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서니
* * *
내려오기 무섭게 서니가 물어뜯는 기세로 달려들어 내 입술에 혀를 비집어 넣었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분위기를 이어갔다.
서니에겐 독특한 키스 버릇이 있다. 혀를 넣으면서 내 입으로 침을 보낸다. 그녀의 미지근한 침을 받아마시며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했다.
내 혀를 타고 흐르는 침을 꿀꺽꿀꺽 마신 서니의 표정이 익숙한 표정으로 풀린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뜨겁고 야한 숨결이 흘러나와 추운 밤공기로 흩어졌다.
“이거야… 이거야…. 이 냄새, 이 맛. 소문보다 훨씬 강력해. 최고야….”
“흐흐. 제가 신민애 괴롭힐 때마다 지켜보면서 늘 덮치고 싶었죠? 날 보던 눈빛이 너무 매섭던데?”
“얼른 더 맛보게 해줘.”
다시 입술에 매달리는 서니를 안아 들고 걸어갔다.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내 손에 열쇠 하나를 건넸다.
“하나… 뿐이에요?”
“감방 열쇠 대여하는 건 한정되어 있어. 원래 허가된 시간이 아니면 감옥 드나들면 안 돼.”
“저, 저희 그럼 어디서 하죠?”
“이리와.”
서니는 열쇠에 적힌 감방 번호를 찾아 들어갔다. 텅 비어있는 내부를 보곤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비, 빈 감방인데요?”
“그러네? 노예 하나 정도는 있다고 했는데. 잘못 줬나 보다.”
다시 내 목에 팔을 감싸고 안긴 서니가 말했다.
“어차피 상관없잖아? 오늘은 신민애가 아니라 너랑 놀려고 온 거고.”
“하, 하하… 그렇죠.”
감방 하나를 더 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계획엔 큰 차질은 없다. 키스하면서 동시에 옷을 벗고 계획을 정리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최대한 빠르게 서니를 절정으로 실신하게 만드는 것.
그녀가 신민애를 괴롭히려 밤마다 찾아오는 걸 막으려 일부러 그녀의 관심을 내게 돌렸다.
어렵진 않았다. 조금씩 내 냄새를 맡게 하고 노골적이게 유혹한다. 한 번도 내 냄새를 거부한 적이 없는 여성 흡혈귀들은 조금만 몸을 붙여도 곧바로 넘어온다.
아, 이게 카사노바의 삶이란 거구나. 살짝 꼬셔도 휙휙 넘어오는 여성들이라니.
야밤에 흥분한 남녀처럼 서니와 나는 단숨에 알몸이 되어 몸을 붙였다. 서로의 혀를 빨며 고간을 만졌다.
“후으응. 하아아….”
“하읍… 하아.”
난 음부 속을 헤집고, 서니는 내 음경을 양손으로 흔들었다.
간절하게 서로를 만지며 애원하다 천천히 몸을 숙여 서니의 목을 입으로 더듬으며 내려갔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난 서니가 철창에 등을 기댔다.
물러날 곳 없는 서니 덕분에 쇄골을 지나 유방에 도달했다.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양손으로 주무르며 가슴골에 고개를 파묻고 냄새를 맡았다.
무슨 바디워시를 쓰는지 달콤한 딸기 향이 난다.
‘흥. 나쁘진 않네.’
장난치듯 가슴 사이를 혀로 핥으며 괴롭히니 서니가 꺄르르 웃었다.
“가, 간지럽게 하지 말고 얼른~.”
가슴을 입으로 누르며 다가가 유두를 입에 물었다. 혀로 둥그렇게 핥아주고 쪽쪽 빠니 서니가 옅게 신음했다.
“으응… 보, 보지도 만져줘.”
원하는 대로 다리 사이에 손을 넣었다. 축축하게 젖어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음부에 손가락을 넣어 당겼다.
“하으으으~!”
허리를 떨며 애액을 줄줄 흘린다. 손을 거칠게 흔들자 후두둑 물이 떨어졌다.
