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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여왕을 성노예로 만들어라-36화 (36/59)

〈 36화 〉 내 마음이 왜 이러지

* * *

주인님은 과음하지 말라는 내 말은 호기롭게 무시하고 고주망태 상태로 돌아왔다.

“주인님?”

그래도 여왕이랍시고 술 냄새는 풍기되, 흐트러진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휘청이지 않고 똑바로 걸으며 그 위엄있는 얼굴을 그대로 한 주인님은 본인을 걱정해 따라온 수행원들을 물렸다.

“돌아가거라. 그 정도의 음주는 짐에겐 가벼운 요깃거리나 다름없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행원이 떠나는 모습을 살핀 주인님은 직접 문을 쾅! 닫았다. 돌아서지 않고 문을 닫은 자세를 유지하는 주인님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주인님? 멀쩡하십니까?”

“…….”

전혀 아닌 거 같은데? 내 물음에도 요지부동이던 주인님이 홱 몸을 돌렸다.

문에 등을 기대고 홍당무가 된 얼굴의 주인님이 배시시 미소짓는다.

“주인님 왔다.”

“압니다. 괜찮습니까?”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오는 주인님을 가볍게 안아 받쳤다. 내 품에서 축 늘어져 평소 보기 힘든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보인다.

“주인님 없어서 심심했느냐?”

“딱히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제대로 서실 수나 있습니까?”

“고럼! 짐이 누구더냐! 엘 에이라의 국왕이다!”

“지금은 주정뱅이입니다. 읏차!”

제대로 설 의지가 없는 주인님을 힘껏 안아 올렸다. 그대로 침대까지 데려가는데 주인님이 내 얼굴을 잡고 뽀뽀세례를 마구 날렸다.

싫지는 않지만, 주인님이 이런 적극적인 면을 보인 적 없다 보니 부담스럽다. 무뚝뚝한 여친의 파격적인 모습을 목격한 기분이랄까?

“주인님? 그… 술 냄새….”

“뭐라? 짐에게서 술 냄새가 날 리 없잖느냐!”

“주인님 주사는 이런 거구나.”

침대에 던지려고 했지만 내 목을 끌어안은 탓에 내 몸째로 침대에 엎어졌다. 호탕하게 웃어젖힌 주인님이 내 입술을 끌어와 진한 딥키스를 나눴다.

진한 담금주 맛과 머리가 어질한 술 냄새가 입안 가득 맴돈다. 끈적한 침이 늘어지게 입을 떼고 주인님을 바라봤다.

여왕다운 우아한 미소가 아닌 침대 속 연인 같은 행복한 미소를 지은 주인님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짐의 보물…”

소중하게 내 얼굴을 쓰다듬고 꽉 끌어안는다.

“널 가진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 절대 누구에게도 줄 생각 없다. 넌 죽는 그 순간까지 평생 짐의 노예이니라.”

“하… 하하….”

문득 아까 전 메이와의 한바탕이 떠올랐다. 오직 자신의 것이라며 떠드는 주인님 몰래 많은 여자와 이런저런 일을 벌여온 것을 들킨다면 얼마나 혼날까?

아니, 혼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되려나? 말한 대로 사지가 잘린 딜도 인형 신세? 아니면 여느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감옥에 갇혀 노리개 신세?

지은 죄를 숨기고 있다는 불안감에 어리숙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하하, 주인님? 그러면…”

그래도 주인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일이 또 언제 있는가? 특히 술 때문에 인사불성이 된 상태면 더더욱.

급히 셔츠를 벗어 던지자 주인님의 표정에 일순 놀라움이 떠올랐다.

“한 번 진하게 즐기도록 합시다. 어제보다 더욱 거칠게 어떻습니까?”

옷을 벗고 주인님의 옷도 벗겼다. 원피스 끈을 죽 내리자 주인님의 검은색 브래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큰 브래지어 밖으로 삐져나오는 주인님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냄새를 맡았다.

주인님이 야릇하게 웃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춘다.

“후후, 노예 주제에 먼저 잠자리를 권한다고? 수백 년은 이르다. 건방지고 무례한 것….”

주인님은 직접 브래지어를 벗었다. 풍만한 가슴이 드러나자마자 가슴을 입에 머금었다.

열심히 혀를 놀리며 쭉쭉 빨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술에 진탕 취했으면 자제력이 무너졌을 테다. 그렇다면 오늘이 기회가 아닐까?

주인님을 굴복시킬 유일한 기회!

메이 다음엔 주인님을 성노예로 만들 생각에 심장이 떨린다.

“저 주인님?”

“…….”

“그렇다면 혹시 제 성노예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

대답이 없다. 제기랄, 조바심을 느껴서 너무 섣불렀나?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든 후에 꼬드겼어야 했는데!

