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후타츠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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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모두가 들으란 듯이 외치는 저 목청. 그는 시선을 끄는 행동으로 모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메이가 긴장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에 균열이 일어난 진은 본능에 의한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송곳니를 드러냈고, 주인님은 이상한 놈 보듯이 쳐다봤다.
난 멀거니 놈을 지켜봤다.
아츠베는 군중 사이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며 곧장 메이를 향해 걸어왔다. 여전한 비열한 웃음과 교활하게 휜 눈매를 가지고서.
“우리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것이더냐?”
사람들은 각자끼리 수군거리며 길을 터줬다. 덕분에 메이와 아츠베의 직선으로 넓은 길이 생겨났다.
“…잘 모르겠군요. 아츠베 오라버니.”
아츠베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매너는 오라버니라는 표현 하나뿐이었다. 메이는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여태껏 소식도 없이 몸을 숨기며 어찌 살아오셨습니까? 모두가 오라버니의 서거 소식을 듣고 장례까지 다 치렀습니다.”
“이런! 넌 왜 말하지 않았느냐?”
아츠베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태도로 놀라운 척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묻어놨던 기억 주머니에서 아츠베를 떠올리곤 경악하기 시작했다.
아츠베의 시선이 문득 진에게 가닿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한 의도적인 눈길이다.
“나는 그날 살아남아 황궁에서 도망쳤다. 의사를 부르면 됐지만 난 도망치는 것을 택했지. 왜냐? 그놈이 또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가요? 어떤 누가 황자이신 오라버니를 해치겠습니까? 후시오 오라버니가요? 후시오 오라버니는 현재 바이 힐에서 남은 일생 속죄하고 계십니다.”
메이는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여전히 어깨는 경직됐고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딱딱하고 날카로웠지만.
의도가 수상쩍은 아츠베와 평소와 다른 메이. 주변 분위기가 크게 술렁거리며 상황을 예측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러나 함부로 이 얘기에 끼어들 자는 없었다.
아츠베는 후시오의 이름을 듣자 과장되게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크흐흐흐흐! 후시오? 그 후시오 말이더냐?”
그리고 마치 모두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처럼 아츠베는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난 아직도 후시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형제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통감하여 바이 힐에 속죄하고 산다고? 저승에 있는 마에다가 들었다면 어쩜 나보다 더 크게 비웃어 황궁이 울렸을 거다!”
아츠베는 이어 대놓고 진을 노려봤다.
“우리는 백성들 앞에서, 아바마마의 앞에서 언제나 늘 화기애애한 형제를 연출했지. 황위? 형님이 더욱 어울리는 자리입니다~, 하면서 후시오에게 떠넘겼지만, 핏줄이란 어쩔 수 없다. 아버지의 넘치는 야망은 우리 형제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왔잖나.”
옆 테이블에서 피와 섞인 와인을 마신 아츠베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황위 쟁탈은 비밀스럽게 이어져 왔다. 아버지의 눈 밖에서. 백성들이야 몰랐을 테지만 조신들이나 재상은 뻔히 보고 있었지. 함께 입을 닫아주면서.”
잠깐 주변을 돌아본 아츠베는 신하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미소를 지었다.
눈이 마주친 신하들이 몰래 연회장을 빠져나가거나 불편한 듯 신음하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매일 서로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난 형제였는데 막상 동생들을 죽이니 황위 포기? 바이 힐에서 속죄? 웃기는 소리! 누구보다 우리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난 그 형님을 내가 가장 잘 안다! 형님의 좋은 면만 보고 자란 너보다 훨씬 더!”
메이는 이에 질세라 맞서 외쳤다.
“제가 좋은 면만 보고 자랐듯, 오라버니도 나쁜 면만 보고 자랐잖습니까? 누구든 과거에 저지른 자신의 과오를 크게 후회하는 날이 옵니다. 그것만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유일한 길목이잖습니까.”
“웃기는 소리! 내 후시오 형님과 수백 번의 검을 맞대며 그자의 사악함과 교활함을 직접 겪으며 자랐다!”
이어 아츠베가 쥐고 있던 와인 잔을 힘주어 깨뜨렸다. 비명이 주변에서 들리고, 아츠베의 손에선 피가 흘러 소매를 물들였다.
“그는 나나 마에다를 죽이기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았어! 이런 와인에 독을 바르는 건 기본이고, 내 침소에 함정을 설치하는 건 예사, 도시만 벗어났다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암살자! 난 자랑스러운 황궁에서 태어났으나 단 한시도 편하게 잠든 적이 없어!”
