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65화 (65/79)

〈 65화 〉 2 / 흥정은 말리고 싸움은 붙여라 (4)

* * *

(4)

“파티원은 잘 두고 볼 일이라니까.”

나르콜렙시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스텔라는 여전히 표정으로는 감정을 읽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그래도 영주성에 들어오고 나서는 다소 적극적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복도에 걸린 예술품이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것에 흥미가 있었는지는 몰랐는데.

“꼼짝없이 밤이슬 맞고 뒷골목에서 자게 될 줄 알았는데 사람 죽으란 법은 없어, 정말로.”

“뭐야. 빈 방이 그렇게나 없었냐?”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나르콜렙시는 몸서리를 쳤다.

“응. 어느 여관에 가봐도 빈방이라고는 하나도 없더라구. 심지어 마굿간에 창고까지 사람들이 다 들어차 있어서 영 글렀다 싶었던 참이야.”

킁, 하고 조금 분한 듯이 코를 울리는 품이, 정 안 되면 매혹이나 미인계마저 불사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없는 방이 떠억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며 나가더니만.”

“이렇게까지 빈방이 없을 줄은 전혀 몰랐다구.”

표정이 홱홱 잘도 바뀐다. 풀이 죽었다가, 툴툴거리면서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하여간 종잡을 수가 없는 녀석이다. 보나마나 뻔하지. 일단 자기 얼굴을 들이밀면 누군가는 방을 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실제로도 몇 번은 효과가 있었고.

“하여간 다재무능한 녀석이구만. 자신만만해하면서 나가더니.”

“흥… 계속 그렇게 놀려봐. 나도 삐지면 나한테도 생각이 있는 거야.”

생각이 있다니, 어이쿠 무서워라. 대체 무슨 소린지.

부루퉁하게 입을 조금 내민 나르콜렙시가 뾰로통한 얼굴 그대로 조그마한 쪽지 하나를 건넸다. 길이는 손가락 하나 정도.

“…뭔데, 이게?”

“나도 몰라. 독수리 한 마리가 나한테 전해 주고 갔어.”

돌돌 말린 쪽지… 이거 마법사들이 쓰는 주문지인데.

나한테 이런 걸 보낼 마법사가 스파타스에 있나?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면서 돌돌 말린 쪽지를 펼쳐보았다. 나르콜렙시가 옆에서 쪽지의 내용을 보려고 힐끔거리는 건, 굳이 제지하진 않았다.

[웻스톤 지구의 블러디워터 주점.]

“…이게 끝이야? 외상이라도 달아놨어? 뭐야… 독수리까지 붙여서 찌라시를 날리다니 꽤 호객에 진심인 술집…”

나르콜렙시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몸을 일으키자, 녀석의 시선이 따라온다.

“가보게?”

“어.”

“나도 갈래!”

…이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렇게 나오니 귀찮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떼어놓자니 성가시게 굴 게 뻔하다. 스텔라는 레오레가 보고 있을 테니 잠시 다녀오는 정도는 뭐, 별 일이야 있을까.

“얌전히 따라와.”

“응. 근데 그거 보낸 거 누구야?”

“너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맞춰보든가.”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니 나르콜렙시는 미간을 한데 모으고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주성을 나와서 웻스톤 지구로 향하는 마차를 탔다. 웻스톤 지구라, 꽤 오랜만인데.

저마다 무기를 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지나쳐 웻스톤 지구에 내리자마자, 마중나온 이가 있었다. 튼튼한 날개를 퍼덕이면서 내가 뻗은 팔에 내려앉은 커다란 독수리였다.

“아, 이 독수리였는데! 어… 알아? 이 독수리 누구 건지.”

“너도 잘 아는 녀석의 독수리인데, 정말 까먹었냐.”

한심하다는 듯이 한번 톡 건드리니 으으으, 하고 분해하는 소리를 내는 나르콜렙시의 반응이 재밌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른 고기를 받아먹는 독수리도 나르콜렙시를 보는 눈이, 마치 개구리 급의 지성을 가진 사냥감을 보는 것 같아 통쾌하다.

“대체 누구 독수리인데!”

“곧 알게 된다. 가자고.”

팔을 위로 슬쩍 들어올리자 독수리가 푸드득거리며 날았다. 그 뒤를 느긋이 쫓아 인파가 북적거리는 거리를 걸었다. 으으으, 하고 여전히 분한 나머지 생각에 빠져있던 나르콜렙시가 사람들에 밀릴 즈음, 쯧 하고 녀석의 손을 꽉 붙잡았다.

“따라올 거면 뒤처지지나 말던가.”

“이렇게 사람 많을 줄은 몰랐다 뭐.”

“방 잡느라 그렇게 고생했다면서?”

몰려오는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느라 독수리를 놓칠 걱정은 없다.

녀석은 이따금씩 근처 지붕에 앉아 울음소리로 제 존재를 확실히 알릴 정도로 똑똑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몇 번쯤 녀석의 울음소리를 따라 가보니…

“여긴가보구만.”

“…이런 외진 곳에 왜 하이엔 군을 불러낸 거래? 원한이라도 샀어?”

“원한을 산 곳이야 잔뜩 있지만, 이번엔 아마 아닐걸.”

블러디워터 주점이랬던가.

그 간판을 가진 허름한 뒷골목 술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르콜렙시의 손을 놓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손이 놓아지질 않는데.

조금 눈을 치뜨고 뒤를 돌아봤더니, 뻔뻔한 웃음을 문 그대로 꽈아악,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좀 놓지?”

“싫~어. 누구 좋으라고. 혹시 여자가 불러낸 거면 창피 좀 당해보라고 해.”

…여자긴 한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걸?

