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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 하나의 사랑 (4/4)

4. 단 하나의 사랑

“고작 이걸로? 어쩌라고?”

환생의 여신인 비타는 저를 찾아온 어윈을 한껏 비웃었다. 비타는 천계를 버리고 인간계로 간 어윈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특출나게 아름답고 강한 능력을 지닌 그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어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여러 번 유혹도 했지만, 그는 비타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빨리 돌려줘. 이번엔 너무 빨리 데려갔잖아.”

“그 여인이 타고난 운명을 내가 어찌하라고,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황금 복숭아 백 개를 채워 오면 그녀를 찾게 해 줄게.”

비타가 좋아하는 황금 복숭아는 극강의 쾌락을 약속하는 일종의 천연 마약이었다. 최상위의 신들도 1년에 열 개도 만지기 힘든 것을 어윈은 그녀를 찾을 때마다 백 개씩 선물했다. 어윈의 선물이 갈급한 그녀는 대부분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비웃기만 하는 그녀의 반응에 어윈은 분노를 터트렸다. 다른 때보다 20년이 빨라 황금 복숭아 백 개를 채우지 못한 탓이었다. 그의 검은 눈이 불이라도 내뿜을 듯 울렁였다.

“네 장난이었잖아!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그깟 인간이 뭐라고, 차라리 나를 선택해. 훨씬 행복하게 해 줄게.”

비타는 요염하게 웃으며 어윈을 회유했다. 어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멜리사의 영혼이 걸린 일이었다. 어윈은 비타에게 잔뜩 화가 났지만, 그녀에게 대놓고 분풀이할 수도 없었다.

"나머지는 금방 채워 올게. 제발 그녀를 돌려줘.”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내뿜던 어윈이 화를 누르고 비타에게 애원했다. 그게 더 비타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 여자만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니, 탐이 났다.

“네가 이러니까, 더 들어주기 싫다고."

어윈은 아주 오래전 멜리사와 사랑에 빠졌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 머리와 초록색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윈슬로우 성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멜리사는 사람이었고, 어윈은 반신이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은 육체를 약속받은 어윈의 품 속에서 늙고 병든 멜리사는 눈을 감았다. 하얗게 바랜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윈의 눈물로 검게 변했다. 그렇게 어윈은 그녀의 머리에 자신의 색을 영원히 새겼다. 어윈은 마지막 인사로 차갑게 식은 그녀의 입에 입을 맞췄다.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어윈의 슬픔에 라프녹스는 한 달 내내 비가 그치지 않았다.

"생명의 신한테 네가 한 짓을 고해도?”

죽음의 신이 멜리사의 모든 기억을 소멸하기 전에 비타를 찾은 어윈은 그녀와 비밀 계약을 맺었다. 인간의 환생을 업의 단위가 아닌, 신의 의지로 바꾸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만약 이 일이 알려지면, 그녀보다 상급 신들이 그녀에게 엄벌을 처할 것이었다. 아니, 아예 신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었다.

비타는 이를 갈았다. 제가 멜리사를 환생시키지 않으면 어윈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명의 신을 찾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더는 환생의 신이 아닌 자신을 갈가리 찢어 죽일 거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 좋아. 바로 환생시켜 주지.”

어윈은 멜리사의 영혼을 환생시키는 비타에게 늘 두 가지 약속을 받아 냈다. 그녀가 저와 만나기 전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귀족의 영애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제가 다스리는 라프녹스 안에 있을 것. 비타는 어윈의 사랑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눈앞에 쌓인 활금 복숭아가 탐나서 어윈의 말을 몇 번이고 들어주었다.

“네가 약속을 어겼으니, 나도 약속을 지킬 이유는 없지. 대단한 사랑이면 뭐 해. 그녀는 널 만나지도 못하고 늙어 죽을 텐데, 그것도 다른 남자 품에서, 그 꼴을 네가 보면 좋겠구나.”

신나게 웃는 비타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어윈은 놀라지도 않았다. 심술맞은 그녀는 멜리사가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 살고 있는지 어윈의 권능으로 못 찾게 마법을 걸어 놓고, 어윈이 흑룡으로 변했을 때의 예민한 후각으로만 그녀를 알아낼 수 있게 만들었다. 어윈은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어윈은 그런 이유로 매번 윈슬로우 성에 검은 머리 여인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찾아낼 거야.”

어윈은 비타를 잘 알았다. 삐뚤어졌지만, 단순한 성격이었다. 비타는 어윈이 멜리사를 찾기 전까지 그녀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었다. 이번에는 비타의 심기가 크게 상했으니 무조건 그녀를 잔뜩 고생시킬 거였다. 그걸 알아서 어윈은 마음이 급했다. 하루빨리 그녀를 찾아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은 검은 머리를 가진 평민의 아이일 확률이 높았다.

평민으로 태어난 검은 머리 아이는 귀족과 비교하면 극히 드물기도 했지만, 보통 평민 집안의 수치로 여겨 일찍 버려져 죽거나 머리칼을 숨기고 다녀서 더 찾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비타가 화가 났다고 해도, 멜리사가 다시 태어나자마자 죽게 놔두진 않을 거였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감당해야 할 어윈의 분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평민이라........”

어윈은 난감했다. 귀족이라면 제 권속이나 다름없는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라고 하고, 그녀가 잘 자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평민으로 태어났으면, 흑룡의 신부 공고를 보고도 참여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라프녹스는 너무 넓었고, 어윈은 그녀를 찾는 것에는 능력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멜리사의 환생을 찾아 나라 곳곳을 20년이나 찾아 헤맨 어윈은 드디어 흑룡의 신부 공고를 내보내고서야 제이드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약한 장난을 했군.'

