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3 / 개의 인사는 싸움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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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적어도 얼굴밖에 모르는 전사의 멱을 따러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은 다행이다.
앤빌튼 거리는 요란하게 망치 울리는 소리와 후끈거리는 공기가 거리의 초입부터 확 느껴지는 것이었다. 스파타스 어디에 가도 마찬가지인 것이 한가닥 한다는 전사들이었지만, 여기는 한층 기세등등한 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단 자신의 무기가 날카로워지면 대개의 전사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법이니까.
“제대로 찾긴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여기에서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젠장, 아질 자식. 끝까지 좀 알려줄 것이지.”
괜히 이 자리에 없는 아질에게 한 마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일단 마음을 조금 느긋하게 가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사람이 우글우글한 판국인데, 여기에서 괜히 급하게 굴었다간 싸움나기 십상일 것이다. 어깨만 부딪혀도 서로 죽일 듯이 눈을 부라리는 곳이니.
“…여긴가?”
그나마 말이 조금쯤 통할 법한 인상의 행인들을 골라 길을 몇 번쯤 물은 끝에 ‘드워프 형제’가 일하고 있다는 대장간에 도착한 건 좋았는데. 어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아무리 봐도 주위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전부 무기를 맡기러 온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그러니까, 왜 내게 무기를 팔지 않는다는 거요? 값은 얼마든지 낸다고 하지 않소.”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꾹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기세여서, 곧 싸움이라도 벌일 기세다. 뭔가 불상사라도 있으면 곤란한데. 끼어들지 어떨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일단 좀 가까이 가볼 필요는 있겠다.
“실례. 좀 지나갑시다.”
구경꾼들을 헤치고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어깨를 부딪친 구경꾼들 또한 이 시기에 스파타스에 있는 이들인 만큼 싸움에 이골이 난 이들이었지만, 일단 어찌어찌, 별달리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앞쪽까지 나올 수 있었다.
‘어라? 저 녀석은….’
저번에 교차로에서 부딪힌 마차에 타고 있던 그 젊은이다. 청금발에 깔끔한 예복, 그리고 면도 자국조차 보이지 않는 파르스름한 턱. 파란 눈동자는 초조하게 찌푸려진 채, 장갑 낀 손을 허리에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조함을 받아내고 있는… 젊은 녀석의 가슴팍에나 올 법한 키를 가진 드워프는, 옹고집으로 가득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다보고 있더라.
“난 내 작품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녀석에게만 판다고. 네 녀석처럼 비실비실한 녀석에게는 팔지 않아. 마구잡이로 휘두르다가 제풀에 다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썩 돌아가. 난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일 못하니까!”
“난 충분히 당신이 만든 무기를 다뤄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소!”
결국 젊은 쪽도 마주 소리를 질렀다. 사태가 흥미진진해지는구만.
드워프는 마치 짐승의 털가죽처럼 빳빳하게 자란 덥수룩 수염을 한번 두꺼운 손으로 매만지더니 비웃듯이 흥, 하고 숨을 내뱉었다.
“글러먹었어. 체격, 자세, 성품…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 네 녀석같이 비리비리한 녀석은 부엌에 가서 부엌칼이나 드는 게 딱 맞겠군. 아니면 바늘을 쥐고 수라도 놓던가. 얼른 내 일터에서 꺼져!”
순간 젊은 녀석의 눈에 불이 튀었다.
허리에 차고 있는 레이피어를 뽑아들자마자, 이쪽에서 몸을 던졌다.
순간 구경꾼들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있었다.
날이 선 레이피어의 끄트머리를 붙잡은 손가락 사이에서 검붉은 핏방울이 번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대로 팔에 힘을 주어, 레이피어를 쳐내자 젊은 녀석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마 자신이 칼을 뽑았다는 사실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다.
“쓸데없는 참견을 했군. 뭐, 고맙긴 하지만. 누구신가?”
“장사하는 처지에 그렇게 손님을 막 대해도 되는가 몰라. 나도 손님인데 걱정되는데.”
손을 한번 털어냈다. 찢긴 손바닥이 슬쩍 쓰라렸지만, 문득 내려다보는 사이 상처가 스멀거리면서 점점 좁혀드는 게 보였다. 부글거리는 살점이 차오르는 게 비위가 약한 녀석은 보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봐, 함부로 칼 뽑지 마. 휘두를 배짱도 안 되면 뽑은 칼에 그대로 맞아 죽기 쉬운 곳이 여기야.”
“당신이 참견할 바가 아니오!”
슬슬 체면을 차릴 여유마저 잃어버렸는지 씩씩거리는 꼴이 꽤 볼만하지만, 드워프의 말마따나 검을 쥔 자세는 영 아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 다리는 어설프게 벌어졌고, 허리는 후들거리고, 팔에는 힘이 너무 들어갔다. 전형적으로 검을 배워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칼, 집어넣으라고.”