입씨름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몸을 돌려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뒷골목 주점치고는 안은 꽤 왁자지껄했다. 어느 가게나 손님으로 북적인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나보다.

“이쪽입니다.”

묵직하고 야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중한 목소리.

내게 있어서 몇 안 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날 불러낸 이의 정체는 나르콜렙시에게도 꽤 충격이었는지, 스르륵 잡혀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질.”

“생각보다는 더 빨리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이엔.”

“그러게.”

하프 오우거 궁사, 아질은 그에게 어울리는 커다란 나무잔을 흔들면서 반색했다. 아마 그의 앞에 가지런히 정리된 맥주병들은 그 혼자 해치웠을 것이지만, 하프 오우거의 혈통인 아질에게는 뭐, 반줏거리도 되지 않았겠지.

내가 내민 주먹에, 나보다 두 배는 큰 주먹을 맞부딪히면서 아질이 짐짓 험상궂은 얼굴로 웃었다. 그의 눈이 나르콜렙시를 향했다.

“그쪽도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되는군요.”

“…어… 그 독수리, 네가 보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아, 어디서 봤다 했더니!”

“저도 당신이 이 도시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하이엔과 같이 다니고 있을 줄도 몰랐죠.”

나르콜렙시는 무척 얼떨떨한 얼굴로 그제야 독수리의 정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질이 기르는 독수리인 팀이었다고, 이름도 아마 까먹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뭐, 기억하고 있는 게 이상하긴 하지. 나와 이 녀석… 용사 파티에 속했던 녀석이 아니었다면야.

“사라는?”

하지만 정작 이 녀석은 왜 혼자지?

지금은 이 녀석의 아내가 되어 지난번에 봤었을 땐 만삭의 몸이었던 하프 엘프 마법사 사라스바티는 어쩌고?

“사라는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하프 엘프와 하프 오우거 사이에 아기가 생겼다니, 정말 전대미문이야.”

나르콜렙시는 신기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 하고 팔짱을 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다. 뭐, 아질의 말로는 ‘할 때까지 했더니 되더군요’ 라고 그랬던가. 그 말을 들은 사라스바티에게 등짝을 얻어맞았었지만.

“무사히 낳은 모양이구만. 그럼 한잔 하지 않을 수 없겠어.”

“고맙습니다. 하이엔. 당신의 소식도 들었습니다.”

맞은편 자리에 마주앉은 나와 나르콜렙시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아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혹여 누군가가 듣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양이지만, 이제 딱히 누가 들어도 상관없는 일인데.

“…듣자하니 윈돌에서 큰일이 있었다지요.”

“설명하자면 길어.”

“정마아아알. 나도 그렇고, 엄청 고생했다구.”

나르콜렙시가 너스레를 떨 만한 일들이 많았다. 윈돌에서는 살아나온 게 신기할 정도의 하룻밤을 겪었었다. 게다가… 몸속에 마물까지 쑤셔넣어지고 말야.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좋다.

아질도 알아야 하는 일은 달리 있었다.

“윌리엄 자식을 만났어.”

“윌리엄… 배교 혐의로 교수형을 당했었습니다만.”

“알고 있었냐?”

아질의 다음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는 잠시 두꺼운 입술을 다문 채 말을 아끼더니,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건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나한테나 할 수 있었겠지.

“…우르슬라 법국에서 죽은 윌리엄을 수습해온 게 저와 아내니까요.”

“뭐…?”

전혀 몰랐다.

그러고보니 윌리엄이 어떻게 그렇게… 말에 어폐가 있을 순 있지만 사지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녀석은 목에 깊게 남은 밧줄자국 외에는 이렇다할 외상이 없었다.

우르 율황령, 혹은 우르슬라 법국에서는 교수형을 당한 시체는 그냥 불에 태워버린다. 그렇게 되기 전에 손을 쓴 게, 아질과 사라스바티였단 말인가?

“…위험한 짓을 했구만.”

“두고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나르콜렙시마저 얼이 빠져 입을 다물 정도다.

위험한 짓, 이라고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칫하면 아질과 사라스바티마저도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큰 문제로 번질 일도 아니었다.

만약…

“그 자식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무슨 말입니까?”

거기까지는 몰랐던 건가?

하긴, 사라스바티는 정령마법과 치유마법에 통달했지만, 죽은 자를 일으키는 강령마법, 네크로맨시에 대해서는 꽤 혐오하고 있었다. 아무리 동료가 소중하다고 해도, 죽은 동료가 여신의 품에 들어 안식하기를 바랐을지는 몰라도 소생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윈돌에서 있었던 일. 그건 전부 그 자식이 꾸민 일이었어. 아이온 크로니클, 녀석의 본명이다.”

아질의 몸이 덜컥 굳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교집합에,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아질이라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온 크로니콜 사건은 율황청을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의 대사건이었으니, 그 장본인이 동료였다는 말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설마… 그게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도 못했습니다.”

“나도 윈돌에서 알게 된 거야. 그 자식…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몰라도, 완전히 미쳐버렸어.”

목이 탔다. 쓴 맥주를 한 모금 서둘러 마셨지만 쓴맛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기엔 이 이야기의 뒷맛이 충분히 쓰디썼으니까.

“사라한테 얘기를 듣고 싶은데. 지금 할 수 있을까?”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일단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섣부른 것 같으니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아, 알아.”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에게 ‘네 옛 동료는 사실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진짜 배교자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말재주에는 별로 자신이 없는데, 그 머리 좋은 사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잘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럴 때에만은 쓸모가 있는 ‘혹’을 데려온 게 지금으로서는 퍽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아질의 시선이 슥 돌아가, 합석하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맥주를 홀짝거리던 ‘혹’이 분홍색 눈을 투명하게 반짝였다.

“…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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