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52화 (52/79)

〈 52화 〉 5 / 흉검의 헬하운드 (6)

* * *

(6)

허영과 퇴폐, 축복받지 못한 탄생을 관장하는 마왕 나잘슈파르.

죽음으로부터 탄생하는 생명이 있다면, 그야말로 축복받지 못하는 탄생을 관장하는 마왕의 영역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엔의 심장이 터져나간 순간이 바로 그러했다.

죽은 몸에 피를 돌게 하고, 죽은 자가 숨을 쉬고, 땀을 흘리고, 팔다리를 움직여 검을 휘두르게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의 원천.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때때로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적 능력이 허용하지 않는 현상과 마주했을 때, 그것을 이해의 범주에 밀어 넣기 위해 그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남용하곤 한다.

마(?)라는, 간단한 음절의 단어를.

그리고 밀어넣는다는 말은 실로 절묘했다.

마치 바람을 가득 채운 풍선을 터뜨리는 것처럼, 그 남자의 심장을 터뜨린 순간 심장에 웅크린 채 목줄이 매여 갇혀 있던 것이 터져나왔다.

천 개의 아가리가 이를 드러내며 들끓고, 독과 불을 숨 쉬듯 뱉어내며, 4천 개의 다리와 2만 개의 발톱이 하이엔의 혈관을 타고 내달렸다.

이 시점에서, 검성 하이엔 더츠백이라는 인간, 아니 언데드는 완전히 죽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몸을 빌어 일어난 것을, 예전의 그와 결부시킬 수 있는 자는 아마 거의 없을 테니.

“안드라스… 영악한 것 같으니. 사역마를 그 인간의 심장 안에 숨겨두었었나. 왜 꺼내지 않는지를 의심하고 있었지.”

나잘슈파르가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그것의 가슴팍을 꿰뚫고, 방금 심장을 터뜨린 손목이 발톱이 흉흉하게 선 새카만 손에 붙들려 있었다. 으르릉거리는 긴 주둥이 안에서 피냄새가 감도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서로 맞물렸다. 눈구멍에서는, 눈알 대신 시뻘건 불길이 타올랐다.

“하지만 개 교육은 여전히 엉망이구나!”

마왕의 목소리에 노기가 끓어올랐다. 고귀한 손을 감히 붙든 더러운 손을 쳐낸 뒤, 거대하게 세워진 황금색의 손톱을 그것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크아앙!

그것이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검은 털로 뒤덮인, 주둥이가 긴 육식 짐승의 머리 사이에서 구불구불하게 휜 뿔이 도드라졌다.

황금색의 손톱과 검은 발톱이 서로 맞물렸다.

검은 짐승의 팔이 터지면서 푸른 피가 마구 튀었다. 여전히 흉검을 움켜쥔 다른 손이 휘둘러지려 하자, 마왕의 손이 그 진로를 막아세웠다.

“불경한… 것!”

검은 털가죽을 찢어발기려는 손톱의 서슬에, 흉검을 휘두르려던 팔에서도 푸른 피가 마구 튀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한 가지 무기가 더 있었다.

“이… 놈이!”

물어뜯고, 찢어발기고, 뱉어냈다.

마왕의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하얀 살결을 긴 주둥이에 끔찍하게 달린 창과 같은 송곳니들이 파고들어 뜯어냈다. 이번에는 마왕이 피를 흘릴 차례였다.

마왕의 발이 들리고, 역관절 구조의 짐승의 발이 마주 들렸다.

서로가 서로를 차냈다. 마왕이 물러난 만큼, 짐승도 물러섰고, 그녀가 피를 흘리는 만큼 짐승도 피를 흘렸다.

“크륵, 크륵, 크륵…”

치이이익… 타는 소리와 지독한 냄새가 뒤따랐다. 마왕의 살점을 뜯어낸 짐승의 잇새에서 푸른 육편이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오로지, 이 짐승의 혈관에 들끓는 마의 불길 탓이었다. 뿔이 달린 짐승은 팔을 늘어뜨리고, 바닥에 자세를 낮추었다.

우직, 우직, 우직…

살가죽을 뚫고, 거대한 피막의 날개가 솟구쳐올랐다. 등의 거죽을 찢고 튀어나온 순간 짐승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다. 다만 마치 핏방울과도 같은 불티를 사방으로 흩뿌렸을 뿐이다.

갸오오오옥!

거품처럼 부글거리는 불길을 주둥이에 끌면서 짐승이 네 발로 내달렸다.

사냥감은… 오로지 마왕뿐이다.

나잘슈파르가 팔을 들고 대응하기도 전, 날개를 펄럭여 그녀가 생각한 이상으로 빠르게 그 목을 잡아챈 짐승이 그 목줄기를 붙들었다.

“이, 미천하고, 저열한 것이…!”

마왕과 짐승이 함께 벽을 들이받은 순간 나잘슈파르가 펼쳐두었던 결계가 산산조각이 나서 유리창처럼 깨졌다. 타오르는 불길을 플레어처럼 끌면서, 날개를 펄럭인 짐승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마왕은 날개를 펼쳤다. 그녀의 찢긴 날개와 파먹힌 어깨 또한 이미 재생되어 있었다. 짐승의 팔이 재생된 것과 마찬가지로.

