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19화 (19/79)

〈 19화 〉 1 / 천릿길도 식후경 (4)

* * *

(4)

착오는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마차가 향한 곳이 영주의 본성이 아니었다는 점. 마차는 큰길을 따라 달리다가 샛길로 빠졌고, 마부가 두 마리 말의 등을 후려쳤다. 아까부터 다소 혹사당한 말이 불만스레 투레질했다.

두 번째 착오. 그것은 여왕의 대응이 생각보다 기민했다는 것.

윈돌에 사자를 보낸 것까진 그러려니 했었지만 설마하니 벌써 본격적인 미행이 붙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것도 영주가 탄 마차를 쫓아오는 간 큰 것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든든한 뒷배가 있다면 설명이 될 테지만… 왕실 이외에 있을까.

샛길로 빠지자마자 뒤에서 슬그머니 거리를 두고 쫓아오던 마차가 이내 미행도 접어치우고 노골적으로 속도를 높여 따라붙었다.

히히히힝!

등을 얻어맞은 말이 흥분해서 거칠게 울었다.

머리를 내밀어 밖을 보니… 진로를 틀어막고 있는 짐마차가 전복되어있었다. 우연… 일 리가 없겠지!

세 번째 착오. 그것은… 아무래도 영주는 나를 압박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여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로가 막힌 것을 확인하자마자 영주가 투구를 쓰고 마차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 참내,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대체 얼마나 날 귀찮게 하고 싶은 거냐고.

“어차피 이럴 거면 내 칼은 왜 뺏은 거냐고.”

짐칸에 실어놓은 검을 찾아 다시 등에 메면서 투덜거리니 노골적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마차가 급하게 선회하여 다른 길로 돌아 빠지는 게 보였다.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화물’을 다 내린 것에 불과했다.

단지 그 화물이 스스로 걷고 달리고 독 바른 칼을 날릴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마차가 아주 잠깐 멈춘 사이 내린 사내는 여섯 명. 그중 한 명이 검게 칠한 단검을 이쪽으로 집어 던졌다.

“또라이 새끼들…!”

조금 후미진 곳으로 돌았다고 해도 길거리다.

누가 눈먼 칼에 맞을지 모르는데 이런 데서 칼부림을 한다?!

여왕,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냐고!

되알지게 쌍욕을 내뱉고는 칼날의 넓은 면을 휘둘러 날아드는 비수를 걷어내자, 이번엔 머리 위쪽에서부터 끼익… 하고 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귀에 스쳤다.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내달리면서 좁은 골목의 벽을 박차고 도약해 튕겨 올라갔다.

탓, 탓, 탓, 탓.

네 번, 벽면에서 돌출된 턱을 밟고 디뎌 지붕까지 빠르게 기어오르자, 아니나 다를까… 지붕에 자리를 잡은 자객들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어쩐지 조금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등골을 타고 올랐다.

“꼭 안 좋은 예감은 현실이 되던데…”

투덜거림이 낮게 튀어나왔다. 어쩌면 이 자객들이 노리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화살촉이 향하는 곳은 분명 지붕 아래. 그렇다면 누굴 노리는지는 다소 뻔했다.

그렇게 둘 것 같냐! 흉검을 초조하게 움켜쥐고 무작정 달려나간 내 앞을, 막아서는 놈들이 있었다.

“비켜, 이 불알을 떼서 개한테 던져줄 새끼들아!”

부웅, 하고 휘두른 칼날을 걸음을 뒤로 늦춰 피해내며 뒤로 돌린 손끝이 반짝였다. 큭 하고 이를 깨물면서 휘두른 칼날을 다시 되돌리면서 거의 본능에 의지해 강하게 내려쳤다. 그 육감에 기댄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카가가각,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초조감이 발목을 잡아끌고 있었기에, 그 초조감과 함께 발치에 흩어진 예리한 비수들을 차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휘둘러지는 칼끝에 찢겨나가는 살과 공기가 비명을 끄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얕았다.

칼날이 몸을 반토막내기 위해서는 딱 반 발자국 정도 거리가 필요했는데, 그 거리에서 잽싸게 한 걸음을 물려 몸을 빼버린 자객이 스친 어깨를 감싸면서 물러섰다. 스쳤다고 해도 팔이 덜렁거릴 정도의 중상일 터이지만… 일당에 실력 있는 치유사라도 있는 건가?

눈동자만 움직여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궁수들이 화살을 쏴대던 것을 마차를 바리케이드 삼아 그 뒤에서 농성하던 영주가 이윽고 화살비가 멈추자 희끗희끗한 머리를 들었다. 견갑에 파고든 화살을 쥐어 뽑아내는 얼굴에 은은하게 고통이 번져있었다.

