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1 / 견토지쟁(?之?) : 개와 토끼가 다투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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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짐마차와 함께 행동한 지 사흘째.
달이 밤하늘에 녹아들 정도로 깊은 밤이라, 불침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들었다.
한 명을 더 제외하자면 나다. 어째서인지 윈돌에서의 일 이후로 밤잠이 거의 줄어들어서, 밤이면 남아도는 시간과 체력을 쓰기 위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오곤 했다.
물론 그저 단순한 산책은 아니다.
운 좋게 강한 몬스터를 만나면 럭키. 아니면 혼자 쓸쓸이 칼을 천 번쯤 허공에 휘둘러대다가 동이 틀 때쯤 해서 시끄러운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이걸 뭐 대충 칼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오늘도 즐거운 칼칼이를 치려고 짐마차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온 건 좋은데… 오늘은 아무래도 좀 럭키이려나보다.
강한 놈의 냄새가 났다. 코끝에 맡아지는 비릿하고 짙은 짐승 냄새. 아주 가까이에 필시… 버그베어라도 한 마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감각이 예민해진 건 나름대로 편리하다면 편리하다.
이런저런 방해가 될 때도 있긴 해도, 차차 적응해나가면 될 일이고.
아무튼 냄새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되짚어서 나아갔다. 하지만 곧 헛짚었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누릿하고 비릿한, 강한 짐승 체취였을 냄새에 그보다도 더 익숙한 냄새가 섞여들기 시작한 참이다.
피와,
달아오른 쇠의 냄새가.
냄새의 끝을 쫓아간 곳에는, 자연계의 법칙을 거스른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토끼가 곰의 숨통을 끊는 모습은 어지간해선 볼 수 없겠지.
“후우, 후우, 후우…”
격정을 식히는 거친 숨소리가 발그레한 뺨 아래 벌어진 얇은 입술에서부터 새어나왔다.
한껏 달아오른 빨간 눈동자에는 마치 욕정을 한껏 풀어낸 후의 잔열이 남았다.
다만 그 수단이 교접이 아니라…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한 자루 칼에 의한 폭력에서였다는 것이지만.
버그베어의 피를 뒤집어쓰고, 곰의 배 위에 선 채 내려다보는 토끼 한 마리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베어버린 버그베어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잘린 목의 단면이 단 한 번의 칼질로 베어버린 것처럼 깔끔했다.
그러나 알 수 있다. 저 눈은 여전히… 싸움에 굶주려 있다. 싸움만이 아니다. 들끓는 욕망을 풀 수 있다면 아마 무엇이라도 하려 들 것이다.
오히려 저 여자에게 검이란 그 욕망을 해소하는 임시방편 중 하나에 지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어이.”
버그베어의 목을 들고 부르자, 커다란 토끼귀가 쫑긋거리면서 이윽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피를 뒤집어쓴 모습을 보일 것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어떤 갈망에 들끓던 얼굴이 순간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에? 아, 하이엔 씨잖아요. 이런 오밤중에 이런 데에 다 오시고, 하이엔 씨도 어지간히… 잠도 안 오고 심심하셨나 보네요. 아하하.”
“뭐, 너만큼이나 말이지.”
말끝에 녀석의 손을 향해 버그베어의 머리를 던져주자, 거의 반사적으로 그 머리를 베어버리는 손놀림.
수직선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칼끝에 잘려나갔던 머리가 다시 한번 양분되어, 피외 뇌수를 뿌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단면 사이로 두개골의 안쪽 구조가 훤히 비쳐 보였다.
“아, 혹시 제 불침번 차례인가요?”
“알게 뭐야. 네 불침번 차례 따위 몰라. 남아도는 힘을 좀 쓰려고 왔는데, 네가 먼저 내가 찜해놓은 사냥감을 건드렸잖아. 상대 좀 해 줘야겠다.”
“아니, 그런 억지가 어딨습니까.”
야생 몬스터에 찜하고 말고가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먼저 잡는 게 임자라는 말은 언제 어딜 가나 늘 통하는 말이기도 하고.
곰을 잡은 토끼, 라크샤사는 투덜거리면서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이쪽을 향해 겨누었다. 한눈에 알 수 있다. 늑대원숭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쓰던 녀석과 같은 자세다.
“하지만 저도 아직 조금 더 몸을 움직이고 싶었으니 잘됐습니다! 상대 좀 해 주시죠. 한 곡 추시겠어요?”
“가볍게 말하는구만.”
칼자루를 쥐고 천천히 끌어내려 겨누면서 히죽, 웃음지었다.
늑대원숭이 놈과의 싸움은 그럭저럭 즐길 수 있었지만, 성기사 녀석과는 결판을 내지 못해 답답해하던 참이다. 거기에 더해 아이온 녀석과도 승부를 내지 못했고. 요컨대 불완전연소된 투쟁심이 부글거리는 나날이었단 거다.
이 녀석은 적당한 상대가 되어줄는지 어떨지.
“갑니다!”
낭랑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밤공기에 짙게 피냄새를 끌며 울렸다.
그 자리에서 칼끝을 수평으로 세우고, 과감한 찌르기로 돌파해온다. 그 기술도 본 적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낼지 생각도 했었지.