“하아아… 좋아.”
“좋다고 계속 말해줘요.”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좋아 죽는군. 분홍 젖꼭지가 새빨개질 때까지 빨아주고 서니의 배꼽을 입 맞추어 내려와 음부에 코를 파묻었다.
“하아아~.”
“하읍. 프하아… 츄르릅. 추릅.”
이 정도 양이면 갈증을 느낄 수도 없겠다. 음란한 냄새가 풍겨오는 보지를 게걸스럽게 혀로 쑤시며 마셔주니 서니가 허벅지를 조였다.
“하으으! 자, 잠깐만! 천천히!”
다급하게 내 머리를 잡고 예 내 어깨 위로 다리를 얹어 앉았다. 그녀의 무게가 내 얼굴로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내가 그 정도 무게에 허덕이는 남자는 아니다.
아예 그녀를 내 얼굴에 얹은 다음에 그녀의 엉덩이를 받쳤다. 추르릅, 천박하게 소리를 내며 보지를 마구 탐하자 서니가 허벅지를 꽉 조였다.
“하아아아앙!”
질내도 꽉 조여오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그녀를 내려오게 도와준 다음에 음부 입구에 내 자지를 얹었다.
“하아… 나도 미치겠어요. 바로 넣을게요.”
“쑤셔줘. 네 큰 자지로 내 속내를 엉망진창 헤집어줘.”
“후후, 마음에 드네.”
쑤욱 질 내로 허리를 박아넣자 서니의 표정이 나름 볼만했다. 우그러지는 표정 다음에 탁 풀리는 얼굴은 내 가학심을 자극했다.
“헤… 헤에에….”
“얼마 만에 자지 맛보는 거예요?”
“모, 모르겠어… 5년?”
“세상에. 5년? 너무 쌓였겠네.”
철퍽! 철퍽! 허리를 쳐올리자 그녀의 가슴이 출렁였다. 내 눈을 마주 보며 행복하게 느끼던 그녀가 문득 내 목을 깨물었다.
“윽!”
주인님 외로 섹스 중에 내 목을 깨문 여성은 없었다. 소름 돋는 느낌에 불쾌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해서 그녀를 절정에 보내게 만들어야 한다.
쉴 틈 따윈 없다. 내일 근육통으로 앓아누울 각오를 하고 왔단 말이다.
서니의 양다리를 팔에 걸고 들어 올렸다. 목에 팔을 걸고 매달린 서니가 키스를 해오자 입안에서 쇠 맛이 피어올랐다.
난 흡혈귀가 아니라서 역시 내 피는 익숙해지기 힘들다.
퍽! 퍽! 퍽!
튕기듯 허리를 튕기면 서니가 밀려졌다가 박혀 온다. 관성의 법칙을 이용해 서니의 질내를 거칠게 탐할수록 서니의 눈이 반쯤 뒤집히며 내 혀를 깨물었다.
“끄읏…!”
아프지만 억지로 참고 사정과 함께 그녀를 절정에 보냈다.
“후그으읏!”
다리를 파닥대며 느낀 그녀였다. 만족한 미소를 짓는 그녀지만 절대 쉬는 시간 같은 건 주지 않는다.
사정했음에도 허리를 계속 휘둘렀다.
“하아… 하아… 하아… 자, 잠깐. 나 갔어. 갔다고.”
“후우… 아직 멀었습니다. 제가 진짜 좋은 게 뭔지 보여드릴게요.”
끊임없이 박을수록 서니의 음부에선 내 정액과 애액이 자지에 당겨져 함께 떨어졌다.
“하읏! 기다려… 멈춰! 멈춰! 나 민감해! 민감하다고! 아아아악!”
가버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니는 다시금 절정을 느꼈다.
입술을 깨물며 점점 힘들어하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정상위 자세를 취해 또 박았다.
