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D컵이 내게 집착한다(2)
이현아는 세 가지 이유로 잔뜩 화가 난 상태다.
우선, 그녀는 지난 주 길드에서 해고당했다.
‘길마오빠도 너무한 거 아냐? 사람이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그년들 말만 믿고 엄한 사람을 해고해? 복수할 거야!’
이현아의 거듭된 실수에 던전 공략에 연달아 실패하자 길드 마스터가 결국 그녀를 잘랐다.
이현아의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 함께 하기엔 길드원들의 불만이 가득했다.
다음으론, 그녀의 남자친구가 오히려 그걸 반겼다.
‘뭐? 이제 헌터는 포기하고 내려오라고? 장난쳐? 언제는 내 꿈을 응원해준다고 했으면서! 다 거짓말이었지?!’
장거리 연애 중인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가 혼자서 헌터 생활을 하는 걸 반기지 않았다.
빨리 헌터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헌터로 성공한다면 자기가 서울로 올라가 내조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럴 일은 없다라는 걸 깨달은 후 빨리 헌터 일을 포기하길 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론, 웬 이상한 힐러와 파티를 맺게 된 거다.
‘F등급 힐러? 그것도 던전 경험이 한 번도 없는? 하… 진짜 이런 것도 힐러라고 데려가는 내가 밉다. 나이도 많고 생긴 것도 완전 돼지던데 개짜증나 진짜!’
며칠동안 기다려봤지만 결국 다른 힐러를 구할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파티를 맺었지만 막상 던전 공략일이 다가오니 그 면상을 볼 생각에 짜증이 났다.
F등급 주제에 D등급 던전을 원한 것도 어이가 없었다. 완전히 본인보고 캐리해달라는 거 아닌가. 고작 물약 대체인 주제에 바라는 게 많았다.
하지만 이현아도 이제와서 F등급 던전을 돌기엔 수지타산이 안맞았기에 D등급 던전을 공략하는 걸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집적거리기라도 하면 바로 신고할 거야!’
그녀가 길드에 들어가기 전, 아니 길드에 들어가고 나서도 그녀의 외모와 몸매에 혹해 작업을 거는 남자 헌터들이 많았다.
어딜 가나 빛이 나는 외모와 항상 당당한 D컵 가슴에 아무리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해도 주변 남자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싫었던 이현아였는데 자신보고 꼬리친다면서 대놓고 배척하는 여자 헌터들 때문에 더 억울했다.
‘조금만 낌새가 보여도 바로 베어 버릴 거니까!’
이혀아가 분노로 부들거리며 검을 꽉 쥐고 있을 때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이현아씨 맞으시죠?”
“안녕… 하세요? 어? 감덕배씨 맞아요?”
“네, 감덕배라고 합니다. F등급 힐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 아, 네! D등급 검사 이현아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뭔데… 아예 다른데? 아니 실물이 훨씬 나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 다른 사람이잖아!’
이현아는 감덕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감덕배는 각성자 사이트에서 본 돼지가 아니라 훈훈한 외모의 사람이었다.
호감가는 모습과 예의바른 말투에 그녀의 짜증이 조금씩 풀렸다.
“근데 F등급이면 몇 번까지 힐을 쓸 수 있나요? 적어도 세 번까지는 됐으면 좋겠는데요.”
“아, 그건 걱정하지마세요. 아티팩트가 있거든요.”
“네에에?! 아티팩트요?!”
그녀가 있던 길드에도 아티팩트가 하나 있기는 했다. 길드 마스터의 갑옷이 아티팩트였다.
그건 착용자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하급 아티팩트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만년 C등급 헌터였던 길드 마스터가 B등급 승급시험을 볼 수 있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장비였다.
그런데 고작 F등급 헌터 주제에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니 이현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방패 보이시죠? 이게 아티팩트인데 이것 덕분에 제가 각성했거든요. 이 방패를 들고 있으면 힐을 최소 스무 번은 쓸 수 있습니다.”
감덕배는 들고 있는 방패를 빛내며 말했다.
얼핏보면 싸구려같이 보이는 방패였지만 방패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빛은 진짜였다.
다시 보니 싸구려라기보다는 고급진 골동품 느낌의 방패였다.
“헤에… 와, 대박!”
‘이러면 전혀 F등급이 아니잖아! D등급도 아니라 거의 C등급 힐러 아냐?!’
이현아의 짜증이 완전히 풀렸다.
아니 오히려 신이 났다.
자기가 있던 길드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힐러와 파티를 맺은 것이다.
게다가 생긴 것도 나쁘지 않고… 이대로라면 즐겁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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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이현아의 착각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좀 가만히 놔두라니까요!”
“아차, 저도 모르게 그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실 건데요?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시체가 저절로 사라진다니까요!”