“그건 오라버니도 마찬가집니다! 형제 모두가 서로를 죽이려고 독살과 함정, 암살자 고용을 서슴없이 해왔잖습니까.”
그 순간 아츠베의 입가가 씰룩였다. 마치 기다렸단 듯 외쳤다.
“그건 가족과 국가를 위해서였다! 황위만 보고서 형제마저도 죽이려 드는 그자는 나라를 패망으로 이끌 수밖에 없어! 그런 자에게 황위를 주었다면 과연 우리가 이렇게 기쁜 연회에서 만날 수 있었겠느냐?”
주변에서 동의하는 눈치들이 오고 간다. 아츠베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어 황가의 명예를 낮추었지만, 후시오의 추악함을 주장하여 국가를 위하는 자신의 위상을 높였다.
한편 지켜보던 주인님이 메이의 앞에 발을 들이밀며 끼어들었다.
“아츠베. 끼어들어 미안하다만, 그대는 추잡하군.”
“…라니아 여왕님 아니신가요?”
“후시오를 패망의 주범이라 주장하면서 자신은 나라를 위한다고 하는데, 그래 보았자 자네들은 끼리끼리 아닌가? 뭘 내가 옳다, 넌 옳지 못하다 왈가왈부하는지? 결국에 칼을 든 건 다 똑같고 암살도 다 똑같이 이용했고 추잡한 건 다 똑같지.”
사람들이 다시금 수긍하듯 웅성거렸다. 주인님의 개입에 아츠베가 이를 갈았다.
“그렇죠.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나라를 중시하는 나의 마음은 형제 중에서 가장 으뜸이란 것을 아십니까? 그들은 형제를 죽이기 위해 암살법을 고민할 때, 저는 나라를 위해서….”
“알 바인가? 자네가 국가를 위해서 돈을 벌든, 군사력을 높이든, 문화를 자랑하든, 경제를 살리든 결국에 도망쳤고 즉위 축하 연회를 망치려고 등장해서 떠벌리는 건 변하지 않잖은가.”
입에서 욕이라도 튀어나올 듯 눈이 벌게지던 아츠베였다. 그때 그의 뒤에서 다가온 알케테르가 그의 어깨를 건드리며 옅게 웃었다.
돌아본 아츠베가 성질을 죽이고 미소를 짓는다. 곧 진정한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때는 멱살 잡고 때리고 그러더니 이젠 또 사이가 좋네.’
그건가? 싸우고 화해하면 친구! 같은 그런 개념? 어이가 없다.
“그렇긴 하지요. 예, 맞습니다. 전 연회 분위기를 망치려고 왔습니다.”
아츠베는 양팔을 들며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울림 좋게 소리쳤다.
“그러나 여러분. 그대들이 모르는 게 있습니다! 후시오 형님이 나를 죽였다고는 하던데. 그게 거짓말인 건 아십니까?”
역시 저 말을 꺼내는 건가? 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진의 팔을 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본 진은 역시 낯빛이 어둡다.
진이 괜찮다는 듯 내 손을 놓지만 난 여전히 불안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츠베 전하! 형제끼리의 싸움에서 비롯된 비운의 사건이 아니었습니까?”
나이가 지긋한 귀족 한 명이 불쑥 외쳤다. 아츠베는 그자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예! 그렇죠. 그런데 정정할 게 있습니다. 그건 형제의 싸움이 아닌 남매의 싸움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곧장 모두의 시선이 메이에게 박혀 들었다. 그 시선들에 놀란 메이가 흠칫 몸을 움츠렸다.
“황제 폐하! 폐하께서 황자 전하들을 암살하셨습니까? 폐, 폐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폐하도 황위 쟁탈 전쟁에 가담하신 겁니까?”
“조용히 하시오! 폐하께 그게 무슨 망발이오! 그러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그 날 서거하셨던 아츠베 전하가 멀쩡히 살아계시잖소! 여기서 누굴 믿어야 하오?”
“폐하!”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물음들에 메이는 패닉을 일으키듯 창백해졌다. 아츠베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버렸다.
말을 전혀 다르게 해서 오히려 메이가 황위를 빼앗고자 오빠들을 죽인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마음을 추스른 메이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그래. 내가 나섰네 .”
충격에 빠진 군중의 신음. 진도 마음을 추슬렀는지 얌전해졌다. 그리고 그가 메이의 앞으로 나서려 움직이던 그때, 메이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내가 직접 독과 계략으로 오라버니들을 암살했네.”
고개를 젓는 사람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아츠베. 그리고,
“아닙니다!”
진이 소릴 쳤다.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은 진이 급히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주인님이 진을 잡아 세웠다. 그러나 진은 계속해서 외쳤다.
