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53화 (53/79)

〈 53화 〉 5 / 흉검의 헬하운드 (7)

* * *

(7)

흉견의 밤, 사냥이 끝났다.

발톱처럼 날카롭게 일그러진 검은 손 끄트머리부터 천천히, 잿더미가 흩어지듯 벗겨져가면서, 그 아래 휩싸여있던 팔이, 몸이, 얼굴이 드러나간다.

공중에 떠 있던 몸을 받치고 있던 날개도 필사적인 퍼덕임 한 번을 끝으로 사그러지고, 흉견의 아래 삼켜졌던 하이엔 더츠백의 몸이 그대로, 밤하늘 한가운데에 내던져졌다.

물론 그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재주 같은 건 없고, 그 손에 쥔 흉검 또한 그렇다.

온통 잡음이 끼는 기억과 잔상이 어리는 시야 속에서도 마왕의 힘을 잃고 떨어지던 그 얼굴만은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공포, 절망, 절규.

물론 그 여자를 동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발버둥치는 건 꼴사나운 일이지.

그렇게 꼴사나운 짓을 해서 살아남는 것이 바로, 자신, 하이엔 더츠백의 방식이고.

“…스텔라! 나르콜렙시!”

떨어지기 시작한 몸을 받치라고 소리질렀다. 이미 그 둘은 자신이 부르기도 전에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검은 깃털이 돋아난 커다란 날개와 박쥐의 날개를 펼친 채로.

“꽉 잡아, 나르크.”

“스텔라… 님이야말로!”

양팔을 붙든 두 명의 마족이 떨어지려는 몸을 받치고 천천히 착륙한 끝에 겨우 바닥을 디딘 순간 뒤늦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셋 모두 바닥에 주저앉은 가운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이엔 님!”

가장 먼저 레오레가 황급히 뛰어서 다가왔다.

레오레의 외투를 덮은 여왕… 메살리나를 안아든 채였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괜찮다. 뭐, 너도 수고했다. 유스티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의 레오레를 달래고는 그 팔에 안긴 여왕에게 한번 눈길을 주었다. 제법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있었다. 마치 오늘의 일이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잊힐 꿈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다른 녀석들은 어떻지?”

“모두… 살아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다행히도 아무도 없습니다만….”

레오레가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온 W 크로니클은 사라졌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사태를 벌였던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성탁기사단 놈도 안 보이는데.”

“그는 아이온을 쫓아갔습니다. 저는… 여왕 폐하가 염려가 되어….”

젠장.

그놈과도 결판을 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이 소동에도 죽은 사람이 없다는 데에 있지 않나.

‘미다스’라고 했던가. 마왕 나잘슈파르의 사역마에 당했던 이들은 이제 모두 지배에서 풀려난 벌레들이 숙주를 버리고 도망갔는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벌레 떼를 그냥 둬도 되는 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같…

“먹었어.”

“뭐라고?”

스텔라가 눈을 깜빡이고는 한 번 더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그녀의 변화가 약간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흑발이었던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금색 머리카락이 새로이 돋았고, 조그마한 꼬맹이처럼 보였던 몸도 다소 성숙하게 자라있었다. 손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도 조금씩 이유 모를 요염함이 깃든 것처럼.

“나잘슈파르의 힘 일부를 내가 먹었어. 그래서 조금은 더 강해졌어.”

“하, 이대로 마왕 몇 녀석쯤 더 잡으면 그 때는 쭈글쭈글한 할망구가 되어있겠구만.”

덧붙여 감정표현도 조금 풍부해졌다. 발을 들어 쓰러진 하이엔의 옆구리를 툭툭 불만스레 차는 행동은, 이전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쓰러진 녀석은 대충 무사하단 말이지. 슬슬 뒤처리를…”

“…검성 군.”

나르콜렙시가 속삭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한 무리의 병사들이 연회장의 입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갑옷과 투구, 그리고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 사이에 몇 명의 기사와… 마지막으로 영주가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에 입은 부상을 말끔히 털어낸, 정정한 모습으로 그는 근엄하게 주변의 영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쓰러진 이들 중 노예 거래에 가담한 이들을 전부 왕법에 따라 구금하고, 납치된 엘프들은 보호하라.”

“옛!”

병사들의 행동은 신속했다.

마치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이라도 했던 듯한 움직임이었고, 명령을 내린 뒤 위엄있게 다가오는 영주를 향해 하이엔은 한쪽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진작에 좀 도와주지. 일이 다 끝나니 그제야 오는 거야? 영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잠시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네. 모든 것이 잘 풀려서 다행이군.”

그의 시선은 쓰러진 채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는 아들 브란에게 머물렀다가… 레오레의 품에 안긴 여왕에게도 안타까운 듯이 머물렀다.

“왕제 발레리아로 생각되는 시신을 빈민가에서 찾았다네. 아주 심하게 으깨어져 있어서… 손을 쓸 도리가 없었지.”

