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혈귀 여왕을 성노예로 만들어라-6화 (6/59)

〈 6화 〉 그의 제안은?

* * *

“팔을 보여라.”

옷을 다 벗었을 때였다. 검은색 속옷만을 입고 침대에 오르기 전의 주인님은 장신구를 정리 중이었다.

난 속옷까지 벗은 채로 주인님께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멍이 들었던 팔을 내밀었다. 멍은 얼추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보기 흉했다.

“깨끗이 소독했느냐?”

“세 번 이상이나 했습니다.”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건가? 그 흡혈귀 여왕이? 이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주인님은 상처를 혀로 핥았다.

꿈틀대며 팔이 긴장했지만 빼진 않았다. 주인님은 피가 흐르지 않는 상처를 핥았다.

“아프더냐?”

“아프긴 했지만 버틸만했습니다.”

“후후, 그래.”

내 팔을 핥으면서 침대에 눕자 나도 그 옆을 따라 누웠다.

피에만 집중하는 주인님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사절단은 일주일 정도 지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됐구나. 문득 라미에르의 그 험악한 얼굴이 떠오르자 흠칫 겁이 났다.

비록 그가 사과하고 다신 날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포악한 성격이며 매사 눈치 없이 무례하게 구는 행동을 미루어보아 진심은 아닐 거로 예상된다.

혹시라도 주인님의 눈 밖에서 나를 건드린다면?

“그가 다시 널 건드린다면 그땐 정말로 그자의 목을 잘라 에이르에게 보낼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까지?

“주인님… 새삼스럽지만 전 미천한 노예일 뿐입니다. 어찌 노예 하나 때문에 위험을 불사르시는 겁니까?”

주인님의 붉은 눈이 나를 향했다. 혀는 여전히 내 상처를 핥으면서 그 눈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곧 입을 뗀 주인님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너 하나 때문에? 설마 짐이 노예 하나 때문에 이리 노한 것으로 보였느냐?”

“그렇다면…?”

“짐이 대로한 이유는 예전부터 라미에르의 무례함에 대해선 줄곧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짐의 전용 노예를 함부로 건드리는 건 곧 짐을 능멸하는 것과 같다”

“아… 옳으십니다.”

“지금껏 혼자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느냐? 귀엽구나.”

귀엽다고? 어처구니없어서 그 이후로 답하진 않았다. 주인님은 한동안 내 팔에 매달려 피를 빨았다.

이튿날, 청소에 열중인 에밀리에게서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인간 군대요?”

“뭐야, 못 들었어?”

들은 적 없다. 내 멍청한 표정을 본 에밀리는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여왕님이 말씀 안 하셔?”

“하시겠어요? 전 미천한 노예에 불과한데.”

어깨를 으쓱인 에밀리는 다시 밀대로 바닥을 밀었다.

“물론 나도 소문만 들은 거에 불과해. 하지만 사절단이 온 이유는 확실해. 인간 군대의 심각한 문제가 터져서 사전 연락도 없이 급하게 온 거야.”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온 라미에르는 오자마자 그렇게 시비를 건 거였나. 자국에서도 그놈은 분명 골칫덩이임이 분명하다. 그놈은 일주일 동안 무조건 피해 다녀야지.

“그나저나 놀랍네요. 저도 인간 군대에 관해선 금시초문인데.”

“그런 거 없었어?”

“있었겠어요? 그저 당신들 같은 흡혈귀한테서 도망치기나 바빴지.”

3년 전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감회에 빠졌다. 하지만 추억이라 할 만한 게 도통 없다.

에밀리가 내 모습을 보다가 히죽 웃었다.

“인간 군대의 문제가 심각한 건 같지만, 그래 보았자 인간들에 불과하지. 금세 소탕하고 노예로 잡혀 오고 말걸? 흥, 가축들.”

참나, 저걸 지금 인간인 내 앞에서 할 소리야? 뾰로통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니 에밀리는 어쩌라고 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나와준다면 나도 재밌지.

“하읏!”

건방진 소리를 보란 듯이 하는 에밀리의 가슴통을 움켜쥐었다. 내 손 가득 채우기도 벅찬 가슴은 꽉 채운 브라자 안에서도 그 위엄을 뽐냈다.

놀란 듯 움찔한 에밀리지만 반항 하나 하지 않았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흘겨보다가 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본인이 자지의 노예라는 것을 제대로 일깨워줘야겠다.

“에밀리. 일상에선 서로 비밀을 지키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기어오르진 마. 자꾸 그러면 혼날 줄 알아.”

“한원….”

“아직도 실감 안 나?”

가슴을 주무르면서 에밀리에게 가까이 붙었다. 물러나다 벽에 등이 부딪치고 오갈 데 없어진 에밀리의 다리 사이로 내 다리를 밀어 넣었다.