제이드를 본 첫 소감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빼빼 마른 몸, 여기저기 덧대서 기운 더러운 옷, 흑발을 가리기 위해 쓴 너덜너덜한 두건, 밑창이 해진 신발, 잔뜩 주눅 든 표정과 움츠린 어깨까지. 가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온몸에 불행을 폴폴 풍기고 다녔다.

어윈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시기한 비타가 제이드에게 어떤 사람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저주를 걸어 놨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제이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가벼운 동정이었을 것이다. 가엾고 가여웠다.

“검은 머리군요.”

흑룡으로 변하지 않아도 어윈은 그녀가 멜리사라는 것을 확신했다. 저를 보고 흔들리는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는 처음 델리사를 만났을 때, 제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초록색 눈과 겹쳐 보였다. 얼굴은 달라도 그 눈빛은 분명히 멜리사의 그것이었다.

그녀가 멜리사인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당장 흑룡으로 변해서 그녀의 영혼 냄새를 맡는 것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윈은 확신했다. 그녀의 영혼이 저를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집사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모건 공작은 어윈의 앞에서 무릎 꿇고 부들부들 떨었다. 흑룡의 첫 신부를 배출한 모건 공작가는 어윈의 축복으로 이 땅 안에서 활제 다음으로 큰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어윈은 오래전부터 활제와 모건가를 제 수족으로 삼아 세상일을 보곤 했다.

"안 되기는.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혹시 네가 나한테 심부름이라도 시키려고?”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가족이나 권솔들에게는 비밀로 하거라. 널리 알려져서 좋을 게 없으니."

“그리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흑룡의 신부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네가 그녀의 뒤를 돌보고.”

어윈은 만에 하나 제이드가 멜리사의 환생이 아닐 경우도 생각해야만 했다. 제 곁에 두고 지켜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이 불쌍한 여인이 멜리사가 아니라면 그녀는 또다시 불행한 삶을 이어 가야 했다. 어윈은 멜리사의 눈빛을 닮은 여인이 그렇게 박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마음 착한 멜리사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제 일처럼 기뻐할 게 눈에 선했다.

"아......"

"만약 내가 축복하지 않은 모건가의 미래가 궁금하면 마음대로 하고."

어윈의 이능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온 모건 공작은 흠칫 어깨를 떨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모건 공작은 제이드가 흑룡의 신부가 되기를 바라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어윈은 제 앞에서 벌벌 떠는 모건 공작을 보고 씨익 웃었다. 이제 제이드를 이 집으로 데려올 일만 남았다.

***^**톡히톡히산톡히

"괜찮아요?”

기절하듯 쓰러진 제이드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겨우 눈을 떴다. 어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윈.”

제이드가 두 팔을 어윈에게 뻗자, 어윈이 웃으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어윈은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폭신하고 보드라운 살 내음을 흠뻑 들이마셨다. 어윈은 군살 없는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저녁도 안 먹고, 아침도 거르고, 내내 살찌운 거 다 빠지겠네.”

어윈의 장난스러운 살 타령에 제이드는 피식 웃었다. 지난밤 내내, 멜리사의 지난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제이드는 어윈이 왜 제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세세한 기억이 다 돌아오지 않아 아직 궁금한 부분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윈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윈은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저를 사랑했구나, 혼자 남아 처절하게 외로웠구나, 어윈이 흘린 눈물이 제 머리 색이 되었구나. 너무 가슴 아프고, 애틋한 기억들이었다. 어윈의 사랑은 한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충성과도 닮아 있었다. 제이드는 어윈이 저를 다시 찾아 줬음에 감사했다.

“나를 다시 찾아 줘서 고마워요."

"설마 기억이 돌아왔어요?"

어윈은 이 성에 멜리사의 기억을 다 남겨 두었다. 멜리사가 이 성에 돌아왔을 때, 혼란스럽지 않도록, 보통 그 기억 전달은 이 성에 머물기 시작하면 한 달 정도 걸렸다. 그런데 제이드는 유난히도 빨랐다. 아마 성에 돌아오기 전 어윈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대충요. 공작저에 있을 때도 가끔 꿈을 꿨거든요.”

“무슨 꿈을 꿨는데요?"

어윈의 질문에 제이드는 어윈에게 안겼던 그날의 꿈이 떠올라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어윈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낮게 웃었다.

“왜요? 절 잡아먹기라도 했어요?.."

“저는 아니고....... 멜리사가......”

“그럼, 제이드는 구경했어요? 아...... 그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네요.”

짓궂게 웃는 어윈을 향해 제이드는 삐죽 눈을 흘겼다. 아직도 제 앞에 어윈이 있다는 게 꿈처럼 느껴질 만큼, 이 모든 일이 여전히 신기하고 낯설었다. 자신이 왜 그렇게 어윈에게 집착했는지는 쉽게 이해됐다. 제이드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어윈을 던저 알아보고 반겼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어떻게 나를 찾았어요? 어윈은 신부를 직접 못 찾는다고 했는데.....”

“날 찾은 건 제이드잖아요. 내 등에 머리를 충 박고, 흘러내린 두건 사이로 검은 머리칼을 보여 주고.”

“난 어윈이 누군지 모르고 그랬는걸요.”

“괜찮아요. 우리는 운명이니까.”

어윈은 제이드의 볼에 짧게 키스하고 웃었다. 생각을 훤히 읽을 수 있을 만큼 비타가 단순해서 다행이었다. 난생처음 흑룡으로 변하지 않고도 제 신부를 던저 찾은 어윈은 제법 뿌듯했다. 처음에는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모건 공작가에 제이드를 데려와 함께 있으면서 그 설마가 점점 확신으로 변한 건 금세였다. 멜리사가 아니면 제 가슴을 이렇게 뛰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계속 존댓말해요? 이제 집사도 아닌데...”

제이드에게 존댓말을 한 사람은 어윈이 처음이었다. 제가 모건가의 양녀고, 어윈은 집사라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가 윈슬로우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어윈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을 존경하니까요. 감히 내가 제이드에게 어떻게 반말을 하겠어요.”

