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 로맨스판타지(3)
“어쩜 이렇게 착한 아이가 있는 지… 정말 그때의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한 거였군요.”
“흑흑… 정말 효녀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니까? 이리 오렴. 얼마나 힘들었니? 불쌍한 아가.”
세실리아랑 얘기를 나눈 공작부인은 금세 함락당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세실리아를 안아주었다.
역시 누가봐도 착하고 귀여운 내 딸이라니까.
“고맙습니다 크로젯님...”
“세실리아… 앞으로 대모님이라 부르렴. 내가 꼭 네 오해를 풀어줄게. 나만 믿으렴!”
“…대모님.”
“그래!”
이것 참. 누가보면 부모자식 사이인 줄 알겠어.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 생각할까?
훈훈한 두 사람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좀 불안하긴 했었다. 내가 뭘 안다고 사교계 데뷔를 도와줄 수 있겠나.
지식도 없고 인맥도 없고 그나마 도와줄 사람이라곤 일레인이 있었지만 그 녀석도 이혼남이라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왕도 사교계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그런데 대모님… 괜찮으신가요? 아버지를 찾아오셨다는 건 어딘가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착한 세실리아는 걱정을 했는지 표정을 굳히며 공작부인에게 물었다.
눈치 없는 기사놈이 헛기침을 했고 공작부인은 그 때의 생각이 났는지 얼굴을 붉혔다.
“…걱정하지 말렴. 네 아버지가 전부 치료해줬단다.”
“다행이네요… 저희 아버지 굉장하죠?”
“으응… 굉장했단다… 무척…”
아니 부인 그 표정은 뭡니까?
그녀가 슬쩍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무척 야릇했다.
그러고보니 성감자극이 10레벨이 되면서 중독성이 추가됐었지…
기사놈 몰래 또 치료해달라고 부탁을 할 기세다.
“그럼 왕도로 올라가게 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지낼 곳은 있나요? 왕도의 재산은 다 처분하고 내려갔다고 들었는데요.”
“적지만 여기서 벌어놓은 돈이 있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집을 하나 구해볼 생각입니다.”
“흐음… 그러지 말고 저희 집으로 오세요. 아직 사람들의 오해가 다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을 따로 놔두기에는 제가 너무 불안하네요.”
이건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확실히 맞는 말이다.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된 일도 아니고 우리가 왕도로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분명 위해를 가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괜찮을까요? 저희가 너무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닌 지 걱정이 됩니다.”
“어머, 괜찮고 말고요. 사실 이렇게 귀여운 딸이 있었다면 했답니다.”
부인은 세실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걱정마라고 대답했다.
역시 세실리아 무서운 아이… 벌써 호감도 맥스를 찍은 거니?
덕분에 생각보다 왕도생활이 편할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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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하네요. 불륜 중에 또 다른 남자를 탐하고…”
늦은 밤 세실리아는 덕배를 재운 후 그의 손가락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제게, 또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분이니.”
그녀는 덕배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아주다가 자신의 보지에 갖다댔다.
“하읏… 도움이 될 때까지만이니까요…”
그러고는 그의 손가락을 이용해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후훗… 더럽혀진 손가락, 제가 깨끗이 해드릴 게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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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후 공작부인에게 연락을 받은 우리는 왕도로 향했다.
나름 정든 오피엔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떠나야 했다.
조금 아쉽긴 했으나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따먹을 처녀도 없으니… 아쉬움 보단 왕도에 대한 설렘이 더 컸다.
“아버지… 무서워요…”
이런, 마차 밖으로 왕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세실리아가 불안에 떨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사건이 있었으니 트라우마로 남았겠지… 불쌍한 내 딸을 꼬옥 안아주었다.
품 안에서 떨고 있는 세실리아가 정말 안쓰러웠다.
“리아, 걱정하지마. 아빠가 옆에 있잖니.”
“아버지… 절대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물론이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세실리아는 그제서야 안심했는지 몸의 떨림을 멈췄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실리아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나도 세실리아를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둘이 서로를 껴앉고 있자 어느새 마차는 왕도에 들어와 크로젯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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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엄청 커요. 정말 여기가 앞으로 저희가 지낼 곳인가요?”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안히 지내세요. 미리 말씀은 다 드려놨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부인.”
“어머, 감사인사를 듣기 위해 이런 게 아니니까요. 그런 말씀은 마세요.”
우리가 마차에서 내리자 공작부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정말 가족처럼 우리를 대해줬다. 세실리아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부터가 그렇게 행동하자 저택의 사용인들도 우리를 주인처럼 대해주었다.
