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 D컵이 내게 집착한다(9)
아니,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현아가 당황스러웠지만 그대로 문 앞에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문을 열어주었다.
“아저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걱정돼서 찾아와봤어요. 헤헤.”
그러자 이현아가 죽을 든 채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보아하니 병문안을 온 모양이었다. 이것 참 상상도 못한 정체다.
‘근데 간만에 봐서 그런가? 예쁘네… 얘가 이렇게 매력적이었나?’
기억 속의 이현아는 항상 보이쉬하고 노출이 적은 옷을 입었었는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파이 슬래시를 현실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했네…’
평소엔 꽁꽁 싸맸던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었다.
안그래도 커다란 가슴이었는데 가방끈으로 강조시키니 그 매력이 배가 되었다.
당장에라도 만지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건 죽이야? 고마워서 어쩌냐.”
“헤헤 고맙긴요… 저흰 동료잖아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이현아가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모아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가슴이 눌려지며 커다란 가슴골이 만들어졌다.
이거… 아침부터 자극이 너무 강한데?
자기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현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죽을 건넸다.
“잠시만 기다려줄래? 보답의 의미로 커피 한 잔 살게.”
“안에 들어가면 안돼요?”
“응, 안돼. 기다리고 있어.”
-철컥
지금 내 방에 들어온다고? 무조건 안되지.
내가 봐도 개판인 상태인데 이현아가 이런 꼴을 봤다간 있던 정도 날라갈 거다.
기껏 쌓은 호감도인데 이렇게 날리긴 아깝지.
허겁지겁 죽을 냉장고에 넣어놓은 뒤 모자를 쓰고 외투 하나를 걸친 후 문을 열었다.
“그럼 갈까?”
“네엡! 근데 건강해 보이시네요? 아픈 건 다 나은거에요?”
“안그래도 그거가지고 할 말이 있었거든. 가서 말해줄게.”
“네엡! 헤헤.”
“너 근데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그거야 아저씨가 말해줬으니까 알고 찾아왔죠.”
응? 그랬나? 대충 이 근처에 산다곤 얘기한 건 같아도 정확한 주소를 알려준 거 같진 않은데…
내 머리 속에선 꽤나 옛날 일이라 가물가물하다.
“안그러면 어떻게 찾아왔겠어요?”
“그것도 그렇네. 내가 착각했나봐.”
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했나보다.
아무래도 세실리아 때문에 의심병이 생겨버린 거 같다.
그래,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찾아왔겠어?
***
“네에? 또 각성을 하셨다고요? 대박사건…!”
“쉿! 조용해. 괜히 소문나면 귀찮아지니까.”
“앗! 그렇네요. 쉬잇!”
이현아를 속이기 위해 꺼낸 핑계는 재각성이었다.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왔더니 갑자기 재각성을 했는데 적응을 위해서인지 알 수 없는 통증이 따랐다는 얘기를 꺼냈다.
실제로 각성자들 중에서 재각성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었는데 그에 대해 명확한 정보는 없었기에 쓸 수 있는 거짓말이었다.
“그럼 새로운 스킬을 얻으신 거에요?”
“응. 그것도 전투관련으로.”
“대박!”
이현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보다 신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얘기도 아닌데 본인 일처럼 기뻐해주는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말인데 능력 확인도 해볼 겸 이번주 안에 던전에 가보려 하는데 같이 갈래?”
“뭐에요? 혼자 갈려고 했어요?”
“아니아니, 같이 가자고 돌려 말하는 거지. 나 너 없으면 예약 같은 거 할 줄 모르는 거 너도 잘 알잖아.”
“헤헤… 그렇네요. 아저씨는 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제가 해드려야죠!”
부끄럽게도 사실이다. 이런 건 맨날 이현아한테 맡겼어서 나는 할 줄 모른다.
뭘 그렇게 준비해야 할 게 많고 작성해야 할 게 많은지 뚝딱뚝딱 해내는 이현아가 신기할 지경이다.
던전 그냥 대충 들어가서 클리어하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 바로 가실래요?”
“오늘…? 나야 좋긴 한데. 너 장비는 어떡하고?”
“저야 항상 차에 넣고 다니니까 괜찮아요!”
아 맞다. 소형차긴 하지만 자차가 있었지.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이현아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헌터 세계에서 나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나간 선배였다.
“그럼 예약 잡아줄래?”
“네엡! 아저씨는 저만 믿으시라구요.”
“땡큐. 그럼 오늘 끝나고 밥도 살게.”
“진짜죠?”
밥을 산다는 얘기에 이현아가 좋아했다.
콧노래도 흥얼거리는 게 정말 신나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비싼 걸 얻어먹으려고 하는지…
그래도 처녀 따먹었으니까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겠지.
“예약끝!”
“뭐? 벌써? 뭐가 그렇게 빨라?”
