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3화 (3/79)

〈 3화 〉 1 / 사냥이 끝났다고 순순히 삶길 것 같냐 (2)

* * *

(2)

그로부터 며칠쯤 더 지났다.

그 날 이후 녀석이 오지 않아 심심한 밤을 보냈었다. 동시에 식사도 감방으로 꼬박꼬박 들어오고, 심문관을 볼 일도 없어서 무료한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고.

쓸데없는 배려다. 오히려 육신이 조금쯤 피로한 편이 여분의 생각을 도려내기에 딱 좋았건만.

밤손님이 남기고 간 말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감옥 안에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말뜻을 알아내기란 애당초 무리였다. 그쪽으로는 별로 머리가 좋지 않기도 하고. 며칠 만에 녀석의 말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시간만 그렇게 축내다가, 그 날이 오긴 왔다.

“아, 리넨 두건. 며칠 만에 또 보는군. 내 오랜 친구. 이 쩌는 냄새는 그대로네. 좀 빨아달라니까 사람 말은 또 존나게 안 들어처먹어요 진짜.”

사형수용 두건이 씌워지기 전까지도 태연하게 농담을 지껄이는 날 향해 경멸어린 시선을 던지는 간수에게 히죽 웃어주었다. 왜 그러시나. 나름대로 며칠이나 된 사이잖아?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이번에는 심문실로 향하지 않았다.

지난번의 갈림길에서 반대 방향. 처형장이었다. 유쾌하게 너스레를 떨면서 쿨하게 죽어주도록 할까. 어차피 영감이 죽은 마당에 공주가 아무리 용써봤자 내 목숨을 건져주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넨 두건 너머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철창 말고는 사방이 막힌 감옥이라 해가 떴는지 어땠는지도 몰랐는데, 지금이 아침이었던 모양이다.

“이봐, 간수. 처형 전에 아침은 먹이고 처형하냐? 그 뭐냐, 사형 직전에 최후의 만찬이랍시고 먹고 싶은 거 먹여준다고 하잖아. 난 저번에 그 공주님 왔을 때 나온 밥으로 때우거나 하는 건 아니지?”

“네놈은 도통 입을 쉴 줄 모르는군.”

평소라면 이쯤이 간수가 질려 하면서 내 등을 발로 걷어찼을 타이밍이다.

하지만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와서 구태여 발길질 한번 안 한들 뭔 상관이냐는 태도였다.

“어차피 점심 이후에 쓸 일이 없는 입인데 지금 부지런히 써둬야지. 안 그래?”

“어디 놀러 가냐, 미친 새끼.”

“지옥에. 댁도 나중에 놀러 오라고.”

믿을지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딱히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거나 분할지언정 죽기 싫다고 발버둥 치거나 그런 추한 꼴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앞에 전(?) 자가 붙을지언정, 나름대로 입장과 이름값,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천천히, 콧노래까지 곁들이며 사형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레와 같은 환호… 가 아닌 것들이 봇물 터진 듯 일제히 쏟아진다.

재밌구만. 마왕 놈 모가지를 따왔을 때는 그렇게나 열심히 내 이름을 외쳐대며 쏟아지던 갈채와 환호가 이제는 야유와 저주로 바뀌어버리다니.

마치 검투장에 입장하던 챔피언 시절처럼 족쇄에 묶인 팔을 높이 들고 그 격렬한 환영인사에 화답해주니 오히려 더 거칠게 우롱이 쏟아 부어졌다.

간수에게 팔을 붙들려 일단 최후변론이라도 할 기회를 주려는지 피고인석에 섰다. 두건이 벗겨지자 신선한 공기와… 사방을 가득하게 메운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많이 내가 죽는 꼴을 보러 와 주다니.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다 나오려 그러네.”

이제껏 자신을 심문하던 심문관이 좌르륵 두루마리를 펼쳐 하나하나 내 죄상을 열거했다. 뭐 그중 내가 저지른 죄라곤 단 하나도 없다… 고 말할 수야 물론 없었지만, 내가 죽임당해야 하는 이유… 즉 귀족 학살만은 내가 저지른 게 아니었다고.

“정숙하시오!”

수염이 짙은 심판관은 고소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 열거가 끝나도록 나에 대한 야유가 그치지 않자 망치를 두드리며 정숙을 요구했다. 이윽고 관객석의 야유가 점점 잦아든 끝에 잠잠해지자, 길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었다.

“죄인 「검성」 하이엔 더츠백(Hyaen Dirtbag). 이상의 공소 내용에 대하여 최후변론이 남아있는가?”

“뭐 어차피 인제 와서 살려달래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거고. 깨끗하게나 보내주쇼. 대법관 나리, 새 왕께서는 안녕하시고?”

“…반역자 주제에 왕의 안부를 묻는가.”

이건 또 뭔 소리래.

학살자에 이어 반역자까지? 그건 처음 듣는데. 심문관을 돌아보니 심문관도 당황한 눈치다. 눈을 크게 뜨고 고소장을 훑어보지만 그 죄목은 없었던 모양이다. 저 친구도, 반역죄를 고소 내용에서 빠뜨리는 대형 사고를 치면 나와 같이 사형대에 목을 늘이는 처지가 될 것이니 실수로라도 그러진 않았을 텐데?

“거 자세히 좀 말해보쇼. 무슨 반역죄? 재밌을 것 같은데 얘기나 좀 들어봅시다.”

