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3화 〉 773화 가치판단
* * *
올라가는 길이 아주 험했다. 한 참을 올라온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도 아직 도착을 안했으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이 든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지나는 별로 힘들다는 소리나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자처해서 온 일이고 이 정도로 내색할 것 같으면 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양손에 가득 생필품들을 짊어지고 오는 아주머니들도 힘들 텐데 오히려 자신에게 걱정된다는 듯 저리 말하니 젊은 자신이 더욱더 그러한 내색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기는 했지만 확실히 실제로 찾아와보는 것과는 확실히 느낌은 다르네.’
산비탈을 따라 깎아서 지은 집들이 좁은 골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일명 달동네라 불리는 이 집들의 주거환경에 대해서 티비에서 나오는 것을 지나는 몇 번 본적은 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찾아와서 보니 확실히 더 와 닿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은 상당히 오래되어 보였고 벽이나 담이 금이 가 있는 집들도 있었다. 개중엔 이사를 가고 없는지 빈집들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해가지고 밤이 찾아오면 아무리 가로등 불빛이 있다고 해도 좀 으스스 할 것 같았다. 물론 지나는 그런 것에 신경을 크게 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것도 일이겠어.’
이렇게 높은 곳에 살면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중간 중간 쉬면서 가지 않으면 못 갈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함께 가고 있는 아주머니 두 분은 꾀나 이 길이 익숙한 듯 보였고 단련이 되어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이런 자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라 보았다.
“아가씨, 저 집 보이지?”
“저 집이요?”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가 바라보는 곳을 쳐다본 지나는 초록색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허름한 대문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우리가 갈 목적지야.”
“그렇군요...”
“많이 힘들었지?”
“힘들긴요... 저보다 아주머니들이 더 힘들었을 텐데요.”
라면 한 박스도 가벼운 무게는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생필품들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나일론 끈으로 묶여 있는 박스와 봉지를 양손으로 들고 가고 있는 이 아주머니들이 더 힘들 것이 당연했다. 중간 중간 쉬었다 가는 지점에서 들어보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 지나였다.
“젊은 아가씨가 참 심성도 착하네...”
“힘들면 힘들다고 해. 우린 괜찮으니까.”
“진짜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지나가 다시 걸음을 옮겨 앞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아주머니들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목적지의 짚 앞에 도착한 아주머니들 중에 한 명이 익숙한 듯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저희들 왔어요!”
대문을 두드리면서 안에 들리게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걸리자 곧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닫혀 있던 대문이 열리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익.
녹이 슨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보인 할머니가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뭘 그렇게 많이들 들고들 오셨누?”
“많기는요.”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여들와.”
그렇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마당에 한 편에 쌓여 있는 오래 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을 닫고 좁을 길목을 따라 걸음을 옮겨 닫혀 있던 현관문을 구부정한 허리의 할머니가 조심히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아주머니들이 익숙한 듯 들어갔고 지나도 조심히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아담한 부엌 겸 현관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가스렌지와 부실한 생필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들고 있던 라면 상자를 조심스럽게 한 쪽에 내려놓은 지나는 들어오라는 할머니의 말을 따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로 바로 이어지는 방안은 5평정도 되어 보이는 아담한 단칸방이었다. 장롱이나 작은 브라운관 티비,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작은 식탁이 있었는데 뭔가 허름했다.
한 편엔 아이들의 옷으로 보이는 옷들과 교과서들도 눈에 들어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손자와 손녀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밖이 제법 쌀쌀하지?”
가을에 접어든 계절이라 바람이 불면 차게 느껴졌지만 아주머니들은 그렇지 않다며 말했다. 전기장판이 깔려 있는 자리에 조심히 몸을 앉힌 지나를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처음 보는 얼굴이네?”
“정지나라고해요.”
“그게 아가씨 이름인가 보구먼.”
“네.”
“오느라 수고했어. 많이 힘들었을 텐 데 말이야.”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해서 이 정도는 괜찮아요.”
