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카미츠미 (2)
* * *
우려와 달리 카나츠미의 국경선을 넘을 때까지 큰 걱정거리는 없었다. 여전히 차량 밖은 험상궂은 호위병들이 누구 하나 걸려보란 듯 주위를 둘러보는 차량 밖에 안 보였지만.
검문소 카나츠미의 병사들은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신분증과 국경방문 허가증을 통합한 서류 더미를 건네주자 질려 하는 병사들의 표정이 꽤 괜찮았다.
전부 확인하려면 반나절을 꼼짝없이 붙잡힐 수도 있다. 병사는 중요 인물들의 신분만 확인하고, 그 외 병사들의 신분은 대충 넘기는 것으로 자신의 근무 태만을 위장했다.
“아직이더냐? 짐을 국경선에 방치시켜 무슨 계략을 꾸미지?”
저들이 어떤 모종의 계략을 꾸미는 건 아니지만, 주인님은 병사들을 재촉하려는 뜻으로 말했다. 소리를 들은 카나츠미 병사가 허둥지둥 서류를 파라락 확인하고 통과시켰다.
“통과! 문제없습니다!”
덕분에 지체되는 문제는 없었다. 모든 차량이 무사히 통과하고 다시 수도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는 주인님도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지 호위 차량과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을 것을 지시했다. 무전이 오가고, 호위 차량이 점차 멀어지면서 나도 주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얀 기둥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나무들의 행렬은 꽤 오랫동안 보였다.
나무의 위쪽은 계란 모양으로 잎들이 가득했다. 주인님이 말했다.
“키타야마스기라고 하던가. 카나츠미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나무라고 하더구나.”
“서까래용이죠?”
즐비한 키타머시기들을 지나, 카나츠미로 들어와 첫 마을을 마주했다.
변방의 마을치고는 고풍적인 카나츠미의 마을은 현대식의 건물들과 비교해 한참 과거에 머무른 가옥들이 많은데, 옛 분위기 사이로 현대식 자판기나 사람들 차림새가 보였다.
“일부러 이런 분위기를 연출했군요?”
“방문객들에게 본인들 문화를 자랑하기 위함이지. 카나츠미 여행에서 꼭 들려야 하는 여행지의 하나란다.”
마을엔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적당한 구경만 거치곤 다시 수도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했다.
한동안은 지루한 풍경만 계속됐다. 주인님도 슬슬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변해갈 즈음, 무전이 울렸다.
“경로 변경. 앞의 갈림길에서 우회전으로 빠집니다.”
운전사가 무전을 받았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앞에 트럭이 전복된 사고가 있습니다.”
“젠장… 여기 병사들은 도로 통제도 안 하냐? 빠져 가지곤.”
투덜거린 운전사가 백미러를 통해 주인님을 보며 공손히 설명했다.
“여왕 폐하. 면목이 없습니다. 현재 도로에 트럭이 전복되어 길을 돌아가야겠습니다.”
“무전 소리가 커서 다 들었다. 그러도록 하라.”
호위 차량이 다시금 차량에 붙고, 갈림길에 모든 차량이 우회전으로 빠졌다.
호위 차량 너머로 보인 모습은 꽤 처참했다. 단순 트럭만 전복된 건 아닌지 여러 승용차도 함께 부딪혀 무섭게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변에서 황급히 불을 끄려는 카나츠미 병사들의 모습도 발견됐다.
타 국가의 여왕이 오는데 이런 꼴을 보인다고? 카나츠미가 이렇게 무능하고 게으른 나라는 아닐 테다.
심지어 사고 난 차량의 상태들도 이상하다. 사고치고는 길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모습.
“주인님? 혹시….”
돌아보며 물었지만, 이동이 길어질 것을 예상한 주인님은 이미 눈을 감고 시트에 몸을 기댄 후였다. 눈도 뜨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무엇이냐.”
“죄송합니다. 별일 아닙니다.”
그래, 별일 아닐 테다. 천천히 잠드는 주인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애써 불안감을 멀리 뒀다.
여긴 문제 없을 테다. 설마 큰 문제가 있겠어?
어느 정도나 왔을까? 어렴풋이 눈을 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잠들었다는 생각에 뺨을 톡톡 두들기며 잠에 깨려 했다.
바깥을 살폈는데 풍경이 멈춰있다. 아니, 차량이 멈춰있다.
