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4화 〉 754화 그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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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협상에서 고위급 회담으로 올라선 그 자리엔 의외의 인물이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박동구 의원이었다.
회담으로 격상이 되고 통일부 장관인 강민식이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보다 박동구 의원이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실질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하는데 있어 정치권이 신중을 표하는 와중에 당당히 나섰던 인물이 박동구였다. 그의 과감한 언변과 질책에 사람들은 그를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이가 이번 회담에 참석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박동구 의원님은 어떻게 참석을 하게 되신 것입니까?”
이번 2차 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당연히 박동구 의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가 없을 수 없었다. 그래서 회담 대변인으로 단상에 선 통일부 대외 수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국회 대표로써 회담에 같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라 함은 김철중 의원이나 정만오 의원과 같이 그런 분들이 있을 텐데 왜 박동구 의원이 뽑혔는지 궁금합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3선 이상의 의원들을 포함해 당들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거나 높은 직함을 가진 인물들이나 입김이 센 이들 중에 뽑지 않았냐는 물음과도 같았다.
“물론 그런 분들이 오랫동안 국회에 몸을 담아왔고 힘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정상회담을 앞둔 정부 회담이기에 적절한 분과 함께 하게 된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순간 여기저기에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박동구 의원이 뽑힌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라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2선이나 3선 의원도 아닌 초선의원이었다. 물론 혁신의 아이콘으로써 젊은 의원들 사이에서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당들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좀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박동구 의원이 뽑힌 이유 중에 하나가 저번 소신발언이 영향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까?”
의회가 신중하고 정부에서 아직 아무런 말이 없었을 때 먼저 나선 사람이 바로 박동구 의원이었다. 그때 한국 내에서 그의 이름 섞자가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이 되었고 핫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 차기 대권후보로써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윤정호 의원이 힘을 실어주어서 더욱 화제가 되었었다.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지 이번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그때 또 다른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었고 대변인으로써 단상에 올라서 있는 수석이 그를 지목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정말로 개최가 되는 것인지... 어떻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고 있다 시피 1차 만남에서 정상회담으로 격상이 되었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그에 대해선 차질 없이 대화를 통해 조율 중에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진행되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3차 판문점 회담에서 결론이 나올 것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때 또 다시 여러 명의 기자들이 손을 올리며 발언권을 원했다. 그러자 그 중에 한 명을 지목하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자가 입을 열었다.
“정상회담이 정말로 이번 년도 안에 개최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될 확률은 어느 정도 인지 알고 싶습니다.”
자그마치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는 것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걸 두고 쉽게 예단 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기에 재차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리라 볼 수가 있었다.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다음 정부로 이번 정상회담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순간 다시금 기자들 사이에서 여러 말들이 작게 흘러나왔다.
저 말을 빌어보자면 정말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고 봐야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이번 2차 판문점 회담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고 그렇게 그날 발표문이 지나갔다. 낮에 있었던 이 발표를 두고 신문사들이나 방송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이번 정부 하에서 정말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사는 국민들로 하여금 참으로 놀라게 만들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이 얘기들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이다.
“아주 입이 귀까지 찢어지겠다, 찢어지겠어.”
뉴스를 보고 있던 김철중 의원이 옆에 앉아 있는 박동구를 향해 못 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흐뭇한 표정으로 뉴스를 바라보고 있던 박동구가 고개를 돌려 김철중 의원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 지금 내 심정으로는 입이 찢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디다.”
“찢어져도 괜찮다고?”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하는 말에 박동구가 다시 웃음소리를 내었다.
“흐흐흐... 그렇수다.”
“가위 가져와라.”
“가위는 왜 찾는 거요?”
“네 소원대로 입을 찢어주려고 그런다.”
“아니 진짜 찢어 달라는 건 아니고... 심정이 그렇다는 얘기요, 심정이.”
“네놈은 자존심도 없느냐?”
“거 참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런데 그렇게 바보처럼 헤실거려?”
“이건 헤실거리는 게 아니요.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을 기뻐하는 것이요. 그 분은 내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키워주려고 밀어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이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면 느꼈지 안 좋아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에잉... 기자들이 이런 모습을 봐야하는데... 쯧쯧쯧,.....!”
한 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김철중 의원이었지만 그 이상 뭐라 하기 힘들었다. 자신 또한 이만석에게서 벗어나기 힘든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삶이란 다 그런 거 아니겠소?”
실실 쪼개는 박동구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혀를 찬 김철중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장인어른 티비는 왜 끄고 그러시오?”
“방에 들어가려고 그런다.”
“그럼 그냥 들어가시면 되지. 거참 내가 보고 있는데도 그러시네... 사위가 잘 나가는 게 배가 아파서 그러나.......”
뒤에서 작게 들려오는 박동구의 목소리에 방으로 가려던 김철중 의원의 발길이 서재 쪽으로 바뀌었다.
“흐흐흐 거참 인물은 인물이란 말이야.”
뉴스 채널을 돌리다 판문점에서 나서는 자신을 보며 박동구가 다시금 웃음소리를 흘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카메라를 잘 받는다고 느꼈다. 정치를 안 했으면 방송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마음도 드는 박동구였다.
“티비에 나오는 네 모습이 그리도 흐뭇하냐?”
“당연한 거 아니요 장인어른...”
“당연한 거구나.”
“생각해보니까 내가 정치를 안 했으면 방송계에서 일했을 것 같소.”
“방송?”
티비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를 저렇게 잘 받는데 그래서 내가 티비나 신문에 나오면 더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구나. 나쁘지는 않겠지.”
“역시 장인어른도 그렇게 생각 하시는가 봅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티비를 바라보던 박동구는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까 분명 방에 들어가신다고 하셨는데?’
지금쯤 방에 있어야 할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그제야 티비에서 시선을 때고 고개를 돌린 박동구의 얼굴이 순간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자, 장인어른...”
“우리 사위가 잘 나가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매도 참 맛나게 잘 맞을 것 같은데 우리 잘 나가는 사위 생각은 어떤가.”
“저보다는 당연히 장인어른께서 더 대단하신 분이지요. 저 같이 미천한 놈이 뭐가 잘 난 것이 있다고 그러겠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장인어른은 대번에 정치권을 휘어잡아...”
“동구야.”
“예, 장인어른.”
“일단 좀 맞고 얘기하자.”
순간 소파에서 일어난 박동구가 그대로 부부침실로 바로 달려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김철중 의원의 얼굴은 느긋해 보였다. 그러는 사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박동구는 서둘라 잠구어 버리고는 고개를 돌려 아내 혜선을 찾았다.
아무리 장이어른이 화가 많이 났다고 해도 아내인 혜선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바라본 박동구는 그대로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침대에 있어야 할 아내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똑똑
그때 등 뒤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동구야.”
이어서 김철중 의원의 나긋한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제 엄마하고 외출해서 아직 안 들어왔는데 우리 잘나가는 사위가 까먹었나 보구나.”
그제야 박동구는 혜선이 장모님하고 외출을 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 다시금 문 너머에서 장인어른의 목청이 들려왔다.
“지금 열면 딱 스무대로 끝내주마. 내가 열고 들어가면 가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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