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7화 〉 757화 그의 대답
* * *
“준비하거라.”
“예, 아버지.”
자리에서 일어난 민우가 먼저 서재를 나섰다.
“이번엔 또 얼마나 나를 놀래 킬지 궁금하구나.”
이만석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정석환 회장은 놀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었고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이만석 같은 사내는 처음이었다. 자신의 딸을 첩으로라도 들어가라고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었다.
남아 있는 커피를 단 번에 다 비워버린 정석환 회장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전화에요?”
담소를 나누다 말고 밖으로 나가 전화 통화를 끝내고 테라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이만석을 보며 지나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지나씨 오빠입니다.”
“우리 오빠요?”
그 말에 지나는 물론이고 차이링과 하란이 또한 관심을 드러내며 바라보았다.
“잠시 봤으면 한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흐음... 무슨 일일까?”
흥미를 보이며 물어오는 그녀들의 말에 이만석은 그저 웃음만 지어 줄 뿐이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정석환 회장이 민우의 차량 뒤편에 올라탔다. 이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남편과 아들을 보며 최여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내인 희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시 회사에 볼일이 생겨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나서는데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 먼저 쉬고 있으라는 얘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지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보면서 최여사와 희경은 밖으로 나와 대문을 열고 나서는 차량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에 들어선 민우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 적막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런 곳에 부른 곳을 보면 아무래도 제대로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지?”
“예, 아버지.”
“내가 이렇게 긴장하기는 정말로 오랜만이구나.”
작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중얼거림에 민우도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민우 역시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 땀이 젖을 정도였다. 아버지인 정석환 회장만큼이나 민우 또한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그저 이만석이 말한 약속장소로 조용히 차를 몰고 갈 뿐이었다.
차량을 몰고 간 장소는 서울도심 외각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허름한 폐 공장이었다. 반쯤 열려있는 공장 문을 민우가 내려서 열 때도 잘 열리지 않아 힘을 많이 줘야 했다. 그렇게 겨우 열고 다시 차량을 몰아 안으로 들어가 공장 뒤편으로 돌아가자 정말로 이만석이 알려준 대로 널따란 공터가 하나 나와 있었는데 그 옆에 폐 자제들이 벽처럼 쌓여 있었다.
“분위기가 으스스한데요?”
아무래도 오래된 폐공장이다보니 서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뒷좌석에 앉아 잠시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정석환 회장이 작게 입을 열었다.
“그 친구는 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겠지.”
민우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이 폐공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정도면 와 본적이 있었거나 여기서 뭔가 일을 벌였던 적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척 봐도 사람의 인적이 완전히 끊겨 있는 이 곳은 누가 봐도 좋은 의도로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음...”
민우가 말하지 않아도 정석환 회장 또한 이곳에 이만석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전화해 볼까요?”
“기다려보자.”
“예.”
차가 밀려서 아직 도착하지 못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가 있는 일이었다. 설마 이만석이 두 사람을 불러놓고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거야 말로 허무맹랑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차안에선 잔잔한 음악 소리 말고 별다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만석이 올 동안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민우가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밖으로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어떤 초능력을 보여주려 그러는 것일까.’
이렇게 인적이 드문 길에 아무도 오지 않을 폐 공장에 부를 정도라면 뭔가 보여겠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의 범위가 될지 민우로써는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나왔던 그런 걸 보게 되려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 참 유행을 타고 있는 히어로물이 민우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민우도 몇 번 그러한 영화를 본적이 있었다. 사람이 슈트를 입고 초인이 된다든가, 괴력을 발휘하는 뭔가로 변한다던가, 아니면 사람 그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초인이 되어 이 능력을 발휘하며 도시를 누빈다던가 하는 그런 영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것들이 존재했으면 세상이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것임이 틀림이 없었다. 그러한 초인들이 세계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곡 국가의 막대한 이익이 되는 존재들이고 그러한 인물 한 명을 키워내면 그게 곧 나라의 영향력이 될 터인데 손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전혀 그러한 존재에 대해서 소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었다.