주인님을 돌아봤는데 계시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운전석을 보니 어딘가 불만인 표정의 운전사가 보였다.
“저, 운전사님? 주인님은 어디 계시죠?”
“일어났냐? 밖에 계신다. 봐봐.”
차량에서 내리니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확 밀려왔다. 앞에서 불길이 화르륵, 피어오르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니 우리 병력의 일부들이 앞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고, 주인님이 그 중심에서 불길을 보고 계셨다. 주인님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인님?”
“일어났느냐.”
“이게 무슨….”
이번에도 사고인가 싶었다. 수상할 정도로 사고가 일어난다 여겼으나, 불길의 정체는 차량도 뭣도 아닌 쌓아놓은 나무였다.
통나무들을 일렬로 가득 쌓아놓고 캠프파이어처럼 불을 피운 그것들의 중심에는 놀랍게도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내가 미처 경악하기도 전에 주인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흡혈귀가 아니다.”
“그럼… 인간?”
“…아니. 저건 허수아비다.”
그제야 제대로 살피니 타오르는 그건 허수아비가 맞다. 밀짚과 볏짚으로 만든 몸이 불에 타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럼 다행이지만, 도대체 누가 저런 장난질을 해놓은 건지.
“악취미네요. 어떤 미친 녀석이 타 국가 여왕이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저런 짓을 하는지. 나라 망신 주려고 그러는 건가?”
“…….”
“여왕 폐하.”
그때 행정팀 흡혈귀가 다가왔다. 그의 착잡한 눈을 보니 안 좋은 소식인 모양이다.
“카나츠미에서 연락이 왔으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째서지?”
“저희처럼 길 이곳저곳에서 이와 같은 방식의 장난질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카나츠미에서도 정확한 파악이 안 되니 주의하라고….”
한숨을 깊게 내쉰 주인님은 팔짱을 꼈다. 무심히 불길을 지켜보다 문득 물었다.
“전부 어디서 이런 게 발견됐다고 했지?”
“…전부 카나츠미 수도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를 노리고 있군.”
우리를 노린다고? 잠시 불길 주변을 살폈다. 현재 길은 언덕길을 오르는 길이라서 옆으로 넘어갔다간 자칫 언덕 아래로 구를 위험이 있다.
애초에 우리는 이 길로 갈 생각이 없었긴 한데 길이 험한 것이 큰 문제다.
“좋은 구경 가는데 이게 무슨 난리람.”
내 중얼거림에 주인님이 문득 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구나. 모두 차량에 탑승해라. 길을 뚫겠다.”
주인님의 명령에 그 많은 인원이 일사불란 차량에 탑승했다. 나랑 주인님만이 불타는 통나무 더미 앞에 서 있었다.
뻗은 양손으로 무언가를 가르듯이 손을 좌우로 펼쳤다. 그러자,
쿠르르르.
놀랍게도 통나무들이 좌우로 밀려나더니 길이 열렸다. 손쉽게 이룬 마법에 내 등으로 식은땀이 흘렸다.
염동력. 주인님의 주특기이면서 최강의 흡혈귀라는 칭호를 안겨준 마법.
행동을 마친 주인님이 돌아섰다.
“가자, 한원.”
“예.”
우리 둘도 차량에 탑승했고 지연됐던 움직임은 재개됐다.
다시 언덕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타던 그때였다. 다급한 무전이 울렸다.
“세 시! 세 시 방향으로 미확인 움직임 발견.”
“야생동물일 거다. 적당히 위협해서 쫓아내.”
“마, 말입니다!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나도 주인님도 세 시 방향을 살폈다.
숲속에서 어두운 옷과 두건으로 온몸을 감춘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말을 타고 접근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들고 있는데, 처음엔 별 감흥도 없었다.
호들갑스러운 무전과 달리 심드렁한 무전이 들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위협 범위 내로 들어오면 가차 없이 쏴버려. 일단 물러나라 경고해.”
곧 확성기를 통한 경고가 울렸다.
“물러나라! 지금 너희는 엘 에이라 국가의 행렬에 무언의 위협을 주고 있다. 두 번의 경고는 없다. 물러나라! 이 경고를 무시할 시 우리는 위협 사격 없이 즉각 사격하겠다.”
그 말을 듣자 괴한 무리는 저들끼리 손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웃음기 머금은 무전이 들려왔다.
