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71화 (71/79)

〈 71화 〉 3 / 개의 인사는 싸움이다 (3)

* * *

(3)

처음에는 이 가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건 이 가는 소리라기보다는 맷돌이 굴러가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묘하게 귀에 거슬려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가운데… 대장간 안쪽, 지하로 통하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미안하구만. 형이 좀 잠버릇이 나빠서 말이지.”

“잠버릇이 나쁘다고 말하고 퉁칠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드워프는 아시다시피 난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돌로 만든 침대에 놓여있는 무언가는 난쟁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그 의미가 한창 일탈해 있었다. 물론 몸통에 비해 팔다리가 두껍고 짧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짧고 두꺼운 다리가 사람 셋을 겹쳐 쌓은 길이라서가 문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거대한 다리와 커다란 발조차도 그 다음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었다.

“…아니, 이건 그냥 돌덩어리잖아.”

누워서 코를 골고, 이를 갈면서 자고 있는 건 그래도 인간형 종족인 드워프가 아니라 그냥 거대한 석상이었다. 푸른 빛이 도는 회색 돌의 표면은 우둘투둘했고, 슬쩍 손으로 짚어봐도 그냥 돌이었다. 거대한 손발과 다리, 돌로 된 배 위에 놓여 흔들리는 수염까지 전부, 그냥 돌덩어리다.

“뭐,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법이지. 무기 맡기러 온 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잖나.”

하긴 그렇다. 돌로 된 드워프든 나무로 된 엘프든 쇠만 잘 만지면 아무래도 상관없지. 평범한 드워프인 동생 쪽의 말에 일리가 있어서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기는… 개뿔.

“아니, 정말 제대로 손볼 수 있는 게 맞아? 내 검을 이쑤시개로 쓰는 게 아니냔 말야.”

“그런 말을 하는 손님들이 좀 있긴 하지. 하지만 형이 일하는 솜씨를 보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갈걸.”

동생 쪽 드워프는 조금 뻐기듯이 말하면서 주홍색 수염을 쓰다듬고는 주섬주섬 한구석에 놓여있던 돌망치를 양손에 쥐었다. 아무리 봐도 대장장이가 쓰곤 하는 작업용 망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워해머인데.

“귀를 막고 있는 게 좋을 거라네.”

불문곡직하고, 동생 쪽 드워프는 아직도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형(?) 쪽으로 다가갔다. 받침대를 딛고 그의 머리 위에 선 드워프가, 그의 코에 워해머를 내려쳤다. 그의 충고대로 귀를 막고 있었는데도 고막에 쩌렁쩌렁 울리는 타격음이 지하굴 안에 마구 퍼져나갔다.

부르르, 돌로 된 배가 무겁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잠시 멈췄다. 바닥에 늘어져 있던 다섯 갈래로 쪼개진 돌덩어리… 아니, 실례. 손가락이 더듬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천둥 같이 울리는, 동굴 안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지른 듯한 목소리가 귀찮다는 듯이 돌로 된 수염 안에서 번졌다.

“으… 음? 뭐야, 벌써… 아침인가?”

“아침은 이미 지나서 점심이라고. 형. 손님이 왔으니 일어나 봐.”

코 부분을 워해머로 제대로 얻어맞았음에도, 그저 뭉툭한 코를 돌로 된 손끝으로 두어번 매만졌을 뿐인 드워프 석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다음, 얼이 빠져 있는 이쪽을 수정으로 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오, 음. 어… 안녕하신가.”

잠이 덜 깨서인지, 말 그대로 돌머리라서 머리가 잘 돌질 않는 것인지, 드워프 석상의 반응은 몹시 굼떴다. 정말 제대로 무기를 볼 수 있는 게 맞긴 한지 슬슬 의심이 의혹으로 번지려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통성명이 아직이군. 이쪽은 우리 형 팔라르. 그리고 난 갈라르. 앤빌튼 거리의 드워프 형제라면 우릴 말하는 거지. 대개의 손님은 형 얼굴을 본 적도 없지만.”

“동생아, 넌 너무 말이 많아.”

“형이 너무 낯을 가리는 거지.”

팔라르… 라고 불린 드워프 석상은 한번 느리게 머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더니, 주변의… 돌절구 같은 것을 손으로 움켜쥐고 그 안에 고인 물을 들이켰다. 상당히 커다란 절구로 보였는데, 팔라르의 손에 잡히니 그냥 돌잔에 불과했다.

“뭐, 여하튼. 방금 동생이 소개했던 그대로… 팔라르라네. 내 동생이 손님을 아무나 나한테까지 데려오진 않는데, 어지간히 손님이 마음에 들었거나 아니면 무기 쪽이 심상치 않거나 둘 중 하나지. 일단 뭘 맡기러 왔는지 보여주게.”

“혹시 내 친구의 활도 댁이 봐준 건가?”

“아하. 그 하프 오우거의 지인인가? 마음에 드는 사내였어.”