메이 때와는 달리 여유가 없었던 나를 크게 욕하며 두려운 눈으로 표정을 살폈다.

“주인님?”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인님은 어느새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든 상태다.

잠에든 새끼 새처럼 조용한 주인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옆에 축 늘어졌다.

“어휴, 그래, 아직이다.”

나란히 누운 자세에서 주인님의 옆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사람이 저렇게 완벽한 비율과 이목구비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예쁜 얼굴인데 대륙 전체가 두려워하는 역사상 최강의 흡혈귀란 게 믿기질 않는다.

손을 들어 잠든 얼굴을 만졌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를 손가락으로 느끼며 얼굴을 군데군데 살폈다.

“우리가 흡혈귀와 인간관계가 아니었다면 저희는 무슨 사이였을까요?”

잠든 주인님께 물었다. 규칙 있는 고른 숨소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다. 아예 제가 달콤한 체질이 아니었다면 저희가 같은 침대에서 이러고 있었을까요? 당신은 저 말고 다른 누군가를 침대에 들이기나 했을까요?”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방방 뛰는 주인님의 모습이. 아니면 같은 여자를 들였으려나? 그래도 상상인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무심코 일어나 주인님의 몸 위에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주인님의 목에 양손을 얹었다.

힘만 주면 된다. 힘주어 조르면 죽일 수 있다.

술에 취해 내가 뭔 짓을 해도 일어나지 않는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싫어….”

흡혈귀 모두를 증오해. 인간을 노예로 삼고 세계를 지배하는 잔혹한 너희들을 경멸해.

무서울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입에선 거친 숨소리가 나온다.

나뿐만이 아닌 모든 인간의 염원. 흡혈귀 여왕을 죽이는 일.

인간 전체의 영원한 소망이 내 손에 담겨있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기대감이 내 손등에 손을 포갠다.

빠드득.

이를 악물며 조금씩 힘줬다. 속에 있는 가학성이 자기 옷을 벗고 살육으로 변해간다.

점차 힘이 들어가는 손으로 라니아의 목을 조르다가,

손을 뺐다.

“후우….”

안 된다. 이래선 안 된다. 이건 내 목적이 아니다.

성노예. 죽이는 게 아닌 성노예가 목표다.

성노예로 만들면 누구도 죽지 않고 흡혈귀를 지배할 수 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자… 오늘은 지친다.”

주인님을 답답하게 하는 옷들은 벗겨 알몸으로 만들고, 침대에 똑바로 눕혔다. 나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옆에 나란히 누웠다.

조용히 잠든 주인님을 꼭 끌어안고 나도 눈을 감았다.

정말 싫은 흡혈귀다.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라니아.

그런데 왜 죽이고 싶은 간절함과 죽이기 싫은 반발감이 내 속에서 요동칠까?

“내가 미쳤나? 왜 이런담.”

3년의 기간. 길면서도 짧은 그 3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곁에 붙어서 몸을 섞은 탓인지.

라니아에게 정이 든 건가.

“으으아아아….”

동이 트자마자 주인님은 앓는 소리를 냈다.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머리를 쥐고 여왕의 체면은 잠시 넣어둔 채 괴성을 흘렸다.

“으그윽… 내 그 노닥따리의 승부를 또 받아들여서는 안 됐는데….”

의무병에게 받아온 숙취해소제와 약을 모두 먹어도 주인님은 그대로다. 물론 좀 기다려야 하는 거지만.

“주인님. 상왕 전하께선 황제임을 떠나 카나츠미 제일 술꾼이란 별명이 있잖습니까.”

“으으… 여왕으로서 들어오는 싸움은 거절할 수 없거늘!”

“주인님께선 처참하게 패배하셨군요. 술은 잘 안 드시고 제 피만 매일매일 드시는 분이 어찌 몇백 년을 술만 마신 분을 이기시겠습니까?”

시끄럽단 마냥 휘두르는 손은 차마 내 코끝에도 닿지 못했다. 휘적대는 팔을 떨어뜨린 주인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왕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도무지 일어날 기운이 없다.”

킬킬 비웃으니 주인님이 이젠 발까지 휘둘렀다. 허벅지를 후려 맞자 뻑!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끄으아악!”

“짐이 이런 꼴이 되니 신났느냐? 어딜 노예가 주인을 놀리고!”

다 죽어가는 흡혈귀 맞아? 살짝만 휘둘렀는데 격투기 선수 못지않은 위력을 가지고 있잖아.

자리에서 일어나 발버둥 치는 주인님에게 이불을 바로 덮어줬다.

“그럼 제가 진에게 말해서 주인님이 술병 걸려서 일어나질 못한다고 설명하겠습니다.”