침과 눈물을 흘리며 떠는 서니의 입안으로 혀를 넣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서니가 내 혀를 쪽쪽 빨며 내 달콜함에 취해갔다.
“흐아헤에에….”
그녀의 입에선 점점 멍청한 소리만 나온다. 물론 당연하게도 아직 한참 멀었다.
다리 한쪽만 들게 해서 옆으로 박았다. 서니가 그만두라는 것처럼 손을 휘젓지만, 손마저 잡고 당길 뿐이다.
푹! 퍽! 쯔걱! 쯔걱!
“후우! 흐윽… 으아….”
물론 그녀만 힘든 건 아니다. 나도 연속적으로 사정하면서 귀두가 민감한 상태다.
나조차도 머리가 번쩍일 정도로 허리를 떨지만, 이것도 사명감이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마치 서니와 나는 서로 섹스를 이용해 결투를 벌여 승패를 겨루듯 허리를 박았다. 서니가 한 번 더 절정 하는지 질내가 꽉 조인다.
“제, 제발… 좀 쉬게 해줘….”
“좋잖아요? 네? 좋아 미치겠잖아요.”
“조, 좋은데… 좋은데에에엣!”
그녀가 쏘아낸 소변이 내 배와 자신의 배에 묻었다. 창피한지 서니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길 봐요.”
그녀의 팔을 잡아 벌리며 나를 바라보게 했다. 새빨개진 얼굴을 살펴보니 서니도 제법 귀여운 인상이다.
“하고 싶은 자세 있어요?”
“…….”
“없어요? 그럼 제 맘대로 합니다.”
“나… 나 하고 싶은 거 있는데….”
부끄러워 눈도 못 마주치고 손가락을 맞대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뭔데요?”
서니의 부탁은 괴기하고 근력도 요구되는 행동이었다.
난 서니를 거꾸로 집어 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음부가 내 입에 오도록 하고, 그녀의 입은 내 음경에 닿도록 조절했다.
일명 서 있는 69자세다. 보기보다 가벼운 서니를 한 손으로 지탱하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자지를 목 깊숙이 박았다.
“커헉… 커허어….”
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음부를 입에 머금고 빨았다. 아까보다 훨씬 젖어있는 음부다.
“참나… 진짜 변태적인 취향이네요. 이거 노예처럼 다루는 거 아니에요?”
“하읍… 프하아… 시, 시끄러워….”
“우리 한 번만 솔직하게 대화해볼까요? 서니. 당신은 노예처럼 다뤄주길 원해요?”
대답은 없었다. 말하지 않고 내 자지만 흔드니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자세가 자세인지라 힘줘서 때리기엔 여간 힘들다.
“하응….”
“서니. 신민애의 자리가 본인 자리였으면 하고 생각한 적 있죠.”
“어… 없어. 흡혈귀가 어떻게 노예처럼….”
“헤에, 솔직하질 못하네.”
손을 뻗어 바닥을 굴러다니는 목줄을 주웠다. 서니의 목에 개목걸이를 걸자 흠칫 놀란 서니가 늘어지는 목소리라 말했다.
“야… 야. 너… 가축 주제에 건방지게에….”
“신민애가 괴롭힘 받는 거랑 똑같이 제가 괴롭혀줄까요?”
“나… 난 흡혈귀라고….”
그 흡혈귀는 이제 발정난 암캐지.
서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순간까지 자지를 입에서 빼지 않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입에 푹푹 쑤셔 박았다.
“커헉! 커럭! 꺼억, 꺼럭!”
“이렇게! 목을 조르는 것도 좋아하잖아! 서니!”
“커러러… 커헉!”
발을 버둥거리고 팔로 내 허벅지를 치지만 큰 반항은 없었다. 그녀가 이런 것도 좋아하는 걸 내심 알아채고 계속 목을 졸랐다.
“받아라, 서니! 노예가 되길 원하는 변태 암퇘지야!”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어 손잡이로 삼고 엉덩이에 거칠게 박듯 서니의 입 구멍에 쑤셔 박았다. 꽉 조여오는 입 보지를 느끼며 목구멍으로 깊게 사정했는데,
“후우, 이거도 나름… 서니?”
