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 / 오월동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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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 아래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여자의 실오라기 한 올 남기지 않고 벗겨진 몸을 내려다보았다. 한껏 교태를 품은 물오른 나이의 나신이건만.
스물을 갓 넘은 여자의 나체를 보고도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욕정이 아니라 눈을 찌푸리게 하는 경악이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충격적인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명색이 이 나라의 여왕일진대, 온몸에 학대와 강요의 흔적이 어지럽게 얼룩져 있다면.
“…거 취미 한번 대단하구만.”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옷으로 가려질 법한 곳에만 철저하게, 여왕의 몸에는 복종이 요구되고 있었다.
채찍 자국과 화상자국, 손톱자국. 잇자국, 멍자국이라는 형태로.
그 수많은 흔적이 무엇 때문에 남았는지는 재차 생각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양 무릎의 피멍은 아마 오늘 바닥을 개처럼 기느라 생긴 것일 테지.
그리고 그 절정은 바로… 아랫배에서 은은하게 빛을 띠고 있는 문양에 있었다.
눈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의 여왕이라면, 그 배가 어떠한 의미를 품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왕통을 잇고, 국가를 이어받을 혈손이 잉태될 곳에 저런 음습한 술수가 끼어들 틈은 없어야 하건만.
즉, 이것은 조롱이다.
왕제 발레리아는 언니 메살리나를 뿌리깊이 조롱했다.
병적일 정도로 깊은, 그러나 이유 모를 증오와 원망을 풀어놓은 것이다.
동정 따윈 하지 않는다.
이 여자는 자신에게도 복수의 대상이었다.
이 여자 또한, 자신을 미워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서로 목숨을 빼앗고, 굴욕을 안긴 상대끼리일진대, 그런데도 이 여자의 몸에 남은 흔적으로 남은 학대가 심하다는 생각이 언뜻 든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여자 또한 나에게 재차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을 테지.
이 나라에도, 여왕에게도 털끝만큼의 경외조차 남지 않은 자신이라도 이 정도로 철저한 조롱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가쁘게 여닫히는 입술 사이에서 숨소리가 점점 초조하게 흐드러졌다.
여왕, 메살리나의 자국투성이 나체에 땀방울이 맺혀 번졌다.
“으, 으응… 하아, 읏….”
뭔가를 참아내려 애쓰는 괴로운 신음과 그 인내심을 무너뜨리고 넘쳐나려는 어떠한 욕구 사이에서 메살리나는 자신의 몸을 힘겹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시각각 녹아내리는 여왕의 이성이 숨소리에 뒤섞여 내뱉어지는 것 같다.
“히이, 잇. 누가, 제발 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허벅지를 서로 끈적하게 마찰시킬 때마다, 살 부딪히는 소리에 더하여 희미한 물소리가 함께 일렁였다.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노골적으로.
끈적이는 살소리가 물소리에 뒤엉켜 질척거렸다.
“흑… 으으응, 아흐, 응. 웃, 읏…”
신음과 오열. 비대해진 욕구와 그것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해진 이성이 단편적으로 드러났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꼴릿한 광경이지만, 그 허벅지 바깥쪽의 채찍 자국을 보면 서려는 것도 짜게 식을 수밖에… 아니, 오히려 서는 녀석도 있겠지만 난 아니라고.
젠장할.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고는 어차피 치울 똥, 빨리 치운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신경질적으로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벌써부터 빳빳하게 유두가 서올라 탱글한 촉감이 무딘 손끝에 지분거렸다.
그 손짓에, 이성이 와르르 무너졌는지 여자는 손에 맞닿은 가슴을 꾸물거리며 떨었다.
“읏… 아… 하아, 응, 조옴, 더어…”
남의 살이 닿으니 더 간절해지기라도 했나.
이쯤 되면 왜 사람들이 여왕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지 짐작이 갈 정도다.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검투사 시절의 불륜 상대 생각부터 여행 중간중간 도시에 들를 때마다 사창가에 들르던 생각까지.
그때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니 그냥 썩은 고기를 먹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 존나게 뒤가 켕기지만, 그냥 잽싸게 해치우는 게 이 여자나 나한테나 서로에게 좋을 일이다.
“히잇…, 으으윽. 미칠 것 같… 으니까, 어떻게든… 제, 발…. 부탁, 이에요….”
이젠 애원까지.
어설프게 가슴을 주물럭거린 게 오히려 심지에 불을 댕긴 모양이다.
나르콜렙시도 아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 황급히 자리를 뜬 게 틀림없다. 영악한 몽마 같으니.
“꼭 이런 건 널 시킨다고?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빌어먹을.”
지나가듯이 들은 것도 같다. 이런 주문에 걸린 여자는 주체할 수 없이 발정이 나서,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전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야영할 때였던가, 나르콜렙시가 모닥불 앞에서 신나게 재잘대던 음담패설이 이렇게 돌아올 거라고는.