발끝이 단단히, 땅을 붙잡듯이 패였다가 그 반동을 이용해 튀어올랐다. 대련이 아니라 사투에 가까운 살기가 칼끝에 넘실거렸다.
“2형, 치(?)돌풍!”
가까이 다가붙는 라크샤사의 얼굴은 입꼬리가 바들거리는 사나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적어도 토끼가 아니라 육식동물이 지을 법한 얼굴이다.
하지만, 이쪽도 못지않은 포식동물이란 말이다.
뼈마디가 우드득 꺾이려 삐걱거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거운 흉검을 바투 휘둘렀다.
점으로 좁혀오는 찌르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큰 궤도의 후려치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척추가 반 바퀴 회전하면서, 근섬유가 비명을 내질렀다.
“우와앗?! 자, 잠깐, 잠깐요?!”
찌르기의 종착점이 튕겨나면서 날과 날이 부딪혀 불티가 튀었다. 라크샤사의 입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튀었다. 아직 이쪽은 움직일 수 있다. 잠깐은 무슨!
“으랴아!”
뒤로 확 누운 토끼귀를 향해 뭉툭하고 두꺼운 칼날을 내려친다. 동시에 팔과 손아귀에 힘을 욱여넣어 속도를 죽였다.
라크샤사의 바로 머리 위, 칼날이 멈췄다.
하지만 동시에 내 목께에 그녀의 칼날이 다가와 있었다.
“이야… 엄청 식겁했네요. 멈춰주셨어요. 멈춰주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저도 모르겠는데.”
보이지는 않았었다.
물론 죽일 생각으로 휘두른 것도 아니었고, 머리 위에서 딱 멈추도록 힘을 조절했긴 했지만… 동시에 그 이상 칼을 휘두르면 동귀어진할 거라는 예감이 칼끝을 멈추게 했다. 무슨 기술이었지? 녀석의 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었다.
“이거 참. 형(?)이 없는 검이란 상대하기 힘드네요. 스승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에요.”
서로 검을 거두고 물러선다. 방금 전 한 판이 꽤나 흡족했는지 칼집에 제 칼을 꽂아넣는 라크샤사의 얼굴은 상쾌한 기색이었다.
“아, 참고로 제가 쓴 기술은… 앗차. 이건 말하면 안 됐죠.”
“당연히 안 되지. 제 밑천을 그대로 드러내는 멍청이가 어딨냐.”
그나저나, 스승이라.
그러고보니 늑대원숭이는 대장장이 센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데, 이 녀석도 그런가?
“아뇨아뇨. 물론 저도 기회가 닿아 뵐 때마다 검의 손질을 부탁드리고 있지만, 그분과 사제의 연을 맺은 건 어디까지나 늑대 사형 개인의 일이고, 저희 사문과는 크게 관계가 없지요. 아니, 관계가 있긴 한가. 그분이 손질해주시면, 검의 상태가 아~주, 끄으으으읕내주니까요.”
으으음, 하고 급기야 칼집에 뺨을 부비기 시작하는 라크샤사의 모습. 토끼 수인들이 남근에 뺨을 비비거나 하는 건 봤지만 칼집에 비비는 녀석은 처음 본다.
“아하하. 그런 말 자주 듣는다고요. 물론 저도 기운이 떨어지거나 자제심이 극에 달하면… 저도 모르는 사이 불쑥! 튀어나오지만 그런 꼴을 들키면 스승님한테 혼날 테니 말이에요.”
대체 어떤 인물일까.
한 번쯤 칼을 섞고 싶은 욕망이 부글거리는 것은 아직도 내게 검투사로서의 욕구가 남아있어서일지, 아니면 마물의 투쟁욕인지 잘 구분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온 노사라고 부르면서 꽤 존중해주시는 모양이지만 제가 보기엔 주정뱅이 변태 아저씨일 뿐이라고요.”
볼퍼팅어 종족에게 변태라고 불릴 정도면, 슬슬 사람이긴 한 건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제자 둘이 늑대 수인에다가 토끼 수인. 그쪽 취향인가…?
“…그쪽 취향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강하게 한 마디 기묘하게 반론한 뒤 투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호되게 당하기는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검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면 내 귀에도 들어왔을 법한데.
“모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스승님은 어디 한 군데에 터박고 사는 법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는 분이니까요. 저도 부지런히 따라다니다가 이 다음은 알아서 하라고 쫓겨났고요. 늑대 사형한테 들으니 자기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네요.”
센이랑 잘 통하겠구만.
그렇게 몇 마디쯤 더 대화를 나누고 보면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고 예의가 있는 녀석이다.
적어도 나르콜렙시 같은 음험한 몽마보다는 상대하기가 편하기도 하고.
요즘 그 녀석 눈치가 이상하던데, 왜 그런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앗차. 벌써 시간이 꽤 흘렀네요. 전 이만… 후암. 졸려와서. 그만 돌아가도 될까요?”
“그러던가. 난 좀 더 있다가 가련다.”
“…혼자 숨어서 음습하게 자기위로라도 하시려는 건 아니죠?”
전언 철회. 결국 이 녀석이나 그 녀석이나 그게 그거다.
본성이란 숨길 수가 없는 거냐고. 뜨악한 표정을 짓자 킥킥 웃고는 그대로 후다닥, 토끼처럼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우두둑 하고 목을 한번 좌우로 꺾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이나 때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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