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반격을 준비하다
* * *
단숨에 뜯겨나간 천장으로 푸른 하늘과 날고 있는 주인님이 드러났다. 사람이 어찌 하늘을 날고 있냐는 궁금증은 당장은 중요하진 않은 듯싶다.
아직도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인님은 토할 것 같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내 사슬을 쥐고 있었다.
“라니아 여왕….”
알케테르는 주인님의 모습에 몸을 떨면서 중얼거렸다. 복면으로 그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주인님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알케테르와 나를 둘러봤다.
“건방진 녀석… 멋대로 사슬을 당기기에 혼나려고 작정한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게 향한 말이기에 난 급히 외쳤다.
“주인님! 저 납치 당했습니다!”
“어?”
“이놈입니다! 당장 이놈을 잡아주십시오!”
알케테르를 돌아본 주인님이 의아한 듯 그를 살폈다. 행색만 보곤 저번 습격자임을 눈치를 챘겠지만, 주인님은 내 곁으로 내려왔다.
놀란 여성들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난 주인님을 보며 감격의 미소를 흘렸으나,
“커억!”
내 사타구니로 주인님의 하이힐이 찍혔다.
잘근잘근 내 음경을 발로 문지르며 주인님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런데 네놈은 이게 무슨 꼴이더냐?”
“저, 저 납치당해서…!”
“짐이 함부로 네 몸을 남들에게 주면 어떻게 한다고 했느냐?”
“아악! 주인님! 그, 그렇게 밟으시면…!”
“어떻게 한다고 했느냐고!”
“사, 사지를 잘라 인형으로 보관한다고 했습니다.”
하이힐 굽이 음경에서 내려와 엉덩이 사이로 접근하자 난 사색이 된 채로 고개를 저었다.
“주, 주인님. 그보다 저기에….”
“닥쳐라!”
“하으윽….”
남들이 보는 앞에서 주인님께 혼나려던 그때, 알케테르가 권총을 꺼내 주인님의 머리에 겨눴다.
내가 미처 경고하기도 전에 알케테르가 방아쇠를 당겼으나, 방아쇠를 당기는 그 짧은 순간에 권총이 분해되어 허공을 날았다.
“칫!”
손을 놓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려 했지만, 그 순간에 알케테르의 오른 손목이 찌그러졌다.
“크윽!”
“짐이 네까짓 것에 신경 하나 안 쓰는 줄 알았느냐?”
발을 떼고 몸을 돌린 주인님은 알케테르를 노려봤다.
주인님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신장 차이지만, 알케테르는 자신을 짓누르는 중력에 무릎을 꿇어 오히려 주인님을 올려봤다.
“라니아 여왕….”
“그래, 짐이 바로 라니아 여왕이다. 감히 존칭도 붙이지 않은 네놈의 정체는 무엇이냐?”
“크흐흐, 인간 군대다.”
“헛소리를.”
머리를 잃은 건물에서 철골 하나가 튀어나와 알케테르의 머리를 노렸다.
정확히 정수리로 찍히기 직전 멈춰 알케테르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불상사는 면했다.
“말하지 않겠다면 직접 보도록 하지.”
손을 뻗어 복면을 잡는다. 그대로 벗기기 직전, 알케테르가 번개같이 왼손으로 단검을 뽑아 주인님의 팔을 찔렀다.
까드득!
하지만 휘둘러졌던 단검은 종잇장처럼 찌그러지고, 왼 손목마저 구겨진 깡통처럼 쭈그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상황은 면한 알케테르는 중력이 짓누름에도 뒤로 물러섰다.
“이 정도의 염력에도 버틴다니. 도대체 어디서 온 놈이지?”
“사격해!”
알케테르의 외침에 잔해더미로 올라선 다른 복면의 흡혈귀들이 각자의 총기로 사격을 개시했다.
수십 개의 총기에서 발사된 총기에서 불을 뿜고 튀어나온 무수한 탄환들이 주인님의 몸에 직격 하기 직전,
거짓말처럼 탄환들은 허공에 멈춰섰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은 탄환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쌀을 바닥에 뿌리는듯한 쟈르륵, 소리가 났다.
“역시 그 탄환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알케테르는 벌어진 광경에 허탈해하면서도 예상한 듯 중얼거렸다.
“이제 어쩔 셈이더냐?”
“오, 라니아 여왕. 이 정도로 끝난다면 애초에 계획하지도 않았어.”
중력이 약해진 틈을 타 일어선 알케테르가 양팔에 힘을 줬다. 찌그러졌던 그의 양손이 펼쳐지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헛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너희가 선을 지킨다면 우리도 선을 지켜줄 테니까. 그러니 약속에 대해선 넉넉히 시간을 줄 테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어, 라니아 여왕.”
“그게 무슨 소리냐?”
“영광의 자유를!”
바닥을 뚫고 오르는 폭발. 위력은 그다지 별로였지만 거창하게 난장판과 더불어 먼지구름을 피워 시야가 가려졌다.
주인님과 나, 다섯 명의 여성들은 함께 허공에 떠올라 폭발에서 피했다. 주인님이 한 번 손을 휘젓자 구름이 흩어져 시야가 드러났다.
