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5 / 흉검의 헬하운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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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글거리며 차올랐다가,
들썩거리며 가라앉는다.
뻐끔거리며 내쉰 숨을, 바르르 떨리며 들이마셨다.
녹말을 가르는 것처럼 살갗에 파묻히고, 근육을 녹이듯이 파고들어가, 빠르게 맥동치는 심장에 알껍질이 닿았다. 두려워 떠는 심장을 달래기라도 하는 것처럼 탄력있게 물결친 알껍질이 천천히 벌어졌다.
덥썩, 마치 파리지옥처럼, 벌어진 알이 심장을 물었다. 그대로 뿌리를 박고 꾸물거리며 파고들어 이윽고 하나가 되었다. 심장을 도는 피는, 이제 뿌리를 박은 알로부터 마성을 얻어 온몸의 혈관을 내달리겠지.
컥, 하고 공중에 한 발자국쯤 떠오른 발레리아의 몸이 전기가 통한 것처럼 바들거렸다.
누가 도와달라고. 누가 좀 날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커다랗게 벌어진 입술에서 주륵, 침이 새었고, 안구가 미끄러질 것처럼 커다랗게 뜨인 눈에서 울음이 넘쳤다.
눈동자의 색깔이 차츰차츰 변해가고 있었다. 흰자위는 실핏줄이 투둑, 투둑, 투둑 터져나가 붉게 물들었다가 그녀가 마(?)에 물들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듯, 그 피가 보랏빛으로… 그리고 이윽고 완전한 푸른빛으로 변했다. 그 푸른빛조차 점점 짙어져서, 마침내 검게 물들었다. 마치 밤하늘에 뜬 달처럼 동공이 허무한 금색 빛을 발했다.
“끅, 힉, 꺄흐, 학…!”
투둑, 투둑, 투둑.
발레리아의 몸에 감겨있던 예복이 터져나갔다.
갑작스레 부풀어오른 유방이 옷을 여민 단추를 뜯어냈고, 옅은 색의 유두와 유륜을 과시하듯 드러냈지만, 지금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낄 정신조차 없을 것이다.
등이 터져올랐다. 옷뿐만 아니라, 몇 방울의 피와 살점이 튀었다.
펼쳐진 것은, 기괴하게 변형된 갈래 뼈와, 그 사이를 채우는 피막이었다. 드득, 드득, 드득… 거대한 부채처럼 펼쳐진 피막의 날개가 피에 젖은 채, 갓 우화한 잠자리가 날개를 말리듯 허공에 그 날개를 흔들었다.
“안, 돼, 해액, 나, 먹히고 있, 엇… 나, 나, 나는, 발레, 발레리, 아. 힉, 끄읏, 누가, 도와줘, 구해줘, 부탁이에요. 제발, 힉.”
변화는 엉덩이에서도 드러났다.
엉덩이가 한층 부풀고 골반이 두툼하게 도드라져 음탕한 라인을 그렸다 싶더니, 우직우직하는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둔부가 찢겼다.
알껍질을 뚫고 뱀이 태어나는 것처럼, 황금색의 갑각으로 된 전갈 같은 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골판이 그 꼬리를 덮었고, 투둑,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우악스러운 가시가 돋아났다.
발등에서 피부를 뚫고 돋아난 가시에서부터, 두 갈래로 모인 발가락이 엉겨 붙었다. 발톱이 빠르게, 단단하게 자라나 발굽이 되어 허공을 단상처럼 딛었다. 황금색의 발굽이었다. 허영이 넘치는 색의 발굽은 요염한 각도를 그리면서 허공을 두드렸다.
발굽을 덮은 황금색의 골편이 발등, 그리고 발목을 따라 휘감겼다. 골판 아래에는 부드럽고 살이 오른 기묘한 요염함을 품은 다리가 있었다.
온몸의 옷이 찢겨나갔으나, 그 위를 황금색의 허영이 진득한 새로운 살가죽과 골판이 망토처럼 덮었다.
제 머리를 짚은 손과, 그 손이 짚은 머리에서도 변화가 태동했다.
가느다란 손가락을 손톱이 덮었다. 순수한 금색의 손톱은, 이제는 맹수의 발톱처럼 우악스러우면서도, 요부의 손톱자국처럼 음험하게 곡선을 그리며 손가락을 덮었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까딱거리는 손톱 하나하나가 각각 약 세 뼘에 달했다.
무엇인가를 억누르듯이 관자놀이를 짚고 있던 손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밀려났다.
태동의 정점은 뾰족하게 늘어진 귀와 금색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완성되었다. 뿔이었다. 왕관과도 같은 곡선을 가진 금색의 뿔이 거대하게 돋아나, 자라나, 온갖 보석의 원석으로 치장하여 뻗쳤다.
금실이 펼쳐진 것 같은 머리카락은 그 한 올 한 올이 마치 뱀처럼 너울거렸다.
후우… 푸르스름한 혈색의 입술이 태어난 후의 첫 숨을 내뱉었다. 발굽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와, 땅을 딛었다.
펼쳐졌던 날개가 앞으로 꺾였다.
제 가슴과 국부를 가려, 오히려 요염한 몸의 선을 한층 강조하면서, 그것은 황금색의 눈을 빛내 좌중을 내려다보았다. 한탄하는 듯, 혼을 깎아내고 녹이는 듯한 독부의 목소리가 낮게 메아리쳤다.
“이 혈관을 도는 죄라는 것이 참으로 보잘것없는지고.”
가장 먼저 아이온이 그것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등극을 경하드립니다.”
“흠…?”
그제야 그것의 시선과 약간의 흥미가 눈 아래 꿇어앉은 현자에게 가 닿았다.