“다 방법이 있지요. 후훗! 15시에 DD-138로 예약했어요.”
“DD-138이면… 오크 던전?”
“땡! 그건 DD-125구요, DD-138은 리자드맨 던전이에요. 정말! 너무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
“나 진짜 이런 건 못외우겠다. 현아야 난 그냥 너만 믿을게.”
“……네, 네에! 저만 믿으세요!”
***
“그런데 어떤 스킬을 얻으신 거에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요. 가르쳐주시면 안돼요?”
“나도 정확힌 몰라. 몬스터 상대로 써봐야 제대로 알 거 같은데, 일단 말해주자면 눈 관련 스킬이야.”
던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 내가 비밀로 할 줄 알았나 본데 그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갑작스럽게 성장한 전투실력을 해명하려면 꺼낼 얘기였다.
“눈이요?”
“응. 약점파악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와아! 그럼 엄청난 거 아니에요? 아저씨 그런 거 못외우시잖아요!”
아니 그 쪽이 엄청난 거였냐?!
그래, 그 말도 맞긴 하지…
정말 말 그대로 맞아가면서 외웠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야 그래도 결국은 다 외웠잖아.”
“다른 던전 가면 또 새로 외워야 하잖아요. 그때도 모른다고 맞으실 거에요?”
“그건… 아니지만…”
“헤헤. 농담이에요 기분 푸세요! 이제 그런 일은 없다는 거잖아요!”
뭐냐고 들었다 놨다가…!
이현아는 배를 잡고 웃더니 그걸론 부족했는지 내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리며 즐거워했다.
아니, 운전 좀 똑바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절대 기분 상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 좀 스킨십이 과하네.
카페에서부터 은근슬쩍 팔을 건드린다든가 팔짱을 끼려고 한다든가 가슴을 갖다댄다든가… 꽤나 공격적이다.
거리감 무엇? 기억을 되살려봐도 이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는데 의아하다.
그러고보니 어제 톡을 할 때도 그랬었지. 조금 수상한데…
딸아, 네 덕분에 아빠는 자의식 과잉병에 걸렸단다.
이걸 어떡하면 좋니?
***
이현아가 그러건 말건 당장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관측’을 테스트하는 거다.
얻은 지는 로판 세계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몬스터 상대로 써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사람에게 썼을 때와 얼마나 다른 지 확인해볼 시간이다.
“그럼 현아야 내가 신호 보내기 전까진 개입하지 않는거다. 알겠지?”
“걱정되는데… 알겠어요. 믿어볼게요!”
예전에는 호흡을 맞춰 함께 사냥했었지만 오늘은 혼자서 도전해볼 계획이다.
그래야 내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 지 알 수 있거든.
마침 무리에서 벗어난 리자드맨 2인조가 눈앞에 나타났다.
복장을 보아하니 순찰병 같았는데 테스트에 딱 적격이었다.
[관측]
스킬을 사용하자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약간의 무력감이 올라옴과 동시에 리자드맨 옆에 반투명 창이 떠올랐다.
[약점: 왼쪽 옆구리(부상)]
[약점: 오른쪽 발등(부상)]
‘!!!’
미친, 일반적인 약점이 아니잖아?
반투명 창에는 세간에 알려진 리자드맨의 약점 대신 개체별 약점이 나타나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용한 정보였다.
자신감이 생긴 난 둘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놈들이 당황한 틈을 타 애용하던 눈뽕콤보를 넣은 이후 옆으로 돌아 옆구리가 약점인 놈을 칼로 베었다.
-끼에에에엑!
그러자 놈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관측’의 사기성은 생각 이상이었다.
약점 부위가 공격하기 쉽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답안지를 보고 시험을 치듯이 사냥하는 게 너무나 쉽게 느껴졌다.
-꾸륵! 꾹, 뀌에에!
‘관측’의 사기성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동료가 쓰러지자 분노한 리자드맨이 내게 창을 찔러댔는데 그 동선이 홀로그램화 되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공격을 피한 나는 검을 역수로 잡고는 놈의 발등을 찍었다.
-뀌에에에엑!
그 고통에 발악하며 무장을 해제한 놈을 잡는 건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후우…”
순식간에 리자드맨 두 마리를 잡아버렸다.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냥 속도였다.
거기다 ‘관측’으로 소모되는 마력? 막상 써보니 신경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적게 소모되었다.
사람을 상대로 사용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하하… 대박이네 진짜.”
스킬작이 될 대로 된 힐이나 정화는 사용할 틈도 없었다.
이 정도면 이현아 없이도 혼자서 던전 클리어가 가능할 거 같았다.
“현아야 봤어? 완전…”
응? 그런데 이현아의 표정이 기괴했다.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눈은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 불안하기라도 한지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왜 저러는거야? 무섭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