“건방진 놈들….”
하지만 그 많던 흡혈귀들은 그새 사라졌다. 붕괴 직전의 잔해만 그곳에 남아있었을 뿐이다.
난 알케테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주인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건 내게 한 소리다.
마음이 안 좋았다.
축제는 중지다. 인간 군대가 이미 도시의 구석구석 숨어있다는 사실을 안 상왕은 모든 귀빈을 호위하에 돌려보내고 인간 군대 소탕에 집중하려 했으나, 주인님은 그 선택을 철회하라 했다.
“어째서 그러는 건가? 도시나 자네들이 위험해질 수 있네.”
“후타츠바 상왕. 놈들이 노리는 건 나란 걸 봤지 않소.”
상왕은 주인님의 선택이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이미 자신들의 무능함을 여러 차례나 증명한 상태에서 그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상태다.
“오히려 도시엔 큰 위협은 가하지 않았소. 위협은 오직 짐과 나의 부하들. 그 외로 습격받은 이들이 있었소?”
“오로지 자네들뿐이었지.”
“놈들이 타국에서 짐을 위협에 빠뜨려 두 국가의 갈등을 일으킬 속셈이지 않겠소? 휘말려선 안 되오.”
그들의 속셈이 그러한 건 알고는 있으나, 상왕은 꺼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계속 도시에 지내며 위협에 노출할 건가? 자네들을 지키다 죽거나 부상을 당한 무사들이 있네.”
이유는 저거다. 미안한 것은 미안하지만 주인님이 계속 도시에 있는 이상 위협은 계속될 것이며 도시는 위협 속에서 떨어야만 한다.
수색망을 미꾸라지처럼 벗어나고 위장 실력이 뛰어난 인간 군대가 도시의 구석구석 숨어있다.
이런 살얼음판이 지속한다면 피해는 카나츠미가 고스란히 입고, 심할 경우 국가가 나약해져 타국에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접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하들이 이런 치안 상태를 기회 삼아 경쟁 상대의 자질 문제를 두고 시비 거리로 부각시켰다.
내외로 서로 헐뜯는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라니아 여왕. 이 몸이 생각하기론 인간 군대는 외적으로 자네를 해치려 들고, 내적으론 카나츠미를 와해시키려는 그들의 속셈이지 않을까 보고 있네.”
“그럴수록 우리는 싸워선 안 되오. 그런 상황에서 국가 간의 갈등까지 일어난다? 호시탐탐 눈을 밝히는 테르세르나 속셈을 알 수 없는 바이 힐에서 나설지도 모르오.”
“그럼 어쩔 셈인가? 백성들도 이런 사태를 두고 의심하는 지경이네. 만약 인간 군대의 테러 목적이 당신들이란 이야기까지 돌면 백성이 과연 가만히 있겠나?”
주인님은 잠시 생각하듯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생각하듯 잠깐 눈을 감고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입을 열었다.
“현재 테르세르와 카나츠미 국경선에 엘 에이라 수색팀이 다수 있소.”
“엘 에이라의 수색팀에 대해선 많이 들어봤지.”
“도시 수색권을 수색팀에게 넘겨주시오.”
상왕이 눈을 치켜뜨며 부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어림없는 소리! 타국의 병사들에게 도시를 맡기라니!”
“수색에 있어선 카나츠미 무사들보단 수색팀이 훨씬 유능하오.”
“그렇다고 자네들을 믿고 있는 건 아닐세!”
우려했으나 서서히 갈등이 보이는 건가? 한숨을 내쉰 주인님이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일주일 정도 카나츠미 무사들을 믿겠소. 그러나 영 진척이 없다면 수색팀을 부르겠소.”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용건은 전했으니 일어나겠소. 나도 수색팀이 나서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성의 분위기가 이러하면 메이는 침울해져서 방에 틀어박히곤 했단다. 황제가 될 자신이 이런 소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왕의 자격이 있냐며 한탄하면서까지.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함께 다녔으면서 나를 위협에 보냈다는 사실을 통감한 그녀는 오히려 어깨를 펴고 사건에 뛰어들었다.
“폐, 폐하. 위험할 수 있으니 사건은 무사들에게 맡기고….”
“진. 당신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황제 의복은 벗고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메이를 보며 진은 진땀을 뺐다.
“신하들의 눈도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그렇게 입고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아바마마께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직접 나서신다고 하셨어. 그리고 내게도 황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만히 있어야겠어?”
“그 소리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시란 소리는 아니잖습니까.”
나로 인해 넘치다 못해 콸콸 쏟아내는 자존심을 얻어낸 메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알통을 보이듯 팔에 힘을 줬다.
“이건 어쩌면 황위 자질을 시험하는 시련의 단계일 수도 있어. 날 도와줘, 진!”
“아이고, 한원 이놈이 폐하께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변한 거야.”
“시미르 씨.”
벤치에 앉아서 고민에 빠졌던 시미르가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비장한 내 표정을 본 그녀는 예상한 듯 옆자리를 내줬다.
곁에 앉고서 시미르에게만 들릴 듯 작게 속삭였다.
“왜 말 안 했습니까?”
