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5화 〉 785화 여러생각
* * *
벌컥!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준혁이 닫혀 있던 방문까지 옆으로 밀었다. 그에 유라가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문을 거칠게 열어? 그리고 뭔데 입도 안 헹구고 급하게 들어오는 거야?”
입 주변에 묻은 많은 수의 치약을 헹굴 사이도 없이 급작스럽게 들어온 준혁이를 보며 유라가 잔소리를 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여?”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 준혁이의 행동에 할머니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제야 유라도 뭔가 준혁이가 많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빨리, 빨리 나와봐!”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설명은 고사하고 빨리 나와 보라고 손짓하는 행동에 유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을 사이도 없이 준혁이가 팔을 잡고 끌어당기자 대충 신은 유라가 밖으로 나왔다.
“뭔데 그렇게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 거야?”
“누나도 보면 놀랄걸?!”
“뭐?”
“지금 누가 왔는지 봐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흥분을 하며 잡아끌자 유라도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살짝 열려 있는 문 앞에 당도한 유라가 천천히 열었다.
“도대체 누가 왔기에...”
문을 열다말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유라의 말이 그대로 끊어졌다. 생각지도 못 한 뜻 밖의 인물이 눈앞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기 힘든데...”
“지, 지나 언니?”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지나였다.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유라의 모습에 준혁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누나도 놀랐지?”
“으, 응...”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대답이 작게 흘러나오는 유라였다.
“나 들어가도 돼?”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라가 서둘러 문을 열어 한 쪽으로 비켜섰다.
“고마워.”
그에 생긋 웃은 지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데 양손에 종이 백 들이 한 아름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유라가 가만히 바라보았고 준혁이가 흥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 진짜 지나 언니에요?”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안으로 들어온 지나가 들고 있던 종이 백을 한 편에 새워두고는 올려다보고 있는 유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동안 잘 있었어?”
“네...”
“5일만인가?”
화요일에 왔으니 오일이 맞을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유라는 아직도 눈앞에 서있는 지나가 믿기지 않는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헤어지고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약속은 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는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 가슴이 덜 아프기 때문이었다.
“누나 정말로 왔네요?!”
“준혁이도 잘 있었어?”
“응! 그런데 그거 뭐예요?!”
“너하고 유라, 그리고 할머니 드릴 선물이지~!”
“진짜요?!”
“물론~!”
“와!”
기뻐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워 보이는 지나였다. 그때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사람이 커다란 과일박스를 짊어진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유라와 준혁이가 들어선 낯선 사람을 보며 의아한 낯빛을 보였다.
“너희들 보고 싶어서 나하고 같이 온 지인이야.”
“누나하고 같이 온 사람?”
“맞아.”
커다란 귤 박스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키가 상당히 훤칠하고 큰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지나보다 머리가 하나 이상 높았기 때문이었다. 들고 있는 과일박스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는데 키가 크니까 뭔가 저도 모르게 유라는 움츠러들었다.
그와는 반대로 준혁이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거 어디에 내려놓으면 됩니까?”
“저기 문 앞에 내려놓으세요.”
지나의 말에 발걸음을 옮겨 현관문 쪽으로 이동해 그 옆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유라와 준혁이에게 그제야 몸을 돌려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안녕.”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이만석이 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네가 준혁이지?”
머리를 치켜들고 바라보고 있는 준혁이를 향해 이만석이 입을 열었다.
“네...”
“잘 생겼네.”
웃음을 지으며 말한 이만석이 이번엔 그 옆에 멍하니 서있는 유라를 바라보았다.
“넌 유라맞지?”
“......”
아무런 대답 없이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에 준혁이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그에 놀란 유라가 당황하며 말했다.
“네, 네... 제가 유라예요.”
“유라도 예쁘게 생겼네.”
조심히 긴 머리를 쓸어주자 순간 유라의 뺨이 저도 모르게 홍조를 띄우며 물들었다.
“형은 누구에요?”
“나?”
“응.”
“여기 있는 이 누나 친구.”
“지나 누나 친구요?”
“그래.”
“누군데 밖이 이렇게 소란스럽누?”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아니 지나양 아니여? 여긴 어쩐 일이여?”
“애들 보러 왔어요. 약속했잖아요.”
“아이고... 그래서 온 거구먼? 잘왔네 잘 왔어.”