“봤지? 보아하니 여왕 폐하의 용안이라도 보고 싶어서 온 무식한 주변 주민들인가 보지. 키야, 나도 말은 오랜만에 보는군.”
“저… 그런데 저거 군복 아닙니까?”
“…어?”
그때였다.
“9시! 9시에도 같은 무리가 접근합니다!”
바로 맞은편에서 등장한 말을 탄 무리. 돌아가는 사태에 주인님도 뭔가를 느꼈는지 몸을 일으켰다.
주인님이 말했다.
“운전사. 무전 해. 사격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운전사가 무전을 통해 주인님의 명령을 전달했다.
“여왕 폐하의 명입니다. 괴한의 무리에게 사격을 허가합니다.”
“사격 허가되었습니다. 사격하겠습니다.”
그리고 호위 차량에서 병사들이 몸을 내밀었다. 그들은 흡혈귀다운 날렵한 몸놀림으로 차량의 천장에 매달리더니 자동소총을 한 손으로만 들어 무리를 저격했다.
두두두두!
달리는 차량에서도 총소리는 잘 들렸다. 사격과 함께 괴한 무리에서 공격당한 인물들 몇 명이 말에서 떨어져 추락했다. 그렇게 되자 그들도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사격이 온다! 들어와!”
날렵하게 차량에 들어오고 나서야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 적군의 자동소총이 불을 뿜었다.
드르르르륵.
하지만 방탄으로 제작된 차량은 흠집 하나 안 났다. 보이지 않아도 호위병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기분인데,
콰앙!
난데없는 거대한 총성. 소리에 놀란 건 주인님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바로 오른쪽의 호위 차량이 무서울 정도로 찌그러졌다. 총격 한 방에 방탄유리가 깨지고 운전사가 사망했는지 차량이 휘청거렸다.
“바렛?”
단번에 총의 정체를 알아낸 주인님이 경악했다. 말에 탄 채로 그 무식한 바렛을 쐈다고?
그때 운전사를 잃은 차량이 우리 차량을 들이박았다. 자칫 핸들을 놓치면 그대로 미끄러져 전복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운전사는 능숙하게 차를 몰아 균형을 회복했다.
“여왕 폐하! 위험합니다! 숙이십시오!”
“네놈은 운전이나 똑바로 해라!”
운전사의 경고를 가뿐히 무시해주고 주인님이 직접 차 문을 열었다. 그 와 동시에 두 번째 격발이 터졌다.
쾅!
하지만 바렛은 적중하지 않았다. 주인님은 손아귀에 잡힌 바렛의 찌그러진 탄환을 내게 던졌다. 얼떨결에 받은 나는 뜨거운 탄환을 창밖으로 던졌다.
“주, 주인님? 바렛을 막을 수 있으십니까?”
“…….”
내 놀라움에도 주인님은 무시했다. 그분이 괴한 무리로 손을 뻗고 주먹을 쥐자,
땅이 솟아오르더니 무리를 한 움큼이나 집어삼켰다.
“미, 미친….”
염동력 한 번에 저 무리의 반 이상이 사라졌다고?
호위 차량과 반대편 괴한 무리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오고 가며 총격을 벌이지만, 아무래도 우리 쪽의 방어가 더 단단했는지 나가떨어지는 건 괴한 무리였다.
바렛만 잘 견제하면 우리 쪽이 훨씬 유리하다. 정체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무리한 공격을 해왔다.
“저놈… 흡혈귀다.”
주인님의 중얼거림에 내가 돌아봤다. 솟아오른 땅에서 거뜬히 빠져나온 바렛을 든 녀석은 고집스럽게 총을 겨눴다.
그런데 말의 형태가 이상하다. 지나칠 만큼 컸고 근육은 지켜보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우락부락했다.
저런 말은 본 적이 없다.
“쏴보아라. 그깟 무기 따위….”
주인님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바렛 따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듯 준비하는데, 갑자기 바렛 괴한이 빠르게 탄환을 교체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주인님! 안 돼요!”
본능처럼 주인님을 끌어안고 오히려 차량 밖으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바렛이 격발됐다.
정확하게 보았다. 주인님이 염동력으로 펼친 베리어가 특수한 탄환으로 이루어진 바렛 탄환에 속수무책 뜯겨나가는 모습을.
하지만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주인님을 안고 뛰어내린 덕분에, 바렛은 우리를 빗겨나갔다. 오히려 차량의 뒷좌석을 통째로 뜯어버릴 뿐이었다.