“넓은 곳으로 나오면… 네놈이 유리하기라도 할 줄, 알았더냐! 조아려라, 이 광견!”

지상의 아주 가까이에 별들이 쏟아진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마왕은 진노했다. 철저하게, 짐승과 이 도시 전체를 파괴할 생각이었다.

“마왕(?王)의 이름이 가진 진수를 보여줄 터이니!”

나잘슈파르의 주위에 펼쳐진 황금색 빛알갱이가 선으로 연결되었다. 선은 원형의 면이 되고, 일부는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문자로 이어졌다. 지금, 윈돌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본 이들은 이 신기한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밤하늘에 떠오른 마방진의 직경은, 윈돌 전체를 덮을만큼 거대했고, 그 마방진에 모이는 마력은 폭풍이 이는 파도처럼 방대했다. 그 모든 빛문자 하나하나에 마력이 머금어진 순간, 나잘슈파르는 파괴를 해방했다.

“「아스테로이데스 아우름(Asteroides aurum)」!”

마왕의 칙령에 마법이 복종했다.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마법진으로부터 황금색의 파괴가 지상에 쏟아부어졌다.

비단 짐승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윈돌이라는 도시 전체, 아니 어쩌면 이 파괴의 여파는 트란 드라쿨루 전역을 집어삼킬지도 모를 일이다.

잠들어있던 이들은 잠든 채로 평온하게 재로 돌아갈 것이고,

마법을 아는 이들은 경악해서 그들의 신에게 기도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쏟아지는 유성우에 대고 기도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파괴는 지상을 휩쓸지 못했다.

그녀가 파괴를 해방하는 것과 동시에, 지상을 뒤덮은 엷은 그림자가 황금색을 받아냈던 것이다. 황금색의 빛줄기는 그림자에 빨려들었다. 마치 블랙홀의 주위를 돌다 삼켜진 불운한 빛줄기처럼.

“이건… 아가레스의 결계?! 아이온, 이놈! 나를 배신했느냐!”

마왕의 노기 어린 눈이 지상을 향했다. 벽이 깨어져나간 저택의 안에서, 그녀를 올려다보는 현자라 불렸던 남자와… 그를 따르는 E라고 불리는 수도녀의 모습이 보였다.

“배신이라고 책하시기엔 마왕 영하의 월권이 다소 지나치셨던 것뿐입니다. 모쪼록 충언으로 봐주시지요.”

“이, 배신자놈! 내 당장 네놈을 불태우고, 내 독으로 녹여 죽이고 말리라!”

“그러시지요. 마왕 영하. 하지만 그보다 먼저 처리하실 반역자가 있으실 것입니다.”

아이온의 웃음을 본 순간, 마왕의 등 뒤에서 맹렬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를 악물고 돌아본 그녀의 등 뒤에서 거대한 날개에서 불티를 흩날리며 똑바로 날아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네, 노, 오오, 오오, 옴!”

마왕이 손을 뻗었고, 짐승은 손에 든 흉검을 내질렀다. 무방비한 마왕의 왼쪽 가슴팍에 칼끝이 꽂히고, 충분히 파고든 칼끝을 짐승은 옆으로 휘둘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푸른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마왕의 몸이 활처럼 굽었다. 검상은 깊었지만, 몇 초만 지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몇 초가, 미치도록 아쉬웠을 뿐.

검을 쥐지 않은 손이 그 몇 초의 공백을 뚫고 마왕의 심장을 붙들었다. 나잘슈파르의 눈이, 확 커졌다. 그 손가락 사이에, 두근거리는 심장과… ‘알’이 잡혀 있었다.

“안 돼, 안돼, 안돼, 안돼! 그것만은, 안 된, 다! 절대, 안 돼, 건드리지 마, 그걸 건드려서는 안 ㄷ…!”

마왕의 당혹한 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짐승의 앞발이, 푸른 피가 튀어 흐르는 마왕의 심장을 그대로 동맥과 정맥 째로 뿌드드드득… 뜯어내버렸던 것이다. 뜯어낸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손 안에서 맥동하며, 푸른 피를 피슛, 피슛 뿜었다.

“어?”

마왕의 몸을 덮고 있던 금박이 한순간 벗겨졌다. 손과 발, 그리고 날개. 뿔. 그 모든 금박이 마치 도금이 벗겨진 조각상처럼 벗겨져 나가고, 그 아래 감싸여 있던 왕제… 발레리아의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녀는 1초 후 자유낙하하는 자신의 몸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고,

2초 후에는 찢긴 가슴팍에서 뿌려지는 심장 없는 출혈에 비명을 질렀다.

3초 후에는 질퍽, 하는 마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4초 후, 이제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의 사인이 추락사일지, 아니면 심장 파열일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크르, 르르, 릉…!”

그녀의 몸에서 뜯겨나간 심장을 짐상을 주둥이 사이에 악물었다.

피슛, 심장이 터지고 반짝이는 황금색으로 우화했던 알의 파편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승리의 포효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마왕 나잘슈파르를 물어죽인 그 짐승을,

이제 사람들은 흉견(Hellhound)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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