초능력은 말 그대로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 했다. 공상과학 영화나 판타지세상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민우가 찾아온 것을 바로 그것을 두 눈으로 제대로 목격을 하려고, 알기 위해서 자리한 것이다. 이미 조금이나마 보았으니 처음으로 목격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늦는군.”
뒤에서 작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에 민우가 다시 시간을 확인 했다. 도착한지 10분이 자난 시간대를 보이고 있었다.
“제가 전화라도 해볼까요?”
미러를 통해 아버지를 보며 민우가 그렇게 말하자 정석환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그래 보이네요.”
진지한 아버지의 목청에 민우 또한 그에 수긍하며 뒤편에서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이만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걸어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온 이만석이 운전석 옆에 섰을 때, 어느새 민우가 문을 열고 내려섰다.
“10분 늦었어.”
“일이 있어서 말이지.”
“차는 밖에 새워두었는가?”
그때 뒷물을 열고 내려선 정석환 회장이 이만석이 걸어서 들어온 것을 두고 질문을 던졌다.
“아닙니다.”
“수행비서로 두었다는 여자가 차를 끌고 왔다가 다시 돌아갔나보구만.”
민우에게서 이만석이 수행 비서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그렇게 말했다. 정석환 회장도 그렇게 비서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만석은 그 얘기 또한 부정을 하며 아니라는 말을 했다.
“택시나 그런 걸타고 온 것도 아니니 안심 하셔도 됩니다.”
혹시나 이런 곳에 찾아오면서도 택시를 타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걸로 생각했을지 알고 이만석이 그 또한 부정하는 말을 했다.
“그럼 무얼 타고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차를 끌고 온 것도 아니고, 비서를 통해서 타고 오거나 택시도 타고 온 것이 아니면 어떻게 왔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이만석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건 잠시 후면 알게 되실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잠시 후면이라면 이 자리를 또 이동하게 된다는 말이야?”
“그렇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이만석의 대답에 민우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자신과 아버지를 불렀다면 이곳이 적절한 장소라 생각해서 불렀을 터인데 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된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동을 할지 안 할지는 너하고 회장님 결정에 달렸지만 말이야.”
“원하지 않는다면 이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맞아.”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이만석의 대답에 마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에 부른 것을 보면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걸로 보이는데 사실인가?”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정석환 회장이 잠시 고개를 돌려 넓은 공터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리로 일단 이동하지.”
아무래도 넓은 뭔가 보여주기엔 넓은 공터가 좋을 것이니 그리 가자고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만석 또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민우 또한 그런 이만석의 옆에 나란히 걸었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옆에서 걸음을 옮기는 이만석을 향해 민우가 작게 말을 걸었다.
“물어봐.”
“혹시 지나도 네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어?”
“내가 초능력자라는 거 말이냐.”
“그래.”
“아직은 몰라.”
“모른다고?”
혹시 지나는 이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질문을 던졌던 민우는 모른다는 말에 의외라는 반문을 했다.
“그녀들은 이쪽 세계로 대도록 이면 끌어 들이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쪽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한 다는 게 무슨 뜻이야.”
“일단 이 일에 대해서 알게 되면 절대로 내 손에서 벗어 날 수 없을 테니까.”
“......”
“사랑하는 이들 만큼은 그런 옥 죄에 가둬놓고 싶지 않거든.”
“지나를 위해서라는 말인가...”
“나를 떠난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가두고 싶지는 않거든.”
고개를 끄덕이던 민우가 순간 인상이 그대로 구겨졌다.
“그 말은 즉 나는 벗어 날 수 없다는 얘기잖아?”
“비밀을 알았으니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그래서 물어 봤잖아. 가림 막이 사라지면 더 이상 빼는 것은 힘들다고. 난 경고를 했고 두 사람은 받아 들였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