“무엇을 말이지?”
“테르세르와 인간 군대의 관계를.”
시미르는 나를 흠칫 돌아보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단장님이 다 밝히셨군.”
“정확히는 내가 추리했죠. 처음부터 그럴 계획으로 성에 오셨던 겁니까?”
“그래서 뭐 문제 있어?”
시미르는 차갑게 말했다.
“난 테르세르 친위대의 부단장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것이 이상해?”
“그럼 왜 구했습니까?”
카나츠미로 온 처음, 알케테르가 바렛을 이용해 나와 주인님을 죽이려던 순간을 말한다. 시미르는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을 유지했다.
“그 기회는 가장 유일했으며 다시는 없을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절 구했죠?”
“…….”
“그래서 알케테르가 당신에게 주먹을 날렸군요. 단지 행위를 들킨 게 문제가 아니라.”
“…….”
“솔직하게 말해줘요.”
침울하게 있던 시미르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눈은 울분에 차 있었다.
“몰라. 나도 모르겠다고.”
“당신은 테르세르에게 반기를 드는 건가요?”
“아니야… 난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거야.”
“그럼 왜 절 구했죠?”
“모르겠어… 그냥… 네가 죽는 걸 보기 싫었어.”
착잡하게 시미르를 바라보며 무심히 물었다.
“…시미르 씨. 절 좋아하세요?”
시미르는 이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얼굴을 붉힌 그녀는 부정도 긍정도 없이 모르겠다고만 답하고 도망쳤다.
평소 같으면 하, 이놈의 인기란 하늘 높은 줄 모르겠구나, 하면서 우쭐해졌겠지만 그럴 기분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걱정됐다. 내 불길함이 설명하기를,
시미르는 여기서 끝장이었다. 그녀는 이미 주변 인물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복귀한다면 부단장 박탈뿐만이 아니라 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
단지 날 구했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의 선택이었으니 내가 왈가왈부할 것은 없지만,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밤이 찾아왔다. 아, 시간을 잠깐만 돌려서 얘기하자면, 나를 덮쳤던 다섯 명의 여성들이 있잖은가? 메이에게 부탁해 그녀들만큼은 풀어달라 요청했다.
진은 메이의 착한 심성을 이용하지 말라고 지적했지만 니아가 내 행동에 감동한 듯 보여서 크게 말은 못 했다.
원래라면 흔쾌히 승낙했을 메이였지만 그녀가… 좀 많이 변했다.
오히려 야릇한 미소로 내게 가슴을 붙이며 거래를 제시했다.
“오늘 밤 나랑 단둘이 데이트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줄게.”
“저 오늘 밤에 주인님한테 혼나는 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그건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마련할게. 해줄 거지?”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러죠.”
이런 분위기에서 꼭 그러고 싶은가? 뭐, 나랑 있었던 그 시간 이후로 메이가 변한 걸 생각하면 그녀도 뭔가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즐거운 사실을 여성들에게 들고 왔을 때, 그녀들은 나로선 뿌듯함을 느낄 만큼 펑펑 울며 내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당장은 분위기가 흉흉하니 진의 전용 노예로 사들여 일단은 성에 들여놓겠다는 메이의 명령에, 사랑한다며 다섯 입술에 봉착 당했을 때는 무서워서 도망 다녔다.
자신에겐 니아 말고는 노예를 사들일 생각이 없다며 거부하던 진이었지만 니아의 극구사정에 의해 다섯 노예를 거금을 들여 샀다.
덕분에 진도 나처럼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현재. 알몸의 난 침대로 날아가 떨어졌다.
“으갹! 주, 주인님! 죄송합니다!”
마찬가지의 알몸인 주인님은 눕혀진 나를 다리 사이에 둔 채로 서서 미소를 머금었다.
“짐이 몇 번을 경고했잖으냐. 허락 없이 남에게 허락하면 어떻게 한다고?”
“주인님? 저는 납치 당해서 강제로 당한 겁니다!”
“안다. 그러니 특별히 인형 신세는 면해주마. 그러나….”
내 배에 걸터앉고 발로 내 음경을 잡았다. 흠칫 놀란 내가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혼쭐은 나야겠지 않니?”
“살려주십시오!”
“오, 짐은 함부로 죽이진 않는단다.”
그 순간이었다. 문 바깥에서 큼큼, 헛기침하는 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니아 여왕 폐하. 상왕 전하께서 따로 전할 말이 있으시다고 하십니다.”
“하, 이 노닥따리가 진짜….”
할렐루야! 얼굴이 일그러지는 주인님이었지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내게 일렀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내일 각오하거라.”
그렇게 떠나고, 나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조금 후에 누가 노크도 없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대방은 숨을 헐떡이며 얼굴을 붉힌 채 내게 미소했다.
“메이 폐하?”
“이, 이 상태로 오느라… 떨려 죽는 줄 알았어.”
자세히 보니 웃음이 나왔다. 메이는 알몸이었다. 무려 다리 사이엔 딜도를 낀 채로.
“그때… 상황이 그래서 못 놀았잖아요? 우리 제대로 놀까요, 주인님?”
“하하… 메이 이 변태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