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 로맨스판타지(4)
불치병에 걸려 반평생을 병원에서 보낸 나는 웹소설을 읽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나 대신 사랑하고 사랑받고, 내가 꿈꾸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즐겼다.
나는 그녀들에게 나를 대입하여 대신 사랑하고 대신 사랑받으며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끝은 너무나 괴로운 공허함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빌었다.
“신님… 부디 다음 세상에선 저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죽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소원대로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
“어째서 루이나인데!! 왜! 약올리는 거야?!”
나는 주인공이 아닌 불치병에 걸린 악당영애가 되었다.
***
루이나 오베르.
훌륭한 가문의 막내 딸이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녀.
남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많은 독자들의 부러움을 샀던 여자.
그녀는 페이크 주인공이었다.
작가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루이나에게 불치병 설정을 붙여주었고 그와 함께 까칠한 성격을 추가하여 남주들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진짜 주인공의 등장이라며 아리아 멜츠라는 캐릭터를 추가했다.
당연하게도 남주들은 루이나에게서 아리아로 마음을 옮겼다.
루이나는 질투에 휩싸여 아리아를 괴롭혔지만 그럴 때마다 남주들이 등장하여 아리아를 보호하고 역으로 루이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에 더 화가 난 루이나는 아리아를 아카데미에서 퇴학시키려 했지만 그것조차 막히며 오히려 루이나가 퇴학당한다.
삶의 의욕이 사라진 루이나는 변방으로 내려가 평생을 괴로워하다 불치병으로 죽고만다.
나는 루이나를 보며 나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슬펐다.
왜 나와 같은 설정이 추가되어 저렇게 모든 걸 뺏기고 죽는지 안타까웠다.
처음엔 작가를 욕하던 독자들이 나중에 가서는 루이나를 욕하는 모습에 내가 욕먹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런데 내가 그 루이나가 되었다.
덕분에 알게 되었다.
신은 존재하고 그는 인간이 괴로워하는 걸 즐긴다.
***
제발 그만해…
“루이나… 내가 언제나 널 지켜줄게. 더 이상 울게하지 않을게. 너는 나만 믿으면 돼.”
거짓말 하지마. 떠날 거잖아. 내 믿음 따위 무시할 거잖아.
“이런… 오베르 가문의 막내딸이 예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흠흠! 당신과 춤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거짓말 하지마. 버릴 거잖아.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거잖아.
“왕자님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라. 스스로가 괴로워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군. 왜 왕자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지…”
거짓말 하지마. 이해 못하잖아. 너가 나를 괴롭게 만들 거잖아.
“왕자님. 오늘 에스코트하기로 약속한 건 접니다. 양보하시지요.”
“그러면 미리 왔어야지. 아가씨를 기다리게 하는 건 신사 실격이라고.”
“두 분께서 떠들고 있는 동안 먼저 가지. 시작 시간에 늦겠어. 자.”
제발 하지마… 그런 식으로 내가 기대하게끔 만들지마…
어째서 이렇게 잘해주는 건데.
어째서 이렇게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건데.
도대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려고.
도대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려고…
“루이나… 좋아해. 아, 아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야! 그냥…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그것뿐이야 그럼 이만!”
“루이나! 그 녀석이 고백했다지? 덕분에 깨달았다. 나 역시 너를 좋아하고 있음을. 너는 잘 선택해야 할 거다. 뭐, 결국 선택받는 건 나겠지만.”
“루이나 오베르… 얘기는 들었다. 너라면 현명한 결정을 하겠지. 너는 그런 여자니까. 그런데 그 선택지에 나를 빼진 않았겠지?”
거짓말쟁이들…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건데?
어차피 너희들은 그 아이가 나타나면 내게서 사라질 거잖아.
그게… 우리의 운명이니까…
***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부러 모른 척했다.
두 평생 처음 겪는 행복이 너무 즐거웠다.
사랑받는 건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매일이 설레고 가슴뛰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속으로는 그들을 부정하면서도 그들이 주는 달콤함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 달콤함에 속아 나는 헛된 망상을 했다.
‘혹시 초기 설정의 소설로 들어온 거 아닐까? 불치병도 없고 이대로 평생 루이나가 행복하게 사는 설정말야.’
‘그래, 그게 틀림없어. 벌써부터가 원작이랑 다르잖아. 아카데미 입학도 하기 전부터 고백을 받았잖아!’
그러나 그건 정말 달콤한 꿈일 뿐이었다.
“…결국 엘리제가 죽었군. 당장 가봐야겠어. 루이나, 미안해 오늘은 먼저 자렴. 알겠지?”
“여보,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요… 이제 행복한 일만 남은 아이였는데 어째서… 신도 무심하시지.”
엘리제 린츠가 죽었다.
그 소식을 듣고 머리가 아파오고 속이 쓰려왔다.