서니가 미동도 없다.
“서니? 서니… 서니!”
깜짝 놀라 자지를 빼고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다행히 심장은 뛴다.
“아, 썅. 진짜 놀랬잖아.”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안심했다.
너무 과했다. 분위기에 심취해서 그녀의 목을 졸랐는데 적당히 풀어주고를 반복해야 하는 짓을 그대로 기절시키고 말았다.
처음 하는 플레이라서 익숙지 않았다. 다시 경험하기엔 꺼려질 정도.
‘흡혈귀가 쉽게 죽진 않으니까 안심이지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그래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를 기절시키는 데에는 성공이다.
옷을 도로 입고 감방에서 나가 신민애 감방으로 찾아갔다. 지금쯤이면 그녀들은 탈출해서….
“하앙! …더, 더 안쪽에!”
“어, 없다고요!”
얘들은 뭐해?
신민애가 엉덩이를 벌린 채 엎드려있고 아츠나가 그녀의 애널에 손을 넣고 쑤시고 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새빨개진 아츠나는 정말 울 듯한 표정을 짓다가 나를 돌아봤다.
“한원 멍청아! 너무 깊게 넣었잖아!”
“뭐야? 설마 아직도 못 뺀 거야? 뭐해, 멍청이들아!”
감방만 열리면 내가 뺄 수 있을 텐데.
신민애가 문득 나를 발견하곤 휘청거리며 다가와 철창에 엉덩이를 붙였다.
철창 사이로 그녀의 벌어진 애널을 보며 물었다.
“흥분했어요?”
“아니! 네가 빼봐! 쟤는 못 빼잖아.”
“아츠나가 피스팅을 해도 못 뺀 걸 제가 어떻게 뺍니까?”
“뭐든 해봐!”
젠장, 나도 모르겠다. 손으로 안 되면 절정으로 뽑아 내주는 수밖에.
달아오른 자지를 철창 사이로 집어넣어 애널에 쑤셔 박았다.
“후그윽! 이, 이 새끼가… 미쳤어?”
놀란 신민애가 화를 냈지만 도리어 나도 화를 냈다.
“뭐가요! 이렇게라도 해서 뽑아야지!”
“다, 다른 방법이 있잖아.”
“지금 다른 방법 물색할 시간 없어요. 좀 절정에 빠지도록 느껴봐요!”
우스꽝스럽지만 당장은 이게 최선 같다. 신민애가 철장 사이 내 자지에 엉덩이를 박으면서 손가락으론 질을 쑤셨다.
보통 치욕스러운 장면이 아닌지라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후윽… 흐윽… 내가 왜 이런 꼴을….”
“후우… 그나저나 서니가 엉덩이를 그렇게 가지고 놀았는데도 꽤 조이네요.”
“다, 닥치고 뭔가 더 해봐!”
그러면… 이거밖에 없는데. 흔들리는 신민애의 엉덩이에 새겨진 낙인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난 사전 동의도 없이 그녀의 낙인을 꾹 누르며 자지를 거칠게 뺐다.
예상하지도 못한 신민애가 놀랄 겨를도 없이 바르르 오르가즘을 느꼈다. 다리가 후들거리다 주저앉은 신민애는 쪼르르 소변을 지렸다.
“개… 개새끼….”
“이거 될 거 같은데? 반복합시다. 참아봐요!”
노려봐도 별 방법이 없다. 똑같이 그녀의 애널에 피스톤질하다가 낙인을 눌러 오르가즘을 느끼게 했고, 그걸 세 번 정도 반복했다.
나도 그런 식으로 두 번을 애널 속에 사정하였고, 아츠나가 대신 낙인을 힘껏 때렸을 땐 막대를 뺄 수 있었다.
“하아… 진짜 너 두고 봐….”