일단의 의외성이 황금색 눈동자에 어렸다.
“…인간인가? 재미있는 종복을 데리고 있구나. 인간이 나를 부활시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음이야.”
나른하게,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이가 거친 꿈을 탓하는 것처럼 그것은 팔을 한번 크게 뻗었다가 내리고는 뿔이 달린 머리를 살살 흔들었다.
“몹시 시장하군.”
그것이 좌중을 내려다보았다. 주변에 의식을 잃고 늘어진 귀빈들에게는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나른한 눈길이었고, 단 바로 아래에 붙들린 성기사를 향해서는 불쾌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가, 그 바로 옆의 남자를 보고는, 조금의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흠… 하지만 이 자리에 없는 이들도 있는가? 건방지구나. 왕의 등극을 경하하러 오지도 않다니.”
느릿하게, 마치 뱀이 먹잇감을 앞두고 쉭쉭거리듯한 소리를 낮게 흘리며 그것이 손을 귀찮은 듯 휘저었다. 꿀렁거리는 검붉은 공간이 열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떨어졌다. 하이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영문을 몰라하는 레오레 유스티카와,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는 나르콜렙시, 그리고 윈드 엘프의 차기 족장인 바유, 소마족의 특사인 로렌초와… 마지막으로 여왕, 메살리나까지.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역시 눈치가 빠른 로렌초였다. 그는 단 위의 그것을 보고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 몸집에 비해 커다란 머리를 조아렸다. 단, 그것의 시선을 끄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호오, 나의 아이가 있구나. 심하게 다쳤군. 누가 한 짓일까. 필경 저 거슬리는 칼에 당한 것이겠지. 어디어디.”
“나르콜렙시!”
레오레의 품에 안겨있던 나르콜렙시의 몸이 그대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대로, 그것의 앞에 끌려온 나르콜렙시의 몸에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열상이 부글거렸다.
슬쩍 거슬린다는 듯 눈썹을 찌푸린 그것의 금색 발톱 끝이 그 상처를 짚고 훑어내렸다. 바들거리는 나르콜렙시의 몸에 살이 차올랐다. 마치 낙서를 지우개로 지우듯이, 손쉽게.
“일어나거라, 아이야.”
살짝 손톱 끝을 몸에 박아넣고 마치 아이를 어르는 어머니처럼 속삭이다가, 한번 더 그것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뭐지?”
“으….”
나르콜렙시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예상하지도 못한 모양이지만, 자신의 앞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께서, 는….”
쿨럭, 하고 죽은 피를 토해내면서 나르콜렙시가 작게 기침했다.
하지만 불쾌감에 젖은 그것이 돌연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태도를 바꿔, 나르콜렙시를 부웅, 하고 멀리 튕겨냈다.
나르콜렙시는, 순간 서큐버스의 날개를 펼쳐 간신히 땅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는 것만은 면했다.
“…더러운 것을 만졌구나. 나의 아이가 왜 저런 불순한 것에 물들어있단 말인가? 흠.”
“히익…!”
그것의 시선이 다시 옮겨졌다.
이번에는,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그것의 숙주가 되었을 메살리나를 향해.
“저것 또한 마찬가지로군. 저런 수작을 부린 것은 너인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바라마지 않을 정도의 벌을 받게 될 것이야.”
그 말에 E가 한발자국 나서서 아이온의 앞을 막아서려는 것을, 아이온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그대로 손을 들어 저지했다.
“영하를 모시기 위해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살펴주옵소서.”
“건방진 종복을 데리고 있으면서, 나를 모시기 위해 한 일이라. 감언이설치고는 부족하구나. 네 안에 아가레스의 지식이 있음을 안다. 가소롭구나. 그 지식을 가지고 현자라고 스스로를 이름한 것이더냐? 두고 보겠다.”
“황송합니다. 영하.”
가소롭다는 듯이 숨을 내쉰 그것의 시선이 이번에는 단 아래에, E의 그림자에서부터 뻗쳐나온 기사에게 제압당한 하이엔에게로 향했다. 여느 때보다도 격렬한 반응이었다. 두 눈썹이 한데 모여, 아름다운 미간에 골을 패였다.
“불쾌하군. 내 등극식에 왕위 요구자(Pretender)가 와 있었다니. 모습을 드러내라. 아이야.”
그 말에 하이엔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가장 먼저 그림자를 찢고 솟구쳐올라온 것은, 검은 깃털이 촘촘히 박힌 날개였다.
그림자는 질량을 얻고, 부피를 얻어, 천천히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 검은 머리카락, 상복과도 같은 드레스에, 백짓장처럼 하얀 얼굴 사이 금빛을 머금은 호박의 눈동자가.
“스텔라…!”
“스텔라라고? 마치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처럼 구는구나. 그 불완전한 꼴은 무엇이더냐? 왕위 요구자여. 이름조차 저들에게 붙여진 것이냐?”
한 명의 마왕 후계자가, 올려다본 마왕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인간의 몸을 빌어 현세했으면서도 그 허영만은 여전하네. 퇴폐와 허영, 네가 가장 즐기는 것이지. 동포, ‘나잘슈파르’.”
마왕, 나잘슈파르.
수태와 허영, 퇴폐를 관장하는 89위의 악마 중 한 명.
“가소롭구나. 인간에게 길러지고 있는 것은 즐겁더냐? 동포, ‘안드라스’여.”
마왕, 안드라스.
불화와 파괴를 관장하는 89위의 악마 중 한 명.
한 명의 등극자와, 한 명의 요구자가 만난 순간, 마법 시계는 0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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