반항 하나 못하고 파르르 떨며 올려다보는 에밀리지만 난 그녀의 상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쥐고 있는 왼 가슴에서 느껴지는 가쁜 심장 고동, 달아오르는 얼굴, 무서워하지만 내게서 떠나질 못하는 그녀의 동공.

일상에서도 조교는 확실히 해야지. 머릿속 깊게 박아넣은 내 성노예임을 자각하도록.

“네 주인이 누구인지?”

일반적이라면 주인으론 여왕 폐하를 떠올릴 테다. 하지만 에밀리는 바지 위의 내 자지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한원님….”

“정확하게.”

“한원님 자지의 노예….”

후후, 얼마 전까지 처녀였던 여자가 이렇게 야한 모습이라니. 이런 걸 보면 에밀리는 타고난 변태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이로써 일상까지 에밀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조차 흥분에 몸이 달아올랐다.

“너무 가축가축 거리지 마. 듣는 가축 심술 나서 선물 안 줄지도 몰라.”

“아… 아아… 안 돼요. 죄송해요.”

“잘 알아들었으면 입 벌려봐.”

지시대로 에밀리는 활짝 입을 벌렸다. 그녀의 입안으로 침을 흘려줬다.

마치 생명수를 마시듯 에밀리가 혀를 앞세워 내 침을 받았다. 그거론 모자랐는지 까치발을 세워 내 입술 가까이 와 입맞춤까지 했다.

그 귀여운 행동에 나도 진하게 혀를 맞세우며 보답했다.

혀와 혀를 끈덕지게 문지르며 욕구를 불태우곤 입을 뗐다. 내 침이 뚝뚝 흐르는 걸 받아 마신 에밀리는 더 진행을 원하는지 애타는 신음을 흘렸다.

“흐으응….”

“자지를 원해?”

“네에… 자지 원해요….”

큭큭, 웃어주며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떼 에밀리 치마 위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그럼 내가 가축인가?”

“히히.”

귀엽게 미소지은 에밀리가 고개를 저었다.

“한원 님이 어디 다른 가축들과 같으신가요?”

쓰읍, 역시나 에밀리는 이렇게 답하는군. 인간이 아닌 나만의 노예로.

어긋나는 계획은 아니지만, 에밀리의 대답이 썩 석연치 못하다.

그래도 에밀리를 칭찬했다.

“옳지. 상을 줘야겠네?”

환하게 밝아진 에밀리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정말 그녀가 내 자지의 노예라는 게 실감이 난다. 그녀가 내 다리에 가랑이를 비비며 애교부리듯 가슴을 밀착시켰다.

손으로 에밀리의 치마를 걷으며 한바탕 섹스가 벌어지려는데,

“가축?”

등 뒤편에서 들리는 부름과 함께 내 몸이 홱! 하고 밀쳐졌다.

우당탕.

“끄웩!”

나를 거칠게 밀쳐낸 에밀리는 예의 싸늘한 눈초리로 돌아와 넘어진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위협하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방금과는 다른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축 주제에 기어오르는 것도 적당히지! 한 번 더 흡혈귀를 귀찮게 굴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도 못 했는데 씩씩대며 멀어지는 에밀리의 등을 보며 망연자실하게 누워있었다.

시야에서 에밀리가 사라지고 불쑥 흡혈귀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아, 진 흡혈귀님.”

“음? 내가 이름을 말했었나?”

말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긴 하지. 주섬주섬 일어나 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굳이 그러진 말라는 것처럼 진은 무심히 손을 저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려 면목이 없습니다.”

“꼴사나울 정도까지야.”

그리고 용건이 뭐냐는 듯이 진을 쳐다봤다. 진은 멀뚱멀뚱 내 얼굴을 보며 마치 할 말을 생각하는 듯했다.

“…….”

“…….”

뭐해?

“…….”

뭐. 왜? 말하라고.

“저… 혹시 저를 찾은 이유가?”

“…아, 그렇지. 달콤한 냄새 때문에 순간 잊을 뻔했군.”

나한테서 그렇게까지 냄새가 나는 건가? 나는 도저히 모르겠는데 말이다.

진은 코를 문대며 물었다.

“팔의 상처는 괜찮나?”

“괜찮습니다. 하도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붕대로 꽉 매고 있긴 하지만요.”

붕대로 꽉꽉 감싼 팔을 내밀었다. 이젠 딱지가 앉은 팔이다. 진은 무심히 내 팔을 내려다보다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가축. 내가 이곳 법에 대해서 무지해서 말이다만.”

“뭐든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냄새를 맡는 것도 금지되어 있나?”

그게 목적이었나?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냄새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럼 잠시만 실례하지.”

지금껏 참아왔는지 진이 팔을 낚아채어 상처가 감긴 붕대에 코를 박았다. 아프진 않지만 간지럽다.

한동안 진은 냄새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참 이상하다.

진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잘생긴 인물이다. 그런데 이 잘생긴 인물이 내 팔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어째 다른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난 호모가 아니라고.

