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1 / 견토지쟁(?之?) : 개와 토끼가 다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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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반적으로 토끼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지. 복슬복슬한 꼬리가 쫑긋거리는 오동통한 엉덩이는 온갖 육식동물들의 식욕을 부채질하고, 온갖 위험에 무력하게 깡충거릴 수밖에 없는 자연의 약자다.
하지만 세상만사에는 예외가 있는 법.
그런 세간의 인식과는 정반대로 길거리에 나타나기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 되는 토끼도 있다. 눈앞에 나타나면 모두 사타구니를 가리고 도망쳐버리는 그런 토끼.
그리고 그 토끼는 눈앞에 만(卍)자로 누워 있었다.
인부들이 웅성거리고, 마부와 상인 조합 사람들이 부지런히 숙덕거렸지만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말들까지도 투레질을 하면서… 불안한 듯 발굽으로 땅을 긁기도 한다.
“무슨 일이야?”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르콜렙시가 뒤따라왔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잽싸게 내 옆으로 달라붙어 귓속말을 보탰다.
“…우와, 터무니없는 게 나타났잖아.”
고위 몽마가 이런 말을 할 정도다.
나르콜렙시가 질린 눈치를 보일 정도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인부들은 누구도 손대지 않으려고, 그중에서 용기 있고 가장 어린 인부가 긴 작대기를 가져와 쓰러진 토끼… 여자의 머리를 쿡쿡 찔러댔다.
“어이, 길… 비켜! 이렇게 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어떻게 해?!”
“으으, 으으, 으으… 배고파… 바압….”
오, 반응이 있었다. 꿈틀꿈틀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부들이 자기들끼리 계속 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공포감만 더 부추긴 꼴이었다. 죽었으면 차라리 길 한쪽에 치우고 부정타지 않게 정화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살아있다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 레오. 조금 골치 아…”
나르콜렙시가 인기척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둘이 그렇게 친해졌는지, 하고 혀를 끌끌 차려는 순간…
토끼가 바닥에서 사라졌다.
“?!”
“꺄아아아아악?!”
레오레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하늘에까지 닿았다.
커다랗게 벌어진 손이 덥석 레오레의 양 젖가슴을 붙잡고 조그마한 몸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하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토끼 귀가 쫑긋 서서는 빨간 눈동자가 굶주림에 타올랐다.
“가아아아… 슴!”
“뭐, 뭐뭐뭐, 뭡니… 까?!”
레오레의 반응은 거의 반사적이었다.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인 데에 대한 분노, 그리고 수치, 당혹… 그 모든 것이 내찔러지는 창끝에 모조리 담겨있었지만, 토끼 귀의 정체불명 괴한… 은 창끝이 노리는 점으로부터 물 흐르듯이 벗어나고는 한 번 더 레오레의 가슴에 달려들려고 했다.
그 뒷덜미를 내가 붙잡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됐을 것이다.
순간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마치… 덤터기를 뒤집어씌울 대상을 발견한 것 같은 눈이다. 젠장, 당했다.
“그래서… 왜 이 발정기 토끼 족속이 이런 데 나뒹굴고 있는 거냐?”
“나도 모르지…. 대체 왜 수왕족의 일원이 이런 데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냐고.”
나르콜렙시가 레오레의 앞을 막아선 채 두어 걸음 물러섰다.
마치 역병에 옮은 보균자를 대하듯한 태도구만. 한숨이 나온다.
덧붙이자면 몽마가 어슬렁거리는 것도 남들이 알면 기함할 일이다.
“…일단 얘기라도 들어보도록 하죠. 물론… 검성께서 맡아주시겠죠?”
어흠, 하고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알프레드가 헛기침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좋은 생각이다. 이대로 놔두면 뭐라고 해야 하나… 공포에 질린 인부들이 파업이라도 벌일 기세니까. 하지만 그런 얘기는 조금 가까이 와서 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고.
토끼는 축 늘어졌다. 식욕과 색욕, 두 가지가 이 토끼의 몸에서 기운을 모조리 앗아간 듯 하지만, 그중 하나를 채워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지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필요했다.
인부 3명 분의 빵을 잽싸게 먹어치우자, 토끼는 겨우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아, 살겠다아….”
양젖까지 마시고 나서야 겨우 인간다운 소리가 나왔다.
아까의 그… 찌찌 운운을 제대로 된 의사소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라면.
“이야이야, 이거 부끄럽네요. 배가 고파서 정신줄을 놓고 길거리에 쓰러져있었다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가 어딘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윈돌 근처 교외인데.”
“네? 윈돌?”
단적으로 말하자면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눈치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쳐보이고는 아주 제대로 절망한 포즈를 취하는 게 꽤… 전위적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길을 이렇게 잘못 들었을 수가 있나요….”
