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4화 〉 784화 여러생각
* * *
“그러자.”
복지회관에 들렀다가 8시까지 온다고 했으나 아직 오시지 않아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밖이 추으니까 옷 따뜻하게 입어.”
“알았어.”
교과서와 공책을 정리한 후 준혁이가 옷을 갈아입었다.
“너 그 옷 진짜 좋아한다?”
“당연하지.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서 제일 멋지잖아. 그리고 따뜻하고.”
지나가 선물로 사주었던 옷으로 차려입은 준혁이의 말에 유라가 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누나도 지나 누나가 사준 옷 입고 있잖아.”
“나도 이 옷이 제일 좋아.”
준혁이의 말에 유라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 이 옷을 입고 머리띠에 새 신발을 신은 채 꾸미고 갔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한상 별 특색 없이 입고 다니다 발랄하면서도 귀여운 차림새에 너도나도 놀란 것이다. 특히 남자애들 반응이 제일 좋았다.
지금까지 남자애들이 이렇게나 관심있고 다가오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이는 유라의 모습에 준혁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나 누나 생각나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유라가 이번엔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너는 생각 안나?”
“나도 생각나.”
비록 짧은 만남이었고 시간이었지만 유라아 준혁이한테는 참으로 예쁘고 천사 같은 누나에 언니였다. 특히 이 옷을 볼 때마다 지나 생각이 많이 나는 아이들이었다.
“누나...”
“응?”
“지나 누나 또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을 거야. 약속도 했잖아.”
“그렇지?”
“그럼.”
“보고 싶다... 그치?”
배시시 웃음을 짓는 준혁이를 보며 지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지나에 대해서 생각하던 두 남매는 그렇게 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철문을 열고나서니 밑으로 쭉 뻗은 구부정한 비탈길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중간 중간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지만 새워진지 오래되었고 낡아서 빛의 세기가 강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몇 년 살았다고 하지만 으스스한 이 골목은 그래도 적응이 되지 않는 두 남매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골목을 내려가는 와중에 유라가 주변을 둘러 봤다.
“이제 익숙해 졌다고 생각하는데 적응이 안 되네...”
작게 중얼거리는 유라의 말에 준혁이가 웃음을 지었다.
“누나 무섭구나?”
“무, 무섭긴... 그냥 적응이 안 돼서 그러지...”
“거짓말.”
“거짓말 아니래두.”
“진짜 안 무서워?”
“당연하지!”
사실 귀신이나 유령과 같은 것에 유독 약한 유라여서 이런 어두운 골목이나 으스스한 거리를 걸어가는 것조차 상당히 꺼렸다. 하지만 차마 남동생인 준혁이 앞에서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누나의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오기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왁!”
“꺄악!”
조심히 걸어 내려가다 갑자기 소리치는 준혁이의 행동에 놀란 유라가 움츠러들었다.
“거봐~! 누나 무서워하네!”
그에 준혁이가 웃음을 지으며 놀리듯 말했다.
“왜 소리 지르고 그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유라가 웃고 있는 준혁이에게 나무라듯 소리쳤다.
“누나가 안 무섭다고 하니까 해본거야.”
“이건 무서운 게 아니라 놀래키는 거잖아. 너 이러지마. 진짜 얼마나 심장이 떨렸는지 알아?”
쌍심지를 키며 화를 내는 유라의 행동에 준혁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냥... 시험해 본건데......”
“시험 해볼 것도 따로있지... 앞으로 이러지마.”
상당히 많이 놀란 듯 보이는 유라가 얼마나 놀랐는지 눈가에 눈물이 찔끔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보곤 준혁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나쁜 생각으로 한 거 아닌데...”
자신의 장난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든 준혁이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미안해 누나.”
“앞으로 그러지마...”
“응.”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니 준혁이는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먹해진 분위기에서 걸음을 옮기던 준혁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유라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는 행동에 유라가 고개를 돌려 준혁이를 바라보았다.
“귀신 나오면 내가 쫓아줄게.”
배시시 미소 지으며 작게 중얼거리는 그 모습이 뻔뻔해서인지, 아니면 귀여워서인지 유라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섭다고 먼저 도망치지나 마.”
“도망 안 쳐. 나 그런 거 무서움 안 타잖아. 귀신이 나오면 내가 이렇게 얍얍! 하고 혼내줄게!”
