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6 / 마무리가 좋으면 뭐든 좋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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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걸신이 들렸었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생각한 것보다 연회는 길어졌다. 하룻밤의 피로를 푸느라 다들 보란 듯이 먹어댔고, 행정관이 질린 얼굴을 할 즈음에야 자리가 파했다.
“…휘유. 꽤 화려한데.”
조금 취한 머리로 비틀거리면서 하인들에게 이끌려간 곳은 영주성 아래에 마련된 목욕탕이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목욕물에서 조금 매캐하게도 느껴지는 냄새가 부글거렸지만, 이게 또 불쾌할 정도는 아니라서 노곤한 몸을 목욕물에 풀어놓으니 끈질기게 몸을 묶고 있던 피로가 풀려나가는 것 같다.
웅크린 가고일 모양의 석상이 계속해서 뜨거운 물을 입에서 토하는 가운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렸다. 뭐야, 나 말고 다른 손님이 들어오기라도 한 모양인가.
“아, 역시 먼저 들어와 있었네.”
“하이엔 님.”
나르콜렙시와 레오레였다.
…새삼스럽게 여자 알몸에 부끄러워하거나 얼굴을 붉힐 정도의 숙맥이 아니었지만, 수건 정도는 두르라고 한마디 하고 싶다. 태생이 음마인 나르콜렙시는 그렇다 치고… 레오레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어색한 손동작으로 가슴과 국부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먼젓번에 저 녀석의 알몸을 봤던 것도 호수에서 씻었을 때였나.
“야, 늬들 뭔 수작들이야. 나 혼자 좀 느긋하게 씻으려고 했는데.”
“그야 검성 군이 씻고 나오길 기다리기가 지루해져서 들어온 거야.”
“스텔라는?”
“뜨거운 물은 싫다더군요.”
새도 아닌 게. 아니, 반쯤은 새였던가?
마왕 후보쯤 되는 녀석이 설마 꾀죄죄한 모습으로 다니기야 하겠나. 알아서 잘 단장하고 다니겠지. 그렇게 적당히 납득하곤 몸을 욕탕에 느긋하게 풀었다.
“그래서. 뭔가 할 말은 없어?”
“뭐가?”
나르콜렙시가 왼편에 가까이 다가와 앉아서는 눈을 슬쩍 흘겼다. 하지만 이쪽은 뚱한 표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여자가 큰맘 먹고 몸을 보여주고 있으면 남자로서 뭔가 멘트가 있어야 할 것 아냐.”
“넌 입은 거나 벗은 거나 별 차이도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우, 하고 나르콜렙시는 한껏 토라진 얼굴을 하더니 뜨거운 물을 팍 뿌렸다.
얼굴에 튀겼다가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을 닦아내고는 이 녀석을 그냥 목욕물에 머리를 집어넣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그만두었다. 귀찮잖아.
“나르콜렙시. 하이엔 님을 곤란하게 하는 건 그만둬.”
“아니, 곤란해하기나 하나? 이 목석이.”
레오레의 짧은 핀잔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 툴툴거리면서 나르콜렙시는 몸을 길게 쭉 펴고는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조그맣지만 균형이 잘 잡힌 몸에, 과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부풀어오른 젖가슴이 물에 젖은 채 수면 위로 과시하듯 빼꼼하게 도드라졌다.
“그러는 너도 그럴 생각 한가득으로 들어온 거잖아, 레오.”
“아, 아니… 난, 그럴 생각이 아니라….”
레오레의 양뺨이 불그레하게 물들었다. 나르콜렙시의 한 마디에 꼬리를 내리곤 부끄러운 듯이 금색 눈썹을 내리까는 행동에서도, 이 녀석들이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를 비로소 알았다.
나도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놈은 아니지만.
“저, 그… 하이엔 님. 남성 분들은 목욕 시중을 드는 것에 큰 환상을 품고 계시다고….”
“그 정보 출처는 어디냐?”
레오레의 눈이 옆자리의 나르콜렙시에게로 향했다. 나르콜렙시는 입가를 달싹이면서 재밌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뻔하구만.
“머리 복잡하게 하지 마. 여기 일은 다 끝났는데 괜히 말 못할 이유로 하루 더 쉬어가고 싶다고 하면 그 목석 영주라도 웃을 거라고.”
“누가, 검성 군이?”
“너희가.”
흥, 하고 웃은 순간, 조금 부루퉁한 표정이 되었던 나르콜렙시의 손이 물 아래로 사라졌다. 얌마, 어딜 만지는 거냐고.
“하지만 검성 군의 소시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데.”
“뭐, 나쁘냐.”
여자 알몸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서지 않으면 그건 예의 운운하기 이전에 불능이라고.
난 언데드가 되었을지언정 거기까지 죽진 않았어. 고자가 아니시라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읏, 꽤 팔팔해. 검성 군… 변태.”
“뭐래. 이 탕에는 내가 먼저 들어왔거든.”
나르콜렙시의 손이 위아래로 슬며시 움직이며 손바닥으로 팽팽하게 끓어오른 기둥을 움켜쥐었다. 살짝 볼을 붉힌 게… 만만치 않게 달아오른 모양이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만약 얼마 전의 나였다면 볼 것도 없이 쫓아냈을 것을, 지금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천천히, 욕망이 머릿속의 다른 잡생각을 빨아들이면서 비대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주인님….”
레오레도 슬며시 공기의 변화를 느꼈는지, 팔에 천천히 감겨붙어왔다. 전에도 보았던 적이 있는 풍만한 젖가슴이 상박에 스쳤다. 팔뚝에 난 흉터를 보곤 조금 눈을 크게 뜬 레오레가, 이내 혀를 내밀어 그 상처를 혀끝으로 핥아내기 시작했다.
