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0화 〉 790화 여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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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는 유라의 등을 토닥여주며 이만석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아무래도 감정이 순간적으로 복받쳐 올라서 그런 것 같았다. 유라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이만석이 안아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마음이 벅차올라 순간적으로 말이 나오지 않은 것도 있을 터였다.
“그 작은 몸에 네가 다 짊어지려 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렇지가 않을 테니까.”
그저 아픈 곳에 응급처치를 하고 지혈을 할 뿐이었다. 겉에 보이는 상처를 밴드를 붙여 조치만 취해 놓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인 것이다. 이만석은 그게 결국 곪아서 터져버리면 격하게 나오는 그 감정에 스스로 휩쓸려 주체하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러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세상을 저주했다. 개차반과 같았던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 그렇게 울분을 토해내며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던 것이다.
인생이 자기 뜻대로 전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이만석이었지만 왜 이런 인생밖에 살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너무나 미웠다. 이런 인생은 이제 끝내고 싶었고 그래서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을 때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할 돈도 없고 있다 해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소주 한 병 들이키고 깔끔하게 생을 등지려했었다. 자신에게 이러한 기연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비참한 말로로 끝을 매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만석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물론 기대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어릴 때 친척집에 억지로 맡겨졌던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친척들의 그 짐 덩어리를 맡게 되었다는 그 눈빛을 본 순간부터 이만석은 나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어른이 되는 지름길이라 보았고 어른스러워 졌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싸움에 휘말릴 때도, 부모 없는 놈이라며 놀리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코뼈를 무너트렸을 때도 이만석에게 도움을 주는 손길은 없었다.
스스로 감내했고 벌을 받았으며 그 녀석의 부모님에게 갖은 욕설을 들어야 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달려들었던 성격이어서 다행이 왕따는 당하지 않았다. 괴롭히는 놈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달려들어 줘팼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독종으로 소문이 난 놈을 건드는 애들은 없었다. 학창시절을 그런 식으로 보내다보니 커서도 하류인생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어른스러워지겠다고,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내하며 살겠다고 어린 소년이었던 이만석의 바람은 그렇게 점점 엇나가기 시작해 결국에 쓰레기 같은 인생의 말로를 맞이했다.
그게 전환점을 맞기 전 이만석의 인생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생을 끊으려 했던 그는 말 그대로 개차반이었다.
그나마 이만석이 즐거운 때를 꼽으라면 어머니하고 살았을 때, 그리고 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거기엔 짬을 먹으면 대접은 받았으니까. 의외로 사람답게 대접을 받았던 곳이 오히려 군대였으니 이만석에게는 그렇게 나쁜 기억이 아니었다.
그걸 제외하고는 이만석은 그저 하류인생을 살아왔을 뿐이다.
학창시절 삐뚤어지기 시작한 그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괜찮다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쩌면 이만석은 그렇게 개차반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피폐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만석의 추억 속에 있는 그의 어린 시절은 쌈박질과 욕설, 그리고 부모 없는 자식의 멸시의 눈길이었다. 자신이 살았던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엇나가질 않고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만석은 이 아이들이 대견했다. 어쩌면 그 공엔 유라의 이러한 마음과 행동도 크게 작용했는지 모른다. 준혁이는 부모님의 마음을 할머니와 누나인 유라에게서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유라 또한 그걸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그걸 감내하고 자기위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만석과 가는 반향이 다르다 하지만 스스로 어른스러워지려고,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하겠다는 그 마음은 똑같았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미래가 암울하다면 유라 또한 스스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속으로 쌓아두었던 것이 그때 가서 폭발한다면 그땐 유라 또한 자신처럼 돌이킬 수 없는 해동을 할지도 몰랐다.