의외로 감덕배는 F등급 답지 않은 몸놀림을 보였다. 아티팩트 덕인지 아니면 재능이 있는건지 D등급 던전임에도 쫄지않고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계속해서 죽어있는 시체의 손톱이나 발톱들을 잘라냈다.
균열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면 몰라도 던전 안에선 의미없는 짓이었다. 시체가 사라지면 생기는 마석만 챙기면 되는데 감덕배는 몇 번을 말해줘도 자꾸만 같은 짓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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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힐은 전투가 끝나면 써야한다니까요!”
“아차, 저도 모르게 그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실 건데요? 전투 중에 힐이 들어오면 어그로가 튄다니까요!”
의외로 감덕배의 힐은 수준이 높았다. 작은 생채기만 치유되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깊게 베인 상처나 둔기에 맞아 생긴 타박상들도 손쉽게 치유했다.
어째선지 힐을 받으면 묘하게 기분이 좋았으나 그것과 별개로 힐의 퀄리티가 훌륭했다.
문제는 자꾸만 전투 중에 힐을 써서 어그로가 감덕배 쪽으로 쏠린다는 거다.
몇 번을 치고박아도 곧바로 멀쩡해지니까 오크들이 이현아를 무시하고 감덕배를 공격했다. 덕분에 이현아는 감덕배를 지키느라 평소보다 더 고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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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힐러면 힐러답게 뒤에 있으셔라니까요?”
“아차, 저도 모르게 그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실 건데요? 힐러가 앞장서 있다가 다치면 어떡하실건데요! 자힐도 안되잖아요!”
과도한 자신감 때문인지 비교적 약한 몬스터가 나타나면 감덕배가 앞장서서 싸움을 열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싸우는 감덕배였기에 아직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현아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되는데요…?”
“네?”
“자힐 된다고요. 이렇게.”
“…???”
감덕배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손등에 작은 상처를 내더니 금세 힐을 사용해서 치유했다.
보통 힐러들은 자힐을 하지 못한다. B등급부터는 대게 가능했지만 그 밑의 힐러들은 자신을 대상으로 힐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최소 두 명의 힐러를 파티에 넣는 게 국룰이었는데 감덕배는 F등급 힐러면서 자힐을 하는 게 가능했다.
“어…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잖아요! 제 뒤로 오세요!”
“그렇긴 하네요. 죄송합니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이현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몰래 빨개진 얼굴을 식혔다.
***
“그~러~니~까~…”
“아차…가 아니라 또 뭔가 있나요?”
“잘하셨다고요… 풉! 조금 짜증나긴 했는데 그래도 덕분에 평소보다 빠르게 클리어 했어요. 수고하셨어요.”
“아… 이현아씨도 고생많으셨습니다.”
D등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건 이현아의 신기록이었다.
물론 D등급 던전 중에서도 작은 던전이었고 몇 번이나 공략했던 던전이라 이미 익숙할대로 익숙한 던전이었지만,
그래도 감덕배가 있었기에 평소보다 더 일찍 클리어할 수 있었다.
감덕배는 정보대로 던전 공략이 처음인지 초보자나 할 실수들을 반복했기에 짜증도 났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것대로 나름 재밌었다.
자기가 길드에서 매번 혼날 때 듣던 말을 감덕배에게 하고 있다는 게 웃겼고 자신도 저런 멍청한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하니 민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하게 감덕배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선배의 마음인가…?’
역지사지라고 하더니 선배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 때의 길드 선배들이 이해가 갔다.
“마석 채집기는 가지고 계시죠? 일단 제 거에 다 담았는데 이제 나누어 드릴게요.”
“어… 그게 뭐죠?”
“…”
‘이러니까 선배들 입에서 욕이 나왔지. 아니 헌터라는 사람이 마석채집기도 모른다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욕이 목젖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내려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감덕배를 보니 화를 낼 생각이 사라졌다.
‘나이 먹은 아저씨가 뭐가 저렇게 순진해.’
화가 나기 보단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현아가 애써 웃음을 참고 있으니 감덕배가 약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저… 이현아씨. 오늘 얻은 마석 다 드릴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요?”
웃고있던 이현아의 표정이 굳었다.
‘아… 그럼 그렇지. 결국 이사람도 똑같은 사람이었어. 우욱…’
흔히 있는 패턴이었다. 젠틀한 척은 다 하면서 결국엔 작업거는 타입. 그래도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감덕배 역시 같은 사람이었다.
‘결국 남자라 이건가… 에휴, 민우 보고 싶다…’
“과외 좀 해줄 수 있어요? 마석채집기도 그렇고 뭔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어라?’
감덕배는 새로 공부해야할 게 너무 많다면서 투덜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혀 작업을 건다거나 하는 흑심이 있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공략 중에도 아무 일도 없었지? 음흉하게 쳐다본 적도 없고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풉! 말을 좀 안들어서 그렇지…’
‘다른 사람… 맞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