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5 / 흉검의 헬하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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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났다.
말 그대로 ‘어중이떠중이’들만 용케 모인 누더기 파티가 출발하는 날이었지.
출발지는 율령교회의 총본산 우르슬라 법국, 줄여서 우르 율황령의 항구였던가.
“이렇게 모였으니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는 게 어때?”
“…뭐 좋긴 한데. 정말 이대로 출발이냐?”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여겨지는 파티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었는지, 리더이자 성검 ‘엑스페란사’의 주인… ‘용사’ 에스텔이 성검 엑스페란사를 땅에 세워 짚은 채 득의양양한 웃음을 자신만만하게 지어보였다.
“난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이 파티의 리더를 맡은 에스텔이야. 여기, 우르슬라 법국 출신이고. 방어와 돌파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
“무시하기냐.”
내 의문을 가볍게 넘겨버리고 제 할 말부터 슥 내밀고 보는 저 방식에 휘둘리게 된 지 며칠. 뭐 슬슬 익숙해졌다. 나를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이는 게 다음은 내 차례라는 모양이다.
“하이엔 더츠백이다. 트란 드라쿨루 태생에 노예 검투사로 먹고살았다. 칼질 외에 다른 건 배워먹은 게 없는 칼잡이인데 저기 용사님이라는 녀석이 내 뭘 봤는지는 몰라도 날 두들겨 패서 이 파티에 끌어들였지. 뭐 발목이나 안 잡게 애쓸 테니 잘 부탁한다고.”
이 파티에 고상해 보이는 녀석은 딱히 없긴 하지만 노예 검투사 출신이라는 걸 알고 경원시하려는 녀석이 있을까 미리 말해두었다.
뭐, 딱히 그런 눈치는 없다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긴, 모인 녀석들이 하나같이 이상해 보이는 녀석들뿐이긴 했으니.
“사라스바티입니다. 라 샤펠 출신이고, 마법사예요. 미리 말해두지만 하프엘프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요.”
녹색 머리카락과, 끄트머리가 살짝 뾰족한 귀가 눈에 스쳤다.
푸른 마력핵이 끼워진 지팡이를 짚은 감색 로브의 마법사는 그다지 감흥이 없다는 듯 말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지.
“하프라는 면에서는 저와 같군요. 반갑습니다.”
사라스바티의 곁에 앉은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험상궂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표정과 정중한 말씨로 사라스바티에게 한마디 얼얼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녹이는 말을 건넨 뒤 자신을 소개했다.
“아질입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용병이라 특별히 출신이라고 내세울 곳은 없습니다만, 일단 에스텔 님과 만난 것은 알베레히 산맥에서였군요. 보직은 궁수입니다. 활에는 조금 자신이 있어서.”
“그 덩치를 갖고 활이 특기야? 틀림없이 나랑 분야가 겹칠 거로 생각했는데.”
“이 덩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찾다 보니 활을 들게 되었습니다.”
검투사 훈련을 받다가 활을 들어본 적이 있긴 했다.
꼬맹이 시절이었는데, 몇 번 당기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근력을 많이 요구했었지. 분명 저런 덩치가 쏘는 화살은 위력이 굉장할 것만은 틀림없다.
“그쪽도 하프라고 하셨는데?”
“오우거입니다. 제 몸의 피의 반은 오우거이고, 어머니께 받은 나머지 반은 인간이죠.”
침착하고 정중한 태도는 오우거를 연상시키기 어려웠지만 그 덩치와 인상은 오우거답긴 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멤버를 향해 일동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는…”
“이쪽은 윌리엄이야. 나와 같이 여기 우르슬라 법국 출신이지. 사제고, 치유를 전담해줄거야. 어딘가 아픈 곳이 있으면 즉시 보일 것. 그리고 나도 치유술은 보고들은 게 있으니까 간단한 거라면 나한테 말해도 돼.”
“아니, 결국 날 두들겨 팬 상처도 그냥 붕대 감고 끝냈잖아, 리더 나리. 성기사 주제에 치유도 제대로 못 하냐?”
“거참 시끄럽네. 넌 튼튼해 보이니까 붕대만 감아도 대충 나을 줄 알았단 말야.”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는 깡마른 남자, 아니 소년의 말을 대신 받아 에스텔이 어쩐지 서두르는 기색으로 대신 소개를 해 주었었다.
그때는 우르슬라 법국 출신이라는 동향 사람으로서 붙임성 없는 윌리엄을 대신해 소개를 맡아준 것으로 생각했는데…
◆
“‘크로니클 사건’의 주범이자 ‘숙청자’ 출신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지.”
“일부러 속일 생각은 없었어.”
악마의 발톱을 본뜬 무장 ‘종루’는 성별된 은과 철로 만들어서인지는 몰라도, 흉검의 거친 칼질을 받아내고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다.
‘숙청자’란 악마와 배교자를 사냥하는 사제를 부르는 말이다.
자신이 악마를 사냥하면서 그 악덕에 몸을 두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일부러 흉악한 악마를 연상시키는 병기로 무장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광신도 집단.
“그 꺼림칙한 이름은 결국 깠으면서 마지막까지 평범한 사제인 척 굴었던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 지!”