거기서 찾아오는 무력감과 분노가 이만석은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넌 잘해낼 수 있다고, 그런 식으로 위로를 해주었던 사람이 어린 시절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만석은 어쩌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스스로 피폐해질 정도로 내몰지를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학창시절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네가 저지른 잘 못도 아니야. 그 작은 몸에 누나라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며 그러한 생각으로 스스로 가둬두지 않아도 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많이 슬펐을 거야. 동생하고 나, 이렇게 둘만 남겨졌다는 게 너무 무서웠을 거야. 그리고 할머니 집에 왔을 때도 여러 생각이 들었겠지. 그게 지금의 네 마음으로 정리가 된 거겠지.”
이만석은 그렇게 유라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여주었다.
“유라가 강한 아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네가 다 짊어질 필요는 없어. 네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그렇게 속이려 하지 않아도 돼.”
“정...요?”
유라에게서 작은 말이 들려왔다. 울먹이는 목청이어서 중간의 말은 잘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만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으흐흑...!”
순간 유라에게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곧 어깨의 울림이 되었고 곧이어 커다란 울음소리가 되었다.
“으아아아앙!”
마치 그동안 속에 쌓아 두었던 것을 내보내듯 유라는 그렇게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이만석은 말없이 그렇게 유라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괜찮아. 유라 네 잘 못이 아니야. 그동안 수고했어......”
이만석은 계속해서 유라에게 괜찮다고, 힘들었을 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에 유라는 마음이 더욱 복받쳐 올랐는지 계속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그동안 서러웠던 걸 풀어내듯 소녀의 입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그때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거기서 할머니와 지나, 그리고 준혁이가 걸어 나왔다.
지나는 담배를 피우러나간 이만석과 화장실로 간 것으로 생각했던 유라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문을 열려다 이만석과 유라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다.
지나의 반응에 무슨 일인가 싶어 할머니가 따라 나섰고 준혁이가 그런 할머니와 함께 했다. 두 사람 역시 지나 처럼 밖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할머니에게도, 그리고 어린 준혁이 에게도 너무나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라야...’
지나는 서럽게 우는 유라를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민준씨.’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라를 토닥이며 위로를 하고 있는 이만석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지나는 이만석이 저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잘고 있었다.
자신이 왜 생각을 달리 먹게 되었는지, 그건 이만석의 씁쓸한 미소와 그가 얘기해주었던 어린 시절의 얘기 덕분이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유라도, 그리고 위로를 하고 있는 이만석도 지나는 너무나 불쌍해 보였다.
“왜 말하지 않았어...?”
할머니가 서럽게 울고 있는 유라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왜... 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냔 말이여.......”
할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유라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나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미안하다... 유라 네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할미가 미안하다.....”
“아...아니야...아니야 할머니!.....할머니 잘못 없어요.....!”
이만석의 품에서 나온 유라가 할머니에게 다가가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하고...준혁이 때문에 할머니가 고생하는 거 아는데 왜 할머니가 미안해해요.....! 할머니 아무 잘 못 없어요!”
울면서 고개를 가로져으며 말하는 유라를 보면서 할머니가 손을 뻗어 유라의 눈물을 닦아 내었다.
“우리 유라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할미가 그걸 헤아려주질 못했어......”
동생을 잘 챙기고 어른스러운 유라가 그저 대견스럽고 흐뭇했다. 유라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손녀가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지도 모른 채 그저 흐뭇했던 것이다.
“내가... 내가 나쁜 사람이여......너희들을 맡았으면서도 좋은 옷, 맛있는 음식 제대로 사주지도 못하면서 마음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나쁜 년이여.”
“아니야... 아니야 할머니......!”
“미안하다 유라야...”
눈가가 촉촉이 젖은 할머니가 사과를 해오는 모습에 유라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
그런 유라를 바라보면서 준혁이는 시야가 뿌옇게 변해 계속해서 손으로 닦아냈다. 하지만 닦아내도닦아내도 시야가 계속해서 뿌옇게 변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 하고 준혁이 또한 소리를 내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세 사람은 그렇게 한 동안 소리를 내며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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