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79화 (79/79)

〈 79화 〉 4 / 모난 악마가 망치 맞는다 (3)

* * *

(3)

좁고 더러운 골목에,

장송곡처럼 까마귀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어?”

소매치기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목에 칼을 대고 있던 여자아이의 등에서 까마귀의 날개가 펼쳐진 탓이다.

“날개…?”

깃털 하나하나에 금빛을 두른 새카만 날개는 몹시도 거대했고, 또한 아름다웠다.

날개는 마치 이 골목 전체를 덮어도 좋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지금까지 어디에 이 거대한 날개를 숨겨두고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소매치기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꼈다.

자신을 돌아보는 아이의 눈빛이 사람의 눈과는 완전히 일탈한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온몸을 휘감는 위험신호에 소매치기가 칼을 떨어뜨리기 물러선 순간,

격통이 흉곽을 꿰뚫었다. 깃털이 박혀있었다.

금빛 두른 검은 깃털이 정확하게 심장에 박혀서, 그 틈바구니로 아낌없이 피가 넘쳤다.

“아, 으, 아…!”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낀 소매치기가 황급히 그 깃털 박힌 가슴을 더듬었다.

깃털을 뽑아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사고에 필요한 피마저 멎지 않는 출혈에 뒤엉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명을 이어갈 수도 없게 된 몸뚱이가 그대로 쓰러지는 데에는,

시간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스텔라 님, 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나르콜렙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물론 인간 한두명의 목숨 따위, 마라인 그녀의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여기는 마라의 땅이 아니라 인간의 땅이다.

하물며 마라와 인간은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야, 방금… 봤어? 방금 그거 뭐야?”

“뭐긴… 저 계집애의 몸에서 푸드득 하고…”

무엇보다 목격자가 너무 많다.

여기 모여 있던 불량배들은 전부 다 봤다.

게다가 어쩌면 골목 밖의 행인들의 눈에 띄었을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하게 마라의 힘을 아주 잠깐 써서

소매치기의 턱을 날려버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마족… 이냐? 저것들, 마족 아냐?!”

이런, 우려했던 상황이다.

이렇게되면 하는 수 없다. 도망칠 수밖에.

불량배에게 덜미를 붙들렸든, 소매치기를 당했든,

더럽고 치사해도 여기서는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스텔라 님, 꽉 잡아…!”

나르콜렙시는 그대로 스텔라를 안아들었다.

그대로 발을 벽을 향해 내지른 뒤 뛰쳐오른 나르콜렙시의 등에서 검은 피막 날개가 펼쳐져 세차게 퍼덕였다.

“으, 이걸 그 인간이 알면… 분명 펄펄 뛰겠지….”

“나르크, 왜 그래?”

“스텔라 님이 사고를 쳐서 그래, 사고를.”

벽을 박차고 뛰쳐오른 몸이 가볍게 중력을 거슬러 솟구쳐올랐다.

두 번 날개가 공기를 치대며 퍼덕였고, 날아오른 몸이 그대로 건물 지붕에 내려앉으며 한숨을 돌렸다.

설마 여기까지 단숨에 쫓아올 수야 없겠지.

이제 어쩐다.

나르콜렙시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복잡하게 꼬여갔다.

물론 저 불량배들이 관청으로 몰려가 마족이 나타났다고 고변할 거라고는… 생각하기도 어렵고,

또 그걸 믿어줄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놈들이 겁도 없이 몰려와 술주정을 부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건 너무 낙관이긴 하지만…. 끄응, 일이 너무 커지진 말아야 할 텐데’

이럴 때 그 바보는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행인들이 웅성거리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골목에서의 소란이 아직 거리로 퍼지진 않은 모양.

‘레오의 말을 들을 걸 그랬지.’

그냥 조금 심심해도 성에서 얌전히 쉬면서 주는 밥이나 제때제때 챙길걸.

한숨을 푸욱 내쉬곤 스텔라를 내려놓았다.

스텔라는… 자신이 뭔가 사고를 쳤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는 한 모양인지,

조금 풀이 죽어있었다.

“…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너무 그렇게 풀 죽진 마.

그 인간… 아마 죽었겠지만, 여차하면 스텔라 님이 다칠 수도 있었어.

아니, 스텔라 님이 그냥 인간이었다면 말야. 그러니까 피장파장인 걸로 하자구.”

일단… 그 소매치기가 먼저 스텔라의 목에 칼을 들이댔으니 정당방위가 성립… 하려나?

마라에게 있어서는 보복, 응보의 개념에 더 가깝긴 했으니 스텔라의 잘못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사람 하나가 죽은 이상… 일이 어떻게 꼬일지 모른다는 건데, 으… 정말. 텄어, 텄어.’

저런 질 나쁜 녀석들은 으레 체면을 따지기 마련.

사람 하나가 죽은 것보다도 체면이 깎인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자신과 스텔라를 찾으려 혈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뒷골목에서 거리로 소문이 퍼지는 건 어쩌면 시간 문제.

“하지만 그 인간이 먼저 내게 손을 대려고 했어.”

“그건 알아, 스텔라 님. 하지만, 음… 조금 방식을 달리 하는 게 좋았어.

인간들은 우리들 마라와는 사는 방식도, 죽는 방식도 다르다고.”

