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22화 (22/79)

〈 22화 〉 1 / 천릿길도 식후경 (7)

* * *

(7)

뒷골목에서 나와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레오레의 우울했던 낯빛이 조금 펴진 채로 자꾸만 입가가 희미하게 달싹거리고 있었다.

센에게서 받은 새 창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지. 여기가 큰길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몇 번 시험 삼아 휘두르려고 들었을 것 같다. 나중에 한 번 대련이라도 해 줄까, 하고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체리 파이라도 좀 사 갈까?”

근처에서 체리파이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에 맡아졌다. 물론 나는 고기 파이를 훨씬 좋아하지만, 여관방에서 심심해하고 있을 나르콜렙시나 스텔라에게 선물 정도는 들고 가는 게 덜 시끄럽게 굴 거라고 생각했다. 척 봐도 단 걸 좋아하게 생겼으니까. 둘 다.

“어이, 뭔 생각하느라 그렇게 걸음이 느려. 빨리 오라고.”

그러다보니 몇 걸음을 두고 따라오던 레오레와의 거리가 조금 벌어졌다. 레오레도 조금 딴 생각을 하며 따라오고 있다가, 내가 부르자 퍼뜩 놀란 눈치다.

“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주인님.”

놀란 레오레가 조금 서두른 걸음을 빠르게 옮기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어떤 청년과 어깨가 탁 부딪혔다. 어깨를 부딪힌 청년이 조금 고개를 움직여 돌아보자 레오레가 당황한 기색으로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친절하고 정중하고온화한 목소리로 청년이 답하자 레오레가 그 청년을 지나쳐 다시 내 뒤에 따라붙었다. 쯧, 하고 짜증스럽게 한 마디를 뱉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내게 이 말을 몇 번이나 더 하게 만들 셈인 거지?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랬잖아.”

“아, 그, 죄송합니다.”

여관방에 돌아가면 일단 이 녀석들의 호칭에 관련해서 조금 교통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투덜거리면서 체리 파이 냄새를 쫓아 옆 구획의 골목가로 길을 잡았다. 달짝지근한 냄새에 레오레도 조금 흥미를 보였다. 보기와는 달리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단 거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만.

투실한 얼굴에 서글서글한 장사용 웃음을 짓고 있는 아줌마에게서 체리 파이 한 보따리를 사고 값을 치르자, 체리 파이 아줌마의 시선이 내 등 뒤로 옮아간다.

“어서 오세요. 체리 파이 드릴까요?”

다음 손님?

등 뒤에서 기척 같은 건 없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돌아보았다. 어라? 이 녀석은…

“방금 전의…?”

레오레가 조금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금 전 레오레와 부딪혔던 그 곱상한 녀석이잖아. 체리 파이를 사러 온…

“…것 같지는 않구만.”

레오레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사이 청년의 손이 레오레의 뒷머리를 턱 찔러서 의식을 제거했다. 너무도 간단히.

레오레는 저래뵈도 트란 드라쿨루에서 손꼽히는 무가에서 자란 몸이다. 그런 그녀가 반응하지도 못한 사이에.

뭐 하는 자식이야, 이 새끼는.

“…죄송합니다. 잠시 그대로 주무십시오. 아주머니. 장사를 방해하게 되어 면목없습니다만, 이 자리를 잠시만 비워주십시오.”

“어이… 뭐냐 넌.”

등골에 소름이 오싹 스며들었다. 천천히 체리 파이 보따리를 벤치에 두고는 등에 멘 츠바이핸더의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녀석은 평범한 롱소드를 들고 있었다. …언제 뽑은 거지?

체리 파이 장수 아줌마가 서둘러 가판대를 접고 몸을 피하는 것을 기다려, 녀석이 대치를 이어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잠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 도시에서의 노예 밀매에 관해서.”

그제야 청년의 옷차림에 눈이 갔다.

흰색과 파란색 바탕에 금색 자수로 문양을 넣은 옷은, 이제 자세히 보니 어디의 어떤 녀석이 입는지 겨우 생각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목에 걸린 팬던트의 앰블럼. 저건… 잘못 걸렸다. 빌어먹을.

이래서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젠장.

“교회 녀석들이 언제부터 당당하게 밀무역까지 단속하게 됐냐, 앙?”

“…역시 관련자인가.”

담담하게 중얼거리고는 쓰러진 레오레의 목께를 곁눈질로 살피는 게 거의 확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아까 봤겠지. 여자의 목에 걸려 있는 노예 족쇄를.

“검을 뽑아라.”

“네놈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뽑을 거다!”

스르르릉… 날이 예리하게 선 츠바이핸더의 칼날이 뒷골목에 드리우는 눅눅한 습기를 머금으며 번들거렸다. 비스듬하게 세운 녀석의 롱소드에는 오히려, 뒷골목에까지 비춰진 태양빛을 청렴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자세를 보니 알겠다.

엿됐는데, 이거.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센이 잘 골라준 검이긴 하지만 제 검도 아닌 녀석을 들고 이길 것이라 호언장담할 상대가 아님은 진즉에 눈치챘다.

“…성탁기사단(?????) 요슈아 세룰라이트. 간다.”