“…어디로 가려고 했는데?”
“여기입니다. 여기에 인간계에서 가장 강한 검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토끼 여자가 손으로 짚은 곳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스파타스였다.
문득 조그마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 말에 위화감을 느낀 것은 나르콜렙시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목소리를 잔뜩 낮춰서, 토끼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당신, 수왕족 볼퍼팅어 일족이지? 스파타스로는 왜 가려는 거야, 설마…”
“아흐응….”
“제대로 들어!”
볼을 발갛게 붉히고 야릇한 소리를 내는 토끼에게서 나르콜렙시는 학을 떼며 물러섰다.
나르콜렙시가 뭔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사실 뻔하다. 강한 검사들을 덮쳐서… 점잖은 말로 번식하려는 게 아니냐는 거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토끼의 등에 매달린 한 자루 긴 칼이 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조그마한 몸뚱이에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무게. 그건 단련된 몸의 무게였다.
게다가 쓰는 칼의 모습도 그렇다. 살짝 휘었고, 날은 길쭉하고…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너, 늑대원숭이라고 아냐?”
“늑대원숭이? 혹시 사형(??)을 아시나요?”
젠장.
불길한 예감은 대체로 잘 들어맞는 편이라고는 하는데. 4인분째의 빵을 먹어치우고 빨간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보는 시선이 꽤 부담스러웠다. 그 자식, 내가 베어버렸는데.
사형이라고 칭하는 걸 보면 그 놈이랑 동문이란 말인가? 점점 더 골치가 아프다.
“…뭐 일단 마냥 행렬을 멈추고 있을 순 없으니까, 일단 우리는 출발하도록 하죠. 그쪽 분은… 가던 길 부디 조심해서 가십쇼.”
알프레드가 상황을 단박에 정리하는 한마디를 했다. 좋아, 잘 말했어.
여기에 이 토끼랑 얽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 포함해서.
“잠깐!”
토끼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불안한 예감이 함께 번뜩였다.
모양 좋은 코가 벌름거리면서 냄새를 맡더니, 금새 다시 날 향해 입술만을 움직여 속삭였다. 손가락은 나르콜렙시를 가리킨 채였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여자 몽마족인 거 말해도 괜찮겠어요?
…젠장.
제대로 코가 꿰였다. 영주 부탁도 있고 하니 스파타스를 가긴 가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한숨 푹 내쉬고 머리를 북북 긁은 다음 알프레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이 사람(?)도 같이 가는 걸로 합시다. 공교롭게도 길이 겹치는 것 같소만.”
“…하이엔 님, 모르시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네. 알고 있소.”
울며 겨자 먹기.
행운의 토끼발이라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이건 그냥 불운을 덤터기로 불러오는 저주의 토끼 인형이나 다름없다는 걸 잘 알지.
“무슨 일이 있거든 내가 책임지겠소.”
“책임지다니… 이제 처음 만났는데 그런 대담한 말씀을 하시다뇨. 오늘 밤에 그럼 얼른 기정사실을….”
“나르콜렙시, 이놈 묶어.”
“싫어!”
나르콜렙시는 학을 떼고, 레오레는 가슴을 주물러진 충격에 경계심을 최고치로 찍었다.
더 골치 아파지는 건 사양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알프레드는 일단 한숨을 내쉬고는 일단 문제의 토끼 마차에 태우는 데에는 동의했다.
그렇게 행렬은 다시 출발했다. 마부는 혹시라도 저주라도 받을까 싶었는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간혹 토끼와 눈이 마주치면 진저리를 치기도 하면서.
나르콜렙시는 경계 중. 레오레는 초 경계 중.
스텔라는 별 관심없다는 듯이 짐더미에 기대어 조는 중.
“아무튼, 제가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제 소개를 해야겠지요.”
가지런히 무릎을 모으고 꿇어앉아 손은 무릎에 얌전히 둔 모습은 얼핏 제대로 된 예의를 갖춘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라고.
머리카락 위로 하얀 토끼 귀가 삐죽이 솟아있는 한 절대로 방심하지 말 것.
“제 이름은 ‘라크샤사’입니다. 뭐 아시겠지만… 보시다시피 마라고요. 이야, 이런 곳에서 동족을 만나게 되네요. 그쪽 분도 소개 좀 시켜주시죠?”
“몽마족의 나르콜렙시야.아니, 그보다동족도 뭣도 아니잖아. 수왕족이면.”
목소리를 확 낮추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이미 여기에 이 토끼가 마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대신 정체를 폭로당할 뻔한 나르콜렙시가 작게 투덜거리는 것이 들렸다.
스파타스로 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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