그때 약속 때문에 왔다는 말에 할머니가 감복한 듯 고개를 주억 거리며 말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만석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그런데 저기 저 청년은...”
“서민준이라고 합니다. 여기 지나씨 친구입니다.”
“지나양 친구라고? 아이고 만나서 반갑구먼......!”
“오는 길에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할머니 드릴 옷 하고 이것저것 좀 사왔어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추운데 서있지 말고 안으로 어여 들어와.”
그렇게 짐을 들고 안으로 할머니와 함께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만석과 지나를 바라보던 준혁이 유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누나.”
준혁이 그때까지도 멍하니 서있는 유라를 불렀다. 하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자 손가락으로 다시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으, 응?”
그에 유라가 고개를 돌려 준혁이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멍하니 서있어?”
“누, 누가 멍하니 서있었다고 그래.”
“누나 계속 멍하니 서있었잖아.”
“그런 거 아니야.”
이상하다는 듯 유라를 바라보던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들어가자.”
“아이고... 뭘 이리도 많이 사가지고 왔어?”
종이 백들이 한 두 개가 아니고 5섯 개가 넘어가니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하나를 지나가 열어서 꺼내었는데 중후한 느낌의 할머니들이 입기 좋은 코트가 나왔다. 척 봐도 가을뿐만이 아니라 겨울에도 입기 좋을 정도로 재질이 따스해 보인다.
“이거 비싼 거 어니여?”
척 봐도 고급스러운 옷이어서 할머니의 얼굴에 놀람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런 비싼 거를 사가지고 오다니 받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비싼 거 아니에요. 그러니 부담가지지 마세요.”
“아무리 봐도 비싸 보이는데?”
“그리고 이거.”
이어서 백에서 꺼낸 것은 30개들이 홍삼진액이었다.
“이거 홍삼아니여?”
옷도 옷이지만 이 귀한 홍삼을 사가지고 왔다는 것에 할머니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가을이고 환절기인데 건강을 챙겨야 유라하고 준혁이 잘 돌보죠.”
“아이고... 왜 이런 걸 다 사가지고 왔어?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너무 미안한지 할머니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 준혁이와 유라에게도 사가지고 온 티와 바지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준혁이가 만세를 부르며 아주 기뻐하는 게 연락 없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이럴게 아니라 차 한 잔 끓여와야지.”
“앉아계세요 할머니.”
일어나려는 할머니를 만류한 지나가 종이 백에서 아이들이 먹은 핫쵸코와 커피를 꺼내들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 지나를 할머니는 시선을 떼지 못 한 채 처다만 보았다.
‘어찌 저리 마음씨가 고울까...’
전에 볼 때도 그랬지만 참으로 참하고 고운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앉아 이만석을 바라보았다.
“총각이 지나양 친구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석을 향해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지나양이 같이 오자고해서 온 거여?”
“그건 아닙니다. 제가 말해서 같이 따라 나온 것이죠.”
“그렇구먼...”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사내가 누구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깔끔한 차림에 외모만 보면 지나 만큼이나 참한 청년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형아 우리 보러 온 거예요?”
“그래.”
“왜요?”
“저 누나가 너희들을 하도 칭찬하기에 궁금해서 와봤지.”
“지나 누나가요?”
“그래.”
눈을 깜빡이며 준혁이 이만석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오뚝한 콧날에 누가 봐도 시원하게 생긴 그런 외모였는데 무엇보다 준혁이가 느낀 것은 참으로 멋지다는 것이다.
‘이 형 진짜 멋지게 생겼다.’
뭐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준혁이가 보기에 이만석이 티비에 나오는 잘생긴 사람들처럼 정말로 멋지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라라고했지?”
“네, 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
아까부터 준혁이 옆에서 뭔가 입만 뻥긋 거렸다가 입을 다무는 행동에 이만석이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별다른 말은 못하고 있는 유라를 보고 준혁이 입을 열었다.
“누나 아까부터 이랬어요.”
“야, 야!”
당황한 유라가 준혁이를 나무라며 말했지만 그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나 누나하고 형 들어가는데 누나가 바보처럼 멍하니 서있었어요.”
“내가 언제!”
아니라며 항변을 하는 유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에 이만석이 작게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더욱더 당황하는 유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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