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1 / 천릿길도 식후경 (2)
* * *
(2)
또각, 또각, 또각…
방 안의 처참한 꼴에는 아무리 자신이라도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말라비틀어진 세 명의 남자, 아니 수컷이었던 것과 거의 학대에 가까운 육욕 해소에 쓰인 탓에 겨우겨우 깔딱거리는 숨을 내쉬는 여자. 사람들은 그 여자를 이 나라, 트란 드라쿨루의 여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은 틀렸다.
이 암컷은 여왕이 아니다. 여자도 아니다. 언니도 아니다. 그냥, 자신… 왕제 발레리아가 기르는 암퇘지일 뿐이다.
지금부터 그 증거를 보여주지.
“히엑, 히엑, 히엑… 발레엔. 나아, 나아… 제대로, 후아, 하아… 제대로 했… 으니까, 얼르은. 얼른.”
“어머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언니.”
발을 들어, 손톱자국이 너덜거리는 암퇘지의 뺨을 힐 끄트머리로 꽉 짓누르자 여자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고통스러워야 하지만, 오히려 여왕은 몸을 까뒤집고 젖꼭지를 발딱 세우며 잇자국이 살이 파이기까지 한 허리를 음란하게 꿀렁였다.
물론, 여왕을 그런 암퇘지로 만들어버린 건 자신이었다.
고통과 관능을 한 줄기로 이어준 것만으로 이렇게 간단하게 암퇘지가 되어버릴 줄이야.
“제대로 부탁해야지. 안 그러면… 그 꼴 그대로 거리에 나가게 할 거야. 사실 언니도 그 편이 좋지? 나도 꽤 기대되고 말야, 언니. 괜찮아, 괜찮아.”
발레리아의 손이 천천히 여왕의 마구 흐트러지고 정액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과 입꼬리가 비릿하게 휘면서,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을 바라보는 듯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다가… 여왕이 천천히 끔찍하게 할퀴어지고, 너덜거리고, 젖가슴 여기저기에 잇자국이 패인 모습을 보이며 바로누웠다.
다리를 벌려 M자로 펼친 사이로 드러난 고간과 허벅지에는 지금은 세 구의 송장이 되어버린 수컷들에게서 여왕이 한껏 쥐어 짜낸 정액이 질펀하게 눌어붙어있었다.
잇자국으로 가득한 출렁거리는 젖가슴. 살짝 갈변한 유륜 사이에서 유두가 서올랐고,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옆으로 겨드랑이가 비쳤다. 들어올린 팔을 머리 뒤로 둔 채 헥헥거리는 혀가 늘어진 채 눈동자가 돌아간 그 표정은…
완전복종.
한마디로 개다. 발정해버린 암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트란 드라쿨루의 여왕, 메살리나는 지금 이 순간 동생이 기르는 암캐에 지나지 않았다.
프흐흐… 낮게 웃으면서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보란 듯이 그 아랫배에 노골적인 남근 모양 문신이 퍽 인상적이더란다.
“하아, 하앙… 얼른, 얼르은… 시키는 대로옷. 전부우… 주인님께서♡ 시키신 거 전부 다아아아♡ 잘 해냈으니까앗…♡ 제바알. 상 주세요, 포상 주… 세요, 발정 암캐 노예 ‘류카스카’한테엣…♡ 끄후응…!”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걸 여왕이라고 모시는 트란 드라쿨루의 모든 이들에게 심심찮은 유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버린 건 자신이지만.
“쬬쬬… 그래그래. 정말 멍청하고 한심한 암퇘지인데도 말은 잘 듣는다니까. 자아, 이제 다시 여왕님으로 돌아올 시간이야.”
복종자세를 바치면서 드러누운 그 배를 한번 더 살살 쓰다듬어주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발레리아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플라스크를 쥐었다. 코르크 마개를 따고, 의자에 주저앉아 다리를 꼰 뒤… 구두에 감싸인 발 끝에 천천히 플라스크를 기울였다.
연녹색의 기분 나쁜 악취를 풍기는 액체가 아낌없이 쏟아져 바닥과 구두를 적셨다.