"멜리사라고 해 줘요."

제이드는 제 꿈에서 멜리사가 왜 자신의 얼굴이었는지, 왜 자신의 몸 안에 들어왔는지 알게 됐다. 아직 멜리사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고, 낯설었지만 어윈이 멜리사를 기다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이드는 제이드로 충분해요. 굳이 멜리사가 될 필요는 없어요.”

“왜요? 어윈이 저를 멜리사라고 부르고 싶을 줄 알았어요.”

“내 곁에 있으면 돼요.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아.......”

처음부터 혼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전혀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태어났지만, 반짝이는 멜리사의 영혼은 제이드의 몸에 있어도 변하지 않았다. 어윈은 그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요. 왜 공작가의 집사라고 속이고 절 데려갔어요?"

"공작가에 안 데려갔으면, 흑룡의 신부를 찾는다고 했을 때 안 올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이드가 몇 달이라도 더 편하게 지냈으면 했어요. 좋은 옷도 입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나한테 적응도 좀 하고, 이 성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낯설게 느끼지 말라고, 제대로 된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는 다들 혼란스러워하거든요.”

"아.....”

제이드는 어윈의 말에 공감했다. 흑룡의 신부가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불안은 엄청난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 인생을 모두 저당 잡힌 것 같은 그런 느낌.

만약 어윈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면, 흑룡의 신부를 선택하는 자리에 어윈이 직접 나타난다고 해도 호감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어윈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여자들을 쭉 모아 놓고 신부를 뽑는 낯선 남자를 정상으로 볼 수는 없을 테니까.

"성을 탈출한 신부는 처음이었어요. 숲을 못 빠져나간다는 건 알았지만, 데클렌한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니까요. 커튼으로 밧줄을 만들어 창에서 뛰어내렸을 줄이야. 재주가 제법이에요.”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호쾌하게 웃는 어윈을 보고, 제이드는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다. 만약에 제가 기품 있는 귀족의 영애였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억척을 부린 것 같았다.

"그 얘기를 듣고 오랜만에 크게 웃었어요. 데클렌은 커튼을 죄 찢어 놨다고 못마땅해했지만, 데클렌은 흐트러진 꼴을 못 보거든요.”

윈슬로우 성에서 만난 어윈은 모건 공작의 저택에서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 보였다. 어쩌면 완벽하게 신부를 찾았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여유일지도 몰랐다.

“그런데요. 중간에 공작저를 떠난 적이 있었잖아요. 일주일이나.”

“그랬죠.”

“내가 어윈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이 될 거라고 했을 때.”

제이드의 말에 어윈은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쑥스럽게 웃었다.

“그 말은 멜리사가 자주 하던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놀라기도 하고, 제이드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서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당황했어요."

“그런데, 왜 떠났어요? 나한테는 말도 없이."

“제이드가 성에 돌아올 때까지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려 주고 싶었는데, 감정이 자꾸 들떠서 피했어요. 제이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제이드를 울려서 미안해요. 제이드를 이 성으로 데려와야 하는데, 거기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안 간다고 할까 봐 그랬어요.”

“그러면 저를 왜 안았어요.”

“제이드가 날 원한다는데 어떻게 견디겠어요. 머릿속이 하얘지던데. 그 얘기를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제이드는 모를걸요. 사실 정말 힘들었던 건 제이드가 자꾸 도망가자고 하는 걸 거절하는 거였죠. 그때는 진짜 나도 같이 도망가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두 사람은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때 했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어윈의 말과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되자, 제이드는 앓던 이가 빠진 것같이 시원했다.

"참. 그 때 그 창고, 그 쥐 떼도 어윈이 보낸 거죠?"

"앨런이 제이드가 사라졌다는 걸 알려 줬는데, 당장 찾을 길이 없었어요. 쥐는 어느 동네나 많으니까 좀 이용한 거죠.”

"레아는 어떻게 됐어요? 정말 모건 공작이 가둔 건 아니죠?"

“음...... 그건......”

말을 주저하는 어윈의 팔을 제이드가 흔들었다. 원래도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뒤로는 공작저에서 레아를 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있어요.”

"여기요."

"평생 빛도 못 보는 지하 감옥에서 썩게 놔뒀어요. 죽는 건 쉽거든요. 사는 게 어렵지. 그녀가 누렸던 호사가 누구한테 왔는지도 모르고, 제이드의 머리카락을 자른 벌을 받아야죠.”

제이드는 머리가 복잡했다. 레아가 자신에게 한 일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한평생 빛도 못 보는 감옥에 있는 건 너무한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제이드의 얼굴을 보고 어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복수를 위한 건 맞지만, 제이드가 원한 방식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마음대로 처리해서 미안해요. 레아를 어떻게 하길 원해요? 원하는 대로 해 줄게요.”

“어윈이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난 레아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혹시 어윈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할까 봐, 제이드는 밝게 대답했다. 어차피 레아가 판 무덤이었고, 어윈은 그녀가 빠진 무덤 위에 흙을 덮어 줬을 뿐이다. 힘든 일은 다 잊고 싶은 제이드는 복수를 원하지 않았지만, 저보다 더 크게 분노한 어윈의 화가 풀리려면 처벌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 궁금한 거 있어요?”

“너무 많은데, 지금은 배고파요.”

제이드가 주린 배를 쓸자, 어윈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을 흔들었다. 금세 침실로 올라온 음식들은 평상시에 제이드가 좋아하는 것만 쏙쏙 골라 놓은 것 같았다. 음식을 먹기 좋게 잘라서 제이드의 입에 넣어 주는 어윈의 눈이 행복으로 빛났다.

***^토***

"흑룡은 정말 로맨티시스트였군요. 춤을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요."

