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4 / 모난 악마가 망치 맞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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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 나쁜 소매치기의 얼굴에 호쾌하게 킥이 꽂혔다.
발바닥이 움푹 파고든 순간 소매치기는 뭘 느꼈을까.
물론 고통은 있었겠지만,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을 느끼기라도 했다면
나르콜렙시는 몇 번쯤 더 그 머리뼈에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밟아댈 생각이었다.
아무튼, 나르콜렙시에게서 훔치려던 돈주머니가 그의 손에서 튀어올랐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 돈주머니는 스텔라의 손에 가볍게 잡혔다.
“이 개 같은 소매치기 자식, 감히 누구 주머니에 손을 대? 내가 말야, 이래 봬도… 에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신을 잃고 개구리처럼 늘씬하게 쓰러진 소매치기의 머리에서 발을 떼면서 나르콜렙시는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 죽었어?”
“안 죽었어, 죽어도 상관은 없긴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소매치기는 아직 살아있었다. 멀쩡히 살아있다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코뼈가 내려앉고 이빨이 서너 개쯤 부러진 것은 목숨이 붙어있는 대가치곤 싼 대가라고 할 수 있지.
적어도 나르콜렙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죽는 것보단 나은 건 사실이니까.
“자, 그럼 우리도 얼른…”
“얼른 어딜 가시려고? 응? 죽이는 누님. 지금은 ‘반 죽이는 누님’이라고 해야 하나?”
나르콜렙시의 얼굴에 귀찮은 기색이 넘실거렸다.
이렇게 되기 전에 얼른 귀찮은 일을 끝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술술 풀리지 않으려나 보다.
소매치기의 면상을 밟아버린 뒷골목의 앞뒤로,
별로 품위기 넘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딜 가는지 알려주면 단체로 에스코트라도 해 주시려고 그러는 걸까?
친절하기도 하지. 내 일행에게도 좀 배우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친절하단 말야.”
반쯤은 진심이었다. 대체 그 미친개는 어디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생각해보니 열이 뻗친 나머지, 나르콜렙시는 발을 쿵쿵 굴러서 땅바닥을 두들겼다.
“나르카, 누구야? 아는 사람?”
“아니, 전혀 모르는 사람. 스텔라 님은 잠깐 물러나 있어. 금방 정리할 테니까.”
정리한다는 말에 키들키들대는 소리가 골목 양쪽에서 술렁거렸다.
노골적인 비웃음이었지만 나르콜렙시는 웃지도 비웃지도 않고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내었다.
머리카락은 주변의 마나를 잡아먹고 수 갈래의 은실로 늘어나, 한 자루의 레이피어가 되었다.
“자, 남자구실 하기 싫은 새끼부터 덤벼. 단숨에 불알을 터뜨려줄 테니까.”
“뭐야, 마법사야? 묘한 재주를 부리는 누님이잖아? 전부 한꺼번에 덮쳐!”
“한꺼번에 덮친다니, 차암. 말하는 뽄새 봐.”
손에 조잡한 둔기나 무딘 도끼를 쥔 이들이 달려들었다. 움직임은 조잡했고,
연계는 엉성해서 위협이라곤 느껴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잠시 심심함을 달랠 상대로는 적당해 보였다.
이런 류의 멍청이들은 몸 하나는 튼튼하니까.
머리 위로 손도끼가 내려쳐온다.
도끼날의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군데군데 불그레하게 녹이 슬었다.
스치기라도 하면 파상풍에 걸릴 것 같은 상태라 어떤 의미로는 그 무딘 도끼날이 치명적으로 보였다.
“읏차.”
옆으로 한 발자국 옮기는 것으로 도끼를 피해내고는
그대로 손에 쥔 레이피어를 두툼한 아랫배에 찔러넣었는데…
“…?!”
퉁, 하고 칼끝이 허무하게 금속판에 막혀 튕겨 나갔다. 한 겹 누더기 아래에는 단단한 철판이었다.
볼록 부풀어오른 배가 살집이 아니라 안에 덧대 입은 갑옷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르콜렙시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도끼 든 양아치는 몇 걸음 물러났다. 그 사이를 채우듯 이번엔 단검을 쥔 말라깽이가 파고들어왔다.
“안 아프게 찔러줄게!”
“우와, 대사 구려.”
이상할 정도로 둥글둥글한 눈을 가진 말라깽이가 높게 째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단검을 곧게 찔러왔다.
이상하리만치 긴 팔이 짐작도 하지 못한 거리에서부터 뻗쳐왔다.
앗 하는 사이에 나르콜렙시의 눈가에까지 칼날이 다가왔다.
“양아치가 아니라… 광대가 더 어울릴 것 같네…!”
굵은 핏줄이 훤히 비쳐보일정도로 가느다란 팔은 빨랐지만, 그 대신 이렇다할 힘은 없었다.
나르콜렙시는 단검의 칼날보다 먼저, 레이피어의 형상을 풀어헤쳐서 실 상태로 되돌렸다.
뿌직뿌직, 앙상한 팔에 감겨든 실이 근육이 별로 불어있지 않은 팔을 사정없이 조여들었다.