“응, 후으, 읏… 크후, 읏.”
나르콜렙시가 자그맣지만 스타일이 좋은 몸에 어울리는 미유를 가졌다면 레오레는 충분히 단련된 몸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거유를 가졌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커서 나쁠 건 없잖아.
“이엔… 엔 군. 몸은 좀… 어때? 뭔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
점점 더 나르콜렙시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묵직하게 서올라 팽팽하게 피가 도는 좆대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허리가 살짝 들썩이도록 쳐대는 것이 꽤 능숙해보였다. 남자가 어딜 만져주면 좋아하는지를 알고, 또 내가 어디를 만져주면 반응하는지를 아는 듯한 손놀림이다.
설마,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설마 뒤에 무슨 생각이 이어지려 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글쎄.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왜?”
“여기가 조금 걱정이라서 말야.”
나르콜렙시의 손이 슬쩍 왼쪽 가슴팍에 가 닿았다.
마왕 나잘슈파르가 남긴 손톱자국이 길게 패였고, 안쪽에서는 무겁고 어둡게 두근거리는 고동이 울리고 있었다. 웅크리고 있는 짐승은, 눈을 감으면 피냄새가 나는 숨을 헥헥거리곤 했다.
“뭐,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내가 통 언데드같지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놈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럴법하다는 생각은 드는구만.”
“남의 일이 아니잖아, 하여튼….”
한 번 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가, 나르콜렙시는 천천히 손을 떼고는 배 위로 슬그머니 타고올라왔다. 히히,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물 아래로 허리를 푹 내렸다. 참방 하고 작은 물보라가 튀었다.
“으, 으으응, 후으, 읏….”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랫배에서부터 천천히 튕겨오르는 끈끈하고 질척한 감촉이 쫄깃하게 달라붙은 순간,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익숙한 감촉에 저절로 허리가 튀어올랐다.
“엔… 군은, 움직이지 않아도 되, 니…까아.”
“나르콜렙시, 으… 그러지 않기로 했잖습니까?”
“난 몽마니까…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 아니지롱.”
둘이 서로 짰던 거냐고.
하긴. 그러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다. 물 아래로 손을 내려서 나르콜렙시의 골반을 쥐고 허리를 슬쩍, 슬쩍 처올리자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앓은 그대로 살짝 허덕임으로 일그러졌다. 몽마답게, 능숙하게 허리를 돌리며 적극적으로 쾌락을 탐해온다.
“으응, 읏, 후응. 기분 좋, 앗. 겨우, 이렇게 됐, 어….”
나르콜렙시와 섹스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세상 일이라는 게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성난 좆대가리로 깊고 쫄깃한 안쪽을 연달아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좆질로 들이받자, 아릿한 콧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레오레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꽤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아읏, 앙. 엔 구운. 조금 더어… 세게 해도 괜찮, 으니까… 나아, 기분 좋게 해 줘, 어.”
“늬들이 날 기분 좋게 해 주려고 들어온 거 아니었냐? 하여튼, 야해 빠진 음마년. 허리나 제대로 돌려봐.”
“짐승….”
조금 토라진 표정을 달아오른 얼굴에 띄운 채 나르콜렙시는 손으로 내 배를 짚었다. 둥그스름하고 아담한 엉덩이를 위아래로 튕겨올리면서, 혀를 내밀고 헥헥, 쉬이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숨이 거칠어졌다.
나르콜렙시의 골반을 쥐고 있던 손을 뻗어, 나와 나르콜렙시의 섹스에 눈을 떼지 못하던 레오레의 젖가슴을 꽈악 움켜쥐었다. 소스라치도록 놀라는 반응은 각별했고, 풍만하게 손바닥에 달라붙으면서 기분 좋게 탄력적인 질감이 만족스러웠다.
“너도 조금 더 가까이 와서 봐라, 유스티카.”
“읏, 으, 으으응. 네, 에….”
끙끙 앓는 듯, 하지만 어쩐지 모를 고양감에 동요하고 있는 레오레를 보면서 피식 웃음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녀석의 아버지… 죽은 유스티카 당주에게는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후으, 그러고보니… 여왕은 어쩌고 있지?”
“크흣, 아흥. 오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으으응, 하지만, 치유사의 말로는…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라고.”
“안 되지, 엔 군. 이런 자리에서, 다른 여자 얘기를 하는 건 매너 위반이야.”
말캉한 감촉이 말을 가로막았다. 즐거워하는 눈매 아래 카벙클 같은 눈동자가 가까웠다.
곧 그 눈동자가 닫혔다. 손으로 뺨을 붙잡은 채 꾸물거리는 혓바닥이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밀려들었다. 개처럼 열이 몰린 혀를 찾아 휘감고는 진득하게 얽혔다.
푸하, 하고 입술을 떼어가고서는 나르콜렙시는 웃었다. 레오레는 긴장으로 빳빳하게 뺨을 굳혔지만, 뒤이어 내 목에 제 팔을 감고는 어색하게 입술을 맞부딪혀왔다. 꽤 호사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르콜렙시가 살짝 웃었다.
질투, 욕구, 열락… 그런 감정들이 어지러이 얽힌 얼굴이었다.
“…지금은, 우리 둘만 봐.”
아무래도 이 밤은 꽤나 길어질 것 같다.
몹시도 뒤엉키는 밤이 될 것 같은 예감으로, 그 긴 밤의 시작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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