“술병 말고 다른 변명은 없느냐? 그러해도 짐은 여왕이다. 여왕이 술병 때문에 침상에서 못 일어난다면 누가 짐을 우러러보겠느냐!”

“아니… 그럼 뭐라고 말하죠? 주인님이 술 배틀에 패배해 삐져서 나오질 않는다고 해야 합니까?”

골똘히 변명거리를 생각하던 그때였다. 문들 두들긴 하녀가 조심스럽게 외쳤다.

“라니아 여왕 폐하. 황제 폐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메이가?

의외라는 듯 바라본 주인님이 어질한 머리에도 상체를 일으켰다. 힘겹게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주인님이 내게 원피스를 가져오라 손짓하며 말했다.

“들어와도 괜찮으니라.”

문이 열리고 어째 힘 있는 걸음으로 들어온 메이가 당당한 표정으로 힘차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라니아 여왕.”

“보다시피 괜찮다네. 그런데 황제가 여기까진 어언 일로?”

그러니까. 황제가 타 여왕의 침소까지 오는 경우는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상황에 따라 무례한 방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아바마마와 술을 마시던 이들은 모두 다음날 침상에서 깨어나지 못한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얼굴을 뵈러 이곳까지 왔습니다.”

“짐이 직접 나갈 터, 굳이 찾아올 필요 없었는데. 곧 옷을 입고 나가겠네.”

“아….”

메이는 아직 알몸인 주인님을 보고 볼을 붉혔다. 흘긋 내 얼굴을 들여다보니 난감하다.

“이런… 제가 실수를. 죄송합니다. 나가도록 하죠.”

“겨우 알몸을 보인 정도로 무례하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 않네.”

“아, 그리고 오늘 너무 힘들면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내 도움을 받으며 속옷을 입던 주인님이 손을 멈췄다. 나도 입히려던 팬티를 멈추고 돌아봤다.

“오늘은 크게 귀인들이 마주할 모임은 없습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귀인들끼리 연회를 열 것입니다.”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입으려던 속옷을 치운 주인님이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메이가 그럼 자리를 비워주겠다며 밖으로 나가고, 난 주인님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물었다.

“저 얘기를 해주려고 직접 왔나 보군요.”

“이상하구나. 어제만 해도 얌전하던 소녀가 뭐 저리 적극적으로 다가오는지.”

하하, 문득 그게 나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얼굴에 열이 올랐지?”

“…황제 말입니까?”

“그래. 황제의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유독 체온이 높더구나. 어디 아픈 건 아니냐?”

내가 봤을 땐 별문제 없었는데… 라는 생각을 뒤이어 한 가지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입가에 배어 나오는 미소를 애써 참으며 시치미를 뗐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아픈 게 아니라면 좀 신나는 일이라도 있을지.”

“뭔진 모르겠지만 짐은 먼저 쉬어야겠다. 한원. 너는 놀다 와도 된다. 괜히 짐 때문에 여기 갇혀있지 말고 나가서 놀도록 하여라.”

오오, 폐하께서 주신 귀중한 배려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주인님을 도로 눕히고 모닝 키스를 진하게 나눴다.

앓아누운 주인님을 뒤로, 난 나갈 준비를 했다.

“하아, 침대에 못 일어날 정도로 앓은 적이 얼마 만인지.”

“하녀들이 늘 대기한다고 하니 필요하면 부르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시간 나면 돌아와 상태를 보겠습니다.”

“그래. 얼른 가거라. 짐은 좀 더 자보겠다.”

주인님께 힘내라는 키스를 해주고 침실을 나왔다. 문 앞에는 창밖을 보며 기다리던 메이가 있었다.

혹시라도 볼세라 문을 단단히 닫고 메이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하, 하녀가 볼 수 있는데.”

“보라지, 뭐.”

메이와 키스를 나눈다. 뭔가 대담한 밀회현장이라서 그런가? 불현듯 죄책감이 밀려온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애써 생각을 밀어내고 메이의 허리를 더듬으며 물었다.

“그건 잘 하고 왔나 봐? 주인님이 메이의 체온이 높데.”

“후후후.”

메이가 치마를 말아 올렸다. 치마 속내로 팬티에 고정된 보지에 박힌 딜도가 드러났다.

“아아… 오면서 빠지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몇 번이나 갔답니다.”

“이런 변태 같은 모습의 황제라니. 백성들은 좋겠어.”

딜도를 손으로 잡아 흔들어줬다. 움찔거리던 메이가 발그레 볼을 붉혔다.

“흐읏… 오늘 라니아 여왕도 못 나오는데… 저랑 데이트라도 하실래요?”

“이거 참. 어제까지 처녀였던 애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줄줄 흐르는 애액을 핥아주고 메이와 함께 이동했다. 도중에 만난 진도 합류해 도시로 가기로 했다.

거기서 일어날 사건도 모른 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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