐오하던 자신이었는데
지금은 그 두 가지를 살려 남자를 유혹해야 한다니…
바뀌어버린 상황에 헛웃음이 나온 그녀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하지?”
문제는 이거였다. 그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남자를 유혹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대쉬받는 쪽이었기에 반대로 자신이 대쉬하려고 할 땐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검색: 남자 꼬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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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등급 승급시험을 위해 필요한 D등급 던전 클리어 횟수는 30회다.
그리고 하루에 클리어할 수 있는 D등급 던전은 3회까지다.
따라서 산술적으론 열흘이면 승급시험 조건을 달성할 수 있고 나와 이현아는 실제로 열흘만에 조건을 달성했다.
하루에 3회 클리어가 말로는 힘들어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둘이서 클리어 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기에 공략 시간 보다 대기 시간이 더 길 정도였다.
마침 이번 달 말, 즉 이번 주말에 승급시험이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접수를 했다.
원래라면 따로 승급시험을 준비해야 했지만 나는 딱히 필요성을 못느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반면에 이현아는 도전을 포기했다.
그녀는 사실 버스만 탄 셈이니 승급시험에 통과하는 게 쉬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보면 도전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현아…
그 아이가 요새 많이 달라졌다.
열흘동안 그녀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언제나 노출없는 칙칙한 슈트만 입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허벅지가 다 보이는 핫팬츠와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민소매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최대한 내게 달라붙으며 진한 스킨십을 하면서 마치 자기가 내 여친인마냥 행세를 했다.
이것 참… 누가봐도 나를 유혹하는 게 분명했다.
거기다 항상 끼고다니던 커플링까지 없는 걸 보니 그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녀를 받아주지는 않았다.
동정뿐인 연애는 결국 끝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아가 필요하는 건 ‘내’가 아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의지할 ‘아무나’가 필요한 거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받아주었다면 분명 파국이 찾아왔을 거다.
내가 철벽을 치자 그녀가 방법을 바꾸었다.
몸으로 유혹하는 대신 자신의 외로움을 강조한 것이다.
이현아는 밤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 ‘잠이 오질 않는다,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다, 곁에 누군가 있어줘으면 좋겠다’라고 약한소리를 했다.
이 방법은 나름 효과가 있었다.
아침마다 늘어나있는 그녀의 다크서클을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거기다 이대로 가다간 분명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녀가 스스로를 아프게 한다든가 질나쁜 남자를 만난다든가 말이다.
결국 그 꼴은 차마 볼 수 없었던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 승급시험에 통과하면 네게 할 말이 있어.”
“네, 네에?”
“너에게 있어 그리고 나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얘기야.”
“정말요…?”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얘기를 꺼낸 이후로 그녀의 외롭다는 어필은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다크서클도 사라졌다.
노출이 심한 복장은 그대로였지만 그건 눈호강이 되었기에 따로 말을 하진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평소의 사이로 돌아온 우리는 즐겁게 던전을 돌았고
마침내 C등급 헌터 승급시험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