“그건 짐이 말해주겠다. 반역자 하이엔.”

엉? 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와 머리를 들었다.

차분하면서도 낭랑한, 날카롭게 이 자리의 부정을 자르겠다는 양 결연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낸 주인을 올려다본 순간 이제야 이 모든 일이, 그 밤손님이 한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공주의 신분이었지만, 이제는 여왕의 신분이 된 여자.

불과 그 며칠 사이에 나라 하나를 집어삼키다니, 대단한 여자야.

“들려주시지, ‘폐하’.”

최대한 이죽거려주자, 여왕은 부채롤 펼쳐 입을 가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눈엔 보인다고. 옛날부터 그런 쓸데없이 잘 보였거든… 희열에 차서 손이 바들거리는 거라든지 말야.

“파티장의 귀족들이 자신이 아닌 이미 죽은 용사를 칭송하는 것에 분노한 너는 그 자리에 모였던 귀족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살육했다.”

…그 말만은 참을 수 없다. 으드득 하고 이가 갈렸다.

처음으로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눈을 부릅뜬 채 올려다보자, 여왕은 어깨를 바들거렸다. 두려움이 아니다. 공포가 아니다. 초조함도 아니다. 그 떨림은, 환희의 반응에 가장 가까웠다.

“…그리하여 투옥된 너였지만, 선왕 폐하의 특사로 인해 너는 곧 풀려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죽은 용사에게 인망이 쏠리는 것을 두려워한… 왕세자가 너를 찾아가 충동질했고 너는 거기에 응했다. 특사로 풀려나는 즉시… 널 따르는 용병 나부랭이를 이끌어 반란을 일으키기로 말이지.”

“하, 하…,”

콰득, 팔에 힘이 들어가자 기간튬제 족쇄에 빠직 하고 금이 갔다. 심문관과 간수가 놀라 흠칫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디까지 하는지, 어디 들어는 보자고.

“이게 그 증거다.”

하늘에 둥근 영상이 떠올랐다… 며칠 전 공주가 날 찾아왔었을 때의 모습이었는데,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뭐가 다르냐면… 날 찾아온 사람이 공주가 아니라, 왕세자로 바뀌어있었던 것이다. 바뀐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버텨주게. 왕위를 승계하기 위한 제물로 용사를 골랐으니까. 그리고 백성들의 인망을 나에게 모아야 해. 내가 왕위를 잇기 위해서라면 용사의 명예 정도는 더럽혀야겠지.]

[그러지 마시지, 왕세자 전하. 구차하게 목숨줄 이어줄 필요 없잖아. 빨리 왕의 목을 치고 이 같잖은 소동을 끝내라고.]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자네가 그렇게 헛되이 목숨을 버리면 아버지께서도 편히 눈을 감으시지 못할 테니까. 재판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부정하게. 최대한 오래 살아남으면서 내가 자네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게 버텨줘,]

영상 속 왕세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듯 말했다.

[자네의 주군이며 미래의 왕을 위해서.]

아주 잠시, 모든 소리가 멎었다.

숨소리도, 목소리도, 바람소리도 멎었다. 세상 만물이 소리를 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떠한 정적도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으니, 웃음소리가 가장 먼저 울려퍼졌다.

“크하, 크핫, 크하하, 크하, 크핫, 핫!”

유쾌했다. 이렇게 수고와 노력을 들이면서까지 왕 노릇을 해먹고 싶었다면, 어쩌겠어. 그 왕노릇 하게 해 드려야지! 왕세자도 이미 뒈졌겠구만!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내가 처음 사냥터에 들어왔을 때의 야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분노의 함성이 폭발했다.

민중의 분노를 제 양식으로 삼아 그 자리에 앉은 여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떨림을 눈꺼풀에 바들거리면서 쐐기를 박듯이 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하이엔 더츠백의 죄상은 명명백백해졌습니다. 트란 드라쿨루 여왕의 이름으로, 왕가에서 수여한 ‘검성’의 칭호를 박탈하고 반역죄에 대한 처벌로서… 사형을 명합니다.”

“어이, 여왕 폐하.”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그 순간 단 한 명의 목소리는 지옥의 불구덩이처럼 들끓던 모든 악담과 야유, 폭언, 조롱, 저주를 짓눌렀다. 그것은 마왕을 벤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기백을 실은 한 마디였다.

‘검성’의 위압은 가볍지 않을걸.

적어도 아버지 자리를 찬탈한 여왕이 오줌을 지리게 할 정도는 되어야겠지.

“영감을 죽인 건, 너냐…?”

“…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판…결은 이미 내려졌다! 죄인을 베어라, 지금 즉시 참하라!”

“집행하라! 목을 베라!”

여왕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휘청거렸다. 여기 모인 이들에게는 그저 내 위협을 견디지 못해 힘이 빠진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리넨 두건이 씌워지고, 쿵… 묵직한 경갑이 내 등을 밟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크핫하하하하, 하하하, 하학, 하하, 하!”

죽어주겠다. 죽어주겠으되…

오늘 밤만은 단 한숨도 못 자게 해 주지.

“나, 검성… 하이엔 더츠백은 오늘 밤 기필코… 되살아나 주겠다! 그래서… 가장 먼저 네년부터 찾아가 주지! 검성의 복수가 어떤 것인지, 이불에 오줌이나 질질 지리면서 기다리고 있ㅡ”

서걱, 내 목이 잘리는 소리를 내 귀로 들을 수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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