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2화 〉 772화 가치판단
* * *
“회장 직은 천천히 물려받도록 하죠.”
“그동안 자네는 자유를 누리고 말이지?”
“자유보다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건 회장이 돼서도 할 수 있는 일이네.”
“아직 저보다는 회장님이 더 그 자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거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넌지시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이만석을 보며 정인철 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이만석이 거절을 할 것은 잘 알고 있었고 아직은 이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 편으로 생각하면 웃음이 다나왔다.
누구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해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데 이만석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이 나라 최고의 조직이었다. 당연히 누구라도 그 조직의 수장으로써 권좌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도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석은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 정인철 회장으로써는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마치 이런 자리에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어서 더 그러했다.
“참 보면 놀라워.”
“뭐가 놀라우신가요?”
나긋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차이링의 말에 정인철 회장이 두 사람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다 놀랍네. 차이링이 내 옆에 앉아있다는 것도 놀랍고, 이 친구를 만나게 된 것도 놀라워. 그리고...”
순간 정인철 회장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차이링의 배로 향했다.
“어머.”
그 시선에 차이링이 손으로 뺨을 감싸며 부끄러워했다.
“하하하!”
그런 차이링의 행동이 귀여웠던지 정인철 회장이 크게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흐음...”
“왜 그래?”
음악프로그램녹화를 앞두고 리허설을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온 세린이 작게 숨소리를 내뱉자 리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아무것도 아니야.”
별거 아니라는 듯 생수병을 열어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세린을 보며 리나가 잠시 다른 애들을 바라보다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 그 사람 생각했지?”
“아니야...”
“아니긴 맞는 거 같은데.”
한 번은 부정했던 세린이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고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이미 알거 다 알고 있는 리나 앞에서 부정을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나 앞에선 크게 숨길 것도 없었다. 물론 그렇고 그런 건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시간 내는 게 참 힘든 거 같아서.”
“콘서트 이후로 확실히 많이 바빠지긴 했지.”
콘서트 전에도 물론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주말이나 휴일엔 그래도 여유로운 시간을 하루 정도는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본격적으로 국내활동을 이어가면서 들어오는 일이나 방송국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그 중에 예능섭외도 두 군대나 들어와서 조율중이라 앞으로 더 바빠질 것으로 보았다. 일이 많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기가 올라가면 당연히 로즈걸스의 멤버로써 세린 또한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끼지만 한 편으론 이만석을 보기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어 마음이 슬펐던 것이다.
“많이 보고 싶어?”
자신의 말에 걱정이 묻어나는 표정을 짓는 세린의 모습에 리나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조금...”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 조금이지 저렇게 답답해 할 정도면 아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대화를 나누던 떨던 두 사람에게 유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뭐?”
앞까지 유진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작게 얘기를 속닥거리니까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나눠?”
“재미난 얘기는 무슨...”
“방송얘기 하고 있었어.”
“진짜?”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하는 그 시선 때문일까 세린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도 그렇고 도대체 두 사람 뭘 그렇게 속닥거려?”
그때 희라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얘기에 끼어들었다. 유진처럼 얼굴엔 궁금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시선이었다.
“맞아. 오늘이 처음이 아니야. 저번에도 그렇고 뭘 그렇게 작은 목소리를 얘기를 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런 거 없어.”
“수상한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뭐, 뭐?”
“그런 거 아니면 그렇게 숨길 필요 없잖아.”
“말 더듬는 거 보니까 수상한데.”
“누가 말 더듬었다고 그래!”
“어? 이젠 목청까지 높아지네?”
놀란 듯 표정을 짓는 희라와 유진의 모습에 세린이 당황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제이니가 합류를 하며 얘기에 끼어들었다.
“세린이 너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 생겼는데 숨기는거 아니야?”
콕 치고 들어오는 제이니의 말에 세린은 뭐라 변명을 하지 못 하고 얼굴까지 붉혀졌다. 그 모습이 더욱더 멤버들에게 수상 쩍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몰라 그런 거 아니야.”
그 시선들을 받기 힘들었는지 그대로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세린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리나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화장실로 들어온 세린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잘 못하다 취조 아닌 취조를 당할 뻔했다.
“얼굴 한 번 보기 참으로 힘든 거 같아.”
일이 많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닌 듯 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걸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 세린이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집트에서 들려온 소식에 존 마이클 대통령이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줄 알았던 루이스 장관에게서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고 이해가 가질 않는 일이었다. 이정도의 조건이면 아무리 아마사피 대통령이라고 해도 이쪽으로 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고사하고 FTA또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취소한다거나 그런 얘기는 아니었지만 거절 한 것뿐만이 아니라 강경하게 나온 것이 분명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강경하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이집트에선 아직 공식적인 기자회견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존 마이클 대통령은 루이스 국무장관과 연락을 통해 일단 어느정도는 보고를 받았기에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충은 알았다.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다니... 이런 일은 참으로 드문데......”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 전에도 일어났었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의 윤정호 의원이었고 그 또한 좋은 조건을 거절하고 그대로 대사관을 나와 돌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당황스러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집트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마사피 대통령은 그렇게 자신의 생각 따라 거절 할 수 있을 것이라 보기 힘들었다. 15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지원과 유리한 쪽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데 협상을 하자고 했었다.
지금의 이집트 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좋은 조건을 넘어 많은 것을 이쪽에서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아마사피 대통령은 두 번의 회담이 지나가는 동안 좋은 확답을 고사하고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뭔가 이유라도 있을 것인데...”
거절을 했으니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아니 있는 게 당연했다. 이건 이집트에게 참으로 좋은 조건이었고 미국으로써는 손해 보는 장사였다. 그런데도 이런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아마사피 대통령이 벌이려는 일에 대해서 의사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어쩌면 개의치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겠어.’
이걸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면 지금으로썬 아마사피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사자회담에 대한 기대를 크게 걸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 끝이 중동연합일지는 아직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이집트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아마도 그걸 염두에 두고 벌이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루이스 국무장관을 보냈던 거 였었다.
“얘기를 해보면 알겠지.”
루이스 국무장관이 돌아오고 있다고 하니까 도착하면 곧장 불러서 만나보려 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들어야 알 수 있을 테니까.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존 마이클 대통령이었다.
“아가씨 조금 쉬었다 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말에 커다란 라면 한 박스를 짊어지고 가던 지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는 말을 했다.
“학생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그에 또 다른 아주머니 한 분이 크게 숨을 고르는 지나를 보며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만 힘든 것도 아닌데요. 이정도면 할 만해요.”
잠시 라면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은 지나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 내고는 다시 품에 갈무리 한 후 양시 양손으로 짊어지었다.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도 길게 위로 뻗어있는 좁은 경사진 길목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럼 다시 출발해요.”
두 명의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말한 지나가 다시 바삐 걸음을 옮겨 경사진 길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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