“한 방울이라도 부족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럼 집무를 보는 중간중간에도… 불쑥불쑥 류카스카가 튀어나올 거야. 마구 보지를 쑤시고 싶고, 자지라면 그게 뭐든 먹어버리고 싶어하는 언니의 음탕한 욕망이 말야.”
플라스크 안의 액체를 전부 쏟아내고 나자, 발레리아는 천사같은 웃음을 생긋 머금으며 ‘먹어도 좋아’ 라고, 개에게 명령하듯 한 마디 내주었다.
“네, 네에엣…♡”
헤엑헤엑헤엑, 하는 게걸스러운 숨소리를 내뱉으며 벌떡 일어난 메살리나… 아니, ‘류카스카’가 바닥을 기면서 혀를 추레하게 꾸물럭거리면서 바닥과 구두에 묻은 진녹색의 액체를 핥아대기 시작했다.
핥아대고 꼴깍거리며 마시고 삼키면서 바들거리는 눈에서 눈물덩어리가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흐느낌과 게걸스러운 숨소리가 엉겨붙는 것을 들으며, 황홀한 기분으로 제 쌍둥이 언니를 내려다보는 발레리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볼에는 불기가 확 핀 채로.
몸의 상처가 하나둘 아물어가고, 잇자국과 손톱자국, 멍자국과 같은 흉터가 천천히 사라져간다. 머릿속을 가득하게 채워버렸던 음욕도 천천히 가라앉아 제정신을 가누어간다.
“하악, 하악, 하악….”
구두에 스며든 약을 전부 빨아마시고, 양탄자에 스며든 곳도 빨아대도 부족하다. 침이 얼룩덜룩할 정도로 목 너머로 넘겨도 제 머릿속에서 ‘류카스카’라고 이름 붙인 뒤틀린 욕구를 완전히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양을 아주 조금 헷갈려서 부족하게 만들었으니까.
“잘했어요, 후후. 정신이 들어?”
“발레리아, 제발….”
울먹이면서 동생에게 매달렸다. 동생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흐느끼면서 애원했다.
제발 자신을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이런 여왕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천사처럼 웃는 발레리아는, 그녀의 목에 이미 보이지 않는 목줄을 채워놓은 채로 천천히 자신의 치맛자락에서 여왕의 손을 매몰차게 떨쳐냈다.
“더럽게. 뭐하는 거야, 창녀가.”
뭐, 그런 ‘실수’를 매번 되풀이하는 것도 언니에게 참 미안한 노릇이지만… 국무 회의 중 자주 화장실을 찾는 언니가 그 화장실에서 어떻게든 비대하게 부풀어오른 욕구를 가라앉히려 손가락으로 보지를 쑤셔댄다는 것을 아는 게 자신뿐이니 상관없지.
아, 하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발레리아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언니. 언니가 아주 신임하는 걔 말야. 이름이 뭐랬더라. 유스티카 가문의 걔. 말이랑 갑옷만 돌아왔대. 뭐, 필시 죽었겠~지?”
아주 잠시, 메살리나의 흐느낌이 멈췄다. 눈물젖은 얼굴을 들고, 뺨과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달달 떨리는 입술 밖으로 새는 말이 더듬거렸다.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어머, 이 애플파이 맛있네.”
접시에 놓인 애플파이를 집어다가 한 입 맛보고는, 그 달디단 맛에 포르르 떨면서…
팍, 하고 벌어진 채 달달 떨리는 메살리나의 입에 콱 소리가 나도록 밀어넣었다. 입 안에 애플파이를 우겨넣은 채 턱을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는… 생긋. 미소했다.
“먹어. 암퇘지 년아.”
수치심과 굴욕감에 바들거리던 메살리나가, 체념하듯 눈을 감자 고여있던 울음이 넘쳐 뺨을 새로 적셨다. 제 손 안에서 꾸물거리며 턱이 움직이는 것에 하아아…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듯 발레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탁 내치면서, 손수건을 꺼내 슥슥 닦았다. 그 손수건을 여왕의 얼굴에 내팽개치면서 꺄르르, 웃음소리가 낮게 번졌다.
