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5 / 흉검의 헬하운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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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분명히 불의 검은 튕겨냈을 터인데.
나잘슈파르의 눈썹이 불쾌한 듯이 꿈틀거렸다. 분명 몇 초 전에 튕겨냈을 불의 검이 이번엔 손바닥을 찔렀다. 불경하게도 거세게 타올라 노릿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더더욱, 나잘슈파르의 심기를 건드렸다.
눈두덩과 눈꺼풀이 좁혀들어 날카롭고 가느다란 눈매가 된 황금색 눈동자로, 그 검을 쥔 손을 바라보고 또 그 손에서부터 이어지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호오. 네놈의 얼굴… 알고 있다. 아가레스를 벤 놈이로군.”
“마왕께서 알아봐주시니 영광이구만.”
하이엔 더츠백. 검성이라고 불렸던 남자.
그리고 현재에 와서도 가끔 그렇게 불리기도 하는 남자는, 양손에 불타는 검을 움켜쥐고는 스텔라를 내려치려던 나잘슈파르의 손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웃는 그 얼굴에 일순간 힘을 강하게 쓰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랴아!”
기백이 타오르는, 남자다운 기합과 함께 움켜쥔 검을 휘둘러 마왕의 손을 크게 쳐냈다. 나잘슈파르의 손이 아주 조금 튕겨나가자, 그는 한 팔에 스텔라의 작은 몸을 옆구리에 끼고는 단 아래로 물러섰다.
“혼자 폼잡지 마, 꼬맹이가.”
“이제까지 혼자 계속 폼잡던 건 누구더라.”
“하여튼 한 마디도 안 지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중얼거리면서 스텔라를 내려놓고는, 하이엔은 양손에 각각 타오르는 검과 흉검을 나눠쥐었다. 그 등 뒤로 십자창을 든 레오레와 나르콜렙시가 다가와 붙었다.
“어이, 나르콜렙시. 이 번쩍번쩍한 놈들은 대체 뭐냐?”
“마왕의 사역마인 ‘레기온(Region)’이야. 사역마라고 해도 그냥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지. 나잘슈파르… 님의 경우에는 황금으로 숙주를 덮어씌워서 병사로 만드는 타입인 모양이고.”
나르콜렙시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다. 그녀는… 나잘슈파르의 몽마에 대한 지배권에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르콜렙시의 내면에 있다는, 나잘슈파르가 꺼림칙해하는 무엇인가와 함께.
성탁기사단의 성기사, 요슈아 세룰라이트의 손에 들린 성검에서 휘황한 빛이 타올랐다.
가장 먼저 앞서오는 황금 병사를 향해 그는 망설임없이 칼끝을 내질렀다.
“티르의 정의여!”
지나치리만치 성기사다운 구호에 하이엔은 실소를 참을 수 없었지만, 일단 효과 하나는 탁월했다.
칼끝에 닿은 황금이 벗겨지면서, 수백 수천 마리의 아주 조그마한 벌레 떼가 벗겨져나가 안에 번데기처럼 붙잡힌 인질의 모습을 드러냈다. 허영의 마왕이라. 그 말 그대로, 제물에게 덧씌운 황금조차 그저 벌레의 군집이었을 거라고는.
“한 점에 강하게 타격을 줘라! 그럼 전체를 동요시킬 수가 있다!”
문제는 안에 붙들린 인질의 목숨까지는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데 있지.
시간을 끌면 고치 안의 인질이 완전히 활력을 빨아먹혀 빈껍데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은 초조감이 되어 싸우는 이들의 발목을 붙들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방법도 있다.
“나르콜렙시, 대답해봐. 저년을 쓰러뜨리면 이 멍청한 자식들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거냐?”
“…가능성은 있어. 통솔이 무너지면 벌레들은 제멋대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확률이 대충 반반이라는 뜻이구만. 됐어, 저 마왕은 내가 처리하겠어. 너희들은 이 도금 놈들의 상대나 해 줘!”