할머니의 말에 지나가 웃음을 지었다. 그에 할머니도 따라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참 고운 아가씨구먼.”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할머니가 차 한 잔도 대접하지 못 한 것을 깨닫고는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했는데 그에 지나가 먼저 일어나며 나섰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할머니가 한사코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지나는 그런 할머니를 도로 자리에 앉히시고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다.
“커피는 찬장에 있어요?”
“열면 보일게야.”
할머니의 말대로 벽에 달려 있는 찬장을 여니 20개짜리 믹스커피가 들어 있는 작은 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네 개를 빼고는 식기들이 담겨 있는 보관함을 열고는 안에서 컵 네 개를 꺼냈다.
‘물은 여기에 끓이면 되겠다.’
커피포트나 작은 물주전자가 보이지 않아 지나는 양은냄비 하나에 적당히 물을 받아서 가스렌지 위에 올려 불을 켰다.
“할머니 추울 텐데 문 닫을게요.”
“열어놔도 괜찮아.”
부엌에 혼자 있을 지나가 미안했는지 할머니가 열어놔도 된다고 말했지만 지나는 미소를 지으며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히 문을 닫아주었다.
“젊은 아가씨가 참 마음이 고와.”
지나의 그런 배려가 할머니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절로 칭찬이 나왔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보기 드문 아가씨죠.”
“보니까 대학생 같은데 봉사점수 때문에 왔냐고 하니까 그것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스펙을 위해서 온 것이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는데 지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었다. 그저 어려운 분들 도와주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보기에 귀티가 흐르는 외모의 아가씨라서 처음엔 좀 미심쩍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의심도 많이 가셨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땀을 흘리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열심이었다. 물건들을 차에 실어 나를 때도 쉬는 시간 없이 도왔던 것이다. 그리고 조를 이루어 이렇게 올라 올 때까지도 그러했다.
“이상해...”
그때 할머니가 닫혀 있는 문의 반투명한 유리문에 비쳐지는 지나의 인영을 보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에요?”
“저 아가씨 언제 한 번 본적이 있는 것 같단 말이여.”
“할머니도 그래요?”
그때 왼편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놀란 듯 말했다.
“강영씨도 그래?”
“네, 저도 속으로 왠지 본적이 있는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외모가 예뻐서 그런 거 아닐까”
“외모?”
“외모가 눈에 띄게 예쁘면 뭔가 친숙하게 다가오잖아.”
“그럴 수도 있겠구먼.”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들의 말에 수긍한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참 착한 아가씨여.”
비록 문이 닫혀 있다고 하지만 겨우 작은 미닫이문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상황이라 그 목소리가 부엌에 그대로 다 들려왔다.
‘아마 티비에서 봤을 거야.’
자신을 본적이 있는 것 간다는 그 말이 지나는 사실로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니라 몇 번 티비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걸 통해서 봤었던 게 분명했다.
네모난 쟁반에 놓아져 있는 컵들엔 믹스커피가루들이 담겨 있었다. 물이 끓으면 거기에 부어서 타서 가져가면 될 일이었다.
‘이런 곳에서 세 명이서 살아가다니...’
지나는 작은 부엌 겸 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골목길을 올라오면서 보았던 집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 이상으로 허름한 건물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는데 이 좁은 집에 할머니와 손자 손녀 셋이서 살아가고 있다니 지나로써는 그저 놀라우면서도 마음이 씁쓸했다.
이집의 방과 부엌을 합쳐도 지나가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집의 자기방의 반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좁은 곳에서 가족 셋이서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 지나였다.
‘이걸 빈부격차라고 하는 거구나.’
이론 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배우 긴 했지만 그저 공부를 통해 알게 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한 것은 확실히 달랐다.
아무리 못 산다고 해도 이정도일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완전히 밖에서 살아가는 노숙자들도 있기도 했지만 그런 이들을 보는 것과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또 달랐다.
‘확실히 난 복을 타고났어.’
이걸 보면 자신이 얼마나 큰 복을 타고났는지 지나는 확실히 와 닿았다. 그리고 한 편으로 그때 이만석이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하던 그 말이 너무나도 사실감 있게 다가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