어차피 자신의 손으로 심장을 도려내 버린 이상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자신처럼 언데드가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되뇌며 하이엔은 문득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보았다. 기묘하게 빠른 박동이 느껴졌다… 스텔라가 그의 심장에 감춰놓았다는 그 사역마가 지금은 심장을 대신하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엘프 노예 경매에 관련된 일련의 사태는 종국을 맞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은 몇 가지 남았다.

대장장이 센, 그 작자는 왜 성탁기사단 놈에게 에스텔의 검을 넘겨줬을까.

그리고 마지막, 마왕의 대마법을 막아낸 건 그 누구도 아닌… 아이온, 그였을 텐데.

대체 아이온 놈이 꾸미고 있는 짓이란 뭐지?

으득, 하고 이가 갈렸다. 하지만 일단…

“지쳤다….”

이번만은, 검성이라고 불렸던 그에게도 벅찬 일이었다.

거의 폐허나 다름없게 된 바닥에 드러누우며 하이엔은 팔다리를 쭉 뻗었다. 이젠 지칠 대로 지쳐서, 팔다리 하나 꼼짝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뒷일 따위, 알아서 처리하라지.

“영주성의 방으로 옮겨놓겠네. 충분히 피로를 풀고 다음 일을 얘기하도록 하지.”

“죽은 것처럼 있을 테니 어디 몰래 묻지나 마쇼.”

묻으면 다시 무덤을 파고 나와서 가장 먼저 날 묻은 놈의 멱을 따버릴 거야.

그렇게 투덜거리며 하이엔은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마왕을 토벌한 이래, 가장 길었던 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E가 손을 모았다.

흉견이 깨부순 마왕의 알, 그 극히 일부가 숲에 떨어져 희미한 황금빛을 내고 있다. E의 모은 손안으로 빨려들었다. 한데 모은 손바닥 사이에 둥둥 떠 있던 황금색의 알껍질이 툭 깨어지고, 그 안에서 희끄무레한 안개가 새어 나왔다.

E는 입을 열었다.

허공을 불안한 듯이 물결치며 꼬물거리던 안개가, 마치 무엇인가에 끌어당겨져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E의 입 안으로 삼켜졌다. 꿀꺽, 목을 움직여 안개를 삼켜낸 E는, 황홀경을 경험하는 것처럼 한순간 뺨을 붉히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주저앉아 입을 막고 바르르, 어깨를 떤 그녀의 엎드린 등이 우직우직 하고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누군가의 얼굴 윤곽, 그리고 유난히 거대한 손톱, 그리고 날개. 그 형상이 등 안쪽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동, 기화, 완… 료.”

괴로운 듯이 숨을 몰아쉬는 E의 뺨에 땀방울이 맺혀 도르르 턱을 타고 떨어졌다.

그 모습을 아무 감흥 없이 바라보고 있던 아이온은, 그녀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세우는 것을 부축해줄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왕… 나잘슈파르. 반은… 안드라스가, 가져갔습니다만… 나머지 반은 이제 제 통제에 있습니다.”

“수고했어. 그 정도로 충분하겠지. 윈돌에서의 일은 이걸로 끝이야.”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러나 아직 어린 목소리에 아이온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아래에서도 확연하게 볼 수 있을 듯 새파랗게 타오르는 머리카락과 그 아래 푸르른 눈동자.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빛을 띤 성검, 엑스페란사.

성탁기사단의 성기사, 요슈아 세룰라이트는 검을 겨누면서 힘주어 이단을 성토했다.

“아이온 W 크로니클. 너는…”

“그 말이라면 아까 했었지 않습니까. 같은 밤에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건 서로에게 있어 시간 낭비 외에 아무것도 아니죠.”

요슈아는 피식 웃고는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수평으로 칼날을 눕혀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파리한 안색의 E가 나서려는 것을 아이온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지금 힘을 쓰려 하다간 기껏 동기화시킨 나잘슈파르가 다시 날뛸지도 몰라. 먼저 빠져나가도록 해, E.”

“하지만….”

“네가 없으면 내 계획이라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시키는대로 해.”

E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요슈아는 그저 날카롭게 아이온을 경계할 뿐 E를 쫓을 움직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쫓아갈 생각이 없는 겁니까?”

“어차피 이 숲은 지금 성탁기사단의 종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 상관없지. 게다가…”

싸늘한 한기가 칼 끝에 맺혔다. 대기의 수분을 빙정으로 만드는 냉기를 뿜어내면서 엑스페란사가 푸르게 빛났다.

“널 놓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녀를 너무 얕보지 않는 게 좋을 텐데요.”

탄식처럼 중얼거린 뒤, 아이온은 양팔을 가슴 앞에 교차시켰다.

펄럭거리는 소매 속에서, 악마의 손톱이 튀어나왔다. 성직자의 무장 ‘종루’를 본 요슈아의 눈이 순간 격정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한순간이었을 뿐, 다시 잠잠해진 눈으로 요슈아는 눈앞의 숙적을 향해 조용히 선고했다.

“성탁기사단, 요슈아 세룰라이트. …간다!”

서릿발 휘날리는 칼날이 쏘아졌다. 발톱이 맞이하듯이 포효했다.

다음 순간은 두 무기가 서로의 주인을 찢기 위한 격돌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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