양손에 각각 검을 나눠쥐고 이를 악물었다.
이글거리는 칼날에서 뿜어지는 불길이 살이 데일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여왕 폐하, 제 뒤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이 와중에 레오레는 이제껏 피해다녔던 여왕, 메살리나를 제 등 뒤에 숨긴 채로 십자창을 휘둘러 가까이 다가붙는 레기온을 떨쳐냈다. 이럴 때는 창이라는 무기가 발군의 성능을 발휘해, 한 점에 집중한 찌르기에 비틀거리는 몸에서 벌레가 후두둑, 벗겨졌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아아, 이젠 싫어, 여왕이고, 뭐고… 정말 싫어, 돌아갈래, 돌아갈거야! 왕성의 내 방으로 돌아갈 거라고…!”
“폐하! 조금 진정해주시고…!”
“레오레, 너도… 너마저 내게 거짓말했어! 네가 죽었다고 날 속였잖아?!”
이 상황에 패닉에 빠진 메살리나가 레오레의 어깨를 콱 붙들었다. 한창 레기온을 향해 창을 내지르던 그녀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그건… 나중에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놔 주세요! 폐하, 폐하의 옥체를 지킬 수가 없…!”
십자창이 느려졌다.
레오레의 안색에서 핏기가 빠져나갔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레기온들이 두 여자를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루드라의 바람이여!”
날카롭게 째지는, 어린 목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돌풍이 다가오려던 레기온을 밀어내고, 휩쓸었다. 늑대의 귀와 꼬리를 가진 윈드 엘프, 바유는 반투명한 늑대의 화신을 등 뒤에 불러낸 채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방금 전의 돌풍은 그 위대한 정령 군주의 화신이 앞발을 휘둘러 일으킨 것에 불과했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마당인데 이렇게 손발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해?!”
바유의 질타는 꽤 효과적이어서, 여왕의 패닉이 조금 잦아들었다.
반투명한 늑대의 앞발에서 발톱이 쭉 뽑혔다. 그것을 앞으로 휘두르자 단박에 레기온의 전열을 흐트러놓는 칼바람이 되어 몰아쳤다.
“여긴 괜찮다! 버티고 있을 테니… 어서 그쪽을 처리해라, 놈팽이!”
“뒈지고 싶냐?!”
의외의 재주를 부리는 꼬맹이의 말에 발끈하면서, 하이엔은 똑바로, 여전히 단상 위에 선 마왕을 향해 뛰쳐들었다. 흉검 가름도 양손으로 휘두르지 않으면 제 위력이 나오지 않는데, 지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힘이 거대한 검을 수월하게 휘두를 수 있도록 팔을 받치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조금이라도 힘이 필요하다. 머릿속을 투쟁심으로 채우면서, 각각 칼자루를 움켜쥔 양손을 동시에 내질렀다.
카각, 카각, 카각…
마왕 나잘슈파르는 양손을 교차로 세워 각각 손바닥으로 칼날을 받아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핏발선 하이엔의 눈과, 황금색으로 황황히 타오르는 마왕의 눈이 서로를 밀어내려는 양 부릅떠졌다.
“이 성가시기 이를 데 없는… 날파리 놈들이!”
허영과 퇴폐로 치장한 아름다운 가면에 금이 가고, 그녀는 독살맞게 일그러진 분노를 드러내면서 송곳니가 도드라진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녀의 등 뒤에서, 그림자가 거대한 손 모양으로 솟아올랐다. 수많은 눈과 입이 달린 손 모양의 그림자가, 본신의 움직임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치 파리를 눌러죽이려는 듯 하이엔의 머리 위에서부터 바닥을 후려쳤다.
하지만 납작하게 짓눌렸어야 할 하이엔의 몸은 여전히 제 위에서 바닥을 뭉개려던 손 아래에서나마 건재했다. 스텔라가 불러낸 검은 새가 커다랗게 펼쳐진 날개로 그 손을 받아내고 있었던 덕이다.