그래 이게 귀족이지… 이번 ‘히로인 네토리’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겪는 귀족생활에 만족하며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물론 세실리아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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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부인과 나는 몇 가지 얘기들을 나눴다.
우선 저택의 주인인 리암 공작에 대해서.
그는 아직 왕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거주는 사실 부인의 독단적인 선택이었다.
그녀는 우리에 대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는데 공작은 잡혀사는지 별말 없이 받아주었다고 한다.
다음으론 세실리아와 한 방에서 자는 것에 대해서.
부인은 이제 세실리아가 나한테서 졸업해야 한다 말했지만 트라우마를 핑계삼아 거절했다.
나도 이제 졸업해야 한다는 건 동의했지만 왕도로 돌아오며 생긴 세실리아의 불안증세 때문이라도 세실리아를 혼자서 재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자 부인이 자신이 대신 세실리아와 자겠다고 했다.
음흉한 사람. 이게 목적이었다.
세실리아는 공작부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합의하에 번갈아가며 세실리아를 재우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론 의사 일에 대해서.
부인은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것과 별개로 환자를 진료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 치료능력을 부인의 힘 중 하나로 쓸 생각인 듯 보였다.
부인과 나는 공생관계가 되었기에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물론 보상은 따로 받기로 했다. 호구도 아니고 공짜는 안되지.
“그럼 당장 필요한 얘기는 다 끝났네요. 사교계 데뷔는 제게 맡기세요. 세실리아에게 왕도에서 최고로 멋진 데뷔를 만들어 줄 거에요.”
“부인만 믿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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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추천장을 받은 나는 세실리아의 추천장을 챙긴 후 세실리아와 함께 아침 일찍 아카데미로 향했다.
세실리아는 가는 동안 내게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거겠지…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덕배 아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아카데미는 기억 속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과연 마법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건가…
아카데미는 방학이라 그런지 한산했고 이렇게 넓은 공간인데도 학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세실리아도 안심했는지 밝은 표정이었다.
일찍 온 우리는 약속시간까지 데이트라도 하듯 아카데미 곳곳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가 양호실이야. 앞으로 내가 근무할 공간.”
“후훗… 매일 찾아올게요. 이 침대, 제 전용이에요 이제.”
“안돼. 안아픈데 찾아오면 혼낼거야.”
“너무해… 대모님께 다 말할 거에요!”
비어있는 양호실에 들어와 세실리아와 장난을 치고 있자 드드륵 하고 문이 열렸다.
뭐지? 방학인데 찾아올 사람이 있나? 기존의 양호교사는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놔두고 간 짐이라도 있나?
궁금해하며 입구쪽으로 걸어가니 한 여자가 서있었다.
만화에서나 보던 핑크빛 곱슬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 있고
너무나 작은 얼굴에 예쁜 두 눈동자가 박혀있다.
허리는 부러질 듯 가늘었고 드러난 어깨는 첫눈처럼 새하얬다.
그 아름다움에 숨을 멎은 채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
그녀가 무언가 중얼거렸지만 작은 목소리라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렇게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내가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세실리아가 앞으로 걸어와 그녀에게 인사했다.
“후훗, 안녕하신가요? 저는 다음 해부터 아카데미에 다니게 된 세실리아 아실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러자 그녀는 어째서인지 창백해진 얼굴로 세실리아를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분이네요. 제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그러게.”
왜냐면 그녀는 루이나 오베르.
이번 '히로인 네토리'의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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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약을 가지러 양호실에 들어간 루이나는 처음 보는 남자를 만났다.
아니, 실제로는 처음 봤지만 기억에는 있는 남자였다.
‘거짓말… 덕배 아실은 죽었잖아! 자살한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안그래도 머리가 아팠던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살아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을 보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원작이랑 너무 다르잖아. 이게 다 나 때문이야? 잠깐… 덕배 아실이 살아있다면 그 ‘마녀’는…?’
충격받은 그녀 앞으로 너무나 귀엽고 순수해보이는 소녀가 나타났다.
‘…마녀!’
하지만 그녀는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루이나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공포가 몰려왔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벌벌 떨렸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동공이 커졌다. 움직여야 하는데, 도망가야 하는데,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눈 앞의 소녀가 미소지었다.
그러자 그녀가 경악했다.
‘주, 죽는다! 안돼! 어째서 마녀가 여기에… 시, 싫어 죽기 싫어!’
소녀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반가워요. 루이나 오베르양.”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이 멈췄다. 머리 속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이대로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후훗.”
그 때 소녀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덕분일까 다시 그녀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런 그녀를 소녀는 끝까지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