“그럼 언니. 제정신일 동안 일 열심히 해♡ 그렇다고 일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으면… 알지? 그렇게 되면 언제 어떻게 류카스카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는 거?”
골치 아프고 귀찮고 성가신 현안은 모조리 여왕인 언니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망가진 언니의 꼴을 보면서 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정말… 인생은 즐겁다니까.
발레리아가 천천히 뒤돌아서서 방을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메살리나가 한탄 서린 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욕망이 아닌 소원은 단 한 가지뿐.
제발, 제발… 누가 날 좀 구해줘.
◇
낮에 산을 헤매다가 커다란 멧돼지를 사냥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멧돼지 고기였다. 가죽을 벗겨내고 피를 빼내고 부위별로 토막내서 오늘 먹을 만큼만 모닥불에 굽고, 나머지는 사라스바티가 내어준 주머니에 전부 쓸어넣었다.
“…저기 말야, 검성 군.”
나르콜렙시… 지금은 도적 ‘나르카’를 자칭하는 서큐버스가 내 옆자리로 은근슬쩍 다가와 모닥불을 쬐며 내게 슬쩍 말을 붙였다. 말할까 말까를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기를 택한 모양이다.
“지금 우리, 길 잃은 거 맞지? 그치?”
“시끄러워, 이게 누구 때문이냐고.”
적어도 내 탓은 아니다. 윈돌은 남쪽이니까 남쪽으로 계속 가면 결국 도착할 거라고. 그러니 크게 보면 길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예정보다 길이 더뎌지고 있을 뿐.
이것도 결국 예정에 없는 일행이 불어나서다. 게다가 나르콜렙시가 워낙 시끄러워야지.
“그러니까아아! 그냥 마차 한 대 빌려서 타고 가자고 했잖아…!”
“마차 값은 네가 내냐.”
“마차 값이 문제야? 그냥 내가 매혹 한 번 걸면…”
나르콜렙시의 안을 기각한 건 내가 아니었다.
쓸데없이 정의감이 가득한 다른 일행이었지.
“그건 안 됩니다, 마물. 그런 삿된 술수로 일신의 안위를 취하려 하다니. 여신께서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되게 크게 나오네. 뭘 무임승차 정도로 여신씩이나 찾는대.”
둘은 사이가 꽤 나빴다.
아질, 사라 부부의 집에서 출발한 지 이틀째. 그 집에서 얻어온 식량은 다 먹어치웠고 슬슬 사냥으로 먹을걸 충당하고 있었는데, 참…
“니들은 그만 좀 싸워라. 어째 출발하고 하룻밤도 조용히 지내질 못하냐?”
“…주인님. 저는 분명 주인님의 노예로서 복종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저 마물에게까지 복종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습니까.”
레오레야 지금 이 파티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노예이니 내 말에는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레오레도… 전직 기사로서 몽마든 도적이든 마물이든 그녀와 같은 위치로 엮이는 것에는 부당하다고, 은근한 의사를 자꾸 표하고 있었다. 날더러 어쩌라고. 내 알 바 아냐.
“그저께만 해도 검성 군을 죽이겠다고 군사를 몰고 온 건 어디의 누구냐고.”
나르콜렙시는 나르콜렙시대로. 날 죽이려 한 여자를 살려서 데리고 다녀 주는 것도 감지덕지할 것이지 말끝마다 마물이니 뭐니 해대는 레오레의 태도를 꽤 가소로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나마 레오레든 나르콜렙시든, 스텔라 앞에서 서로 죽일 듯이 다투고 갈등하는 일은 줄었지만. 스텔라도 일단 레오레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자각은 있는지 그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새근거리고 있었다.
심정이 복잡했다. 앞으로도 쭉 이런 여행이면, 어디 버려두고 스텔라만 챙겨서 가는 것도 고려해야 할 판. 그러니까…
니들끼리 해결하세요. 나 귀찮게 하지 말고, 좀. 이 망할 것들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