과장된 행동으로 발차기를 하는 모습에 유라는 화가 났던 마음이 다시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작은 소동이 지나가고 골목을 다 내려온 두 남매가 차도 옆의 인도를 따라 걸음을 옮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저 앞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친숙한 인상의 사람이 한 명 눈에 들어왔다.
그에 유라와 준혁이가 서둘러 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할머니!”
바삐 걸음을 옮기던 할머니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유라와 준혁이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희들 이 시간에 왜 밖에 나와 있어?”
이렇게 늦은시간에 나와있는것이 걱정이되었던 모양이다.
“할머니 마중 나왔지.”
“마중?”
“응!”
“이거 제가 들게요.”
할머니의 짐 가방이 무거워 보이는지 유라가 서둘러 빼뜻이 들었다.
“이리 줘. 그거 생각보다 무거워.”
“괜찮아요.”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는 유라를 보며 입맛을 다신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유라와 준혁이의 손을 양손을 잡았다.
“춥을 턴디 집에 있지.”
“이 옷 입으면 안 추워.”
“그 옷이 그렇게나 좋아?”
“응!”
“아주 닳도록 입겠네그려.”
“헤헤헷...!”
귀엽게 웃음 짓는 손 주를 보면서 할머니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저녁은 먹었어?”
“네. 할머니는요?”
“나도 거기서 먹었지.”
이 늦은 시간에 걱정이 되어서 여기까지 내려온 유라와 준혁이가 대견스러운지 할머니의 입가에 지어진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추운데 어여가자.”
찬바람이 부는 밤이었지만 유라와 준혁이 덕분에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 거 같았다.
그렇게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내려 올 때보다 더 힘들었지만 할머니하고 셋이서 올라가서 그런지 무섭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에 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집에 당도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옷을 갈아입은 후 간단한 세안을 끝낸 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화목한 시간을 가졌다.
주5일제의 시작으로 인해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 늦잠을 자도 돼서 밤이 깊어감에도 잠들지 않는 유라와 준혁이였다.
그렇게 어스름한 새벽이 물러나고 서서히 해가 뜨기 시작해 어둠을 물리칠 때 오줌이 마려운지 문을 열고 나온 준혁이 잠결에 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쭈그리고 앉는 좌변기에 시원하게 오줌을 휘갈긴 준혁이가 줄을 잡아 당겨 물을 내린 후 밖으로 나와 다시 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준혁이가 잠시 나갔다가 화장실에 다녀와 돌아간 후 밤이 물러나고 해가 뜨고 아침이 밝은 날이 되었을 때 다시 문이 열리더니 이번엔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쪽으로 걸음을 옮겨 쌓여 있는 박스를 정리한 후 가볍게 마당을 청소한 후 빗자루를 한 쪽에 세워두는데 문을 열고 유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 청소했어요?”
“그려... 더 자지 않고.”
“내가 나가서 해도 되는데...”
“아니야. 배고프지? 밥 차려줄게.”
“제가 아침 차리는 거 도울게요.”
“밥 차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화장실 가려고 나왔지? 어여 다녀와서 들어가.”
그렇게 유라도 화장실에 다녀온 후 나서 집으로 들어갔다. 준혁이는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는지 아침이 다 차려지고 밥상이 나오고 나서야 유라가 흔들어 깨워 일어났다. 잠결에 졸린 눈으로 식사를 하고 수건을 들고 세수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나 추은 거 별론데...”
9시가 다되어 가는 아침이라 밤과 마찬가지로 바람이 쌀쌀했다. 수돗가로 향해서 물을 틀어서 손을 만져보는데 역시나 차가웠다. 살짝 움찔한 준혁이었지만 참으며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그렇게 한 참을 이빨을 닦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준혁이가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물음을 던지는 준혁이었지만 밖에선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양치질을 하려고 손을 움직이던 준혁이는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걸음을 옮겨 다가간 준혁이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며 말했다.
“누구세...”
문을 열다말고 앞에 서있는 사람을 보곤 그대로 굳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안녕 준혁아?”
거기엔 생긋 미소를 짓고 있는 지나가 서있었다.
멍하니 지나를 올려다보던 준혁이가 갑자기 입에 물고 있던 칫솔을 떨어뜨리며 몸을 돌려 집으로 달려갔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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