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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하운드-12화 (12/79)

〈 12화 〉 2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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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거칠게 땅바닥을 두들기며 돌멩이와 풀뿌리, 흙먼지를 가차없는 말발굽이 짓밟았다. 말이란 본디 겁이 굉장히 많은 짐승인데, 이런 상황에 흥분하지도 겁내지도 않고 철저하게 기수의 유도에만 복종하고 그 기세에 호응하여 달려오고 있다. 꽤 길이 잘 든 준마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베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우랴아아앗!”

뒤로 한껏 팔을 당겼다가, 흉검 가름을 크게 원으로 휘둘러 연신 내달리는 말의 다리를 노렸 베었다. 칼끝이 날아드는 범위의 바깥에서, 아슬아슬하게, 말발굽은 가름의 발톱 범위가 닿지 않는 지점에 멈춰서…

“우왓?!”

점프했다?!

기수가 고삐를 크게 당겼다. 기수의 명령에 따라 즉각 발을 멈추고, 관성에 몸을 맡겨 거의 육감에 따라 몸을 붕 튕겨오른 백마의 우아한 다리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흉검 가름의 칼날은 허무하게 바람 소리를 내며 공중에 도약한 말발굽 바로 아래 허공을 그었을 뿐이다.

“…젠장할!”

지휘관으로서는 아직 함량 미달일지 몰라도 제법 기사로서는 쓸만하구만. 제대로 타고 있는 말과 교감하고 뜻을 맞춰서 달리고 있다. 바싹, 기수가 몸을 숙이면서… 정확하게 내 머리를 노린 채 말 등에서 힘껏 마상창을 찔러왔다.

철커덕… 철갑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뾰족한 마상창의 끄트머리가 부웅 하는 파공성을 내지르며 찔러오기까지의 간격이 매우 짧았다. 한 호흡에 적을 확실하게 죽이기로 결심한 창질이었다.

내찔러진 창끝이 일으킨 예리한 칼바람이 뺨이 짜릿하도록 스쳐지나가, 살짝 긁힌 뺨을 엄지로 훑어보니 피가 묻어났다. 내 피다. 씁, 아깝게시리.

“…빌어처먹을, 피 봤어. 짜증나네.”

몸을 크게 옆으로 굴려 피해내면서, 말발굽이 다시 땅에 디딘 채 대치하는 것을 노려보고 칼끝을 겨눴다. 한바탕 몸을 바닥에 크게 구르고 나니 숨이 살짝 거칠어지고 온몸에 흙먼지가 들러붙어 초라한 꼴이었다.엄지에 묻은 피를 핥아내면서 투덜거렸다. 기사는 꽤 실력자였다. 제압하려면 별 수 없이 입을 좀 털아야겠는데.

“꽤 귀찮게 해 주시잖아. 어디의 누구네 기사님이냐?”

아질은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저 창에 맞아죽는다고 해도 아질이 화살을 쏘지 않도록 말해두었다. 다만 뭐, 사라를 노리고 접근한다면 아질은 전력을 다해 맞서겠지. 녀석들은 그럴 각오로 왔다. 그렇다면 이쪽도 그럴 각오로 응대하는 것이 당연한 노릇 아니겠냐고. 일단 시간벌이 겸 말을 이어간다.

“…씁. 대답 안 할 거냐? 촐랑촐랑 깝죽대면서 입은 자물통 달고 내숭떨기는.”

이쪽의 도발에는 전혀 가타부타 응답하지도 않고. 재미없게.

푸르륵, 고개를 도리질하면서 거칠게 숨을 내뿜고발굽을 득득득 땅을 긁으며 대치하는 말과 그 위에 앉은 기수가투구 안쪽에서 가느다란 눈매를 찡그리는 것도 보였다. 이 기습이 빗나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기라도 했나? 오만하구만.

칼끝은 앞으로 겨눈 그대로, 손잡이는 비스듬히 눕히고 자세를 낮춘다.

어느 방향에서 달려오든, 흉검이 닿는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가차없이 베어버리겠다고 기세를 뿜으면서 천천히 발을 조금 옆으로 움직이자,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서로 보이지 않는 원을 그리며 대치가 이어졌다.

별로 이쪽이 기분 좋은 대치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흉검 가름이 넓은 범위로 휘두를 수 있는 대검이긴 했지만, 저쪽은 압도적인 속도와 마상창의 리치를 무기로 삼는 창기사. 마냥 승리를 낙관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대치 상태를 유지하던 중, 기사가 투구를 뒤집어쓴 채 후우, 하고 어쩐지 숨을 한탄하듯 내쉬는 것이 들렸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참지 못하고 입을 연 것은 역시 기사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검성.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언제고 귀공과 정정당당히 겨뤄 그 명성을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이런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여자?

고집 있고, 강단 있고, 단단한 신념으로 무장한

그러면서도 지금의 상황에 고뇌를 금치 못하는 목소리였다.

아까도 들었지만, 가까이에서 들으니 더욱더 확실하게 알겠다.

“정정당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습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은 댁이 가슴을 당당히 펼 만한 것도 아니지? 게다가 전(?) 자를 빼먹었잖아? 여왕이 보낸 거라면 헷갈려선 안 된다고.”