쥐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고 의자 밑으로 쓰러졌다.
엘리제 린츠가 죽은 날, 그 날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마녀’가 각성한 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루이나 오베르가 불치병에 걸린 날.
나는 다시 한 번 시한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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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머… 어쩜 이렇게 예쁠까? 옷이 날개가 아니라 세실리아가 날개라 무슨 옷을 입어도 다 어울리네.”
그야 저는 아버지의 딸인걸요. 당연한거죠.
“리아… 너… 이건 좀 위험한데. 부인, 첫눈에 반한 남자놈들이 달려들면 어쩌지요?”
걱정마세요 아버지. 제게 달려들 수 있는 남자는 아버지뿐인걸요.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준비를 끝내자 모든 분들이 저를 보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아버지께서 충격받으신 게 좋았습니다.
후훗, 이제 저를 마냥 어린 아이로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에스코트를 해주시는 아버지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아… 저를 의식하고 있으신 거군요? 어쩜 이렇게 행복할 수가…
이대로 아버지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면 정말 낭만적일텐데요.
하지만 그건 정말 꿈 같은 얘기겠죠.
그러니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서 찾아야합니다.
아버지의 신붓감을요.
그러기 위한 사교계 데뷔니까요.
***
결론부터 말하면 데뷔탕트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대모님의 지원 덕분에 저에게 적대적인 분들은 참석하지 않으셨고
아름다운 제 모습에 남녀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반하셨거든요.
몇 명 지나치게 호감을 가진 분들도 계셨지만 다시는 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었답니다.
덕분에 조금 짜증이났지만 평소처럼 티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버지의 신붓감은 찾지 못했습니다.
외모가 괜찮으면 지위가 낮거나 지위가 높으면 그저 그런 외모였습니다.
루이나 오베르양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날 분명 아버지는 오베르양의 외모에 감탄을 하셨었죠.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지만 참기를 잘했습니다.
역시 오베르양으로 정해야겠어요.
외모와 가문, 능력과 재능, 모든 면에서 아버지를 만족시킬 테지요.
그러기 위해선 아카데미에 들어가야합니다.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저의 행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도 아카데미 안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후훗,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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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입학했어요!
꿈에 그리던 왕국 아카데미! 그곳에 제가 입학한 겁니다!
분명 멋지고 행복한 나날들이 반복되겠죠?
“꺄앗!”
이런! 너무 설레서 주체를 하지 못한 제가 사고를 쳐버리고 말았어요.
어떤 선배님과 부딪혀 버렸어요. 혼나면 어쩌죠?
“어떤 놈이야!”
크, 큰일났어요!
화가 많이 나셨나봐요!
첫날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저는 조용히 구석에 박혀있어야 했나봐요…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못보고 그만!”
재빨리 고개를 숙여 몇 번이나 사과를 하자 다행히 선배님은 저를 용서해주셨어요!
“뭐야 신입생?”
“네, 네! 오늘 입학한 아리아 멜츠라고 합니다!”
“하… 이걸 뭐라 할 수도 없고. 정신 똑바로 하고 다녀.”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얼굴도 잘생기셨는데 심성까지 착한 선배였어요.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이게 사랑…? 막이래 후후!
설렘을 억누르고 기숙사로 들어가자 정말 귀엽고 예쁜 아이가 있어요.
이런 애가 제 룸메이트라니!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가봐요.
“후훗, 안녕하세요? 저는 세실리아 아실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 멜츠입니다! 저도 반가워요!”
세실리아는 성격마저 좋아보여요. 저렇게 밝은 미소라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멜츠양. 초면에 실례지만 옷 좀 벗어 주실래요?”
“네, 네?! 아니요?”
어라…? 제 룸메이트는 생긴 거랑 다르게 변태?
다짜고짜 옷을 벗어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흐음… 가슴이 정말 크네요. 부러워요. 그럼 벗은 김에 보지도 벌려 주실래요?”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큰일이에요! 그냥 변태도 아니고 엄청 변태인 가봐요!
어쩌죠? 사감님한테 말을 해야 할까요…
“깨끗하네요. 처녀막도 있고. 자위도 안해보신 거 같은데 맞나요?”
“당연하죠! 으, 응? 나 지금 뭐라고….”
어… 저 왜 알몸이죠?
나 왜 처음 보는 분 앞에서 성기를 벌리고 있는 거지…?
“가문이 조금 아쉬운데 이 정도면 첩으로 쓸만하네요. 다시 옷 입으시고 지금 일은 잊으세요.”
“아아…으으…”
나?
뭐지?
뭐?
응?
“후훗, 안녕하세요? 저는 세실리아 아실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 그렇지 룸메이트와 인사를 해야지.
“안녕하세요! 저는 아리아 멜츠입니다! 저도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