일단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

자객들이 다른 지붕을 뛰어 도망치는 것을 쫓지 않고 흉검을 늘어뜨린 채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하지만, 저놈들이 너무 쉽게 물러섰다는 생각은 머리에 달라붙어 깊게 뿌리내린 상태였다. 왜지? 영주 어깨에 화살 한 발 맞히자고 이런 손해 보는 짓을 벌였다고?

이쪽이 얻어낸 거라곤 칼끝에 묻어난 피 몇 방울과 눌어붙은 살점이 전부. 가늘게 노려보고는 기분이 문득 나빠져 칼집에 되돌렸다.

“어이, 나리. 괜찮아?”

지붕 위에서 그렇게 외치며 뛰어내려 착지한다. 병사들은 여전히 긴장한 기색으로 위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창을 겨누고 있었고, 화살에 맞은 영주는 피를 흘려서인지 파리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늙었구만, 나리도.”

“슬슬 은거할 때가 된 게지.”

덤덤하게 받고는 화살 끝을 노려보는 영주의 눈에 유감이 비쳤다. 뽑아낸 화살촉은 영주의 피와 살점 말고도 노르스름한 점액질이 덮여있었다… 십중팔구 독이겠지.

“자넨 괜찮나?”

“나 아직 안 죽었거든.”

죽었었지만.

흥, 하고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웃자 수염 속에서 영주도 슬쩍 웃었다. 그보다 별 이상이 없는 건가? 화살 맞은 팔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제하면 영주에게서는 달리 독이 퍼진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이 늙은 남자는 용을 쓰고 있었다.

“…어이, 저기.”

뒤늦게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윈돌의 상징, ‘비버’의 문양을 달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놀란 표정의 젊은 남자가 숨이 턱에 닿도록 말을 달려 앞장서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도 얼굴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님!”

그는 영주의 아들이었다.

뭐, 영주의 젊은 시절 얼굴을 아는 건 아니지만 지금보다 몇 년쯤 젊었을 때의 그와는 닮았으려나? 조금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러나는 사이, 그는 갈색 머리카락을 땀으로 흠뻑 적신 채 다가와서 말에서 내렸다.

“아버님, 괴한의 습격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난 괜찮다. 브란. 소란 피우지 마라. 영민들이 보고 있다.”

영주가 엄하게 한 마디를 되뇌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약간 걸음을 비틀거렸다.

그 몸뚱이를 받았는데… 내가 언데드여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영주의 몸은 뜨거웠다.

치유의 여신, ‘프리그’를 섬기는 여사제가 다가와 영주의 화살 맞은 자국을 손가락으로 눌러 촉진했다. 상처를 살핀 여사제의 주름진 얼굴에 은은한 놀라움이 번졌다. 역시 독이 심상치 않게 퍼진 모양이다.

“영주님, 대체.”

“…소란 피울 것 없다. 영민들이 보지 않게….”

영주의 목소리가 가라앉고 있었다. 병사들이 영주의 몸을 그대로 마차에 실었고, 사제와 호위병이 따라붙는 가운데 영주를 실은 마차가 본성 쪽으로 멀어져갔다.

“…오랜만입니다.”

영주의 아들, 브란이 씁쓰레하게 마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손을 내밀었다. 하릴없이 그 손을 잡았지만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오랜만이긴 하는데, 근래에 윈돌에 무슨 일이 있었나?”

대체 왜 영주를 노린 암살 시도가 있었던 것인가?

엄격하지만 원한을 살 만큼 실정을 저지를 리가 없는 사람인데.

“윈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군요. 조금 불온한 이야기도 섞여 있어서요.”

그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는 악수한 뒤 놓은 손도 세심하게 손수건으로 슥슥 닦았다. …조금 기분 더러워지려고 하네, 이 자식이.

“더츠백 경. 머무르고 계신 곳은 어디신지요?”

“경은 빼. 내 사정 이미 알고 있을 거면서 약 올리는 거냐? 지금은 ‘호두나무와 벌꿀술’에 방을 잡아놨어.”

윈돌에 여왕의 사자가 도착했다고 했으니 내가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진짜 반역을 저질러버리긴 했지만.

“…저는 아버님의 용태가 염려되어서 일단 성에 가 보겠습니다. 상태가 호전되시는 대로 일간 제가 찾아뵙도록 하지요.”

“얼른 가 봐라.”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하고 다시 말에 오른 브란이 병사들을 데리고 마차가 달려나간 방향을 향해 멀어져갔다.

“갈 사람 다 갔다. 이제슬슬 나와라, 도둑고양이 년아.”

한쪽의 골목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엿듣는 건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니고, 미행은 나쁜 습관이라고 잘라말할 수 있다.

내내 따라붙던 게 짜증스러워서 슬슬 주위를 다 물리고 빠져나가려는 것에 한 마디 툭 내던지니, 유달리 눈에 띄지 않던 골목에서 천천히 누군가가 망설이던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녀석의 모습에 한쪽 눈두덩과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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