“끄아악…!”
“하지만 막상 목소리가 별로인 걸 보면 그쪽 재능도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고.”
강하게 조인 탓에 곳곳에서 실이 파고들어 피가 튀어올랐다.
뼈까지 부러뜨리지 않은 건 자비였건만, 튀어오른 피는 저들을 심각한 표정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실실거리던 분위기를 버리고는 나르콜렙시를 둥글게 에워쌌다.
피를 본 이상, 쉬이 물러설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마법사 나부랭이라면 처음부터 말을 하라고…!”
“말을 했으면 뭐, 주머니에 손 안 댔다고 하려고? 말이 되는 소릴 하시지. 양아치.”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나르콜렙시는 다시 풀어놓았던 실을 레이피어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레이피어의 날을 눕힌 채 앞을 향해 겨누는 그 자세는 교범에 실어도 좋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자세, 각도, 시선, 호흡… 흠잡을 수 없는 검사의 모습이라, 양아치들은 혼란에 빠졌다.
“뭐야, 저 여자…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검사였어…? 대체 정체가 뭐냐고…!”
그들이 아무리 그저 뒷골목 양아치들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그들에게도 뒷골목에서 살아가기 위한 요령이 있었다.
그는 바로 강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따돌릴 수 있는 상대, 건드려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상대를 고르는 눈썰미는,
미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술이었다. 그런 점에서 소매치기는 무척 운이 나빴다고 해야겠지.
“젠장… 덮쳐!”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외쳤다. 나르콜렙시는 눈을 크게 치뜨고 명령을 내리는 이를 눈여겨보았다.
머리는 크고, 머리에 비해 손발과 몸통은 자그마하다. 난쟁이. 무척 못생겼다.
“우우우오오오!”
몹시 단순한 비명을 내지르며 돌진해오는… 아까의 갑옷 입은 양아치. 여전히 스치기도 싫은 도끼를 쥐고 있었다.
도끼로 싸우는 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얼기설기 두서없이 휘두르는 도끼질이 나르콜렙시를 노리며 쏟아져왔다.
나르콜립시는 불규칙한 듯이, 하지만 손에 익은 그 규칙대로 휘둘러지는 노도 어린 도끼질을 눈에 천천히 새겨넣었다.
몽마로서의 힘을 드러낸다면 뭐, 여기 있는 멍청이들을 눈짓 한번에 포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런 추잡한 녀석들에게 매혹을 쓸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가 않았다. 대신…
‘저기!’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듯해도 같은 궤도를 큼지막하게 반복하는 그 도끼날의 틈바구니를 나르콜렙시의 분홍색 눈이 파고들었다.
숨을 천천히 내쉰 뒤 잠시 멈추고, 칼끝을 침착하게 세운 다음…
‘…지금!’
쏘아내었다.
레이피어의 끄트머리가 별빛처럼 쏘아져나갔다.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나아간 칼끝이, 처음 쇠갑옷에 칼을 찔러넣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착탄했다.
다소 둔하고 멍청해보이는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아마 갑옷 입은 놈에게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 뭐…엇?!”
쩌저적, 쩌저적, 쩌저적…
두꺼운 쇠로 짜여진 갑옷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균열이 퍼져 나갔다.
그 갑옷은 그저 단 두 번의 찌르기를 받아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갑옷에 퍼져나가는 붕괴는 그칠 줄 모르고,
어깨에 걸쳐진 멜빵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쇳덩어리가 되어서는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나르콜렙시가 생긋 웃었다.
“더 해?”
“으, 큭…!”
갑옷이 벗겨진 우둔한 거한을 포함해서 양아치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이제야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나르콜렙시가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 레이피어를 세우며 한 걸음 더 다가섰을 때였다.
나르콜렙시는 그들 중 몇몇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그려진 것을 보았다.
“꼼짝 마, 계집!”
비열해보이는, 그리고 몹시 억눌린 목소리가 등뒤에서부터 들려왔다.
돌아보자… 이런. 나르콜렙시는 귀찮게 돌아간 등뒤의 상황을 보곤 탄식했다.
얼굴이 신발 모양으로 일그러진 소매치기가 씩씩거리며… 스텔라를 붙들고 있었다.
손에 쥐여진 단검은 아마 맨 처음에 팔을 망가뜨린 긴 팔 양아치가 들고 있었던 건가.
“그래, 그래… 제법 설쳐주시는데, 계집.
이 꼬맹이 목이 눈앞에서 그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버려. 당장 버려!”
나르콜렙시는 미간을 모으고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제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소매치기가 얻어맞아 일그러진 입가를 씰룩거리면서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소매치기가 그렇게 판단한 건 무리가 아니었다.
분명 나르콜렙시는 뺨에 땀이 맺힌 채로 스텔라와 소매치기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하지 마, 하지 마….”
조곤조곤 달래듯한 소리는 소매치기를 더 기고만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가 더 바짝 칼날을 스텔라의 목에 닿을 듯 말듯 가져다 댄 순간, 나르콜렙시가 소리질렀다.
“하지 마!”
푸드득.
금색을 두른 까마귀의 날개가, 스텔라의 등에서부터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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