눈에 힘을 주고 위협하자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젊은 녀석의 손에서 칼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칼을 놓친 줄도 모르고 숨이 막힌 듯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겨우겨우 숨을 쉬었다. 그 정도로 안색이 질릴 정도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구만.
“호오… 자넨 꽤 쓸만하구만? 이 근처에 넘쳐나는 멍청이들보단 좀 나은 편이야.”
죽 지켜본 드워프는 나와 젊은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째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이쪽으로서도 괜찮은 인상을 줬다면 나쁘지 않다. 피차 일을 맡기러 온 것 아닌가.
“말이 통할 것 같아 좋은데. 그럼 일을 좀 맡아주려나?”
“내 마음에 드는 녀석이면 맡아주지. 뭘 원하지? 검, 철퇴, 도끼, 방패, 갑옷, 활… 뭐든 있다고.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나? 못 보던 얼굴인데, 난 그렇게 이름이 알려진 편은 아니라서 말일세.”
“소개를 받고 왔지. 덩치가 산만한 궁수 녀석인데, 혹시 아슈?”
잠시 곰곰히 생각하던 드워프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쳤다.
“그 하프 오우거 궁사 말인가! 내가 활을 좀 손질해줬지. 용의 뼈로 만든 보기 드문 대궁이었어. 무기 손질도 잘 되어있어서 내가 크게 손볼 건 없었지.”
아질이 애용하는 활은 용의 뼈를 깎아 만든 대궁이며, 시위 또한 용의 힘줄로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하프 오우거인 아질 정도나 다룰 수 있는 물건인데다 아질이 애지중지하는 터라 어지간한 장인에게는 맡길 리가 없는데.
“마음에 드는 사내였어. 술도 잘 마시고, 활을 손질하고 나자 시험하겠다곤 그 길로 커다란 버그베어를 잡아 와 통째로 구워서 같이 밤새도록 마셨지. 좋은 친구야.”
“그러셨나. 내 친구를 좋게 봐줘서 다행이긴 한데, 슬슬 일 얘기를 좀 합시다.”
등에 메고 있던 흉검을 풀어 내밀자, 드워프의 좁쌀만한 눈이 슬그머니 커져서는 두툼한 손으로 받아들었다. 웃, 하고 조금 놀란 소리가 드워프의 수염 사이 정체모를 입에서 터져나왔다.
“호오… 이거 꽤… 어디서 난 건가, 이 검?”
“그건 몰라도 되고, 요즘 들어서 조금 베는 맛이 별로 안 좋아서. 좀 봐주쇼.”
“흐으으음.”
흉검을 쥔 드워프가 칼자루의 폼멜부터 칼날 끄트머리까지 천천히 훑어보면서 자못 신중하고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두 눈이 번갈아 찌푸려지고, 크게 뜨이기를 반복하는 게 영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 와중에,
“잠깐 기다리시오!”
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젊은 녀석의 항의가 터져올랐다.
귀찮다는 듯 뒤돌아본 곳에, 젊은 녀석의 어깨가 들썩거리면서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먼저 와서 일을 부탁한 나는 무시하고, 저 사람의 검을 봐주는 것이오? 이건… 이건 너무 무례하지 않소!”
젊은 녀석의 항의는… 뭐, 옳다. 분명 나중에 온 내 검을 먼저 손질해주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이긴 하지. 하지만,
“검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녀석에게 가당키나 하냐. 넌 제대로 칼 다룰 줄도 모르는 애송이고, 난 그런 애송이를 위한 장난감 같은 건 벼리지 않아. 정 원한다면 칼 제대로 쓰는 법부터 배워와라.”
드워프의 귀찮아하는 듯한 통렬한 말이 젊은 녀석에게 마구 꽂혔다. 역시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말을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싸움에 이골이 난 모양이다. 하긴, 스파타스에서 거친 용병들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무위는 몸에 익혀두고 있겠지.
“하지만 이건 내 솜씨로는 조금 벅차겠군…. 안으로 들어와. 형에게 한번 봐달라고 말해볼테니까.”
내 검인데도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드워프의 솜씨로도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인지는 몰랐는데. 게다가 센 영감에게 맡겼다가 받아온 검이니만큼… 내 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장막 안쪽으로 사라지는 드워프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센의 대장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많은 쇳덩어리들이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기 선반에 얌전히 놓인 완성된 무기부터, 실패작으로 판명되어 버려진 무기들까지. 폐기공처럼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무기들을 보면 어쩐지 조금 마음이 식는 듯한 기분이었다.
먼저 앞서가던 드워프가 곰가죽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따라 들어가는데… 푸짐하게 코고는 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들렸다.
드워프가 뼈대가 굵고 몸이 단단한 종족이긴 해도 타고난 키가 작아 난쟁이로 취급되는 종족인데… 왜 이렇게 코고는 소리가 우렁찬가, 하고 의아함에 눈을 깜빡거렸다.
곰가죽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비밀이 눈앞에서 풀렸다.
드워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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