담담히 이름을 고하고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은 녀석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을 부릅뜨고, 반사적인 감에 의지해서 몸을 돌려 뒤로 한 발짝, 물리면서 그대로 검을 크게 내리쳤다.

“큭…!”

서로 거리는 5m 정도는 있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녀석이 ‘찌르기’를 넣는 데에는 5m의 거리 따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따앙, 하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낭랑한 금속음이 튕겨올라갔다. 요행히도 휘두른 내려치기가 찌르기를 막아냈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돋았다. 성탁기사단이라고? 율령교회의 에이전트잖아!

실로 정석적인 찌르기. 감으로 쳐내지 않았다면 분명 목 앞에서 멈췄거나 찌를 궤도였다. 그걸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했다.

“…조잡하군.”

반면 놈이 내린 평가는 참,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분명 내 칼질은 유파도 뭣도 없는 아류 검술이긴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말하냐, 보통?

“그러는 네놈은 어디 검술 교범에 나올 것 같은 칼질 하는구만. 네놈은 그쪽이냐? 여자 위에 올라타도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는 타입.”

살짝 도발이라도 해 볼까, 하고 툭 던지니 녀석은 눈썹을 한번 치켜올렸다가 내리는 정도의 반응만을 보였다. …뭔 제스처야, 저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가 천박한 말을 했다는 정도는 알겠다.”

“뭐야. 여자랑 해 본 적 없냐?”

갸우뚱, 하고 고개를 움직였다가 천천히 놈은 다시 검을, 특유의 비스듬하게 세우는 자세를 취했다. 야단났네. 어딜 노릴지 전혀 모르겠어. 게다가 장소도 좋지 않았다.

“저속하군.”

“젠장…!”

발을 강하게 딛고, 찌르기… 가 아니다!

이번엔 팔이 좀 더 바깥쪽, 아래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쪽의 사각을 노리는… 베기가 온다! 츠바이핸더를 날끝이 바닥을 향하도록 거꾸로 들어올려 진로를 차단했다. 카아앙, 하고 불꽃이 튀었다.

“장소가 안 좋아…!”

이런 좁아터진 뒷골목에서는 좀처럼 시원하게 칼을 휘두를 수가 없다고!

으득 하고 이를 물고 억지로 골목의 벽을 짓부수며 녀석의 어깨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벽에 칼끝이 드득드득 긁히는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젠장할…!”

놈의 푸른 눈동자가 휘둘러지는 칼끝을 따라 움직이더니 넓은 칼등에 제 검을 눌러 궤적을 빗겨냈다. 허무하게 칼이 바닥을 쾅 하고 내리찍은 순간, 찌르기… 가 오지 않았다. 대신 발등이 내 코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큭!”

칼을 쥐고 있다가는 칼을 물고 뒈질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칼자루에서 손을 놓고 뒤로 제비를 돌아 거리를 벌렸다.

차라리 잘 됐다. 이 상황에서는 마음먹은 대로 휘두르기 어려운 검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게 바로 주먹이라고. 주먹을 머리까지 세웠다가, 한번 손을 펴서 까딱거리자 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모욕을 줄 생각은 없는데. 그저 이대로 알고 있는 만큼 내 질문에 답하는 게 어떻지?”

힐끔, 녀석의 눈이 어쩐지 벤치를 향했다.

“체리 파이는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하? 네놈 때문에 이미 싸늘하게 식었을 거라고. 잔말 말고, 들어와!”

휴우, 녀석은 한숨 같은 걸 쉬고는 천천히, 예의 그 검세에 발을 실었다. 조금 쫄리는데. 그냥 얘기를 들어보자고 할 걸 그랬나? 여차하면 지금 체리 파이만이라도 들고 튀는 건…

“하는 수 없지.”

비스듬하게 검을 세우고 이쪽을 노리던 사자 같은 칼끝이 일변했다. 칼끝이 지면을 푹 하고 파고든 그대로 폼멜에 손을 얹고 다리를 굳건히 선 저 자세는… 검투의 자세라기보다는 기사들이 좋아하는 그런 의례처럼 보였다.

“네 검을 주워라.”

…안 그러면 죽을 거라고 눈이 말하고 있다.

어쩐지 뭔지 모를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야단났는데. 저 자식, 진짜로 스위치가 들어가서 히든카드를 하나 뽑으려고 한다.

문득 생각났다.

교회에 속한 기사 중 몇몇 놈들은 여신에게서 받는다나 어쩐다나 하는 수상쩍은 권능을 사용한다던가… 분명 성전력(?戰力)인가 뭔가 하는.

수상쩍게 빛이 어리기 시작한 롱소드는, 분명 태양빛을 튕겨내며 반짝거리는 게 아니었다.

어디 무기점에 가면 값은 비싸게 치르겠지만 평범한 기성품일 게 틀림없는 검이, 지금 다른 것으로 변모하려 하고 있었다. 보다 격이 다른… 말하자면,

“ㅡ성검, 빙의.”

롱소드에 머금어졌던 푸르스름한 빛무리가 이제는 녀석의 전신을 희미하게 감싸고 있었다. 젠장, 마치 기사 이야기의 주인공 나리 같구만. 나는 뒷골목을 전전하는 놈팽이 칼잡이고. 천천히 주먹을 들어올리면서 눈을 찌푸렸다.

이제,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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