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9화 (29/428)

29 - D컵이 내게 집착한다(3)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은 건데? 언제까지 너한테 맞춰줘야 하는 건데?”

“하… 진짜 너같은애랑 파티맺기 싫다.”

“한 번 대주라. 솔직히 너 여기저기 많이 대줬잖아? 닳는것도 아니고 나도 함주라.”

“야! 꼬리치고 다니지마. 싸가지없는 년아!”

“하… 여기까지 하자. 아무래도 우리 길드랑 너랑은 안맞는 거 같다.”

이현아는 매일매일이 괴로웠다.

각성자가 되고 지긋지긋한 몬스터들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녀에게 찾아온 건 지독한 현실이었다.

원하는만큼 따라주지 않는 재능, 실력보다 그 외의 것을 바라는 더러운 욕망,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날이 갈수록 그녀는 지쳤고 그녀의 자존감 역시 바닥을 쳤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의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저 관성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관성마저 길드에서 해고당하며 끊어져버렸다.

‘민우 말대로 그냥 다 포기하고 내려갈까…?’

그러나 그녀는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해버린다면 그녀를 비난하고 조롱하던 말들이 현실이 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헌터 생활을 계속하기엔 그녀는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그리고 그 때 감덕배를 만났다.

“아하! 이런식으로 하는 거군요?”

“와! 역시 잘 아시네요. 감사합니다.”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무작정 헌터일을 시작한 초짜.

자신보다 멍청하고 어리석고 호구인 사람.

그럼에도 사람은 착해서 싫은소리 하나 안하는 남자.

그녀는 해고된 이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풉! 바보인가?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를 수가 있어? 어쩔 수 없지 내가 알려줘야지.’

‘아니! 그걸 그렇게 한다고? 진짜 이것까지 알려줘야해?’

‘그렇지. 이제야 좀 낫네. 아니 근데 저 표정은 뭐야? 풉! 뭐했다고 당당한 표정 짓는데?’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즐거웠다.

매번 혼만 나던 그녀가 가르침을 준다는 게 신선하고 재밌었다.

비록 학습태도가 나쁜 학생이었지만 하나하나씩 실수를 줄여가는 모습에 뿌듯함까지 느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 사람이 자신의 말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바닥쳤던 그녀의 자존감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그렇구나. 여기에 제 카드를 등록하면 자동으로 마석판매대금이 들어오는 거군요?”

“저기서 장비를 빌리면 되는 거죠?”

“네? 아니라고요? 뭐지… 아! 이거구나! 맞죠?”

“맞네. 현아씨 정말 잘 아시네요. 덕분에 어디가서 호구소리는 안듣겠어요.”

감덕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이현아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에게 받는 감사인사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칭찬을 듣고 감사를 받기 위해 그녀는 그를 위해 아주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챙겨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웬만한 가게들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현아씨,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처음만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써주기 어려우셨을텐데,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 아뇨! 저도 공짜로 해준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사실 제 억지잖아요. 마석도 몇 개는 챙겨주셨고.”

“그게… F등급이시니까… 원래 선배들이 후배들 챙겨주고 그러잖아요? 헌터도 마찬가지인거죠. 네. 그런 거에요.”

“그래도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현아씨랑 파티를 맺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음 번에도 현아씨같은 파티원이랑 만나고 싶네요.”

“어… 어라?”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직 더 가르쳐줄 게 많은데, 챙겨줘야 하는 게 더 많은데

그래서 더 ‘감사’를 받아야하는데…

그는 다른 파티원을 원하는 눈치다.

“원래 같은 등급인 D등급이랑만 파티를 맺는다고 하셨죠? 제가 빨리 승급해서 또 한 번 파티를 맺으면 좋겠네요.”

“아…”

그랬다.

그를 잘 알지 못했던 그녀는 철벽을 쳤었다.

나이도 많고 얼굴도 별로인 F등급 힐러랑 파티를 맺는 게 싫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얘기를 꺼냈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실수였다. 실제로 만난 그는 그녀가 생각하던 질낮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요!”

“네?”

“그게… 덕배씨는 실력도 있고 아티팩트도 있어서 F등급이라 보기는 어렵고… 또… 그래! 안심이 안된달까요? 내일이면 또 까먹으실 거 같고…”

“그 말씀은?”

“그러니까… 덕배씨가 D등급으로 승급할 때까지 제가 도와드릴게요! 원래 마음맞는 파티원 구하기가 힘들거든요. 질나쁜 파티원 만나서 아티팩트를 뺏긴다든가 그럴 수도 있어요!”

그녀는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감덕배를 붙잡기 위해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저한테도 손해는 아닌 게 원래 힐러 구하는 게 쉽지도 않고요! 덕배씨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데 괜히 다른 헌터랑 파티를 맺으면 민폐끼칠 수도 있고… 아니! 저한테 민폐를 끼친 다는 건 아니고…”

“아, 현아씨랑 계속 파티를 하면 저야 좋죠. 베테랑이랑 파티 맺으면 든든하니까요.”

“베테랑… 네 그렇죠! 좋은 선택이에요!”

‘해냈다…!’

다행히 그는 흔쾌히 파티 요청을 받아들였다.

굳어있던 그녀의 표정이 풀렸다.

든든한 베테랑이라는 말에 역시 그가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가슴이 뛰었다.

“연락처 주세요! 제가 공략할 던전이나 일정 같은 거 미리 다 준비해서 연락드릴게요!”

“아, 그러면 너무 감사하죠.”

‘아아… 또 나보고 감사하대!”

파티를 다시 맺었다는 기쁨에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는 오늘 살면서 처음으로 이성의 연락처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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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한테 번호따였다.

이게 외모에 포인트 투자한 효과?

아니 뭐 사실 그것보다는 힐러 구하기가 어려워서겠지만 그래도 번호 따인 건 따인 거니까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래도 착각하면 안되는 게 이현아는 남자친구가 있다.

만나기 전부터 은근슬쩍 남친 얘기를 꺼내더니 오늘 만나보니 대놓고 커플링을 끼고 있더라.

괜히 착각말고 함부로 집적거리지 마라 뭐 이런 뜻이겠지.

그래서 오늘 나도 최대한 철벽치면서 대했는 데 그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공략이 끝나고 보니 그녀의 경계심이 무척 옅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실 신경쓸 틈도 없었다.

그냥 던전 들어가서 몬스터 잡고 마석 줍고 끝! 이게 아니었어?

뭘 그렇게 신경쓸 게 많은 지… 진입 타이밍이나 후퇴 타이밍이나 하나하나 익혀야 했고 몬스터마다 약점들은 뭐가 그렇게 다른지 전부 외워야했다.

거기에 뭐 마석채집기에 수수료에 장비대여에 헌터라면 알아놔야 할 것도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만 믿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현아한테 과외를 받으며 최소한으로 알아둬야 할 것들은 다 익혔다.

작업건다고 오해살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현아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더니 세심하게 필요한 것들을 다 가르쳐주었다.

만나기 전에는 싸가지없더니 막상 만나고 보니 착한 사람이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지. 온라인에서 말투가 바뀌는 사람들. 아마 이현아도 그런 사람인가 보다.

아무튼 이현아 덕에 첫 번째 던전 공략도 무사히 끝내고 헌터 속성 과외도 받고 앞으로의 파티 약속도 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긍정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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