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9화 〉 789화 여러생각
* * *
“그쪽도 가족끼리 놀러 온 건가 봐요?”
“네?”
순간 반문하는 지나에게 아주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부부 아니에요?”
그 순간 당황하는 지나의 모습에 옆에 있던 아저씨가 눈살을 찌푸렸다.
“예끼 이 사람아. 척 봐도 젊어 보이는 총각과 아가씬데 부부일 리가 있나? 동생들이겠지. 내말 맞지요?”
“네, 네...”
그에 지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가 거 봐라는 듯 말했고 아주머니가 주책맞다며 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인사를 한 후 걸음을 옮기는데 준혁이가 옷깃을 잡자 지나가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았다.
“지나누나하고 형아가 아줌마 눈엔 엄마하고 아빠로 보였나봐요.”
“그, 그러게...”
당황하는 지나의 행동에 준혁이는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그렇게 소동 아닌 작은 소동이 사직을 찍으면서 지나가고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는 듯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막상 놀이동산을 나서려고 하니 아쉬운지 준혁이가 계속 되를 힐끔거렸다. 그에 이만석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주었다. 그러자 자신을 올려다보는 준혁이를 향해 이만석이 이빨을 보이며 장난스레 웃음을 지었다.
“원래 아쉬울 때 떠나야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어.”
“누가 한 말이에요?”
“내가. 왜? 불만이야?”
“아니요.”
“짜식.”
다시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 버린 이만석이 애들과 지나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고 복잡한 차도를 달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9시가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를 정차시키고 기다리는 아이들과 지나에게 다가온 이만석과 함께 길을 따라 올라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소리를 들었는지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달려가는 준혁이를 할머니가 양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오늘 재밌었어?”
“응! 진짜 재밌었어!”
만족해하는 준혁이를 보니 할머니도 참으로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집안으로 들어가 오늘 어떠 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폰을 찍어준 사진을 보여주니 상당히 만족해하는 할머니였다.
“사진 형상해서 다음에 드릴게요.”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폰으로만 보기 아쉬웠는데 사진을 형상해 준다는 말에 할머니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지나가 그렇게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이만석은 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어서 달빛이 그대로 다보였다.
그때 닫혀 있던 뒷문이 열리 더는 소리에 이만석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기엔 유라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온 줄 알았던 이만석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추운데 왜 나왔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 했는지 그저 웃기만 하는 유라였다.
“담배냄새 몸에 안 좋아.”
옆에 나란히 서는 유라를 향해 이만석이 주의를 주듯 말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유라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유라를 향해 이만석은 별 말 하지 않고 최대한 연기가 가지 않게 몸을 틀어서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다.
“저 오빠 본적 있어요.”
이만석이 다시 한 모금 빨아 당길 때 유라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본적이 있다고?”
“네.”
“어디서 봤지.”
“친구 폰으로요. 인터넷에 콘서트 장에 나타난 남신이라고 해서 떠도는 사진을 저도 본적이 있어요.”
로즈걸스 콘서트 때를 말하는 것임을 안 이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잠잠해 졌지만 그때는 화제로 떠올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장난 아니었다. 오늘 놀이동산에서도 간간히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행이 싸인을 해달라거나 하지는 않고 주변에서 쳐다보기만 해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처음엔 진짜일까 생각했는데 놀이동산에서 오빠를 보고 뭐라고 얘기를 주고받는 언니들을 보고선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놀랐어?”
“네.”
고개를 끄덕인 이만석이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잘생기신 거 같아요.”
“칭찬 고맙다.”
다시금 잠시간의 침묵이 찾아왔고 잠시간 머 뭇 기리는 듯 하던 유라가 이만석을 향해 바라보더니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저하고 준혁이 놀이동산에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인사 하지 않아도 돼.”
“아니요. 꼭 드리고 싶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똑부러지게 말하는 유라의 대답에 이만석이 한 모금 더 빨고는 담배를 꺼버렸다.
“동생 때문이야?”
“네?”
이만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유라는 질문의 요지를 알지 못해 반문을 하며 올려다보았다.