늘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했던 어윈은 공작가에서도 춤을 가르치는 것만은 진심이었다. 다른 것은 다 제가 가르쳤으면서도 춤만은 가장 유명한 춤 선생을 불러왔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지난 기억에서도 그랬다. 멜리사도 춤추는 것만큼은 힘들어했다. 뭐든 정도껏 해야지, 한번 추기 시작하면 서너 시간은 기본이었다.

“제이드가 피로연에서 돋보이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내가 알잖아요.”

어윈은 제이드와 춤추는 게 좋았다.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함께 스텝을 맞출 때마다 하나가 된 것 같은 모한 성취감이 들었다. 제이드가 저에게 나긋하게 안겨서 춤추는 모습도 좋았고, 춤에 집중할 때 나오는 표정이 예뻐서, 온종일 춤을 춰도 질리지 않았다.

"피로연에서 이렇게 힘들게 춤을 춰야 하는 거면 난 빼 줘요.”

"황제 앞에서 완벽하게 보여야죠.”

결혼식 피로연에 황제가 온다는 어윈의 얘기에 깜짝 놀란 제이드는 한동안 춤 연습에 매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도회에서 출 춤이라면 넘치게 연습하고도 남았다.

“그게 저보다 중요해요?”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춤 연습은........”

'쓰읍'하고 입술을 깨무는 제이드를 보고, 어윈은 하던 말을 멈추고 옆에서 내내 무도곡을 연주해 주던 연주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더 춤추자고 했다간 제이드가 화를 낼 것 같았다. 화내는 것은 충분히 받아 줄 수 있지만, 화를 달래 준 후에 제이드가 미안해하는 게 싫어서 어윈은 그녀가 화내는 게 싫었다.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연주자들도 이제 살았다는 얼굴이었다.

“잘했어요.”

연주자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제이드는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침실까지 걸어가기도 귀찮았다. 제이드도 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어윈에게는 댈 게 아니었다. 만약 계속 춤을 추자고 한다면 어윈은 신이 나서 밤새 춤을 추자고 할 것이었다. 이건 춤이 아니라 무슨 훈련 같았다.

“아, 시원해.”

춤을 춰서 달아올랐던 몸이 차가운 돌바닥에 닿자 시원해서 좋았다. 제이드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침실로 업고 갈까 생각했던 어윈은 제이드의 기분 좋은 표정을 보고 좀 더 기다려 줄까 고민했다.

"여기 되게 시원해요.”

제이드가 손짓하자, 어윈은 그녀의 옆에 모로 누웠다. 연회장에 누운 것은 처음이었다. 차가운 바닥이 제이드의 말처럼 시원해서 기분 좋았다. 어윈은 딱딱한 돌 위에 누운 제이드가 불편할까 봐 팔베개를 해 줬다.

"여기서 해 봤어요?”

“뭘요?”

“뭐긴요.”

제이드가 어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내 제이드는 어윈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잔망스러움에 어윈이 크게 웃었다.

“힘든 거 아니었어요?"

“춤추는 게 힘든 거죠. 완전 멀쩡해요.”

제이드가 어윈의 하반신에 앉아 엉덩이를 둥그렇게 비비자, 어윈의 아래쪽에서 금세 반응이 올라왔다. 작게 웃은 제이드는 고개를 숙여 어윈의 입술에 키스했다. 어윈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가득 감싸고, 열렬히 반응해 왔다. 농염한 열기가 금세 두 사람을 감쌌다.

침실이나 욕조 외에서 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이드는 어른들 몰래 불장난하는 소녀 같은 마음이 들어 키스부터 짜릿했다. 오늘은 뭔가 색다른 것을 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어윈, 가만히 있어 봐요.”

제이드는 어윈의 입술을 잘게 씹으면서, 한 손으로 어윈이 입고 있는 재킷과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어윈이 늘 제게 하는 것처럼 귓가에 숨을 불어 넣은 뒤, 목덜미를 길게 핥고, 단단한 가슴판 중간에 작게 솟은 자그마한 붉은 돌기를 입 안에 삼키고 굴렸다.

“크크...... 간지러워요.”

두 팔을 겹쳐 제 뒷덜미에 대고, 제이드를 지켜보고 있던 어윈이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제이드가 한껏 느꼈던 그곳이 어윈에게는 그저 간지러은 곳에 불과한 것 같았다. 어윈도 좋아할 거라 기대했던 제이드가 시무룩해져 물었다.

“내가 너무 못해요?”

의기소침해서 저를 내려다보는 제이드가 귀여워서 어윈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간지러워서.”

어린이 제이드의 팔을 잡아끌어서 그녀의 입술을 한입에 삼켰다. 능수능란하게 제 입 안을 헤집는 어윈이 주는 감각에 벌써 다리 사이가 저릿해져 왔다. 그가 주는 쾌락을 완전하게 인지한 제이드의 몸은 어윈의 손길만 닿았음에도 벌써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리 와요.”

어윈의 얼굴이 곧 제이드의 치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낯선 자세가 어색해 어정쩡하게 주저앉은 제이드의 속옷을 단숨에 벗긴 어윈은 두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벌리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부끄러워서 자꾸 몸을 떼려는 제이드의 허리를 잡고 누르며, 어윈은 벌어진 그녀의 붉은 속살을 거침없이 핥았다. 혀로 가르고, 입술로 쪽쪽 빨아들이는 통에 텅 빈 연회장에는 음란한 소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춥춥...... 춥....... 츄읏......”

제 아래를 건드리는 어윈의 손가락과 혀가 보이지 않아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제 엉덩이에 얼굴을 비비는 어윈의 뜨거운 숨이 그녀의 중심에 닿자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던 속살이 이제는 넘칠 만큼 애액을 뿜어냈다. 흥분으로 고조된 그녀의 입 안에서는 고르지 않은 신음이 애타게 새어 나왔다.