“저기… 진님?”

“세상에.”

짐짓 부르자 코를 뗀 진이 놀라운 듯 감상평을 내렸다. 그리고 손을 까딱거렸다.

손짓의 의미를 생각하는데 옆에서 한 여성이 총총대며 달려왔다.

“아.”

분명 어제 봤던 다른 인간 노예다. 금색 단발의 여성은 내겐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진은 여성의 팔을 당기고는 그녀의 목에 송곳니를 박았다.

“읏….”

여성은 놀랐지만 익숙한 듯 가만히 있었다. 진은 감흥이 새로운지 미약하게 어깨를 떨며 여성의 피를 마셨다.

잠시 후에 입을 뗀 진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입을 옮겨 여성의 입술에 맞췄다.

키스는 예상 못 했는지 여성은 진을 밀어내려 듯 그의 가슴팍을 밀었다. 하지만 밀어낼수록 진은 더욱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혀도 집어넣는지 여성의 입이 벌려져 있다.

그나저나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 양반들? 내가 여기서 보고 있잖아.

차마 부르지 못하고 야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빠르게 얼굴이 달아오르고 손이 떨릴 정도로 힘주어 진을 밀쳐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은 열심히 여성의 혀를 맛봤다.

결국에 오 분 정도가 지나서야 진은 여성에게서 입을 뗐다.

“푸흐.”

“후에에….”

숨이라도 막혔는지 여성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져 앉았다. 그녀는 앉은 자세에서 숨을 몰아쉬고 진은 입술을 닦으며 만족한 듯 웃었다.

“이제 좀 진정되는군.”

영문도 모르고 진을 노려보고 있으니 진이 설명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냄새였다. 하마터면 나도 라미에르처럼 널 물었을 수 있었어.”

“그래서… 이 여성을 대신 문 겁니까?”

“흥, 이 가축은 그러기 위해서 데리고 다니는 거니까.”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떠는 여성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어제는 그저 그랬는데 이제 보니까 이 여성도 어딘가 야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니아라고 한다. 내 전용 인간 노예이지.”

난 니아를 일으켜주려 했다. 하지만 니아는 내 손길을 거부하고 홀로 일어났다.

휘청대며 위태롭게 서자 이번엔 어깨를 잡아주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니아는 거부하듯 물러섰다.

참 남의 도움 받는 걸 싫어하는 여자다.

“그럼 제 냄새를 맡고, 노예의 피를 빨고, 키스나 하는 걸 보려 주려고 온 겁니까?”

“응? 아니아니. 이건 별개고.”

고개를 저으며 진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넌 여기서 어떤 대우를 받으면서 살고 있지?”

갑자기 취조를 한다고?

“글쎄요. 전용 흡혈 인간? 성노예?”

“여왕 폐하의?”

“그렇…죠? 뭐 천대받으면서 살고 있진 않습니다.”

다른 노예들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긴 하지. 나 이외의 노예들을 떠올리자 가슴이 쓰라림을 느꼈다.

진은 종이를 읽어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학대받거나 그러진 않고?”

“이렇게 주인님 없이 홀로 다니는 것만 해도 학대는 아니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네.”

머리를 긁적인 진은 마치 고민하듯 입술 끝을 비틀었다.

그리고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보니 그건 다름없는 노예계약서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진이 설명했다.

“만약 네가 이 계약서에 서명한다면 라니아 여왕 폐하와 관련된 노예계약을 해지시킬 수 있다. 대신 넌 메이 황태녀님의 노예가 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새로운 주인님을 섬기게 될 소리란 거다. 계약서는 조금 수정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분명 여기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아마 여기 간부 흡혈귀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걸.”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왜… 왜? 아니, 저 지금 대화 흐름을 못 따라가서 그러는데….”

“후우, 적당히 이해하면 될 텐데.”

팔짱을 낀 진은 계약서를 툭툭 두드리며 간결하게 설명했다.

“내가 널 황태녀님께 드릴 선물로서 데려갈 거란 소리다. 여기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내가 보장해주마. 더는 가축 소리 들을 필요 없을 거다.”

“아니… 왜 갑자기?”

“네 냄새, 맛. 그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달콤한 냄새는 어디서도 본 적 없었어. 왜 여왕 폐하가 널 애지중지하는지 감이 오거든.”

다시 계약서를 읽었다. 계약서 내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약을 할 시 기존에 가진 노예계약을 파기할 수 있을 정도로 현 계약서의 영향력은 강력하다.’라는 점이다.

그것이 타 국가 여왕의 노예일지라도.

“물론 이러면 여왕 폐하께서 정말 싫어하시겠지만 황태녀님을 위해서라면 미움 좀 받아보지, 뭐.”

노예계약서를 다시 읽었다. 여기서 서명하면 흡혈귀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그러면 노예계약이 아니라 날… 귀족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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