“네가 나에게 그렇게 다소곳하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게 남동생인 준혁이 때문인지 궁금해서 물었어.”
“......”
그제야 이만석이 하는 말뜻을 알아들은 유라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것만 보면 준혁이 때문에 저러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 이만석이었다.
오늘 놀이동산에서 준혁이를 보면 정말로 잘 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해맑아보였고 즐거워 보였다. 이보다 더 밝게 웃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해 보였던 것이다. 그것만 보면 준혁이가 얼마나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 했는지 알만했다.
이만석 또한 어렸을 때 그렇게 가고 싶었고 소원이 놀이동산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 준혁이의 반응을 보면 절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유라도 분명히 즐기는 것 같았지만 준혁이와는 확실히 달랐다. 뭔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행동이 절제 되어 있었고 뭔가 차분해보였다. 같이 어울려다니며 그런 유라를 말없이 지켜보았던 이만석은 처음엔 왜 그런가 생각했는데 중간 중간에 준혁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유라를 보면서 이만석은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유라가 올해 몇 살이지?”
“제 나이요?”
“그래.”
“12살이에요.”
“네년엔 13살이겠네?”
“네.”
잠시 동안 그런 유라를 바라보던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12살이면 부모님에게 어리광부릴 나이지.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을 거고... 꾸미고 싶고 연예인도 좋아하고 한 참 그럴 때이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유라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놀이동산 입구에서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네.”
이만석이 했던 그 말을 유라는 잊지 않았는지 그렇다는 대답을 했다.
“아직 한 참 성장하고 많은 것을 알아갈 나이야. 즐거우면 즐겁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란 말이지.”
“......”
“그렇게 내가 누나라고 스스로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마.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동생을 위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마치 그걸 스스로 잘해야 한다고, 도와야 한다며 그 작은 몸에 쌓아두지 말라는 얘기야.”
이만석은 말이 없는 유라를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면 힘들잖아요...”
“힘들어?”
“네... 준혁이는 아직 어리고 할머니는 혼자서 사시는데도 힘드신데 저희 둘 때문에 더 고생을 하세요. 그래서 그럴 수 없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나니까. 어른스러워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할머니도 덜 고생하시니까요.”
“할머니가 좋아 하실까?”
“네?”
“유라가 그러한 생각으로 스스로 어른스러워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할머니가 알게 되신다면 좋아하실까?”
“그건...”
뭐라 대답을 하지 못 하는 유라의 모습을 보며 이만석은 눈높이에 맞춰서 무릎을 구부려 몸을 앉혔다. 그러고는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지 알겠는데... 계속해서 그렇게 가다간 결국엔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어.”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고개를 가로졌는 유라의 말에 이만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눈 똑바로 보면서 말해봐. 진짜 그렇게 생각해?”
“......”
이번에도 그렇다고 대답 할 줄 알았던 유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 준혁이와 유라 네가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는지 들었어. 네가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지 알아. 하지만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내 할 수는 없어. 그러다가 결국 나 자신이 무너지는 일이 될 테니까.”
유라와는 완전히 달랐지만 인생의 혼자가 되었을 때 이만석은 스스로 자립심을 키웠다. 이제부터 인생은 나 혼자라는 생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바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그게 어린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길이라 생각했고 슬픔을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살아온 이만석은 끝내 마음속에 억눌렀던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고 피폐해진 삶에서 암 선고를 받은 직후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유라는 자신과는 달랐지만 이렇게 혼자서 감내하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다간 그 끝이 결국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만석은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이만석은 그걸 그녀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안정을 찾았다.
“좋다면 좋다고, 슬프다면 슬프다고 말해도 돼. 난 그럴 수 없었지만 유라에겐 준혁이도 있고 할머니도 계시잖아. 혼자서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는 거야. 그게 가족이잖아.”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머니가 슬퍼하시잖아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신데 내가 슬퍼하면 준혁이가 웃음을 잃을지도 몰라요. 그런 거 보기 싫어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어요. 준혁이하고 할머니하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만석이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울먹이며 횡설수설하는 유라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등을 살며시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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