되알지게 된소리 한번 내뱉고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여자의 다리를 확 젖혀 열었다. 뭉근하게 풀어진 질구는 이미 전희가 필요 없을 정도로 푹 쩔었다.
쩔어버린 건 입구만이 아니었다.
여자의 인내심도 한계였다.
바르르 떨리는 허벅지가 움찔거리는 건 스스로 비벼대던 것을 제지당한 욕구일까, 아니면 여자의 한 조각 남은 자존심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 섹스가 내키지 않는 건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빨리 끝내자고, 그러니까.”
그러니 빨리 끝낼 수밖에. 겉옷과 하의를 벗어버리고, 맨몸을 그대로 드러냈다. 긴장하고 있었는지, 커다란 흉터가 파먹은 흉근 위로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이 여자를 한번 범했다고 생각하면, 언데드가 되어버린 탓에 식은 피가 조금은 더워지는 것 같다. 영 내키지 않은 일이라 축 늘어졌던 자지에 팽팽하게 피가 돌았다.
“끅, 으…! 하앗, 앙…!”
쑤셔넣었다. 박아넣었다.
여자의 교성이 꼴릿하게 흐트러졌다.
내 목을 딴 상대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재미를 보고 싶어졌을지도 모르지.
꿀렁거리는 속살은 멍과 상처로 얼룩진 바깥쪽과는 다르게 야들야들하게 풀어져 있다.
쫄깃한 질감이 좆대를 휘감겨와서, 끈적하게 조여들었다. 후우, 숨이 길게 내쉬어졌다.
터억, 터억, 터억… 간격을 두고 쳐대는 허릿짓에 메살리나의 숨결이 두서없이 튕겨댔다.
“앗, 아… 으, 크흥. 앗, 하앗, 좋앗. 으, 웃. 크흐응. 앗… 거, 기잇.”
왜일까. 여자는 새삼 흥분하고 있었다.
출렁거리는 젖가슴을 찌부러뜨릴 듯이 움켜쥐고, 발딱 서오른 젖꼭지를 탱글하게 굴렸다. 풍만한 가슴을 주물러내는 손길이 바들거렸다. 손끝에서 짚이는 감각이 옅은 것은 역시 내키지 않아서였을까.
부끄러움이 살풋 핀 얼굴에서,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뭔가를 말하고 싶지만, 오히려 섹스 중에 돌아온 이성이 말하지 못하는 양 입술이 달싹거리고 있었다.
굳이 듣고 싶은 마음은 없다.
철벅, 철벅, 철벅. 비가 온 직후 무더운 여름날의 진창을 걸어가는 듯 끈적거리는 질육이 휘감아오는 것을 떨쳐내듯 찌르고, 때리고, 튕겼다.
“으읏, 아… 하아, 하읏. 우… 끅, 힉…!”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자의 다리가 땀투성이 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곤란한데.
머릿속의 심지가 타들어 갔다. 이 여자를 범하는 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복수심으로, 이번에는… 왜 이 여자를 범하고 있는지, 아직 스스로도 규정하지 못했다.
동정일지도, 혹은 못다 푼 복수심일지도.
아니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든 데에 대한, 내 나름의 책임감을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젠장…!”
그랬기에, 여자의 맨 살갗 위에 제 씨를 쏟아부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불유쾌한 기분에 잠시 푹 잠겨야 했다.
“하아, 하아, 하아….”
몰아 재끼던 숨이 점점 가라앉고, 머릿속에 냉정이 찾아든다.
여자의 배에 떠 있던 문양이 아주 희미하게 옅어진 것을 보면 일단 해야 할 일은 한 거겠지.
테이블에 놓여있던 브랜디를 한 모금 삼켰다. 입 안에 감도는 쓴맛에 조금 더 제정신이 돌아왔다.
메살리나가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테지. 이 미지근하게 더운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서 뭐 하냐?”
…옷을 챙겨입고 복도로 나오자, 바깥에서는 귀까지 빨갛게 물든 레오레가 홀로 손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방음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엿듣고 있다면 분명 나르콜렙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왕 폐하께서는….”
“잠들었어.”
“…이런 말씀 드리긴 참 이상하다는 걸 압니다만… 수고, 하셨…습니다.”
“흥.”
레오레는 참, 말을 꺼내기 어려운 모양이었지만, 얼굴에 불기가 남아있는 상태로 나를 곤란하다는 듯 올려보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저 안에 잠들어있는 게 여왕이라는 걸 동네방네 알릴 셈이냐.
손을 들어 대충 녀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째 근처에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왜 혼자지? 나르콜렙시는?”
…어째서인지 조금 멍해있던 레오레를 한번 더 채근하고 나서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조금 입술을 달싹거렸다. 뭐야. 대체 어딜 갔길래.
“…이상하게 듣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만… 지인이라는 이와 잠시 얘기를 나눈다고 가버렸습니다.”
말리려고 해봤습니다만, 하고 변명처럼 늘어놓는 레오레의 뒷말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인이라고?
그 녀석이 여기에 대관절 무슨 지인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