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8화 〉 798화 흘러가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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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중은 나가지 않을 테니 알아서 돌아가게.”
그러고는 문을 열고 서재를 나섰다.
‘당신이 알아챘든 그렇지 않든 이미 늦었어.’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는지 조민덕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게 조민덕이 김철중 의원을 만나고 있는 동안 박길수 의원 또한 윤정호를 찾아가 독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의원님 말씀은 제가 미 대사관에서 거절을 한 이유에 대해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저에게 그 말을 하지 않은 겁니까.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 그때 말씀을 하셨어야지요.”
“그건 다른 큰 뜻이 있는 줄로 알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입니까?”
“만약 후보님께서 북한 때문에 미국의 제안을 거절 했다는 게 확실하다면 저로썬 이해가 가질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놓여 있는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입술을 축인 윤정호 의원이 자세를 바로하며 말해보라는 듯 바라보았다. 자신의 계파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고 연배도 더 높은 사람이기에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놀라운 일이기는 합니다. 분단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이니 더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그 만남이 과연 어떤 반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예로부터 예측 할 수가 없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차기 정부에서 대통령이 되신다면 큰 치적이 되고 성과가 될 것이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미국의 제안을 걷어 차버리고 불확실한 북한을 보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사안입니다.”
그 말에 윤정호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북한 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때, 그리고 북한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과 지금 보이는 행동을 비교해 보지 않았을 때를 두고 말하면 달라 질 수가 있는 겁니다.”
“후보님께서 말하시는 것이 북한에서 일어난 피의 숙청과 지금까지의 협상의 결과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잘 알고 계시네요.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와 지금 보이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둘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자존심을 굽히려 하지 않은 자세로 기 싸움을 벌였다면 지금은 완전히 꼬랑지를 내린 모습입니다. 그리고 숙청을 한 이들은 북한의 체제를 중시하는 이들이 다수였고요. 그걸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북한이 갑자기 어떻게 태도를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김종일은 철저한 자입니다. 자신의 지휘를 강화하기위해서 누구보다 더 그들을 이용해온 인물이에요. 그러했던 사람이 자신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전부 처리를 해버렸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내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수족들이 잘려나갔어요.”
“......”
그 말에 박길수 의원은 답변을 하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정호의 이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군부를 잡고 있는 이들 중에 김종일을 중심으로 체제를 안정하려는 이들이 바로 숙청을 당한 세력들이었다. 그 말은 즉 내란이 일어났을 때 김종일의 편에서 싸워 줄 수 있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헌데 김종일은 그러한 이들을 내치는 것을 모자라 단박에 처 버리는 숙청작업을 대대적으로 이루어냈다.
그걸 보고 외신들은 김종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주를 이루었었다. 그정도로 이번 피의 숙청은 자신의 지휘와 권력을 강화하기위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중요한 수족을 자르는 행위나 다름없는 행동들이었다.
오히려 지휘가 흔들릴 수 있는 그러한 행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던 박길수가 천천히 마음을 다잡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과연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확신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후계자구도를 확정하기 위해서 주변을 정리 한 것일 수도 있지요. 북한은 유엔에서 제제를 당해 외부와의 무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행동을 통해 뭔가 이득을 취하려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원님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그러한 불확실성을 위해서 확실한 제안을 걷어 차버렸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번 미국의 제안만 잘 받았더라도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이득을 취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차기 전투기 사업에서도 큰 진척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요.”
“검토를 해보겠다고 했지 핵심기술을 주겠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겠지만 미국이 한국에 보내는 신뢰를 생각하면 분명히 기술 이전을 해주었을 겁니다.”
“의원님이 그걸 어찌 확신을 하십니까. 직접 대화를 나누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군요.”
“공화당 대표인 클라인이 힘을 써보겠다고 했습니다.”
“힘을 써보겠다는 것이지 주겠다는 얘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부가 검토를 해보겠다고 했고 공화당 대표인 클라인이 그런 말을 했을 정도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윤정호 의원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다. 그러자 박길수 의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가만히 들어보면 의원님은 마치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미국의 대변인 인 것 같습니다.”
“대변인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아니라고 말하는 그 모습에 윤정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들린다는 말이지 맞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전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 나라를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생각한다면 분명 미국의 제안을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제안을 택하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그렇습니다. 한미일이 공조를 해서 북한을 견제하고 나아가 통일의 길도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눈속임들이 아닌 한미일이 힘을 합쳐야 진정한 통일의 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한미일... 공조해야지요. 맞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윤정호의 발언에 박길수는 속으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순히 인정할 사람이 아닌데.’
그동안 윤정호의 옆에서 함께 정치인생을 걸었던 그는 그가 이렇게 순순히 자신의 의지를 굽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그게 맞았던 듯 윤정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공조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끌려 다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끌려다니다요 당치도 않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북한이 스스로 낮춰서 행동하면 오히려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미국도 환영해야 할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 모습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좀 더 안정적이게 대응을 하자는...”
“그게 6자회담입니까?”
“......”
“북한은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당한 치욕이 상당히 마음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겠지요. 그 자리는 자신이 협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중국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그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습니까. 그걸 알고서 북한은 빠져나간 거지요. 사실 한국도 비슷한 입장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고 그 다음은 일본이지 한국은 아닙니다.”
“그건 후보님이 잘 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목적으로 자리가 마련 된 것이 6자회담이지 않습니까. 그 회담이 개최된 이유가 한국과 북한이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두 나라를 내세우고 벌이는 미중의 패권을 잡기위한 기 싸움이지요.”
“미국이 패권을 잡는 게 통일이 이루어지는데 빠른 길임을 부정 하시면 안 됩니다.”
“전에는 그랬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의 통일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패권을 유지하느냐 마느냐가 제일 큰 관심사이지.”
“이번 만남이 통일로 가는 첫발걸음이라고 확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처럼 삼국이 공조를 해서...”
“언제까지 이 구도로 갈 수 있다고 보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그동안 국민들은 많은 전쟁위험에 씨달려 왔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가 그러했고 독도야욕을 부리는 우익을 중심으로 정권을 쥐고 있는 일본의 불안한 행보가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침탈을 당하고 광복을 한지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건 과거입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그런 아픈 과거는 빨리 치유하고 잊어버려야 다 큰 꿈을 키울 수가 있는 법입니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 정치를 했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라는 잔혹한 현실이 드리워졌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순간 박길수 의원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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