오우거에 대한 인식은 어딜 가나 별로 좋지만은 않을 텐데, 두 드워프, 팔라르와 갈라르는 아질을 퍽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었다. 뭐, 오우거치곤 신사적이고 점잖고 사나이답다는 건 인정하겠다. 성질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사라에게 추근덕거리지만 않으면 정중한 성격이니까.

“그 친구의 소개라면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겠구만. 그 커다란 놈인가?”

“그런데.”

어깨에 지고 있던 흉검을 풀어 내밀었지만, 사람 몸통만한 흉검도 그 드워프의 앞에서는 아까 말한 그대로… 이쑤시개 사이즈에 불과했다. 이 드워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서 삼켜버리는 건 아니겠지?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네. 자, 나를 베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그 검으로 날 힘껏 쳐보게.”

“…엥?”

방금 뭐라고? 지금 자기를 베어보라고 했나? 이건 뭐 신종 개꿀잼 도발인가?

순간 멍한 기분에 올려다보자, 팔라르는 껄껄 웃었다. 몸집이 워낙 거대해서, 땅이 우르르 울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큼지막한 웃음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백이면 백 자길 놀리는 줄 알고 그런 표정을 짓는단 말이지!”

“뭐, 형의 말은 말 그대로니까 사양 말고 한번 쳐 보라고.”

동생 갈라르까지 거들고 나섰다. 찜찜한 기분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종용하는데 쫄아서 물러날 만큼 난 새가슴이 아니란 말이지. 한걸음 물러서서, 그가 여길 치라는 듯이 내민 팔을 노려보고 자세를 잡았다.

“말해두는데 팔이 잘렸네 어쩌네 하는 소리 해도 난 모른다고.”

“순순히 날 치려고 하는 손님들이 열 명중 아홉 명이면, 그 아홉 명은 꼭 그 말을 하더군.”

좋아. 이렇게 되니 기왕지사 저 두꺼운 돌덩어리를 자를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팔 한짝 잘리고 나면 무기를 어떻게 다룰지도 슬슬 보고싶어진다.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그 팔 한짝 잘리는 꼴을 봐야겠어. 외팔이가 될 각오를 하시라고.”

자기 입으로 스스로 뱉은 말이니 불만은 없으렷다. 팔에 힘줄이 터지도록 힘을 불어넣은 뒤, 그대로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최근 이것저것 베어버린 터라 날이 조금 무디긴 하지만, 무딘 돌조차 쪼개지 못할 정도로 영락하진 않았다.

“하아아압!”

내려쳤다.

생각한 그대로의 힘과 속도, 그리고 검기를 담은 일격이었다. 한창 때는 마왕의 목을 베었고, 최근에는 또다른 마왕마저 베어버린 검이…

“끅…!”

딱딱한 돌덩어리에 칼날에 부딪힌 순간, 손이 저릿저릿하도록 강한 충격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칼자루를 쥔 손에 전해온 건 반동만이 아니었다. 칼날에 스며든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면서 몸을 뒤트는 듯한, 삿된 감촉이었다.

“호오… 이건.”

팔라르의 돌눈썹이 까딱거렸다. 돌로 된 팔에 아주 약간 칼날이 밀고 들어갔지만, 그만큼 흉검의 이가 빠지고 칼날이 깨졌다. 젠장, 제대로 손해 보는 장사다. 팔라르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는 바닥의 모래를 손으로 긁어 상처를 채웠다. 그러자 부글거리는 모래가 균열에 스며들어, 흉검이 낸 상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손님, 대체 그 검으로 뭘 베고 다닌 겐가? 내 몸에 칼날이 닿는 순간… 뭐라고 할까. 무척 엄혹한 기척을 느꼈다네. 아마 내 몸을 돌로 만든 정령들이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김이 팍 새서 천천히 흉검을 되돌렸다. 이 돌덩어리 드워프는 허풍을 떠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돌덩어리라면 그대로 베어버렸든 깨부쉈든 했을 테지만… 칼이 부딪힌 순간 강한 저항을 느꼈다. 언데드에 마물이 되어버린 몸이 흠칫거릴 정도로 강하고 순수한 저항이었다.

“글쎄, 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만. 뭐 아무튼. 이거 고칠 수 있겠어?”

“쉽게 말하는군. 망가진 칼날을 고치는 정도는 대장장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아마 내 이전에도 솜씨 좋은 장인이 칼을 손봤던 것 같은데,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닐 테지. 흠.”

돌덩어리 손이 각진 돌턱을 쓰다듬었다. 내가 서도 넉넉할 것 같은 손바닥이 앞으로 내밀어졌고, 조금 찜찜한 마음인 채로 그 손바닥에 흉검을 올려놓았다.

“조금 자세히 봐야 할 것 같네.”

두 손가락 끝으로 칼자루를 조심스럽게 잡은 팔라르가 수정으로 된 눈으로 흉검을 들여다보았다. 하는 말이 슬슬 못미더워지려고 하는데, 이번엔 손바닥에 검을 올려놓고 들여다보기도 하고, 몇 번에 걸쳐 흉검을 살핀 팔라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구만.”

곤란한데.

밤에는 그 검을 바로 써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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