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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네토리-23화 (23/428)

23 - 왕도용사물(14)

나는 본능적으로 인벤토리를 열어 폭탄을 집어넣었다.

슬롯이 하나 비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 뭐?”

“주변을 경계해!”

“저기 반대쪽 절벽!”

시우의 외침을 듣고 반대쪽 절벽을 바라보니 괴상한 안경을 낀 고블린이 양손에 폭탄을 든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루룩? 크뤡?

-크로로로로!

고블린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기괴한 소리를 냈는데 짐작하기론 왜 터지지 않았지? 하는 거 같았다.

아니 뭔 고블린이 안경을 끼고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고블린이 왜 폭탄을 들고 있어?

고블린이면 얌전히 단검만 들고 몇 번 휘두르다 죽어야 하는 거 아냐?

-크룩! 크룩!

안경을 낀 고블린 무엇이라 얘길 하자 고블린 A로 보이는 잡놈이 불붙은 나뭇가지를 들고 뒤에서 걸어나왔다.

젠장! 이대로 또 불을 붙인 후 던질 생각인 가.

“다들 뒤로 물러나!”

또 던지면 또 넣으면 된다.

그러려면 인벤토리를 비워야겠지.

나는 물건을 던지는 자세를 취한 후 인벤토리에서 폭탄을 꺼냄과 동시에 절벽 위로 던졌다.

원래라면 어림도 없는 거리였지만 ‘아리아 여신의 힘’ 버프를 활성화시키고 있었기에 폭탄은 무리 없이 절벽 위로 떨어졌다.

고블린들은 설마 사라졌던 폭탄을 던질 줄은 생각도 못했는지 날아오는 폭탄을 보고도 어쩔 줄 몰라했다.

결국 오또케오또케 하는 사이에 폭탄이 점화했고

-콰앙!

-쿠콰앙! 콰앙!

-쿠구구구국

-콰아앙! 콰아앙!

-쾅! 쾅!

-콰아아앙! 콰앙!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니 씨발 대체 폭탄이 몇 개가 있었던 거야?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지고 흑먼지가 가라앉자 절벽이 반쯤 무너져있었다.

그리고 레벨이라니? 뜬금없이?

생각지도 못한 레벨이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콜록콜록… 형 괜찮아요?”

“오빠! 괜찮아?”

시우가 성검을 꺼낸 채 주변을 경계했고 소피아는 정화를 써서 폭탄의 여파로 더러워진 내 얼굴을 청소해주었다.

“난 괜찮아. 아무래도… 아까 그 녀석이 가지고 있던 폭탄들이 연쇄적으로 다 터진 거 같은데…”

“정말? 그럼 다 해치운 거야?”

앗, 안돼 소피아 그 말은…!

-크롸롸롸롸롸롹! 케룩!

-케룩! 케룩!

-쿠콰콰!

젠장 무너진 절벽위로 새로운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이번에 나온 녀석들도 내가 알던 고블린들과는 생김새가 달랐는데

사람만큼 커다란 고블린이 자기 키만한 대검을 든 채 우리를 노려봤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고블린 치고는 큰 고블린 세 마리가 초록빛 단검을 든 채 소리를 질렀다.

“젠장! 전투 준비! 소피아는 뒤로 물러나! 시우 너는 앞으로!”

- 크루룩! 쿠롸!

시우가 성검을 쥔 채 앞으로 달려나가자 커다란 고블린이 달려들어 시우를 상대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다른 고블린들이 소피아를 노리고 움직였다.

“어딜! 감히!”

나는 소피아 앞에 서서 ‘아리아 여신의 방패’ 스킬로 눈뽕을 터뜨렸다.

그 효과로 달려오던 고블린 중 한 마리가 넘어지자 나는 나머지 두 마리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한 마리는 방패에 휩쓸려 쓰러졌지만 한 마리는 잽싸게 피하더니 소피아를 향해 단검을 찔렀다.

“이 새끼가!”

재빨리 몸을 돌려 고블린을 쳐내려고 하자 고블린은 제자리에 멈추더니 내찌르던 단검을 역수로 잡고는 그대로 내 옆구리를 쑤셨다.

“이씨바알!”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나도모르게 욕지지거리가 나왔다.

살이 타는 듯한 아픔에 정신이 아찔해졌고 눈앞이 흐려졌다.

“오빠아! 정신차려!”

때마침 들어온 소피아의 힐 덕분에 의식을 잃진 않았다.

옆구리에 단검을 박은 채 비틀고 있는 고블린의 팔을 잡은 후

칼을 들어 녀석의 목구멍에 숨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크뤠엑! 키룩, 키룩

녀석은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쓰러지더니 키룩키룩거리며 날 비웃었다.

이 씨발새끼가 웃어?

옆구리에 꽂힌 단검을 뽑아내자 푸슈슉 피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혈액이 줄어들자 현기증이 났고 몸이 저절로 비틀거렸으나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뒤를 보라고 외치는 소피아의 말을 따라 몸을 돌리며 다시 방패를 휘두르자

-탕!

한 놈이 단검을 날렸었는지 단검 하나가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거기에 정신을 팔린 틈을 타 단검을 던진 놈이 몸을 날리며 내 다리를 붙잡으려 하기에

나는 그대로 방패 채로 놈을 위에서 찍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나머지 한 마리를 상대하기 위해 방패를 드려는 데 다시 몸이 비틀거렸다.

어째선지 몸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아까 찔린 옆구리가 뼛속부터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돼애! 오빠아!!”