표정을 조금 바꾸는 데에도 인색한 스텔라의 얼굴에 초조함이 떠올랐다.
“오래… 버티지는, 못… 하겠, 어.”
실제로 날개를 펼친 새는 점점 아래로 짓눌리면서 그 존재가 서서히 옅어져만 갔다. 하지만 그 한순간만으로 족했다. 바닥에 웅크려있던 몸에 힘을 돌렸다. 무릎 아래가, 스프링처럼 유연하게 한 번 솟구쳤다.
“뒈져라!”
양손의 칼날을 좌우에서 협공하듯이 휘둘러내는 일격. 나잘슈파르의 아름다운 용모를 추하게 일그러뜨리고, 분기로 이를 드러내게 만드는 공격이었다.
“이… 놈, 이!”
파육음과 함께 푸른 피가 솟구쳤다.
이번에야말로, 검성이라는 이름, 흉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전과를 내었다. 목은 아니었지만, 그 등에서부터 위엄차고 술렁이던 날갯자락을 찢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솟구쳤다.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손톱이, 이번엔 가슴팍을 찢어발겼다. 푸슛, 하고 검게 썩은 피가 튀어올랐다. 열상의 아픔이 지끈거리도록 머리를 뒤흔든 순간, 잇새에서 으르릉거리는 울음소리가 새었다.
“하, 하아… 이 미천하고 저속한 것들이… 이 내 옥체에 상처를 내?”
“그 년 성질 한번 죽이네…!”
하지만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찢겨진 가슴 사이로 손톱자국이 짙게 새겨진 몸을 닦달하듯이, 발작적으로 칼을 휘둘러댔다. 날개가 잘려나간 탓에 동요했는지, 마왕의 맨살결에도 이리저리 검상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여왕 폐하!”
소스라치게 놀란 레오레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귀에 스쳤다.
한순간 그 비명에 주의가 쏠렸다.
“살려줘, 레오레, 레오레에, 레오레에에엣!”
웅웅거리는 날갯소리와 함께 아무렇게나 팔을 휘두르는 여왕, 메살리나 바노슈 드라쿨레아의 손끝을 황금 벌레떼가 덮고 있었다. 손톱 끄트머리에서부터 폭발적으로 증식한 황금색이 그녀의 전신을 뒤덮어 비명을 멈추게 하기까지는 불과 숨 한번 쉴 정도의 시간만이 흘렀을 뿐이다.
“안 돼… 안돼! 으아악!”
발작적으로 십자창을 휘두르며 무리하게 돌격을 감행하려는 레오레의 발목을, 황금에 감싸인 손이 붙들었다. 앗차, 하는 경악이 그녀의 얼굴에 비쳤다.
사방팔방에 앞발을 휘둘러대던 바유가 불러낸 루드라의 화신도, 이제 거의 미풍밖에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쇠해 있었다. 정령사가 무척이나 지친 탓이다.
“어딜 보느냐!”
앗, 차… 한순간 주의를 빼앗긴 탓에, 눈앞의 강적을 잊어버리는 초보적인 우를 범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마왕의 손톱이 이번에는 가슴을 그대로 꿰뚫었다.
금색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채, 흉흉한 광소를 입가에 머금은 마왕은 노기와 쾌락이 반씩 섞인 시선을 바늘처럼 쏘고 있었다.
마왕의 손이 심장을 붙잡았다. 컥, 하고 역류한 혈액이 입 밖으로 터졌다. 점점이, 마왕의 손에 떨어진 피는 한없이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꽤 강한 전사로구나. 내 레기온, ‘미다스’를 잔뜩 퍼부어서… 황금의 기사로 만들어주겠다. 안드라스보다 훨씬 강한 힘과 쾌락을 안겨줄 테니, 너는 나의 등극을 알리는 전령이 되리라!”
그렇게는 안 돼…!
이를 으득 깨물었다. 시뻘겋게 물든 눈을 부릅뜬 순간, 컴컴한 암흑이 시야를 뒤덮어버렸다.
어디에선가 아득하게 울리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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