발톱 사이에 얽혀드는 흉검의 날이 부르르 떨다가, 팔근육이 터지도록 힘을 불어넣고 횡으로 휘둘러 떨쳐냈다.
회피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아하게 뒤로 물러선 아이온은, 공중에 스르륵 떠올랐다. 그의 등 뒤로 성자와도 같이 빛으로 짜인 고리가 몇 겹이고 나타났다.
아, 나 지금 언데드였지.
되알지게 욕을 내뱉고는, 그 자리에서 몸을 굴렸다.
광륜에서 쏘아진 빛줄기가 마치 포격을 가하듯, 내가 서 있던 그 자리에 몇 번이고 들이쳤다. 언데드 상태인 내가 저걸 맞으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몸으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나랑은 극상성이구만.
배교 혐의로 교수형을 당한 주제에 법술을 다루고 말야. 여신께서는 참 품도 넓으시지, 하고 다소 불경한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흉검이 제힘을 못 내는 것도, 녀석이 성전력으로 완전무장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뒤로 물러서는 날, 공중에 떠있던 녀석이 화살처럼 쏘아지듯 쫓아오며 양손의 발톱을 휘둘렀다. 사납게 휘두르는 발톱에 미동 하나 없는 표정이 대조적이라 눈이 찌푸려졌다.
“크악…!”
1차전을 뛰고 오느라 체력과 몸을 소모했다는 변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녀석은 생각보다… 강했다. 아니, 이런 육박전을 할 수 있었으면서 정작 마왕 토벌 파티에서는 뒤에서 얌전히 버프랑 치유만 하고 있었던 거냐고.
“이 자식, 꽤… 헤비하잖아!”
반경이 큰 반원의 궤도를 그리며, 흉검을 내려쳤다.
쾅, 하고 호사스러운 대리석 바닥이 산산조각났다. 학학거리는 숨이 들끓고, 불길처럼 몸을 덥히는 열기가 비지땀이 되어 턱으로 흘렀다.
“그 정도면 충분히 놀았겠지요, 아이온! 여왕을… 언니를 데려와요!”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전투의 열기를 걷어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가, 아이온의 법의 사이에 튀어나와있던 종루의 발톱이 촤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뭐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 이야기 말입니다만. 예정이 바뀌었습니다. 왕제 전하.”
“무슨 말이죠? 알을 깨우기 위해서는 요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당신이에요.”
알? 요람?
무슨 말이지? 무슨 상황이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눈을 찌푸렸지만, 아직 싸움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니들끼리… 티키타카하지 마라, 새끼들아!”
3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지르며 흉검을 뒤로 돌리고 짓쳐들었다.
뒤로 돌린 흉검을 허리를 축으로 돌려, 곧바로 아이온의 머리를 노린 일격을 휘둘렀다.
조금도 손에 사정을 두지 않은, 그야말로 살의를 가득히 품은 한 방이다. 이대로 이 녀석을 그냥 두면 안 된다, 그렇게 본능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마치 전혀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녀석의 눈 옆에 흉검의 칼날이 멈춰있었다. 다만 빠직, 하고 얼음이 깨지듯한 파열이 보였을 뿐이다.
이건 법술이 아니다. 아니, 법술은커녕…
“마왕… 아가레스, 그놈의 기술이냐?!”
“그의 지식은 꽤 유용했거든.”
에스텔이 목숨을 걸고 뚫었던 마왕의 결계를 알아보지 못할 턱이 없다. 으득, 이를 악물면서 부들거리는 칼끝을 더 쑤셔박으려는 발버둥이 무색하게, 몸이 뒤로 밀렸다가, 튕겨져나갔다.
지이이익… 바닥에 자국을 남기며 착지했다. 숨이 거칠어져서, 체력이 슬슬 한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날 한번 바라본 아이온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마왕 아가레스의 결계. 분명, 이 검으로 뚫었다고 했지.”
그리고 제3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시험해 볼까.”
청렴하고 담담한, 신념을 가진 소년의 목소리. 들어본 적이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이 가볍게 살랑였다.
그리고 푸른 화살이 되어, 성검의 칼끝이 보이지 않는 벽에 벼락처럼 꽂혔다.
아이온이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미미하게나마 바뀐 표정으로 놈은 놀라고 있었다.
“크악…!”
파열음이 튕겨올랐다. 나와 저들의 사이를 가로막던 투명한 벽이 산산조각나 흩어지고, 검사는 열기가 피어오르는 성검을 한번 크게 휘둘러 걷어내고는 담담한 파란 눈동자로 아이온을 보며 엄숙하게, 율법학자처럼 선고했다.
“아이온 W. 크로니클. 배교 혐의로 너의 신병을 구속하겠다.”
“성탁기사단… 요슈아 세룰라이트. 그렇군요. 당신들까지 움직였던 것입니까.”
이 국면에서 저 녀석까지 나왔다고?
아니, 그건 아무래도 좋다. 왜, 어째서…
“…네놈이 그 검을 들고 있는 거냐?”
요슈아 세룰라이트. 놈이 손에 쥐고 있는 그 검은…
용사 에스텔의 성검, 엑스페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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