씨발… 몸에 힘이 안들어가…

달려오던 고블린은 그런 날 보고는 썩은 이를 보이며 쪼개더니 그대로 내 얼굴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푸슈슈슉!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

“꺄아아앗아앗!”

등 뒤로 소피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희미해진 의식을 되찾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죽으면… 다시는 소피아를 못만나게 되잖아.

소피아가 울고 있다.

몹쓸 짓을 해버렸다.

“개애 쓰버러 스끄들…”

니들 때문이잖아.

젠장.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어올렸다.

당황한 고블린은 도망치려 했으나 물고 있는 단검을 놓아주지 않았다.

단검을 놓고 도망가면 될텐데 멍청한 새끼…

녀석이 도망가기 위해 이리저리 단검을 비틀면서 내 입가의 상처가 더 심해졌지만

나는 이미 아픔 따위 못느끼고 있었다.

그대로 녀석의 배때지에 칼을 쑤셔넣었다.

칼이 깊숙히 들어갈수록 놈의 얼굴이 죽음의 공포로 물들어갔다.

이윽고 손잡이까지 찔러 넣자 비틀거리던 놈이 움직임을 멈췄다.

“퉷”

물고 있던 단검을 뱉어내자 입안에 고여있던 피와 잘려진 혓 덩이들이 함께 쏟아졌다.

비틀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킨 후 방패로 찍힌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놈의 뒤통수에 칼을 박자 놈은 크룩하는 비명소리를 내며 움찔거리더니 이내 곧 조용해졌다.

-털썩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쓰러질 수 있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소피아의 품 속이었다.

소피아는 펑펑 울면서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소피…”

“오빠아… 흑흑… 미안해 오빠아아아! 미안해애! 흑흑…”

소피아는 내게 끝도 없이 사과하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습게도 난 울고 있는 소피아도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크로로로로록! 크롹!

“핫! 하앗!”

그러고보니 끝이 아니었잖아.

저 멀리서 시우와 커다란 고블린이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둘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둘만의 싸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소피… 윽, 난 이제 괜찮아.”

“안돼애! 아직 치료 중이니까… 흑… 움직이면 안돼!”

“하지만 아직 시우가.”

“시우도 신경쓰고 있으니까… 그러니 괜찮아!”

그러고보니 고블린의 대검에 시우가 상처입을 때마다 소피아가 힐을 써주고 있었다.

놈은 억울해보였으나 놈이 소피아를 노릴 기회를 시우는 주지 않았다.

근데 니가 억울해하면 안되지.

저 괴물 고블린 놈은 트롤이라도 되는지 상처가 생길 때마다 저절로 치유되었다.

“미안해 오빠… 독에 중독된 지도 모르고…흑흑…”

역시… 평범한 단검이 아니었나.

죽으면서도 나를 비웃던 놈을 보고 이상하단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단검이 아니라 독검이었다.

그대로 저승길 동무가 될 줄 알았냐? 미안한데 우리 파티엔 성녀가 있거든?

“괜찮아 소피, 정말 괜찮아. 이렇게 살았잖아. 응?”

억지로 미소를 짓자 양쪽 입가에 생긴 상처가 쓰라렸다.

이래서야 원… 완전 조커잖아?

와이 쏘 씨리우스 한 마디 하려다가 겨우 참았다.

도저히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흑… 내가 미리 알았다면 오빠가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을텐데… 으아아앙!”

흑흑거리던 소피아는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리더니 내 품에 안겼다.

소피아의 등을 툭툭 쓰다듬어 주며 여전히 싸우고 있는 시우를 바라봤다.

근데 쟤네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 이렇게 염장질해도 되나?

…죽을 뻔했으니 시우도 이해해주겠지?

그래 시우도 양심이 있으면 그러겠지.

둘은 백중세였는데 고블린이 대검을 휘두르는 공세에 시우가 밀리는 듯 보였어도 시우는 끝내 뒤로 물러나지 않고 받아냈다.

그럴수록 고블린은 분노로 소리를 질렀으나 시우는 끝까지 냉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시우가 뒤로 크게 물러나더니 성검을 대검 크기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미친듯이 대검을 휘둘러댔다.

어라? 이거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시우의 공세에 이에 질세라 고블린이 반격했다.

그런데 둘의 모습이 판박이였다.

고블린이 대검을 휘두르는 방향으로 시우가 성검을 휘둘렀다.

고블린이 튕겨 나온 대검으로 찍어내리자 시우 역시 성검을 찍어내렸다.

마치 둘이 한몸이듯 둘은 같은 검술로 싸우고 있었다.

아니 같은 검술이 아니었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시우의 검술은 더 발전했다.

조금 더 날카롭게, 조금 더 재빠르게, 조금 더 강력하게…

결국 우위를 잡은 건 시우였다.

팍 하고 대검을 튕겨낸 시우는 그대로 성검을 휘둘러 고블린을 베어냈다.

하지만 얕았다.

갑작스레 고블린이 내뿜은 독에 시우의 힘이 빠졌다.

“젠장! 소피!”

아파하는 몸을 무시한 채 시우에게 달려갔다.

소피아 역시 달려가며 시우에게 정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미 고블린이 시우의 성검을 날려버린 뒤였다.

“안돼애애!”

그 때 푸른 섬광이 고블린의 목을 지나쳤다.

동시에 고블린의 목이 허무하게 뚝 떨어졌다.

“…뭐?”

-쿵!

-푸슈욱!

머리를 잃은 고블린이 쿵 하고 무릎을 꿇고 잘려나간 목 위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흥미롭네.”

무릎꿇은 고블린 뒤에서 푸른 머릿칼의 기사가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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