일어서지도 못하는 신민애는 내버려 두고, 아츠나가 막대 비닐을 벗겨 락픽을 꺼냈다.
눈대중으로 락픽의 개수를 확인한 아츠나가 눈을 치켜떴다.
“세, 세 개? 왜 이거뿐이야?”
“락픽을 내가 어디서 구하냐? 그것도 에밀리하고 레베나가 간신히 구해준 거야.”
“이 정도론 감방 다섯 개도 못 열어…. 아, 젠장.”
그래도 아츠나는 능숙하게 철창 밖으로 손을 빼내 감옥 열쇠 구멍에 락픽을 넣었다. 보지 않고도 열심히 락픽을 움직이더니 찰칵! 문이 열렸다.
“됐어! 열렸어!”
“아츠나는 내가 알려준 감방들 열어주러 가줘. 그리고 신민애 씨는…”
힘겹게 일어선 신민애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문제없어.”
“일어서는 게 고작인데요?”
“네가 낙인을 건드려서 그래. 시간만 지나면 진정돼.”
저런 고집 일일이 받아줄 시간도 없다. 재활치료 중인 하반신 환자처럼 걷는 신민애를 안아 들었다. 발그레해진 신민애가 내게서 벗어나려 바둥거리지만, 난 더욱 끌어안을 뿐이다.
“괘, 괜찮다니까!”
“일일이 당신이 징징대는 소리들 받아줄 시간 없어요. 이대로 갑니다.”
“…그러든가.”
그 사이에 아츠나는 기특하게도 여섯 개의 감방을 열었다. 부러진 락픽과 열 기회조차 못 온 감방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아츠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예로 긴 시간을 괴롭힘 받았던 인간들은 우리에게 간이라도 내줄 것처럼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들의 인사조차도 시간 낭비다.
계단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신민애가 내 품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주변의 시선 따위 상관 않고 비어있는 감방으로 들어갔다.
“신미애 씨.”
그녀는 비어있는 감방에 기절한 서니를 보고 있었다. 개목걸이를 차고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를 내려다본 신민애가 이를 악물었다.
“안 돼요.”
“아무것도 안 해.”
당장에라도 서니를 죽이고 싶어 안달 난 표정이었지만 신민애는 돌아섰다. 다시 내 부축을 받으며 움직였다.
그렇게 모두가 계단을 오르려는데,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오는 구둣발 소리. 단체로 움직이려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멈춰섰고, 나도 긴장한 채로 계단 위를 노려봤다.
“수, 숨어야지!”
“기다려봐.”
숨으려 듯 물러나는 사람들관 달리 난 꾸준히 컴컴한 계단 통로를 지켜봤다. 뒤에서 아츠나가 당기어도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계단을 내려온 건 에밀리였다. 커다란 보따리를 쥔 에밀리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원.”
“휴우, 에밀리.”
환한 미소로 다가온 에밀리가 불쑥 키스했다. 내 곁에서 그 광경을 신민애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에밀리. 준비해뒀어?”
“물론이지.”
에밀리는 들고 있는 보따리를 풀어 보여줬다. 보따리 안에는 많은 양의 동물 사체들과 조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좋아. 비어있는 감방마다 노예 사망 체크란에 서니 이름으로 사인 좀 해줘. 그리고 사체들은 소각장에 태워주고.”
“그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지.”
“아츠나. 정원으로 안내해줘. 길 알지?”
“알았어.”
앞서가는 아츠나를 따라 쭈뼛쭈뼛 인간들이 따라나섰다. 그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에밀리를 눈치 보다 황급히 달아났다.
나를 지나치는 에밀리를 불렀다.
“에밀리.”
“응?”
밝은 얼굴로 돌아보는 에밀리. 난 멋쩍게 웃었다.
“고마워. 정말로.”
어색한 내 모습에 에밀리가 도리어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발그레 미소를 띄웠다.
“이정도야 뭐.”
뒤처리는 에밀리에게 맡기고 신민애를 부축하며 지하실을 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