“하...... 으읏...... 하앗...... 잠깐만........”

제이드는 늘 저를 달궈 놓는 어윈에게 저도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제이드는 몸을 돌려 허리를 숙였다. 어윈의 바지 버튼을 풀고, 이미 몸집을 무럭무럭 키운 어윈의 단단한 살덩이를 손으로 잡았다. 제 두 손으로도 다 잡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제이드의 손 안에서 저 혼자 꺼덕거리며 굵은 힘줄까지 세운 성기는 이미 제 안을 여러 번 꽉 채웠으나, 이렇게 가까이서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윈이 제 손을 가져가서 몇 번 잡아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보니 또 놀라웠다.

제이드가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자, 어윈의 엉덩이가 작게 튀었다. 제 서툰 애무에도 어윈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즐거웠다. 제가 울면서 애원할 때까지 어윈이 괴롭히는 게 슬쩍 이해도 됐다.

“쓰읍...... 츄."

제이드는 제 두 손으로 어윈의 검붉은 성기를 붙잡고 혀로 길게 핥고, 입을 맞췄다. 유두와 달리 어윈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두 눈을 감고, 제이드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혀를 음미하는 어윈의 표정이 너무 야했다.

제이드는 어윈의 기둥을 입 안에 삼켰다. 끄트머리만 겨우 삼켰을 뿐인데도 제 입 안이 꽉 차는 것 같았다. 둥글게 부푼 귀두를 혀로 감고 빨자, 어린이 밭은 숨을 내쉬었다. 팽팽하게 핏줄들이 선 출기 같은 살덩이가 입 안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윈은 제가 느낄 때마다. 제이드의 속살을 더 음탕하게 빨아 댔다. 제이드가 그의 것을 힘 있게 쭉 빨아들이고 내뱉자 어윈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후으...... 녹아내리는 것 같아......”

| 어윈이 작게 허리를 튕길 때마다 목구멍을 둥근 귀두가 찔러 왔다. 그 괴롭고 짜릿한 감촉이 제이드를 더 흥분시켰다. 그것은 어윈도 마찬가지였다. 좁고 뜨거운 그녀의 젖은 입 안을 함부로 휘젓고, 더 깊은 곳까지 제 것을 밀어 넣고 싶어 허리가 들썩였다.

제이드는 어윈의 뜨거운 살덩이를 문지르고 핥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게다가 제 아래는 어윈의 애무로 벌써 흐물흐물한 젤리가 된 것 같았다.

“나도 좋아요...... 앗...... 아...... 아아아.......”

제이드가 좋다고 헐떡거리는 소리에 만족감을 느낀 어윈의 손과 혀는 탄력을 받았다. 한참 전부터 흥건하게 젖어 질퍽거리는 좁은 틈은 그의 손가락을 물고 놔주지 않았다. 어윈은 그녀를 번쩍 들어 제 허리 위에 올렸다.

"바닥이 딱딱하니까 위에서 한번 해 봐요.”

어윈의 허리 위에 올라탄 제이드는 제 엉덩이 뒤에서 꺼덕대는 그의 성기를 두고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제이드를 어윈의 손이 리드했다. 어윈은 제이드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아 내리고, 남은 한 손은 치마 속에 넣어 제 기둥을 잡아 맑고 끈적한 물을 질질 흘리는 그녀의 붉은 틈을 비벼 댔다. 금세 제 안을 채울 것 같으면서도, 뭉근하게 문지르고만 있는 어윈의 것이 그녀를 애태웠다.

“어윈....... 아앗.......”

제이드는 잔뜩 힘이 들어간 어윈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잡았다. 어윈의 시야에 두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는 제이드의 홍조 띤 얼굴이 보였다. 제이드의 색정적인 모습에 어윈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어 제 입술을 핥았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천천히 넣고 움직여 봐요.”

천천히 넣으라는 어윈의 말을 배반한 건 제이드였다. 제이드는 어윈의 성난 물건을 한 번에 집어삼키고 숨을 크게 토했다. 이미 잔뜩 달아올라 그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제 몸을 가르기라도 할 듯이 빠듯하게 제 안을 벌리는 그의 성난 살덩이는 매번 저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윈을 기다리던 그녀의 안쪽 여린 살은 빳빳 하게 몸을 세우고 침입한 그의 것을 촘촘히 감싸고 뜨겁게 조였다.

"하아...."

위에서 눌러 앉자 평상시보다 더 깊게 박히는 느낌이었다. 제 안을 꽉 채운 충만감에 절로 밭은 숨이 새어 나왔다. 제이드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어윈 위에 앉아 조금씩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내벽이 어윈의 성기를 쭉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놓기를 반복했다. 느리지만 깊숙하게 박혀 오는 뜨거운 살덩이가 내벽을 휘저을 때마다 발끝이 짜릿하게 울렸다.

“제이드가 좋아하는 곳에 문질러 봐요. 천천히.”

어윈은 제이드가 제 위에서 움찔거리는 걸 즐거운 듯이 바라봤다. 제 위에 처음 올라탄 제이드가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제법 빠르게 깨우치고 있었다. 어떻게 허리를 움직여야 좋은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어윈은 그녀 스스로 즐거움을 느낄 방법을 발견하면 좋을 것 같았다.

“좋아요? 힘들진 않고?”

제이드는 작게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윈은 제이드의 움직임에 맞춰서 가끔 허리를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제이드의 입에서 짧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제이드의 움직임은 격정적이지는 않아도 느긋하게 서로를 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윈은 손을 뻗어 드레스 위로 봉긋하게 솟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드레스 위로 삐져나온 하얀 살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정적이었다. 어윈이 커다란 두 손으로 양쪽 가슴을 쥐고 뾰족하게 솟아오른 분홍빛 돌기를 잡아 비틀자, 제이드의 내벽이 어윈의 것을 확 빨아들였다.