바닥을 구르는 우리 위로 무수한 차량이 밟고 지나갔지만, 그 사이에 주인님은 우리 몸에다 베리어 하나를 더 펼쳐놓았다.
차량이 밟고 지나가도 끄떡없었다. 지나간 차량이 황급히 멈추지만, 그 순간에 괴한 무리가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다.
“멍청한 놈! 네가 다칠 수 있었어!”
주인님은 내 얼굴을 잡고 그리 외쳤다. 난 희미하게 웃었다.
“하… 하하… 제가 안 그랬으면 저도 총탄에 찢어질 수 있었던 걸요?”
“하여튼 멍청한 놈!”
무차별 총격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다가온 바렛 괴한. 녀석은 지체 없이 알 수 없는 물을 우리에게 뿌렸다.
“무슨 짓이야, 인마! 이거 뭐야?”
처음엔 기름인 줄 알았는데 알코올 냄새가 강하게 났다. 잠시 멍하니 지켜보는데, 돌연 주인님이 몸을 떨었다.
황급히 주인님을 감싸 안았다. 이 물의 정체를 알겠다.
“성수! 폐기 한지 백 년은 훨씬 넘었을 텐데?”
과거에 인간들이 흡혈귀에 대항하고자 만든 흡혈귀 전용 쥐약, 성수다. 원체 흡혈귀에게 약점인 성수인지라 백 년 전에 이미 전부 회수해 폐기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그 성수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그만둬! 이분은 라니아 벨 아르안티르 여왕 폐하시다! 카나츠미에서 엘 에이라 여왕 폐하를 감히 사살할 계획이냐!”
그렇게 외치면서도 난 나 자신에 회의감을 느꼈다. 만약 여기서 여왕이 죽으면, 난 어쩌면 자유이지 않을까? 그런데 왜 필사적으로 감싸는 거지?
성노예로 만드는 내 목적관 달라서? 하지만 인간들에게 피해 하나 없이 여왕이 이렇게 죽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텐데.
내 마음이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 열심히 주인님을 감쌌다.
“…가축답군.”
너무 낮은 목소리와 시끄러운 총성들로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내게로 바렛이 움직였다.
바렛을 고정하지 않고 근거리에서, 그것도 서 있는 상태에서 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았다. 뻘겋게 달아오른 총구가 내 눈앞에 멈춰섰다.
“그럼 같이 죽어.”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리려던 순간,
드르르륵!
다른 방향에서 총격이 터졌다. 정확한 사격으로 내 눈앞의 바렛 괴한을 맞추고, 뒤에서 오토바이 음이 맹렬하게 울렸다.
금세 눈앞으로 치고 나온 오토바이 한 대가 그대로 바렛 괴한을 들이박았다. 훌쩍 날아간 바렛 괴한은 공중에서 자세를 수복해 안전하게 착지 후, 그대로 말에 올라탔다.
“물러난다!”
총에 맞고 오토바이에 치였음에도 멀쩡한 바렛 괴한의 명령에 총격전을 벌이던 괴한 무리가 황급히 숲속으로 사라졌다. 치고 빠지는 빠른 움직임들이 예사롭지 않다.
순식간에 우리를 습격한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뒤늦게 달려온 호위병이 주인님을 살폈는데 다행히 주인님은 상처 하나 없다.
옷에 있는 성수를 털어낸 주인님이 일어섰다. 그분의 표정으로 상당한 분노가 떠올랐다.
“그놈들… 계획적으로 짐을 노렸다. 짐의 능력 패턴도 다 알고서 전부 대비를 했어!”
도대체 정체가 무엇들인지….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만히 안정시키고 있을 때, 우릴 구해준 누군가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다가왔다.
달라붙는 레이서 복을 입고 헬멧까지 쓰고 있는데,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의 굴곡을 보아 여성이다. 그런데 몸매가 이상할 정도로 낯이 익다.
내가 가만히 몸을 지켜보며 정체를 유추하는데 상대방이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렸다.
그때, 주인님은 이미 정체를 알아채곤 이름을 불렀다.
“…시미르.”
헬맷을 벗어 정체를 드러낸 시미르가 머리를 털어 넘기고 나를 내려다봤다. 나도 멍하니 그녀의 눈을 마주 보는데, 시미르가 볼을 붉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