그제야 나르콜렙시는 체면에 관한 한 스텔라도 저들과 마찬가지임을 깨달았다.

스텔라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엄연히 마왕의 파편이다.

마왕 안드라스의 알에서 깨어난 그녀는 나잘슈파르의 파편을 삼킴으로서 진정한 마왕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렇기에 스텔라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왕인 자, 그 이름에 흠집이 남는 것을 어찌 참을까.

“…그냥 그렇게만 알아줘. 일단 돌아가야지. 레오가 걱정할 테니까.”

“응….”

나르콜렙시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텔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르콜렙시는 한숨을 쉬면서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 거리에 짙게 깔린 불온한 기척에 몸을 떨었다.

‘역시 이 도시… 뭔가 걸려 있어. 따끔따끔하게… 싸움을 부추기는 것 같은 마법이.

아니, 그것만이 아니야. 그 주문에 더해서… 뭔가를 모으고 있는 듯한 그런 마법의 기척이.’

마치 이 도시의 싸움들에 얽힌 피와 욕망, 증오와 같은 싸움의 부산물이 한데 뒤엉키는 듯한 감촉은

마라인 그녀에게 있어서도 썩 불쾌했다. 자신이 느낄 정도라면

이런 일에 특히 진심으로 달려드는 ‘교회’ 녀석들이 못 보고 지나칠 리가 없다.

‘교회, 교회… 으. 그 녀석들이랑 얽혀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마족과는 상극인 성스러운 힘을 휘두르며,

자신들의 교리에 따르지 않는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는 율령교회.

그 가운데에서도 특출한 힘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을… 인간들은 ‘성탁기사단’이라고 부르곤 했지.

지난번 윈돌에서도 마주쳤었던 성검사 요슈아 셀룰라이트…

비록 신참이었다고 해도 그는 마왕의 알과 얽힌 소동의 냄새를 예리하게 맡고 들이쳤었다.

여기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윈돌보다도 더 짙게 사방에서 풍기는 피의 냄새는

사냥개들을 꾀여내기에 딱 좋은 미끼가 될 테니까.

‘그러고보면, 하이엔 녀석이 움직인 것도 역시…’

그 녀석이 혼자 움직이는 것도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워낙에 되바라진 개차반이라 입 밖에 내놓지는 않았지만,

아무 흥미 없는 일에 머리를 들이밀 인간이 아니다.

‘…아이온 크로니클이라는 그 사제와 관련된 일이려나, 이번에도.’

윌리엄이라는 이름으로 용사 파티에 끼어있었으며,

그 이전에는 인간 세상을 꽤 떠들썩하게 만든 ‘크로니클 사건’을 일으킨 배후자, 아이온 W 크로니클.

그는 윈돌에서 마왕의 알 중 하나를 억지로 깨워내는 사태를 벌였고,

그 깨어난 마왕 나잘슈파르의 반신을 훔쳐내어 잠적했다.

도대체 그 반쪽짜리 마왕의 파편을 뭐에 쓰려고 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나마 나머지 반은 스텔라, 마왕 안드라스가 회수하여 제 힘으로 삼긴 했지만…

“뭐 일단… 돌아가자구, 스텔라 님.”

“돌아가다니. 그리 급히 대체 어디로 돌아가려고? 사람 하나를 잡아놓곤 말야.”

흠칫.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르콜렙시의 어깨가 덜컥 굳었다.

낯선 목소리였다. 아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만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이질적인 힘이 느껴졌다.

지금 나르콜렙시가 감추고 있는 서큐버스의 날개를 붙드는 듯한, 그런 힘이.

‘성전력…!’

온몸에 거스러미가 이는 것 같은 그 힘은, 마라와 상극의 힘인 성전력이었다.

황급히 돌아본 나르콜렙시의 눈에 가장 먼저, 묵직한 워해머가 보였다.

무거운 망치머리를 바닥에 대고, 법의를 입은 여자가 한 걸음 나서서 나르콜렙시와 스텔라를 노려보았다.

적갈색 머리카락이 끓어오르는 성전력에 바람이라도 불어닥친 것처럼 살랑였다.

“당신들이지? 이 스파타스에서 뭔가 수상쩍은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나르콜렙시는 그 말에 심히 상황이 꼬였음을 직감했다.

여자는 지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를 나르콜렙시와 스텔라로 지목한 것이다.

물론 그게 터무니없는 오해이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규명할까?

상대는 성직자이고 자신들은 마라인데. 말을 해도 믿어줄지조차 의문이다.

“기다려, 우린 아무 상관 없는 일…!”

“하, 사람을 바보취급하는걸. 마족의 말을 믿을 것 같아?”

그럴 줄 알았지!

하여간, 성직자라는 것들은 죄다 머리가 굳은 멍청이들이야!

나르콜렙시는 속으로 되알지게 욕을 퍼붓고는 스텔라를 감싸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저 여자는 일반적인 성직자 따위가 아니라…

마족 사냥의 전문가인 성탁기사단의 일원일 것이다.

성탁기사단의 일원에게는 쓰는 무기에 따라서 이명이 주어지는 관습이 있는데,

저 여자가 사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거대한 워해머였다.

‘이거, 역시 좀 위험할지도…!’

전개는 최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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