“아앗.”

제이드가 어윈의 위에 주저앉아 허벅지를 조였다. 그녀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좋긴 하지만, 뭔가 모자라고 감칠났다. 어윈이 더 강하게 제 안을 헤집어 주길 바랐다. 제이드가 어윈의 몸 위로 쓰러지며 키스했다.

“어윈...... 아쉬워....... 모자라요.”

“어떻게 해 줄까요?”

어윈은 그녀의 쇄골을 강하게 빨아들이고, 이로 살짝 물어 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제이드를 더 애태우듯이 허리를 느릿하게 놀렸다. 강렬하고, 거칠게 휘몰아치던 쾌락을 기억하는 그녀의 몸은 안타깝다는 듯 허리를 들썩였다.

“그거 말고..... 더 세게...... 엉망으로 휘저어 줘요.......”

그녀의 애원에 어윈은 제이드의 뒷덜미와 허리를 꽉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였다. 어윈이 허리를 튕겨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치받을 때마다.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퍽퍽 하고 울렸다. 제이드가 움직일 때랑은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 좀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제이드의 허리가 어윈의 움직임에 맞춰 절로 움직였다. 굵고 커다란 것이 안에 사정없이 꽂힐 때마다 눈앞에 별이 팡팡 터지는 것 같았다.

“흐응...... 하....... 아아...... 아앗......”

열락에 빠진 제이드의 음란한 교성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아예 몸을 반쯤 일으킨 어윈은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거칠게 추삽질을 하며, 제이드의 귀와 목덜미를 길게 핥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저를 기다리듯이 단단하게 솟아 있는 분홍빛 젖꼭지를 한입에 삼키고, 혀로 희롱하며 푹푹 허리를 강하게 치됐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기어오르는 감각에 제이드는 전을 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번개가 치듯 강렬하게 박혔다가 빠져나갈 때마다 쾌락의 파고가 끊임없이 제 안을 들끓게 했다. 제이드는 정신없이 교성을 내질렀다. 온몸을 후려치는 자극에 눈앞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응...... 하아....... 그만...... 아아앙.......”

“그만두면 싫어할 거잖아.”

“아니...... 앗....... 그만........ 으응.”

고통에 가까운 가혹한 쾌감에 결국 눈물을 터트린 제이드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더 하면 정말 이상해질 것 같았다. 이 미칠 것 감각은 좋으면서도 무서웠다. 뇌가 녹진녹진 녹을 것 같으면서, 하얗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어깨를 떨며 우는 제이드를 어윈이 달랬다.

“쉬이....... 괜찮아.......”

어윈은 그녀의 젖은 눈가를 혀로 핥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만하라고 하면서도 한번 달아오른 그녀의 안이 제 것을 차지게 감싸 왔다. 미끈한 액을 흘리며 감도 높게 휘감는 제이드의 내벽은 여전히 저를 미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윈은 제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몸을 완전히 맡긴 제이드의 안을 얕게 치냈다. 그녀가 내뱉는 젖은 숨이 귓가에 울렸다. 아직 한참은 모자랐다. 어윈은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속력을 올렸다. 나른한 신음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크읏.”

추삽질의 속도가 다급해졌다. 어윈은 본능에 충실한 짐승처럼 허리를 놀리며 그녀가 느끼는 부분을 잔뜩 찔러 줬다. 몸 안의 예민한 부분이 짓눌려 제이드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녀는 다시 차곡차곡 쌓여 가는 쾌감에 덜덜 떨면서 어윈의 어깨에 이를 박았다. 그 아릿한 통증마저 쾌감을 증폭시켰다.

열기에 들끓는 두 사람의 몸이 서로의 리듬에 맞춰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머리끝까지 끊어오르는 사정감에 어윈은 제이드의 골반을 세게 붙잡고, 제 욕심껏 퍽퍽 피스톤질을 했다. 터질 것같이 달아오른 어윈의 살덩이가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고, 어윈이 주는 극치의 자극에 거친 숨만 헐떡이는 제이드의 육신이 크게 휘어졌다.

“아응..... 흐읏...... 아아앗...... 으흐...... 으흐......!”

신음과 울먹임 사이에 있는 제이드의 교성을 삼키며, 어윈은 이제 멈추지 않고 열락의 끝을 향해 달렸다. 더 깊이 파고들 수 없을 만큼 제이드의 안에 제 것을 밀어 넣은 어윈이 맹수같이 날뛰며 경련하듯 조이는 그녀의 깊숙한 곳에 세차게 파정했다. 근육으로 뒤덮인 어윈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제 정액을 모두 토해 내고도 그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어윈은 아직도 단단하게 뭉친 제 살덩이로 제가 그녀의 몸에 남긴 흔적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아...... 제이드 ......”

진저리 치는 쾌감의 끝을 본 제이드는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어윈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뺨과 이슬 맺힌 그녀의 눈에 가볍게 키스한 어윈은 아이를 달래듯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지? 제이드는 너무 야해요.”

혼잣말인 듯 물음인 듯한 어윈의 말에 제이드가 피식 웃었다.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어윈을 만나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감각이었다.

"사랑해요."

어윈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아직도 식지 않은 어윈의 성기는 여전히 그녀의 내벽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제이드의 동그란 뺨과 젖은 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다시 찾아온 제 사람이 너무 좋아서 어윈은 그녀를 제 품에 꼭 안고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사랑해요. 제이드.”

***^***

“어머, 앨런! 너무 예뻐요.”

제이드는 앨런이 만든 웨딩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을 내뱉었다. 어윈이 처음부터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했던 앨런은 윈슬로우 성의 사람이었다. 제이드는 윈슬로우 성에서 앨런을 다시 만나고, 그녀의 담담함과 뜻 모를 미소의 비밀을 알게 됐다. 앨런은 제이드보다 먼저 어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세요?”