“메이 폐하는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독단적으로 황자 전하들을 죽인 겁니다!”
돌변하는 분위기. 황가에서 벌이는 전투에서 일어난 사태라면 가족애도 없는 잔혹한 황제였구나, 식으로 여기겠지만 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서민 출신에다가 황가와 가장 가까운 위치의 호위 무사가 감히 황자를 죽였다? 이건 참수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 이 어찌…!”
터지려는 사람들의 호통. 그때 메이가 답지 않게 소릴 질렀다.
“진! 날 감싸줄 필요 없다!”
한 번도 진에게 저만큼의 감정을 내비친 적 없던 메이인지라 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진은 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뒤집어쓰려 하는데, 그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 그저 그의 충성심이 높은 걸 탓하게.”
메이는 그렇게 모든 걸 덮어썼다. 하지만 그런들 바뀌는 건 없다. 결국에 메이나 아츠베나 후시오나 다 똑같은 입장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아츠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본격적인 용건을 꺼내도록 할까. 메이, 사랑스러운 동생이여. 즉위식을 축하하지만, 네겐 황위가 어울리지 못하다.”
너무 많이 놀랐기에 큰 소란은 없었다. 애초에 아츠베가 이러저러한 황가의 치부를 꺼냄으로써 모두가 반쯤은 예상한 말이었다.
메이도 예상했기에 반박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죠? 황위가 어울리지 못하다면 황위를 내놓으라는 소리입니까?”
“바로 얼마 전에 즉위식을 마쳤는데 바로 황위를 빼앗는 건 백성들에게 혼란만 가져다주지. 그래서 모두가 좋게 합의할 수 있는 건을 가져왔다.”
아츠베가 우아하게 몸을 숙였다. 한 손은 가슴에 대고 다른 손은 몸 밖으로 빼는 약간 백조와 같은 자세. 어, 이 자세는….
“나와 혼례를 맺자, 메이.”
잠자코 지켜보던 주변이 가장 크게 술렁였다. 지금 아츠베는 근친혼을 하자는 소리가 아닌가?
메이도 얼이 빠져서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주인님을 향해 물었다.
“근친혼이 가능합니까? 그거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인님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이지만, 카나츠미에서는 가능하다.”
“예… 예? 아니 그게 가능하다뇨?”
“카나츠미는 옛 전통과 문화를 현대까지 가져온 살아있는 역사다. 옛날에는 근친혼이 비일비재했지.”
주인님의 말을 진이 뒤이었다.
“사실이야. 지금이야 근친혼이 줄어들다 못해 없어졌지만, 여전히 가능하다는 민법은 그대로 남아있어. 그저 인식만 바뀌었을 뿐이야.”
이래서 옛 전통은 안 된다.
“그래도 같은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여동생한테 그런… 그러고 싶을까요?”
“너 기억 안 나? 아츠베는 과거 메이 폐하를 겁탈한 놈이야. 그리고 배다른 남매이기도 해.”
문화 차이… 아니, 이건 인격 차이라고 해야겠다.
“그래도 메이 폐하가 거절하면 그만입니다. 설마 받겠습니까?”
“…….”
“진 님?”
말이 없는 진을 대신해 주인님이 입을 열었다.
“할 수밖에 없다. 아츠베란 자는 과거 황위를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자다. 진의 비밀도 쥐었고, 살아있기 때문에 황자로서의 권리가 남았어.”
“그렇소, 라니아 여왕. 아츠베는 그럴 권리가 충분하고, 메이라면 모두를 위해서라도 허락할 수밖에 없네.”
우리 모두 돌아섰다. 어느새 재상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 후타츠바 상왕이었다.
“전하….”
진은 사색이 됐다. 방금 상왕의 발언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투 같지 않은가?
상왕은 이전 보였던 근엄한 인상 대신 인자하게 웃으며 진의 어깨를 두들겼다. 진이 무릎을 꿇자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마치 아버지 같은 어투로 말했다.
“고맙다. 진심으로 메이를 아껴줘서.”
“전하…?”
상왕은 더 말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메이가 돌아서고는 길을 터주고, 아츠베가 짐짓 굳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일찍이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아바마마.”
“그래. 잘 지냈느냐?”
“잘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뵙는 아바마마를 위해 좋은 소식을 많이 들고 왔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좋은 소식을 알려주마.”
목을 가다듬은 상왕이 다시금 근엄하게 답했다.
“넌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 황가의 족보에 너의 이름을 지우고, 너와 네 자손, 후예까지 평생토록 카나츠미에서 추방하도록 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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