그렇다면 조금 흔들어볼까.

흔들릴 만한 녀석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이런 말로 흔들린다면 요리하기는 더 쉬워질 것이다.

이를 드러내고 비열하게 웃으면서 칼끝을 설렁설렁 흔들면서 비난하자 투구에 가려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히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마상창이 움찔거리는 것까지 훤히 보였으니까.

등에 탄 주인이 동요하면 기수를 태운 말도 그 기세를 잃게 마련이다. 주인이 고삐를 풀지도 않았는데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서는 푸르륵, 하고 초조한 숨을 내뿜었다.

윽, 한번 당혹한 소리를 낸 뒤 잠시 침묵한 기사의 투구에서, 으득… 이를 강하게 깨무는 소리가 조금 울렸다. 안절부절못해하고 있는 게 꼭, 똥 마려운 강아지 같구만.

“…이럇!”

기사가 결국 박차를 가했다.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말의 배를 걷어찬 발길질에, 말이 화들짝 놀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불만스러운 투레질을 한번 하고는 내달리는 기세는 맹렬했지만 동시에… 조잡했다.

잘 훈련된 준마의 말발굽이 지면을 두들겨 뒤흔들었다. 그 고삐를 쥔 기사가 앞세운 날카롭게 벼려진 마상창의 끄트머리에는 말이 내달리는 돌파력이 그대로 묵직하게 실렸다.

하지만 다르다.

조금 전의 일합과는 다르다. 조잡하고, 초조함이 짙게 묻어나는 그런 거창돌격 따위두려워할 가치조차 없다.

말은 주인의 초조함을 읽지 못했고, 기수는 말의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각자가 따로 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야 함께 달리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그저 말의 등 위에 앉아서 창을 찌를 뿐인 것에 불과하고, 그저 사람 모양의 짐을 등에 실은 짐말일 뿐이다. 그 정도의 서투른 창질에 당해주면 검성의 이름이 울겠지!

“…?!”

투구 안쪽의 눈이 확 뜨이는 것을 보았다.

그럴 것이다. 이런 겁쟁이의 피와 살 따위…

“으랴아아아!”

가름의 입맛만 버린다고!

흉검을 땅에 놓아버리고, 그대로 회피를 도외시한 채 정면으로 뛰어 달려들었다. 설마, 달려오는 말 앞에 정면으로 무기도 없이 달려들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지… 한순간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박차를 가해 정면으로 들이닥쳐왔다.

온다. 마상창의 끄트머리, 가장 강맹한 파괴력이 실린 일격은 위력적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정직했다. 노이는 곳이 너무 훤히 보인다고.

말머리가 이쪽으로 훅 날듯이 들이닥친 것과 동시, 창끝이 들이쳤다. 겨우 결심을 굳힌 창끝… 너무 훤히 보인다! 발을 들어 창을 즈려밟아 지면에 박아넣자 말 등에서 기사의 자세가 엉거주춤하게 기울어졌다. 입가에 히죽 웃음을 띠었다.

“무…!”

마상창의 옆면을 밟은 그대로 위로 뛰쳐올랐다.

가슴팍, 용과 사자를 섞은 짐승의 문양이 도드라진 흉갑을 걷어차자 발끝에서 묵직하게 깨지는 감촉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컥, 하는 마른 기침을 뱉으며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기사의 우그러진 갑옷을 짓밟은 채 내려다보았다.

“컥, 커헉, 칵….”

기침에 핏기가 어른거렸다. 낙마의 충격이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운나쁘게 머리부터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죽거나 꽤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으니까. 뭐 이 여자의 경우에는 투구와 갑옷 덕에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터이지만.

“큭, 죽여라…!”

“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내가 오크나 오우거나 트롤이 된 기분이야. 흥분되는데.”

투구를 벗겨냈다.

정중하고 금욕적이면서 귀족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단정한 미모의 양옆으로 땀에 젖은 금발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졌다. 큭, 하고 분해하는 얼굴인 채 입술이 스스로 토해낸 피로 젖어있어서 묘하게 요염했다.

“여자. 이름은?”

“끅… 빠, 빨리 죽이십시오, 저는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지도 못했고… 당신도 검성이라면 포로를 농락하지 말고, 수치를 주지 말고 빨리 죽이란… 말입니다!”

이 녀석은 왕도의 뒷골목에서 유행한다는 음유시인의 노래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구만.

오히려 그런 말을 하면 더더욱 오래 살려두면서 농락하고 수치를 주고 싶은 녀석이 넘쳐난단 말야.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이다.

“뭐, 나머지는 일단 한잠 주무시고 깨어난 다음에 천천히 듣도록 하자고. 기사 나리.”

인간이라는 생물은 턱을 강하게 얻어맞으면 즉시 정신을 놓게끔 설계되어 있다. 뒷목을 후려패는 것보다 더 실용적이라고 할 수 있으… 려나? 운이 나쁘면 죽거나 바보가 되기도 하지만. 이 여자도 그럴지 한 번 확인해본 결과…

“끄악…! 아, 으….”

기사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더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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