아침부터 제이드를 찾은 앨런은 제이드에게 급히 갈 곳이 있다고 하더니, 웨딩드레스를 숨겨 둔 방으로 데려왔다. 창문에 비치는 햇빛 아래 눈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는 정말 황홀하게 예뻤다. 앨런은 자석에 이끌리듯 드레스로 다가갔다. 웨딩드레스는 투명한 보석을 잔뜩 달아 놔서, 드레스 자체로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요?”

“공작가에 가기 전에 이미 준비해 놨지요. 입어 보실래요?"

제이드는 앨런의 도움을 받아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윈슬로우 성의 하루하루는 행복하고 평안했다. 호사스러운 생활이 주는 즐거움보다 어윈과 함께 눈을 뜨고, 함께 잠들 수 있는 기쁨이 훨씬 더 컸다. 제이드에게 결혼식은 작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어윈이 제 사람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만한 생활이었다.

“어머, 고생해서 만든 보람이 있네요.”

앨런은 감탄을 내뱉고, 꼼꼼하게 수정할 곳을 살렸다.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미리 만들어 놓은 드레스는 제이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처럼 잘 어울렸다. 면사포까지 머리에 올리니 이제 진짜 어윈의 신부가 되는 것 같았다.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려 이리저리 옷매무새를 살피는 제이드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신부 입장."

결혼식 당일, 붉은 중단 끝에 먼저 서 있던 어윈은 커다란 문에 제 시선을 고정했다. 커다란 문이 서서히 열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제이드가 나타났다. 어윈은 그녀의 완벽한 자태에 감탄을 내뱉었다. 또 한 번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반짝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어윈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제이드는 천사같이 아름다웠다. 그녀가 어윈에게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붉은 단 위로 길게 드리운 면사포가 그녀를 따라왔다.

제이드가 어윈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그가 몇 걸음 먼저 마중 나가 그녀를 맞이했다. 레이스 장갑을 낀 제이드의 작은 손이, 어윈이 내민 커다란 손을 잡았다.

“아름다워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윈은 제이드의 귀에 짧게 키스하며 속삭였다. 제이드의 드레스와 한 쌍으로 만든 턱시도를 입은 어윈의 모습도 오늘은 더 멋져 보였다. 이렇게 함께 옷을 맞춰 입은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남달랐다.

“어윈도 당장 덮치고 싶을 만큼 멋있어요.”

제이드가 어윈의 뺨에 짧게 입 맞추고 속삭이자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어윈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고 싶어요? 다들 내보낼까요?"

제이드의 말에 구미가 확 당긴 어윈의 진지한 물음에 제이드는 부케로 입을 가리고 활짝 웃었다. 결혼 예복과 장식은 최고급이지만, 예식은 조촐했다. 결혼식에서는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이 성을 오래 지킨 데클렌과 앨런이 증인으로 참석했을 뿐이었다.

"나랑 결혼하기 싫으면 그렇게 해요."

어윈은 고개를 흔들며, 제이드와 마주 섰다. 어윈이 데클렌을 쳐다보자, 데클렌이 다가와 반지 두 개를 전해 주었다.

“내 목숨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제이드의 행복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이드, 나랑 결혼해 주세요.”

어윈이 제이드의 중지에 섬세하게 세공된 영롱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주며 말했다. 반짝거림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세공한 다이아몬드는 햇살을 머금고 눈부시게 빛났다.

"나를 찾아 줘서 고마워요. 나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어윈이 찾아 주길 기다릴 거예요. 고마워요, 어윈. 나랑 결혼해 줘서.”

제이드도 어윈의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웠다. 이어 두 사람은 영원을 약속하는 긴 키스를 했다. 또다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는 감격에 어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제이드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늘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그래서 더 소중해요. 내게 와 줘서 고마워요.”

두 사람의 모습을 뭉클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데클렌과 앨런은 바쁘게 손뼉을 쳤다.

“결혼 축하드려요!"

제이드와 어윈은 두 사람에게 목례로 화답했다. 조촐하고 짧은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마냥 행복했다. 결혼식에는 하객을 초대하지 않았지만, 그날 저녁에는 윈슬로우 성에서 성대한 피로연이 열릴 예정이었다.

“너무 떨려요.”

"어차피 아무도 몰라요. 마음 편하게 있어요.”

"피로연에서도 계속 춤출 거예요?”

“별로. 제이드 얼굴이 안 보여서 재미없어요.”

어윈은 피로연의 주인공인 제이드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깃털 장식이 된 화려한 가면 위에 입을 맞췄다.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 때문에 제이드의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모든 시선을 끌었다.

“제이드는 가면을 써도 예쁘지만..”

“어윈도 멋있어요.”

검은 정장에 은은한 광이 나는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어윈은 하얀 드레스 셔츠 외에는 어두컴컴한 색으로 두르고 있는데도 빛이 나는 것 같아서 제이드는 활홀하게 쳐다봤다. 어윈은 까만 눈동자를 제이드에게 고정하고,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나가지 말까요?”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온 두 사람은 점심도 거르고 서로에게 집중했다. 피로연 준비를 위해 제이드를 계속 기다리던 앨런이 신혼 방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제이드와 앨런은 끈질기게 서로를 탐했다.

“그건 괜찮은데요. 더는 못 해요.”

“그럼, 가죠.”

두 사람은 웃으며 피로연이 준비된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비는 아름답게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일찍 도착해 합을 맞추었던 연주자들은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고, 커다란 샹들리에 밑에 북적북적하게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고용인들과 가족들도 오늘 하루는 실컷 즐길 수 있게 초대장을 보냈고, 오매불망 어윈이 불러 주기를 바라고 있던 황제와 모건 공작을 비롯해 신부를 배출했던 몇몇 귀족가와 윈슬로우 성에 와보고 싶었던 귀족들도 알음알음 제 식솔들까지 끌고 와 로비는 북적북적했다.

“와, 많이 모였네요. 황제도 왔나요?"

“저기.”

어윈은 황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평범한 가면무도회로 피로연을 대신할 테니, 티 나게 오지 말라고 한 어윈의 전언에도 불구하고, 황금으로 장식한 마스크를 쓰고 세상 화려하게 나타난 황제의 곁에는 귀족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아......"

너무도 티 나는 행적에 제이드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가면무도회라고 해도 차림새 때문에 귀족과 평민이 확 드러났다. 귀족들은 어떻게든 서로의 눈에 띄려고 값비싼 장신구를 두르고 참석했지만, 평민들은 제일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리저리 눈치나 보고 있는 귀족들과 달리 인생에서 몇 번 없을 호사를 누릴 기회에 신이 난 평민들은 피로연에서 만끽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흠뻑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연회장을 누비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입에 착 감기는 기름진 음식과 향이 좋은 술을 넘치게 먹고 마시며 행복해했다.

“즐거워 보여요.”

결혼식 전, 제이드는 윈슬로우 성의 고용인들과 그들의 식솔과 동네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게 하자고 말을 꺼냈다. 만약 예전 빈민가에 살던 때의 제이드라면 이런 성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었다고 해도 무서워서 거절했을 테지만, 화려한 연회에 한 번쯤 참석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이렇게 행복한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제이드는 원슬로우 성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이 성을 찾아와 배부르게 한 끼 먹고, 신나는 밤을 보내기를 바랐다.

어윈을 만나기 전, 숨 쉴 틈도 없이 빡빡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제이드는 이 피로연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추억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어윈은 두말하지 않고, 제이드의 의견에 동의했다. 빈민가에서 자라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아는 제이드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어윈은 제이드가 더 많은 것을 욕심내고,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기를 바랐다.

늘 황제와 귀족들만 참석했던 윈슬로우 성의 피로연에 평민들이 온 것을 보고 그들은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차마 어윈에게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린 윈슬로우 부부가 피로연에 도착하셨습니다.”

로비 계단으로 내려오는 제이드와 어윈을 보고 데클렌이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두 사람이 양쪽 계단이 만나는 중앙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이제 막 윈슬로우 부부가 된 두 사람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로비를 꽉 채웠다.

“피로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추억에 남을 밤이 됐으면 합니다.”

어윈의 인사에 사람들의 박수가 다시 터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번에 받은 적이 없는 제이드는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나, 어윈의 팔에 올린 제 손을 그가 꽉 잡아 줘서 마음이 놓였다.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으니까.”

제이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든 의문에 어윈의 답을 구했다.

"황제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말아요?"

“그럼요. 윈슬로우 부인은 턱 인사만 해도 충분합니다.”

제이드는 옛날 생각이 나서 작게 웃었다. 어윈은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남은 계단을 함께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가 제일 먼저 어윈에게 다가와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언제 한번 두 분을 제 궁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궁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면 한번 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꼭 한번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어윈과 제이드에게 연신 급신거리는 황제를 보고 제이드는 어쩔 줄 몰랐다. 황제가 제게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황제 앞을 지나며 어윈이 그에게 한마디를 슬쩍 흘렸다.

“전쟁 얘기는 꺼내지도 말게. 도와줄 생각 없어.”

황제는 정곡을 찔렸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부정했다. 제이드는 황제의 얼굴도 모르는데, 당황하는 얼굴이 마스크 밖까지 보이는 것 같아 신기했다.

황제의 곁에 있던 모건 공작도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어윈과 제이드는 묵례로 화답하고 귀족들의 곁을 지나갔다. 어떻게든 어윈에 눈에 들고 싶어 하는 귀족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대 중앙에 섰다.

“정말 저를 궁에 데려가 줄 거예요?"

새로 시작된 춤곡에 맞춰 발을 맞추기 시작한 제이드는 어윈에게 신이 나서 물었다. 어윈은 원하는 곳 어디든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만, 제이드는 궁에도 갈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럼요.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제이드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그럼, 이 춤이 끝나고 저와 함께 나가요."

어윈과 제이드가 유려하게 춤을 추는 모습에 사람들 모두 감탄했다. 마스크로 가려도 빛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넋이 빠져 있던 사람들은 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어윈의 집념이 만들어 낸 완벽한 춤이었다.

“우리가 가면 귀족들은 싹 다 빠질 테고, 사람들은 더 편하게 피로연을 즐기겠죠.”

제이드가 원한 건 그거였다. 그녀는 어윈의 손을 잡고 성 밖을 나섰다. 벌써 까맣게 물든 밤하늘에는 보석을 뿌려 놓은 것처럼 별들이 반짝였다. 두 사람은 성 밖으로 나가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꿈에서 본 그 숲의 공터에서 제이드와 어윈은 커다란 그루터기에 앉아 서로에게 기대어 평온하고 아름다은 밤을 즐겼다.

“여기 봐요.”

어윈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향해 돌리자, 멀리서 반짝이던 반딧불이가 한데 모여서 두 사람을 향해 호를 그리며 날아왔다. 마치 빛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제이드는 제 머리 위로 몰려드는 반딧불이가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바라봤다.

"와..... 기적 같아요.”

제이드는 어윈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미 가면을 벗어 던진 어윈은 제이드의 얼굴에서 가면을 천천히 벗겼다. 반딧불이가 밝힌 빛 아래 제이드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났다. 도톰하고 붉은 빛을 띠는 입술, 곱게 호를 그리는 코, 그리고 어윈이 가장 좋아하는 초록색 눈동자를 담은 커다란 눈, 어윈은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 맞췄다.

“내겐 당신이 기적이에요."

어윈이 맞잡은 제이드의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가 반딧불이 아래에서 영롱하게 빛났다. 반딧불이의 축복 속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키스가 이어졌다.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기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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